일본인이 한국에 뭘 배웠는지 모르는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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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7/07/17(Mon) 20:20:21ID:cyNDIwMDI通報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너무 심하지 않아?

    <<백제>>

    백제에서는 일찍이 근초고왕때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에 건너가 한문을 가르쳤다. 이 때의 한문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문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으며, 유교의 충효 사상도 보급시켜 주었다. 이어 근구수왕때에는 일본의 요청으로 백제의 학자들이 초빙되어가서 유학뿐 아니라 도기·직조·도화 등의 기술을 전해 주었다.

    무령왕 때에는 오경 박사 단양이와 고안무를, 성왕때에는 오경 박사와 의·역 박사 등을 보내어 일본인들에게 유학과 기술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특히 성왕때에는 노리사치계가 일본에 불교를 전하였다. 무왕때에는 관륵이 역법과 천문학을 전하고 일본 불교를 크게 일으켰다.

    이와 같은 백제 문화의 전파는 일본 고대문화인 아스카 문화 형성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백제 문화의 영향으로 5층탑이 세워지고 백제 가람이라는 건축 양식도 생겨났다.

  • 158名無し2017/07/18(Tue) 14:14:24ID:cyMzI2MzI(1/1)NG通報

    >>155

    歴史書にしっかりと書かれている事を否定しても無駄だろ?
    百済の王子は日本に送られ、百済が逆らえなくしたのは間違いない歴史だ。

    七支刀
    王が持つ剣を日本に献上した歴史

  • 159名無し2017/07/18(Tue) 15:28:42ID:E3NzIyNjg(1/1)NG通報

    >>29
    王仁さんね。知ってるよ。
    日本人は記紀に記録してたけれど、朝鮮では記録すらなかったという話ね。
    日帝と併合後日本人が王仁祭してるのを見て朝鮮人が王仁の存在を初めて知って慌てて朝鮮でも銅像立てたりしたんだよな。
    もともと中国系の学者といわれる。

    ほんとうに間抜けな民族だ。

  • 160名無し2017/07/18(Tue) 20:41:51ID:kwNTU1MTQ(9/17)NG通報

    >>157
    客観的にお前の論は都合のいい解釈の域を出ない。

    細かい話は省略するがまず、高句麗がどっちの歴史かと言えば、日本は百済の子孫と平気で発言する韓国人の思考に則れば、間違いなく中国の歴史だろう。理由は自分で考えてくれ。

    どの歴史書も正確な歴史を記録している訳では無いだろう。しかし、韓国人は民族主義的思考により都合のいいものは積極的に受け入れ、都合の悪いものは無視及び曲解する傾向がある。

    少なくとも、好太王碑、隋書、日本書紀の記載から確実に言える事は、臣民云々はともかくとして、倭国と百済はどんなに譲歩し考慮しても倭国上位の同盟関係であり、人質としての保証人に加え七支刀や、文献の類は倭国に対する献上物であり、少なくとも「教えてやった」という性質のものでは無い。倭国はその上で同盟国としての軍事協力をしていたのだ。傭兵という解釈はどの資料をどう読んでも成り立たない。

    資料は正確なものとは言えない。しかしお前は都合よく曲解し過ぎている。

    また、もう少し翻訳の精度が上がるような書き方を心掛けてくれ。お前の文章は70%位の理解しか出来ない。

  • 161石井四郎2017/07/18(Tue) 20:49:42ID:QzMzI4MTg(1/1)NG通報

    中国のパシリそれが朝鮮
    ちなみに中国はインドのパクリだけどww

  • 162倭寇2017/07/18(Tue) 21:40:59ID:E3MTA0MTI(15/31)NG通報

    >>160

    확실히 중국의 역사?
    적당히 해라 정말 구역질난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기초적인 중화사상의 논리에 어긋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중국은 필사적으로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했다.
    고구려뿐만이 아니다. 부여,고구려,발해 등 중국대륙에 위치한 국가는 기본적으로
    중국이 역사곡해를 시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라 말 할수 있겠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논리는 상당히 가벼운 수준이다.
    고구려가 중화의 국가랑 조공-책봉이라는 관계를 맺었다는 논리인데
    이것을 옳다고한다면
    중국 주변에 위치한 모든 동아시아국가역시 중국사라는 논리가된다.
    하지만 중국은 철처하게 고구려를 건들고있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너네가 그런 논리를 가지고 주장한다면
    어째서 고구려만 건드는가? 라고 말한다면
    중국학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수 가없다.
    결국 근 몇년 주장이 약해지나 싶더만
    근래에 저렇게 관광지원에서 저런 표지문을 세워놓는 치졸함을 보여주고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역사에서 중국은 고구려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한번 자료를 보도록하자.

  • 163倭寇2017/07/18(Tue) 21:47:45ID:E3MTA0MTI(16/31)NG通報

    2월17일 정오에 왕씨 성과 송씨 성의 아찰어사 두 대인이 나를 예빈관에서 대접하고는 묻기를, "당신 나라는 무슨 장기가 있어서 능히 수나라,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지모 있는 신하와 용맹한 장수가 군사를 부리는 데 방법이 있었으므로, 병졸 된 사람들은 모두 윗사람을 친애하고 장상을 위해 죽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고구려는 천하의 백만 군사를 두 번이나 물리쳤습니다. 지금은 신라, 백제, 고구려를 합쳐서 한 나라가 되었으니, 물산은 많고 땅은 크며, 재물은 넉넉하고 군사는 강성하며, 충성스럽고 지모 있는 선비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표해록>-조선 성종때 명나라에 표류한 최부


    "귀국은 고구려 때부터 강국이라 일컬어졌는데 근래에 와서 선비와 서민이 농사와 독서에만 치중한 탓으로 이와 같은 변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선조실록 39권, 선조 26(1593)년 6월 5일 무자 5번째 기사-

    귀국의 강한 군대는 본디부터 천하에 소문이나 천하의 군대라칭했는데, 수(隋)ㆍ당(唐) 때는 그리도 굉장했으면서 풍신수길(豐臣秀吉)의 난에는 어째서 그리 방황하십니까?
    -<금계일기> 5월 20일자 기록-

    이 때 조선의 昇平이 오래 되어 군대는 전쟁을 익히지 않았고 李昖(-선조) 또한 술에 빠져 방비를 게을리 했다. 갑자기 섬의 오랑캐가 난리를 일으키자 모두가 방황해버렸다.
    -<明史> 권320 列傳 208, <朝鮮>-

  • 164名無し2017/07/18(Tue) 21:49:0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65名無し2017/07/18(Tue) 21:50:27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66倭寇2017/07/18(Tue) 21:56:48ID:E3MTA0MTI(17/31)NG通報

    조선이 태평한 지가 오래되어서 외환(外患)과 내치(內治)를 전혀 생각하지 않아, 일이 없으면 붓을 휘두르는 것으로 즐기지만 일이 있으면 속수 무책이다. 이 때문에 왜의노예들이 그런 정상을 익히 알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함몰시킨 것이다. 그러나 화를 입은 이래 여전히 깊이 징계를 하지 않고서 왜적이 가면 연당(燕堂)에 편히 거처하고 왜적이 오면 초수(楚囚)를 대한 것같이 하니, 오늘날의 조선은 수(隋)·당(唐) 때의 조선도 아니요, 또한 우리 나라 초기의 조선도 아니다. 자꾸만 우리로 하여금 계속 군사를 노숙시켜 오래 수자리 살게 한다면 오래될 경우 중국도 지쳐서 폐해를 받게 될까 염려되니 이는 두 나라가 함께 지치는 길이다. 만전의 대책을 계획하려면 중국의 정치를 본받아서 다스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선조실록 87권, 선조 30년(1597) 4월 13일 계유 7번째기사-


    요동 부총병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조승훈은 요동 출신이라고 조선에 대해 동족의식과 비슷한 발언까지한다.

    총병이 말하기를

    " 앞서 많은 후사를 받았는데 나는 조선과는 한 집안 사람입니다. 요동은 옛 고구려의 땅으로 동령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조선)를 가리켜 본향이라고했습니다. 중국 조정의 문무 관원들이 이곳에 많이 나와 있어 용도가 매우 많으니 두루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받으려면 선뜻 받지 어찌 근교를 기다리겠습니까?"

    -선조실록 103권 31월 8월9일


    성종 12년인 서기1481년,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조선에서는 창덕궁 인정적에서 연회를 베푼다. 이때 사신은 어린 기생이 추던 춤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사신과 성종사에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

    "이것이 무슨춤 입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이 춤은 고구려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름은 <동동무>라 하지요."
    -성종실록 132권 12년8월 3일

  • 167倭寇2017/07/18(Tue) 21:59:38ID:E3MTA0MTI(18/31)NG通報

    고려시대 (918~1392)

    자료도 보여줄까?

    중국은 1000년이 넘게 우리를 고구려의 후예로 인주했고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갑자기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너가 한국인이면 화가 안나겠는가?

  • 168テオリア2017/07/18(Tue) 22:04:21ID:kwNTU1MTQ(10/17)NG通報

    >>167
    もういい。分かった。

  • 169倭寇2017/07/18(Tue) 22:06:39ID:E3MTA0MTI(19/31)NG通報

    >>168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

  • 170名無し2017/07/18(Tue) 22:12:58ID:EwMTkyMzA(1/1)NG通報

    正に一人よがり、他人と意見を交わす気など無いのだろう。
    「そうあるべき」これしか伝わってこない。

  • 171テオリア2017/07/18(Tue) 22:18:29ID:kwNTU1MTQ(11/17)NG通報

    正直な所、高句麗が中国の歴史だろうが朝鮮の歴史だろうがどっちでもいい。
    日本の学者でも意見は分かれている。

    俺は朝鮮の歴史でいいと思うが、そうなるとお前らの中にはツングース系は韓国には一切関係ないと頑なに言う連中がいる。そことの矛盾をどう説明するのか。

    高句麗は住民は四方からの民族が混在した国だが、馬韓と言うもの、それは三国史記の虚構であり、高句麗支配層はツングース系(満州族)だろう。

    再度言うが俺はどっちでも構わない。ただお前らの韓民族意識はツングースを否定する。その矛盾の内包を韓国自体が解決する必要があるだろう。

    まあこっちはどうでもいい。
    まあ高句麗は北朝鮮の歴史だな。

    倭国と百済の関係に異議はないな。

  • 172名無し2017/07/18(Tue) 22:31:39ID:QyMzAxNzg(2/2)NG通報

    >>169
    朝鮮の百済の地は
    天皇陛下の土地なんで侵略者の韓国人直ぐに百済の地から出ていき、天皇陛下に返却してください

  • 173倭寇2017/07/18(Tue) 22:36:32ID:E3MTA0MTI(20/31)NG通報

    >>171 백제-왜 의 관계를 굳이 언급하지 않은건
    너랑 나랑의 견해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꼈다.
    이 부분은 완벽한 시간낭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0198&cid=46619&categoryId=46619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에서 역사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참고하는 사전이다.
    왜냐하면 이 사전은 학자들이 논문을 토대로 계속해서 최신수정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다. 한번 읽어보는것도 추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3013554
    -“하사품” “진상품” 백제 칠지도 둘러싼 韓日논쟁-

    학자들이 알아서 판단할거다.

  • 174倭寇2017/07/18(Tue) 22:53:51ID:E3MTA0MTI(21/31)NG通報

    >>171 내일 일찍 나가야되서 마지막으로 댓글 달겠다.

    일본인들이 고구려는 만주계의 국가라고 주장하는데..

    너네들은 기본적으로 만주족의 역사를 너무 모른다.
    정말 모른다.

    만주족은 원래 오랑캐의 무리
    변방민족 일 뿐이였다.

    훗날 "청" 을 세웠지만 그 이전의 역사는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 175テオリア2017/07/18(Tue) 22:55:03ID:kwNTU1MTQ(12/17)NG通報

    >>173
    まあお前らの受けている教育を考えればしょうがないな。韓国人とは何人かと話したが理解する人間と全くダメな人間がいた。中々面白い。

    日本は根拠資料をまず重んじる。但し資料も100%正確では無い。
    お前らは民族主義による民族主観を重んじる。
    完全否定はしないが、行き過ぎると他国から見ればファンパになる。

    まあ参考に見させてもらう。
    お休み

  • 176テオリア2017/07/18(Tue) 23:00:22ID:kwNTU1MTQ(13/17)NG通報

    >>174
    お前らにそういう民族も自らの国の歴史を構成した一要素と受け入れる柔軟さと寛容さがあれば、高句麗は朝鮮の歴史と胸を張って言えるのにな。

    お前らの民族主義的は邪魔になっていないか。
    それでは再度お休み

  • 177名無し2017/07/18(Tue) 23:03:16ID:c3MzY3NTY(1/1)NG通報

    菟道稚郎子は高句麗王よりの手紙に「何でも教えてやったから感謝しる」とあるのを見て
    その使者の前で「無礼者が!」と言って破り捨てた。
    古事記より

  • 178倭寇2017/07/18(Tue) 23:20:59ID:E3MTA0MTI(22/31)NG通報

    >>176
    번역기의 한계로 너네들 말 역시 60~70%밖에 이해 못하겠다.
    역시..

    너네들은 역사 너무 모른다.

    고려시대(918~1392)
    고려 태조 왕건의 휘하 유금필장군은 수 많은 만주족의 무리들을 이끌고 있었으며
    이들은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는데 크나큰 개국공신이 되었다.
    만주족의 무리들은 우리나라에 귀부 요청을 하였고 수 많은 만주인들이 고려의 군현에 편제되었다.
    만주족은 우리를 부모의 나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만주족의 무리들이 갈수록 오만해져 1107년 고려대장군 윤관이 20만의 기병을 이끌고
    토벌한다.

    조선시대(1392~1910)
    조선 태조 이성계는 만주족들과 큰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의형제 역시 만주족이 였으며 수십명의 만주족추장들이 이성계의 휘하에 포진되어있었고
    조선 건국에 크나큰 개국공신이 되었다.
    한글을 창제하는 세종 역시 수 많은 만주인들을 포섭하고 동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동화되었던 만주인들도 많지만 만주인들은 성격이 포악하고 사납기때문에 통제하기 어려웠다.

    항상 동화시킬려 노력했지만 너네들은 만주인들하고 싸워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성격을 모른다.

  • 179ゲンゾー2017/07/18(Tue) 23:56:02ID:E1NTg0MTY(5/5)NG通報

    >>178
    1392年に満州族を討伐したのに
    何故1407年に迎恩門が建てられたんだ?

  • 180倭寇2017/07/19(Wed) 00:21:23ID:g4Nzc0NDY(23/31)NG通報

    >>179 무슨소리인지 ㅋㅋㅋ

    만주족 토벌이랑 저거랑 아무 상관없다 ㅋㅋㅋ

  • 181名無し2017/07/19(Wed) 00:22:11ID:QxMTU4MzM(1/1)NG通報

    これ程までに歴史を捏造、改竄している韓国人

    そのまま突き進んで行け

    暗黒朝鮮時代から、嘘を言わないと生きられなかった奴隷乞食生活が数百年の朝鮮人の子孫達

    正直に話した相手を許してあげる文化が数百年の日本人

    嘘つきはどっちだ?w

  • 182倭寇2017/07/19(Wed) 00:23:53ID:g4Nzc0NDY(24/31)NG通報

    고려 태조

  • 183倭寇2017/07/19(Wed) 00:24:51ID:g4Nzc0NDY(25/31)NG通報

    >>181 일본에 수백년이라는 문화는 있어? ㅋㅋㅋㅋㅋㅋ

  • 184名無し2017/07/19(Wed) 00:25:25ID:Y2MDA5MzU(3/3)NG通報

    한국인 혼자서 원숭이들의 날조를 전부 팩트폭격으로 부숴버리는 현장이다.

  • 185倭寇2017/07/19(Wed) 00:33:36ID:g4Nzc0NDY(26/31)NG通報

    우리 백제국의 성왕

    잘 부탁한다.

  • 186テオリア2017/07/19(Wed) 00:34:36ID:k1NzEwMzc(14/17)NG通報

    >>183
    まだいるじゃねえか。

    一つだけ教えてくれ。
    日本では高句麗は今現在は中国の歴史とも朝鮮の歴史とも分類していない。

    基本的な事だがそもそも高句麗の朱蒙は韓民族と教えられているのか。それともツングース系と教えられているのか。

  • 187倭寇2017/07/19(Wed) 00:36:40ID:g4Nzc0NDY(27/31)NG通報

    >>186 너는 그래도 그나마 상식이 통하는 녀석같다.

    너 만큼은 대환영이다.

    너네들의 교과서에는 아무 나라에도 분류하지 않은건가?

    잠시만

  • 188名無し2017/07/19(Wed) 00:45:22ID:Y5MTQyMTI(1/1)NG通報

    韓国様から日本は多くのことを学んだ。

    1)分断国家は危険な存在。
    2)狂人と約束をするだけ無駄。
    3)困ったときに助けるのは愚の骨頂。
    4)K-POPなんか聴いてるとバカになる。
    5)根拠のない自信家に近づくな。
    6)ウソも100回言えば本当になる。
    7)顔も出自も整形でごまかせる。
    8)テロも見方を変えれば愛国。
    9)近所と仲良くする必要はない。
    10)朝鮮人を信じるな。

    ありがとう、韓国様。

  • 189テオリア2017/07/19(Wed) 00:48:59ID:k1NzEwMzc(15/17)NG通報

    >>187
    下らん喧嘩をする気などない。

    日本では中韓への配慮もあるだろう。
    日本では高句麗は中国でも朝鮮でもなく東アジアの歴史に分類されている

    お前らの国で朱蒙が韓民族かツングース系民族かどっちで教えられているか気になった。

    明日は仕事が早いから寝る。

    明日でも構わん。

  • 190倭寇2017/07/19(Wed) 00:51:36ID:g4Nzc0NDY(28/31)NG通報

    >>186
    일단 너의 질문 자체가 깔끔하게 번역되지 않았다.

    너가 물어보는건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출생에 대해서 물어보는건가?
    그가 한민족인지 퉁구스계 민족인지를 묻고있는거야?

    주몽은 부여국의 사람이다.
    부여에서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는 시조가된다.

    그의 아들 온조 역시 남하하여 백제의 시조가된다.

    너네들은 왜이렇게 퉁구스 퉁구스에 집착하는거냐
    만주족은 우리 바로 옆에 수천년간 붙어 있던 애들이다.

    기본적으로 만주족은 우리하고 가장 밀접한 유전관계를 갖고있고
    고대부터 인구수역시 우리가 더 많았다.

    만주족은 우리에게 동화된 사람도 정말 많고
    우리 나라사람 역시 만주족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대부터 우리하고 만주족은 언어가 아예 다르다.
    이건 왜 이런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 학자들도 풀지 못한 숙제라 알고있다.

  • 191倭寇2017/07/19(Wed) 01:01:48ID:g4Nzc0NDY(29/31)NG通報

    >>189

    수 많은 고구려인들은 한국에 동화되었다.

    발해국이 멸망하고 발해세자 대광현은 수십만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려로 귀부해왔다.
    발해국의 건국시조 대조영이 내 할아버지다.
    지금도 한국에는 발해국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2719455

    고구려의 마지막수도는 평양이였고
    최대의 곡창지대는 평안도 일대였다.

    훗날 신라에 의해서 조직되는 황금9서당이라는 무사집단의 3서당이 고구려인들로만 이루어져있었다.
    2서당은 백제인

    고려태조가 고려를 건국할때도 수 많은 고구려유민들의 세력 지원을 받았다.
    후고구려의 수장 궁예역시 고구려호족의 후손이다.

    주몽은 그냥 특출난 사람중 하나였지
    그는 다른 민족이아니다.

    그 어떤나라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에게 1000년이라는 시간동안 제사를 지내고
    그에 대한 공을 보답하고자 했는가?

    우리밖에없었다.

  • 192名無し2017/07/19(Wed) 01:06:09ID:QyNjY0MjI(1/1)NG通報

    奴隷文化しかないだろ韓国人

    仏閣も仏像も韓国起源ではないし
    奴隷に作れるものではない
    制作道具も継承してない

    作れたのは道祖神とかいう民芸品

  • 193倭寇2017/07/19(Wed) 01:08:53ID:g4Nzc0NDY(30/31)NG通報

    이것만 적고 나도 진짜 자야된다. 내일 일찍 나가야되.

    金(1115~1234)에 중원을 평정한 이 나라의 태조역시
    그 혈통이 고려인이다.

    "고려사"예종 4 년 '일찍이 저희 여진의 선조가 대방 (고려)로부터 나왔으니 ...이 오아 속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 나이다 ... 옛 땅을 돌려 주시면 기왓장 한 장 던지지 않겠습니다 . "

    "금 "의 태조는 완 안부 아골타 다.
    그런데 그의 선조가 고려인이다.

    이상"금사 "1 권에 에있는 내용을 발췌 하였음.
    궁금하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직접 사서 읽는 것도 추천 .

    "금 (金)의 시조 (始祖) 휘 (諱)는 함 보이고, 처음 고려 (고려)에서 나올때 나이가 60 세였다.
    형 아 내는 불교를 좋아하여 고려 (고려)에 머물며 나옴을 원하지 않아여 말하길
    후세 자손 (후세 자손)이 필이 상 취하여 모일때가있을 것이니 나는 가지 않겠다 .라고 말하여
    고려에 남았다. "

    훗날 금 태종 천회 14 년 ( 1136 년)에 경원 황제로 추시되었고 묘호는 "시조"라 하였다.

  • 194テオリア2017/07/19(Wed) 01:19:25ID:k1NzEwMzc(16/17)NG通報

    >>190
    返信はいいからもう寝ろ。

    扶余も渤海もツングース系だよな。少なくとも日本での認識はそうだ。高句麗同様渤海は韓国では自国の歴史のように扱っていると聞いている。間違いないか。

    そもそも俺が固執しているのではない。

    にも関わらずこのような韓国人をたまに見かける。

    「朝鮮人を北方の遊牧民(モンゴル、ツングース、エヴェンキなど)と関係付けたがるクズ野郎どもは殆どがファンパ。朝鮮人の薄っぺらな民族主義の最大の裏付けなんだよ。」

    上記は韓国人の書き込みだ。

    一体韓国では何をどういう風に教えているのか
    理解が出来ない。

    一体どういう事だ。

  • 195名無し2017/07/19(Wed) 01:20:22ID:k2NTA3NzE(4/4)NG通報

    ======== 半島の歴史 ver2.0 ==========
    10世紀 長白山が過去2000年間で世界最大級とも言われる
        巨大噴火を起こす(リセット)
    1010年 「契丹」に侵略される。首都開城が陥落。(キタン人化)
    1013年から1019年まで継続して侵略される。   (キタン人化)
    12世紀 「女真」の侵入。侵略。「金」に朝貢。   (満洲人化)
    1231年 「蒙古」に侵略される。首都開城が陥落。国王江華島に逃亡
        長い間、無抵抗の半島はモンゴル軍に蹂躙される。(モンゴル人化)
    1247年 「蒙古」に再侵略される。しばらく蹂躙が続く。 (モンゴル人化)
    1258年 雙城総管府を置かれる。翌年、王子を人質に降伏。(モンゴル人化)
        国内には多くの蒙古軍人が駐留。        (モンゴル人化)
    1270年 東寧府を置かれる。              (モンゴル人化)
        反対派が済州島に移って徹底抗戦。1273年に鎮圧 (モンゴル人化)
    1274年と1281年「元寇」(半島人主力で日本侵略。が、全滅(モンゴル人化)
    1356年から1362年までの紅巾賊侵入により首都開京が陥落 (シナ人化)
    1419年 「応永の外寇」 17000人で対馬を襲撃。船、家を焼き、住民を虐○する。
        しかし、少数の対馬軍に撃退される。
    1592年 と1598年秀吉の「唐入り」 首都漢城が陥落(短期でヤマト化は無理)
    1627年 「後金」に侵略される。平壌を超え、侵略されるが漢城までは来なかった。
        しかし、国王は江華島に逃亡(満洲人化)
    1636年 「清」に侵略される。首都漢城が陥落。清軍が、す早く江華島への道を遮断。
        泥濘の中、朝鮮王仁祖は清の太宗に降伏、大清国属国となる。(満洲人化)

  • 196名無し2017/07/19(Wed) 01:25:27ID:ExMjgwMjQ(1/1)NG通報

    >>191
    韓国人は百済の子孫かもしれないが、韓国は百済と何の繋がりもない。百済は百済の王が建国し、韓国は第二次世界大戦後、諸外国の援助により独立をもたらされた国。
    だいたい、韓国人は漢字を知らないのに過去の遺物や文献を解読なんて出来ないでしょ!あなたが学者達の解説を力説したところでそれ自体信憑性が低い、もっと言えば嘘や妄想、捏造としか受け取れないんですよ。

  • 197倭寇2017/07/19(Wed) 01:26:52ID:g4Nzc0NDY(31/31)NG通報

    >>194 너도 답글 좋으니 그만자라.

    부여,발해가 퉁구스라니 하... 진심으로 한숨만 나온다.
    이봐..
    부여는 494년에 고구려에게 최종 병합되었어.
    너가 그렇게 말하는 퉁구스는

    부여가 아니라 그에 복속되어 있던 읍루족이라는 종족이다.

    너가 말하는 퉁구스는

    발해가 아니라 그에 복속되어 있던 말갈족이라는 종족이다.

    너가 말하는 퉁구스는

    고구려가 아니라 그에 복속되어있던 말갈족이라는 종족이다.

    숙신-읍루-말갈-여진-만주
    만주의 역사이다.

    중국의 동이전 기록을 봐도
    저 종족들만 우리하고 생김새는 비슷한데 언어는 확연히 다르다고 공통적으로 기록해놨다

    저들이 바로 너가 찾는 퉁구스들이야
    진짜 이젠 자러간다.

  • 198テオリア2017/07/19(Wed) 01:39:04ID:k1NzEwMzc(17/17)NG通報

    >>197
    成程な。
    根本的に教育による認識が違う。
    お互いの国の学会の見解が違うんだな。

    よく分かった。

    お休み

  • 199名無し2017/07/19(Wed) 02:05:30ID:Y0NzQxMzM(1/1)NG通報

    >>197
    高句麗と百済は同系統の民族だけど、新羅は別系統の民族でしょ?
    新羅が朝鮮人の正統で、高句麗の末裔だという高麗も朝鮮人の正統?民族が違うのに両方正統なのか?
    李氏 はどっちの系統?どちらでもなくて女真?

    結局朝鮮半島の歴史はあっても朝鮮人の歴史と言えるのは李氏朝鮮からじゃないか?朝鮮人っていうのは新羅人、高句麗人、百済人、漢人、モンゴル人、女真、倭人の混血。
    その全てのルーツが現代の韓国人と同じ程度に混血したのが李氏朝鮮時代だと思っている。


    別に朝鮮人を卑下したい訳じゃないよ。中国だって同じだし、大陸の民族っていうのはそういうものだろ?
    ヨーロッパだってラテン、ゲルマン、アングロサクソン、スラブ、ノルマンの混血だし。

  • 200お願いしたい2017/07/19(Wed) 04:13:17ID:A2NTcwMTg(2/3)NG通報

    >>197

    YouTubehttps://youtu.be/x25QP6iewww

    韓国の歴史教育ってどんなの?

  • 201お願いしたい2017/07/19(Wed) 04:18:47ID:A2NTcwMTg(3/3)NG通報

    自分で字幕つける事できる?
    YouTubehttps://youtu.be/xoTDIq1NWYc

  • 202名無し2017/07/19(Wed) 04:43:18ID:IxOTg1Mjc(1/1)NG通報

    >>198
    日韓の学者同士で歴史を摺合わせたら、韓国の学者が「資料はそうだが韓国に愛はないニカ!!」とか惚けた事を言って話に成らなかったと聞いたが、そんなファンタジー民族とは話し合っても真実にはたどり着かんでしょ

  • 203名無し2017/07/19(Wed) 11:22:42ID:g5MTkyOTA(3/3)NG通報

    >>202
    『日韓歴史共同研究』(Wikipedia)

    この研究委員会に参加した古田博司によると、日韓の意見が対立した時に、日本側が「資料をご覧になってください」と言うと、韓国側は立ち上がって「韓国に対する愛情はないのかーっ!」と怒鳴り、日本側がさらに「資料を見てくれ」と言い返すと、「資料はそうだけれど」とブツブツ呟いて、再び「研究者としての良心はあるのかーっ!」と怒鳴ったという。このような韓国側研究者について古田は、「民族的感情を満足させるストーリーがまずあって、それに都合のいい資料を貼り付けてくるだけなので、それ以外の様々な資料を検討していくと、矛盾、欠落、誤読がいっぱい出てくる」、「要するに『自分が正しい』というところからすべてが始まっており、その本質は何かといえば『自己絶対正義』にほかならず、したがって何をやろうと彼らの『正義』は揺らがない」等々、批判的に評している。

    第2回研究では、韓国側の要求により教科書が研究テーマに加わえられたが、教科書小グループの日本側委員の一人だった永島広紀によると、韓国側では日本側に無断で教科書問題を古代史の研究テーマに加えようとするなど、教科書担当以外のグループが教科書問題に介入を始めた。日本側が抗議すると、韓国側の古代史担当者の一人が「人格攻撃を受けた」と言い出し、長期間会合が紛糾したこともあったという。永島によれば、韓国側の研究者は扶桑社の『新しい歴史教科書』への攻撃に終始していた。

  • 204名無し2017/07/19(Wed) 12:25:50ID:I4Nzg2OTg(1/1)NG通報

    百済独自の文化というものはない。
    漢字は中国の博士高興が伝え
    仏教は東晋から摩羅難陀が伝えた。
    だが、仏教は李氏朝鮮時代に排斥されて衰退し、
    漢字も今はもう使われれなくなってしまった。

  • 205名無し2017/07/19(Wed) 15:18:33ID:EzODIwOTM(1/1)NG通報

    古代、半島から人も物も文化もきていたとは思います。
    その古代人が韓国の皆さんの直接の先祖がどうかはわかりませんが。

  • 206名無し2017/07/19(Wed) 15:44:20ID:A4MzQ5NDU(1/1)NG通報

    数千年前から現在の中国を歴史的に一続きの国と見るのが無理なように、高句麗と現在の韓国までを一つの国の歴史として考えるのは無理があるんじゃないのか?
    場所として同じ(あるいは近い)であっても国として同一と考えるのはおかしい。
    国とは分裂・同化・衰退などを繰り返して現在の姿になったのだから。
    日本だって倭国と天皇が統治するようになった日本が同じだとは言いがたい。
    挑戦併合だってそうだし、琉球王国を吸収した例だってある。

    朝鮮人は併合が「植民地化」ではなく「日本国の一部になった」という意味だと知らないアホが多くて話が通じないのが難点だな。

  • 207名無し2017/07/19(Wed) 20:40:55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