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한국에 뭘 배웠는지 모르는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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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7/07/17(Mon) 20:20:21ID:cyNDIwMDI(1/6)NG報告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너무 심하지 않아?

      <<백제>>

      백제에서는 일찍이 근초고왕때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에 건너가 한문을 가르쳤다. 이 때의 한문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문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으며, 유교의 충효 사상도 보급시켜 주었다. 이어 근구수왕때에는 일본의 요청으로 백제의 학자들이 초빙되어가서 유학뿐 아니라 도기·직조·도화 등의 기술을 전해 주었다.

      무령왕 때에는 오경 박사 단양이와 고안무를, 성왕때에는 오경 박사와 의·역 박사 등을 보내어 일본인들에게 유학과 기술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특히 성왕때에는 노리사치계가 일본에 불교를 전하였다. 무왕때에는 관륵이 역법과 천문학을 전하고 일본 불교를 크게 일으켰다.

      이와 같은 백제 문화의 전파는 일본 고대문화인 아스카 문화 형성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백제 문화의 영향으로 5층탑이 세워지고 백제 가람이라는 건축 양식도 생겨났다.

    • 2名無し2017/07/17(Mon) 20:31:33ID:cyNDIwMDI(2/6)NG報告

      원숭이 교육 스레드

      삼국문화의 일본전파]

      우리 조상들은 이미 선사 시대부터 일본지역에 진출하여, 그 곳의 정치·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우리의 문화가 직접 일본에 전해져 그들 문화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은 삼국의 문화였다.

      삼국은 대륙으로부터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소화 흡수하고 개성 있는 자기 문화로 만든 후 다시 일본에 전하였다. 이 때의 문화 전파는 단순히 선진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전한 것이 아니었다.

      삼국이 독자적으로 소화 발전시킨 문화를 삼국의 주민들이 직접 일본에 가서 전해 준 것이다. 따라서 일본 고대 국가의 성립과 고대 문화 발전에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고대 삼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일컫는데 이들 세 나라는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아 각각의 특성대로 그 문화를 수용하고 발전시켰다. 그 중에서도 백제 사람들의 활동이 가장 컸는데, 그것은 삼국 가운데 백제가 일본과 가장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친선 관계를 오래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 3名無し2017/07/17(Mon) 20:31:48ID:E2NDc0NzA(1/3)NG報告

      >>1
      逆に考えるんだ。韓国の教科書が歪曲されていると。

    • 4名無し2017/07/17(Mon) 20:31:53ID:cyNDIwMDI(3/6)NG報告

      아스카 문화 : 백제 사람들이 일본의 아스카 지방에 이주하여 아스카라는 절을 세우고 아스카 문화를 발전시킴. 아스카 시대를 연 핵심 인물은 백제계 이주민의 외손인 쇼토쿠 태자였다. 쇼토쿠 태자는 백제계 이주민의 협력을 얻어 백제의 기술자와 스님을 모셔다가 아스카 문화라 불 리는 일본 불교 문화의 꽃을 피웠다.일본 문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공헌한 인물)
      왕 인
      백제의 학자. 근초고왕때 일본에서 학자와 책을 주기로 요청하자, 왕의 손자인 진손왕과 함께 「논어」10권과, 「천자문」을 갖고 가서 일본의 문화를 깨우쳐 주었다. 오사카지방에 왕인 공원이 있고 왕인의 묘로 알려진 유적이 있으며 도쿄의 공원에는 왕인을 추모하는 비석이 2개 있다. 일년에 한번씩 왕인 유적지에서 한문과 유학을 알게한 그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낸다.

      아직기
      백제 근초고왕때 일본에 건너간 학자. 근초고왕의 지시로 말 2필을 이끌고 가서 일본왕에게 선사한후 , 말을 기르는 일을 맡아 보던중 그가 경서에 능통한 것을 안 일본 천황이 쇼오토크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 5名無し2017/07/17(Mon) 20:32:16ID:ExNzg1MDE(1/16)NG報告

      <<고구려>>

      고구려는 백제만큼 빈번한 교류는 없었지만, 승려들에 의해 많은 문화를 전하였다. 영양왕때 일본에 건너간 혜자는 일본 쇼토구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담징은 유교의 5경과 그림을 가르쳤으며, 종이와 먹의 제조 방법까지 전해 주었다. 일본의 자랑거리인 호류 사 금당 벽화는 담징의 그림으로 전해 온다. 또 영류왕때에는 혜관과 도징이 일본에 건너가 삼론종을 전하였다.

      (유적)
      돌방무덤: 일본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돌을 이용하여 방 모양으로 꾸민 돌무덤들이 있다.

      고분벽화: 일본의 다카마쓰 고분의 벽화에는 치마 저고리를 입은 부인 모습, 청룡, 백호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 귀족의 무덤과 매우 비슷한 것이다.

      고마신사: 일본의 고마(일본말로 고구려를 가르킴)촌에는 고마신사가 있어 고구려의 조상들을 모시고 있다.

    • 6名無し2017/07/17(Mon) 20:32:36ID:ExNzg1MDE(2/16)NG報告

      (영향을 준 인물)

      담 징
      610 년 영양왕때 승려 법정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공예 및 종이, 칠, 맷돌 등의 제조법을 가르쳤다. 그가 남긴 호류사의 금당 벽화는 중국 운강석불, 경주 석굴암과 함께 동양 3대 미술품의 하나였으나 , 1949년에 불탔고 , 지금은 그 모사품이 호류사에 남아 있다.

      <<신라>>

      신라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장 가까웠으나 군사적 대립이 잦아 문화 교류가 그리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신라에서도 조선술(배 만드는 기술)·축제술(저수지 쌓는 기술)을 일본에 전하였다. 이 밖에 도자기 만드는 기술과 의약·불상 등을 전하여 일본의 문화 발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축제술은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쳐 '한인의 연못'이라는 이름까지 생기게 하였다.

      * 기타..삼국의 음악도 전해져 고구려악·백제악·신라악 등의 이름까지 생겨났으며, 드디어 일본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다.

    • 7ゲンゾー2017/07/17(Mon) 20:33:16ID:MwMTczMDQ(1/5)NG報告

      >>5
      似ているだけ、全部妄想。

    • 8せつこ(*゚ー゚)2017/07/17(Mon) 20:33:23ID:Y0MDMxNzI(1/6)NG報告

      また朝鮮人の精神勝利コピペスレッドか。

    • 9名無し2017/07/17(Mon) 20:33:34ID:ExNzg1MDE(3/16)NG報告

      고대 일본은 한국의 직할 영토"..150여편 논문

      지난 25일 오후 3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주민센터 3층 대회의실에서 양복차림의 한 노교수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강의 제목은 '고대 한일관계와 그 이후의 상황변화'. 딱딱한 주제에도 3.1절을 앞두고 교사, 경찰관, 주부 등 다양한 직업의 청중 100여명이 경청했다.

      이날 강사는 최재석(85.문학박사) 고려대 명예교수. 가족 제도사를 전공한 그는 1985년 무렵 가족 제도사의 선행 연구를 살펴보던 중 '삼국사기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일본 사학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그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정사인 '일본서기' 연구에 매달려 지난 26년간 150편의 논문과 이를 묶은 11편의 고대 한일관계 연구서를 내놓았다.

      이들 논문의 상당수는 '○○○○의 일본고대사론 비판'과 같이 일본 사학자의 주장을 사료를 근거로 반박한 내용이다.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를 통해 그는 "고대 일본은 한국의 직할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호주가 영국의 지명을 딴 것처럼, 일본 여러 도시의 27가지 지명, 즉 다리, 절, 산, 나루터, 항구, 고개, 들판, 저수지, 섬 등의 지명이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의 지명을 사용했다"며 자신의 논문을 펼쳐 보이며 설명했다.

      그는 "고대 일본은 항해술이 형편없어 신라 송사(送使)를 거쳐야 중국으로 갈 수 있었으며, 7세기 말 야마토왜(大和倭)의 영역은 독립국으로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협소한 몇 개 군(郡)을 합친 정도였다"고 역설했다.

      또 백제의 무령왕(501~553)이 두 장군과 오경(五經) 박사를 파견해 일본을 경영했고, 성왕(523~553)은 일본에 백제불교를 포교하면서 14회에 걸쳐 백제관리를 파견했다며 이런 관리 파견은 위덕왕(554~597)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 10名無し2017/07/17(Mon) 20:34:12ID:ExNzg1MDE(4/16)NG報告

      나아가 백제가 일본(야마토왜)에서 징집한 군대.인부와 징수한 물품을 징수했다는 기록, 백제 본토에서 야마토왜로 후퇴한 장군들이 구축한 백제산성, 법륭사의 불상 제작 경위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일본에는 양심적인 사학자도 있다"면서 이시와타리 신이치로(石渡信一郞)의 저서(백제에서 도래한 오오진천황)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은 기마민족의 성립을 설명하면서 한국에 대한 언급 없이 '북방민족이 한반도를 통과해 일본을 지배했다'고 대충 넘어간 부분을 뒤집는 연구서"라며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꺼내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문화' 단원을 지목하면서 "어떻게 문화만 단순히 건너갔다"고 기술할 수 있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역사학보, 진학학보, 한국사연구 등 3대 학회지에 논문을 보냈지만 실을 수 없었다"며 "사회학자의 외도에 주류 사학계가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한국학보'라는 작은 학술지에 주로 실렸다.

      그는 지난 52년간 그의 전공인 가족 제도사를 포함해 326편의 논문을 썼다. 두 달에 한 편의 논문을 쓸 정도로 한 눈 팔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공로로 2005년 삼일문화재단이 주는 '3.1문학상 학술상(인문.사회과학부문)'을 수상했다.

    • 11ゲンゾー2017/07/17(Mon) 20:35:30ID:MwMTczMDQ(2/5)NG報告

      精神的勝利スレ

    • 12名無し2017/07/17(Mon) 20:35:33ID:ExNzg1MDE(5/16)NG報告
    • 13名無し2017/07/17(Mon) 20:35:53(1/6)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4名無し2017/07/17(Mon) 20:36:33ID:ExNzg1MDE(6/16)NG報告

      6월22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새롭게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를 되돌아보는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특히 고대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은 불교와 문화, 선진기술 등 다양한 문물을 일본에 전파했다. 이번 기획을 통해 불교를 중심으로 한일 교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점 등을 싣는다. 또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비교분석, 일본불교 신행, 앞으로의 바람직한 교류방향 등을 모색할 예정이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 ‘고액권 지폐의 얼굴’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 있다. 일본 고대사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쇼토쿠 태자(聖德, 574~622)이다. 그는 일본에 전래된 불교가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고 다시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전래됐다. 백제 성왕은 552년(538년이라는 설도 있음) 왜에 사신을 파견해 불상과 경론 등을 보냈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 800만이나 되는 신에 대한 재래 신앙이 있었는데 일본은 불교 공인 여부를 둘러싸고 모노노베씨와 소가씨 사이에서 극심한 내홍을 겪게 된다. 소가씨 일족을 비롯한 숭불파는 한반도 삼국 등에서 건너와 정착한 도래인(渡來人) 호족이었고, 배불파는 일본의 토착세력이었다. 결국 쇼토쿠 태자가 이끈 숭불파와 배불파 사이에서 전투가 발발, 모노노베 일족이 패함으로서 끝이 난다. 태자는 고구려가 파견한 혜자스님과 백제의 혜총스님으로부터 불교를 배우고,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불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채택했다. 포교를 위해 사재를 털어 나라현에 호류지(법륭사)를 지었고, 17조 헌법을 제정해 불법승 삼보를 공경할 것을 명했다. 이런 태자의 노력으로 일본은 처음으로 고대국가 형성의 틀을 다지게 됐다.

    • 15名無し2017/07/17(Mon) 20:36:36ID:UzNzg5ODY(1/2)NG報告

      日本に文化を与えると韓国からその文化が消滅する。韓国は幸福な王子かよw

    • 16名無し2017/07/17(Mon) 20:37:12ID:k4ODEwNTk(1/2)NG報告

      YouTubehttps://youtu.be/d7mbKCXN2_U

      백제의 군왕.. ' 근초고왕 '

    • 17名無し2017/07/17(Mon) 20:37:36ID:ExNzg1MDE(7/16)NG報告

      불교 초전 이후에도 삼국으로부터의 불교전래는 계속된다. 경전(經典), 조불공(造佛工), 조사공(造寺工) 등을 보낸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역시 불교가 전해졌다. 당시 한반도로부터의 불교전래는 불법승 삼보는 물론 불교문화 전반에 걸친 인적·물적의 총제적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진 ‘문화의 대이동’이었다.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정착시켰다면 이후 불교를 사회 저변으로 침투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교키(行基, 668~749)스님이라는 분이다. 특이한 점은 스님이 백제에서 건너 온 왕인(王仁)박사의 후손인 도래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일왕에 의해 일본 최고위 승직인 대승정에 임명된 스님은 일본 불교계의 대표적인 고승이다. 지난해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는 민중불교 지도자로 활약한 스님이 백제 후손이라는 사실을 적은 한글병기 안내판을 주요 사적지에 설치했다는 소식을 알려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스님을 통해 도래인이 일본에서 큰 역할을 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를 여행하고 온 일본의 엔닌(圓仁)스님은 신라인들과 교류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엔닌스님의 입당구법 여행은 당시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한 장보고를 비롯해 신라인 없이 이뤄질 수 없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오기 4세기나 앞서서 엔닌스님은 깨달음을 찾기 위해 위험한 역경을 헤치며 일본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다. 9년 이상이나 당나라를 여행하면서, 지금은 세계 3대 여행기 중 하나로 꼽히는 <입당구법순례행기>도 썼다. 현재 교토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고본에는 장보고(張保皐)를 ‘보배롭고 높은 존재’라는 의미에서 장보고(張寶高)라고 표기했다.

    • 18ゲンゾー2017/07/17(Mon) 20:38:04ID:MwMTczMDQ(3/5)NG報告

      お前らの過去はコレ。
      いい加減、現実を見た方がいい。

    • 19名無し2017/07/17(Mon) 20:38:55ID:ExNzg1MDE(8/16)NG報告

      고려시대는 한반도 역사상 이민족과의 접촉이 가장 많았던 시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못했다. 이는 9세기 후반 일본정부가 자국의 경제적인 형편을 고려해 대륙과의 교섭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다만 동북아시아 삼국은 지역적으로 근접해 있어 일정한 접촉이 오고 갔다. 11세기 후반 고려에서 간행된 속장경(續藏經)은 상인이나 혹은 스님들을 통해 중국과 일본에 유포됐으며 그곳에서 간행 또는 필사됐다.

      조선전기 일본과의 교류의 중심에는 고려대장경이 있었다. 카이 히데유키 일본 붓교대학 교수는 ‘고려판(高麗版) 대장경(大藏經)과 중세의 일본’이라는 논문을 통해 “고려판이 일본에 들어온 후 개판(開版)할 때 저본이 됐는데 그 사실만 보더라도 텍스트로서 고려판이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쇼군(將軍, 일본무신정권인 막부 수장)이나 모든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의 사절을 통해 고려대장경을 보내달라는 외교 요청이 60회에 이른다. 일본 측이 이를 수입한 기록은 40회 정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불교를 신봉했던 세조(世祖) 임금은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전(佛典)을 인쇄, 일본 사절이 요청하는 대로 불서를 종류대로 증여해 주었다. 이에 일본 사절들은 세조를 ‘불심(佛心)의 천자(天子)’라 칭하는 등 그의 업적을 널리 샀다. 세조의 이러한 국정운영으로 일본 각 지방 사찰에까지 조선판 불전이 널리 유포될 수 있었다.

    • 20名無し2017/07/17(Mon) 20:40:22ID:ExNzg1MDE(9/16)NG報告
    • 21名無し2017/07/17(Mon) 20:40:33ID:kwMjgwMjc(1/3)NG報告

      >>1

      なぜタイトルが韓国って書いてあるのに百済のことを書いているの?
      韓国人は歪曲好きだよね。

    • 22名無し2017/07/17(Mon) 20:40:45ID:k4ODEwNTk(2/2)NG報告

      아키히토 일본천황...

      " 나는 한국과 인연이 많다 "

    • 23名無し2017/07/17(Mon) 20:40:51ID:c2ODIzMDk(1/2)NG報告

      >>19
      誰も読まないって。簡潔にお願いね。

    • 24名無し2017/07/17(Mon) 20:41:24ID:E2NDc0NzA(2/3)NG報告

      >>15
      幸福な王子ワロタwww

    • 25名無し2017/07/17(Mon) 20:41:40ID:M0MTcyMDU(1/3)NG報告

      우리 조상이 과거 원숭이를 인간처럼 보이게 해줬군요.

    • 26名無し2017/07/17(Mon) 20:41:59(2/6)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27ペンギン2017/07/17(Mon) 20:42:40ID:c0Mzk2MTA(1/2)NG報告

      >>1
      仮に日韓が同祖だったとして、
      方や日本は精強なポリネシア系海洋民族の血統と文化を取り込み

      一方、千年以上の間、美人の娘を中国に送り続け、狭い地域で血をこくし続けたわけでしょ?

      既に完全に別物じゃん

    • 28ゲンゾー2017/07/17(Mon) 20:43:08ID:MwMTczMDQ(4/5)NG報告

      >>25
      お前ら自体は蛆虫だけどな。

    • 29名無し2017/07/17(Mon) 20:43:58ID:ExNzg1MDE(10/16)NG報告

      왕인 선생님

      오늘도 일본인들의 반박은 없군요
      왕인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계승해서
      원숭이들을 교육시켜놓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 30名無し2017/07/17(Mon) 20:44:05ID:ExMzk0MDY(1/1)NG報告

      水車すら自力で作れなかった朝鮮人

    • 31名無し2017/07/17(Mon) 20:44:17ID:E3NzExMjQ(1/2)NG報告

      どうせ模造品を高く売りつけて、恩に着せるなら、
      ヒッタイトの製鉄やギリシャの航海術や文学を伝えてくれれば良かったのに…
      ガラス器とかさ
      先進国の真似しては現地人ダマしてたんだろうな
      当時から…

    • 32名無し2017/07/17(Mon) 20:45:15(3/6)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33名無し2017/07/17(Mon) 20:45:49ID:c2ODIzMDk(2/2)NG報告

      >>29
      でも、その後成長してませんね。過去の栄光だけでは人間は進歩しないいい例ですね。

    • 34名無し2017/07/17(Mon) 20:48:53ID:ExNzg1MDE(11/16)NG報告

      인덕천황릉에서 출토되는 백제,금관가야의 유물은 대체 무엇???

    • 35あん2017/07/17(Mon) 20:49:11ID:EwNjg3OTM(1/2)NG報告

      よくわからないけど
      長々とコピペしてるのが、日本の教科書なの?
      できれば、歴史歪曲しているという内容を簡潔に書いてほしいな。

    • 36ペンギン2017/07/17(Mon) 20:49:27ID:c0Mzk2MTA(2/2)NG報告

      >>20
      北朝鮮の教科書を見てご覧♪

      金日成総書記の家系が如何にして朝鮮半島全土の支配者に相応しいかが書いてあるから

    • 37名無し2017/07/17(Mon) 20:49:28ID:Y4NTQyMzA(1/6)NG報告

      >>1
      で、韓国人の祖先は誰という設定にしてるんだ?

    • 38名無し2017/07/17(Mon) 20:50:09(4/6)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39名無し2017/07/17(Mon) 20:50:37ID:E5ODg5MDQ(1/1)NG報告

      >>1
      仏教も儒教も朝鮮半島の国起源じゃないじゃん。精一杯評価しても、朝鮮半島の国がやったことは精々 Amazon から商品を運んでくれる運送屋と同じでしょ。もちろん運送は重要だけど。

      韓国人は運送屋が Amazon の商品を全て作ってると思ってるの? テレビ見てテレビの中に人が入ってると思うのと同レベルなんだけど。

    • 40名無し2017/07/17(Mon) 20:52:35ID:ExNzg1MDE(12/16)NG報告

      ???????????????

    • 41名無し2017/07/17(Mon) 20:52:54ID:ExNzg1MDE(13/16)NG報告

      서기 5세기 초~중반 - 백제로부터 금동제 마구 문화를 전수받다.(+말타기 기술)
      그 전엔 말도 못 타는 왜구倭寇

    • 42名無し2017/07/17(Mon) 20:54:00ID:ExNzg1MDE(14/16)NG報告

      서기 4세기 후반~5세기 초반부터 일본 전방후원분들에서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대금식판갑들..
      하지만 금관가야, 백제가 원산지

    • 43名無し2017/07/17(Mon) 20:54:26ID:ExNzg1MDE(15/16)NG報告

      서기 5세기 초~중반부터 고대 일본의 전방후원분에서 나오는 금동제 말안장.
      하지만 이것 역시 금관가야가 원산지...

    • 44名無し2017/07/17(Mon) 20:55:59ID:ExNzg1MDE(16/16)NG報告

      한강 하류 지역에는 넓고 기름진 충적 평야와 바다로 진출하기에 유리한 하천과 해안이 있다. 강변의 낮은 지역에는 좁고 긴 네모 집들이 한데 모여 암사동 마을, 성내동 마을, 미사동 마을 같은 집단 취락을 이루며, 사람들은 창고와 농기구를 함께 쓰고 드넓은 논과 밭을 여러 세대가 함께 경작하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이들 마을을 거느리고 있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안에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를 하지 않은” (『삼국사기』)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성안에 자리잡은 왕실은 일대의 논농사를 주도하면서 대규모 수리 시설을 건설하고 소를 이용한 농사를 권장하였다. 고대 문명의 토대를 이룬 것이 농업이라면 삼국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곡창 지대에 자리잡았던 백제인만큼 문명 생활의 조건을 확실하게 갖춘 고대인이 또 어디 있으랴!
      (본문 22~23쪽)

      일본 속의 백제 문화
      “백제가 아니다(くだらない).” 일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 말은 ‘시시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왜 일본 사람들은 ‘백제가 아닌 것’을 시시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답이 여기 있다. 백제인은 일찍부터 벼농사 기술과 철 제품을 일본에 전해 주었고, 해상 무역권을 장악한 4세기부터는 한학, 유교, 불교, 천문, 음악, 미술, 의학, 건축술 등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서 일본 문화의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게 하였다.

      『일본서기』같은 일본의 옛 기록에는 수많은 백제 관계 기사가 나온다. 이것을 당시 사관(史官)들이 백제계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백제가 단연 문화 대국이었고, 고대 일본에 대해서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백제는 일본에서 고급 문화의 대명사였고, 적당히 요령이나 부린 삼류는 ‘백제가 아닌 것’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 45名無し2017/07/17(Mon) 20:56:51(5/6)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46名無し2017/07/17(Mon) 20:58:24(6/6)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47名無し2017/07/17(Mon) 21:00:03ID:g2MzIyNTA(1/1)NG報告

      >>44
      くだらないは百済とは関係ないだろww

    • 48名無し2017/07/17(Mon) 21:00:53ID:kwMjgwMjc(2/3)NG報告

      そういう韓国は、
      近代化を拒み、小中華主義に走る朝鮮を日本が独立させ、大韓帝国時代から西洋文明と近代化を韓国にもたらしたことは知っている?
      韓国の教科書に、伊藤博文が韓国人の教育水準を上げるために、学校を建てるように努力したことはかいてあるのか?

    • 49名無し2017/07/17(Mon) 21:03:52ID:E3NzExMjQ(2/2)NG報告

      >>44
      “くだらない“ の語源の説はバカだと思われるからやめた方がいいよww

    • 50名無し2017/07/17(Mon) 21:05:06ID:I0OTQ5NzM(1/1)NG報告

      >>46このババアたちウケル(笑)

    • 51あん2017/07/17(Mon) 21:08:01ID:EwNjg3OTM(2/2)NG報告

      日本では、歪曲というのは、事実を歪めること、つまり嘘をつくって事なんだけど
      韓国では違う意味なのかな?

    • 52名無し2017/07/17(Mon) 21:08:07ID:EwMzI4MjY(1/2)NG報告

      でも、朝鮮半島に前方後円墳が存在する事には、何の反応もしないんだよな。

    • 53ららら太陽2017/07/17(Mon) 21:12:06ID:c1NzkxMzA(1/5)NG報告

      >>9
      古代日本は韓国の直轄領土(笑)

      よく考えるのだ。飛鳥時代に韓国は存在しないから…韓国は70年前に建国された国だから。
      古代日本=現代日本だが、飛鳥時代の朝鮮半島の国は韓国ではない。

      かつて、ローマ帝国はヨーロッパを支配したが、イタリアにヨーロッパが支配された訳ではないからね。
      ローマ帝国とイタリアは違う国だから…大英帝国とイギリスは同じ国だから。
      違い分かるかな?政治体制が違うと同じ民族が作っていても別な国なのだよ。

    • 54GHQ2017/07/17(Mon) 21:12:44ID:g2NzkwNDQ(1/4)NG報告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sCZ8xsk8YJI

      백성은 왕의 말에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

    • 55名無し2017/07/17(Mon) 21:13:02ID:U4OTEwODE(1/2)NG報告

      日本への民族アイデンティティーや価値を探し求める旅は続く。

    • 56名無し2017/07/17(Mon) 21:13:58(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57ららら太陽2017/07/17(Mon) 21:15:32ID:c1NzkxMzA(2/5)NG報告

      フランク帝国とフランスは別な国だよね。
      まず、古代朝鮮半島にあった国と韓国が同じ国の筈はないのだよ。
      日本は同じ国なのだよ。

    • 58ららら太陽2017/07/17(Mon) 21:16:44ID:c1NzkxMzA(3/5)NG報告

      >>54
      だから、古代朝鮮半島にあった国と韓国は何の関係もないから…(^^)

    • 59ボンド2017/07/17(Mon) 21:17:46ID:YwNTU4MzI(1/1)NG報告

      >>8
      画像は韓国の嫌日漫画から。
      これは竹島(独島)の話だけど、もはやコピペの連続で漫画であることを放棄している。
      作者自身は理解力不足で専門家や教授の言葉をコピペしたと思われる。
      理解力不足だと自分の言葉にできなくてコピペそのままの傾向がある気がする。

    • 60名無し2017/07/17(Mon) 21:21:14ID:kwMjgwMjc(3/3)NG報告

      文献もはっきりしない時代よりも、大日本帝国が韓国にもたらしたお金や近代化や基礎教育、工業化の方がかなり資料もたくさん残ってはっきりしているけどね。
      韓国は正しい歴史を、日本が大きな投資と近代化をもたらしたと教えるべき。

    • 61笹舟ちくわ丸2017/07/17(Mon) 21:22:06ID:A5MDgxODE(1/1)NG報告

      >>54

      4代新羅王は、日本人だったと、朝鮮の歴史書に記録されている

      脱解本多婆那国所生也。其国在倭国東北一千里 三国史記・新羅本紀

    • 62名無し2017/07/17(Mon) 21:24:41ID:M5NjA3Mjg(1/2)NG報告

      そもそも文献残ってないのに何をもって話してるのだろう?

    • 63名無し2017/07/17(Mon) 21:24:57ID:IyMjM5MjY(1/5)NG報告

      半島はインド文化、中華文化の日本への伝達経路の一部でしかないので、日本に教えたとか日本を支配したこととは結びける推論には無理がある。朝鮮のオリジナリティの無さがそれを説明している。遺物や文化財の附合は文化経路を一にする類似点にすぎない。昔の文化を誇るとしても、今が土人ならシナと同様強いて誇れるようなことでもないわ。(恥)w

    • 64名無し2017/07/17(Mon) 21:25:03ID:c1NzYzOTE(1/2)NG報告

      聖徳太子の業績は、今ではほとんど否定されているよ。
      厩戸皇子(umayadono ooji) の実在は確かだけど、聖徳太子は没後120年以上たってから作り上げられた、ほとんど架空の人物像。
      今では教科書にも載っていない。

      ついでに言うと、聖徳太子(と言うか当時の日本の知識階級)が注目していたのは、百済では無く隋(=中国)だ。
      当時は2〜3年に一度中国への使節団を送っていた。
      この使節団には、中国への留学生が多く参加していた。

      文化の進んだ百済が日本を教育していたのなら、なぜ多額のお金と危険を承知で中国に直接行こうとしたのかな?
      ちなみに当時の航路は九州から直接中国。 朝鮮半島を経由しないのも不思議だよね?

    • 65ワケワカラン2017/07/17(Mon) 21:30:19ID:M3MTc0MDY(1/1)NG報告

      歴史は繰り返すとは言うが、
      前にも同じようなスレがあったね。
      100%は不定しないが、仮説の領域を出ない。
      少なくても中国の古い文献でも提示してくれないと意味がない。
      またその裏付けとなる証拠もないとね。

    • 66名無し2017/07/17(Mon) 21:30:56ID:IyMjM5MjY(2/5)NG報告

      半島はインド文化、中華文化の日本への伝達経路の一部でしかないので、日本に教えたとか日本を支配したとかに結びつける推論には無理がある。朝鮮のオリジナリティの無さがそれを説明するだろう。遺物や文化財の附合は言わば文化の根を一にすることからくる類似点にすぎない。昔の文化を誇るとしても、今が土人ならシナと同様強いて誇れるようなことでもないだろ。酒が旨いわw

    • 67名無し2017/07/17(Mon) 21:33:23ID:QzNTkxODM(1/1)NG報告

      日本語に朝鮮語由来の単語や借用語なんかほぼないけど、朝鮮語には日本語由来の言葉や日本製漢字語ばかりだから、どちらが文化的に上なのかは自明之理ではある。

    • 68名無し2017/07/17(Mon) 21:36:06ID:kyMjkwNjI(1/1)NG報告

      >>1
      朝鮮が日本に伝えたものは何もない。
      漢字や文化はすべて中国から伝わった。
      朝鮮半島は、伝えた人たちが通った「廊下」に過ぎない。
      薄汚く盗賊が現れる危険度が高い「廊下」に、何故日本が感謝しなければいけないの?
      ただ一つ認識したのは、おまえの知能の低さと、韓国の教育のねつ造度合が酷いということだけだ。

    • 69hoge◆UVMHe1dwQc2017/07/17(Mon) 21:37:42ID:k2NjM0MTM(1/1)NG報告

      百済≠韓国

    • 70名無し2017/07/17(Mon) 21:39:41ID:c1NzYzOTE(2/2)NG報告

      >>44
      可哀想だから教えておいてあげよう。

      江戸時代、江戸の酒より、京都で作った酒の方が上質だった。
      当時、京都から東京方面へ行く事を「下る」(kudaru)と言った。
      逆方向へは「登る」(noboru)と言う。

      なので京都から運んでいない低品質の酒は「下らない」酒で、
      そこから、つまらない物の総称として「くだらない」と言うようになった。

      覚えておいてね。

    • 71名無し2017/07/17(Mon) 21:40:44ID:IwNjY2Nzg(1/1)NG報告

      >>54
      この発言は日本人も沢山の人が知ってますが、韓国人が喜んでる部分はかなり韓国人が都合よく解釈してるだけなんだと知った方がいい。
      日本人が聞けば貴方が望んでる内容ではないという事よ。
      天皇が言った!と喜んでる韓国人。それ自体が矛盾してないか?

    • 72GHQ2017/07/17(Mon) 21:41:12ID:g2NzkwNDQ(2/4)NG報告

      >>61

      신라는 朴昔金의 3개의 세력이 번갈아 왕위를 맡았다.
      여기에서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세력은 昔이다.
      하지만 곧 朴의 공주가 金의 왕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金이 단독으로 신라의 왕위를 맡게 되었다.

      昔은 도태되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현대에 보기드문 성씨이기 때문이다.
      金의 인구는 한국 최대이고, 朴의 인구는 두번째일 정도로 크게 번성했다.

      하지만 昔의 인구는 100명중에 1명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인 세력인 昔이 몰락했다는 말이다.

    • 73名無し2017/07/17(Mon) 21:41:19ID:k1OTUzNTU(1/3)NG報告

      일본인안에 (쿠다라)백제의DNA(을)를 확인한 도쿄 심포지엄


      여기 계신 일본인 여러분, 우리 일본인의 DNA를 검사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많은 분들이 한국인, 거슬러 올라가 백제인의 DNA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6월 13일 동경 퍼시즌 호텔 친찬소(椿山莊)홀을 가득 메운 500명 상당의 청중들 앞에서 교토산업대학 교수이며 교토시립역사자료관장으로 있는 이노우에(井上滿郞) 박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 실내는 가벼운 동요가 있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나 역시 돌발 사태라도 터지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의외로 일본인 청중들은 진지했다. 그만큼 이노우에 박사의 발표는 같은 일본인으로서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향해 직격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주최한 '백제문화와 일본열도-고대로부터 미래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은 그렇게 뜨거웠고 진지했다.

      이노우에 박사의 주장은 계속됐다.

      "일본 해군이 663년 백제를 구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금강하구(白村江)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에 완패 당했습니다. 이로써 백제는 멸망했으나 역설적으로 일본은 새로운 나라로 탄생했습니다. 백제가 망하자 귀족과 학자, 지배계층의 사람들이 대거 일본으로 망명을 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래인(到來人)이라 부릅니다. 관동지방에 2000명, 시가현에 400명… 당시 천무(桓武) 천황은 이들 백제 도래인들에게 성(姓)을 주고 높은 관직을 주었습니다. 일본 역사상 현재까지 외국인에게 공무원 임용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그래서 이들 도래인들은 일본의 통치제도, 교육·문화 심지어 옷감을 만들고 염색하는 것에 까지 완전히 개혁을 하고 틀을 갖췄습니다. 이들이 일본에 오지 않았으면 일본은 100년 뒤쳐졌을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사실(史實)입니다.

    • 74名無し2017/07/17(Mon) 21:41:43ID:k1OTUzNTU(2/3)NG報告

      이노우에 박사뿐 아니라 학자들은 계속하여 백제가 일본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참으로 백제의 후손으로 백제의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이때처럼 찡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백제는 사람의 배꼽처럼 영원히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금을 캔 사람도 백제왕자입니다."

      "백제사람 소아(蘇我)가에 의해 불교가 융성해졌고 그는 일본 왕실의 실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조카딸이 스이코 여왕이고 외손자가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호류지(법륭사)를 지은 쇼토쿠(성덕태자)입니다. …"

      말하자면 일본 황실의 핏속에 백제인의 DNA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끝머리에 인상적인 말을 남긴 사람은 영화감독 마에다(前田憲二) 씨였다. 그는 일본문화를 대표하며, 모태라고 할 '아스카'문화는 한자로 '飛鳥(비조)', 즉'나르는 새' 또는 '날라 온 새'라는 뜻인데 그것은 바로 '도래인'-일본으로 온 백제인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니 일본에 온 백제인들은 떠나온 새처럼 백제를 그리워했고, 그 그리움은 문화를 통해 애틋하게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 75名無し2017/07/17(Mon) 21:42:04ID:k1OTUzNTU(3/3)NG報告

      이완구(李完九) 충남지사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처럼 구다라(백제)를 반대하는 일본인은 없습니다. 모두 존경합니다. 그러니 우리 양국이 불편한 일이 생기면 구다라만 생각합시다. 그러면 다 풀립니다. 제가 백제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도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지사는 양 국의 문화 관계자들이 더 폭넓게 교류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또한 장내를 가득 메운 일본인들이 거의 꼼짝 않고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 그 진지함과 관심은 우리를 반성케 하는 것이었다. 과연 백제의 본고장 우리는 일본인만큼 백제역사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을까….

      정말 뜻 깊은 심포지엄이었다. 이런 감동을 지니고 교토에 있는 백제왕을 모신 '백제왕신사', '백제사'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니 더욱 가슴이 뜨거웠다.

    • 76名無し2017/07/17(Mon) 21:42:39ID:I0NzM3MDU(1/1)NG報告

      >>72
      석탈해 일본에서 온 것도 아님
      캄차카반도에서 왔다는 설이 있음

    • 77GHQ2017/07/17(Mon) 21:43:07ID:g2NzkwNDQ(3/4)NG報告

      >>71

      馬鹿げたことを言った天皇を恨みなさい。

    • 78せつこ(*゚ー゚)2017/07/17(Mon) 21:45:58ID:Y0MDMxNzI(2/6)NG報告

      易姓革命の中国&半島と
      万世一系の日本を
      同根と考えるのは浅はかだと思うの。

    • 79常識疑え2017/07/17(Mon) 21:46:27ID:AwODA2Nzc(1/2)NG報告

      >>44
      取り敢えず君があげたものは全て中国とインドの文化ですからw
      煽りなしに韓国発祥の文化は皆無と言う現実を見よう。

    • 80倭寇2017/07/17(Mon) 21:47:03ID:Q1NDMzNzg(1/32)NG報告

      江田船山古墳

      백제에서 제작후 지방관리들에게 하사하던 금동관도 출토됨.

    • 81名無し2017/07/17(Mon) 21:47:21ID:YwNTk3Njc(1/1)NG報告

      >>1
      どうもお前らのご先祖様たちとは違う人達らしい。

    • 82名無し2017/07/17(Mon) 21:49:06ID:c3Mzk3NzU(1/1)NG報告

      >>1
      半島から列島に渡った優秀な民族が、後に経済大国を築き上げ、その子孫が今の日本人
      優秀ではなかった故に、半島に棄てられた生ゴミ残飯キムチの子孫が、今の韓国人の君たち

      君たちの妄想がリアルであればこのようになるのだがそれでいいの?

    • 83名無し2017/07/17(Mon) 21:50:29ID:MwMzMxOTI(1/1)NG報告

      <일본서기>에 보면 조메이 왜왕이 10년(638)에 백제천 옆에 백제궁(百濟宮)과 백제대사(百濟大寺)를 짓고, 13년 10월에는 조메이 왜왕이 백제궁에서 죽었는데, 북쪽에 빈궁을 설치해 이를 백제대빈(百濟大嬪)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고대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한 백제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백제를 아랫나라로 보면서도 일본서기 곳곳에서 심지어 진구 황후 시절 일본이 쳐서 백제에게 주었다는 소국 중 하나인 침미다례국의 경우 일본의 입장에서는 북쪽에 있는데도 남쪽 오랑캐라는 뜻의 남만(南蠻)이라 적고, 출병과 전투시에도 모든 면에서 백제가 주력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아! 좋은 츤데레다.)

      일본서기가 신화시대를 벗어나면 사실적이지만 왜곡된 기록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일본서기의 모순이 극에 달하는 부분은 긴메이 덴노에 관한 기록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긴메이 덴노의 분량에서는 긴메이 덴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며, 80% 정도가 백제관련 기록들이다. 대놓고 백제기를 (복사 붙여넣기..) 인용했다고 쓰여있다. 특히 백제 성왕 관련 기록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일본서기답게 성왕이 긴메이의 신하라서 마치 아바타처럼 긴메이는 계속 지시를 내리고 성왕이 행동하는 식으로 쓰여있다(...)

      즉 일본서기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그것을 이리저리 짜맞춰서 왜국에 유리한 식으로 재구성했다고 추정된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초기 신화시대는 완전 허구다.)
      따라서 왜곡된 한국 관련 기록들은 주체를 백제로 바꾸거나, 관계를 역으로 생각하면 해결되는 부분이 많다.

    • 84名無し2017/07/17(Mon) 21:50:38ID:MyMjM0NTY(1/2)NG報告

      1000年前の事を必死でアピールして現代日本人に「感謝しろ」とする朝鮮人www
      1000年前に生きた人間なら理解可能だが、一切無関係な人間が必死に「感謝して欲しい」と懇願する姿www
      しかも物的evidenceも皆無wwwただ感情的に優越感を持ちたいだけwww
      情け無い。本当に情け無い朝鮮人ww

    • 85倭寇2017/07/17(Mon) 21:51:33ID:Q1NDMzNzg(2/32)NG報告

      蘇我韓子

      蘇我高麗

      蘇我善德 ????

      전형적인 한국계통이름

    • 86名無し2017/07/17(Mon) 21:55:50ID:c5Njc2MDE(1/1)NG報告

      >>1
      韓国人は「朝鮮半島は36年間、日本でした。」とだけ覚えとけ。

      他は頭に入れなくてもよい。

      だって、お前ら韓国の歴史は嘘、捏造だからな。

    • 87名無し2017/07/17(Mon) 21:56:17ID:MyMjM0NTY(2/2)NG報告

      信じたい事だけ信じて生きる朝鮮人www
      信じたく無い事=無条件でねつ造歪曲。
      信じたい事=無条件で正しい!
      朝鮮人は感情が全て~~~~www感情が満足する事は全て無条件で信じる~~~~ww
      factは知ら無い~~~~factは関心無い~~~~~感情が満足する事が全て無条件で正しい~~~ww
      ただ言い張るだけ~~~~~ww

    • 88名無し2017/07/17(Mon) 21:59:26ID:M5NjA3Mjg(2/2)NG報告

      >>77
      おっGHQいたのか。お前、この間は古代は推測以上の事は分からないって言ってただろ

    • 89倭寇2017/07/17(Mon) 22:02:19ID:Q1NDMzNzg(3/32)NG報告

      ㅇㅅㅇ

    • 90お願いしたい2017/07/17(Mon) 22:11:09ID:M1NDczNzQ(1/3)NG報告

      >>87
      賛成

    • 91GHQ2017/07/17(Mon) 22:25:37ID:g2NzkwNDQ(4/4)NG報告

      >>89

      일본의 서부는 백제의 하나의 지방이었다.

      영국과 호주를 떠올릴수 있다.

    • 92倭寇2017/07/17(Mon) 22:29:56ID:Q1NDMzNzg(4/32)NG報告

      ㅇㅇ

    • 93倭寇2017/07/17(Mon) 22:30:18ID:Q1NDMzNzg(5/32)NG報告

      고구려인들이 왜 일본에 있는것인지..?

    • 94名無し2017/07/17(Mon) 22:30:34ID:IyMjM5MjY(3/5)NG報告

      ウリナラ歴史もいいが、今の韓国の百済無さでも研究して未来に繋げたがいいんじゃないか?
      少なくとも、今はもう教える立場でもないだろ。w

    • 95名無し2017/07/17(Mon) 22:38:18ID:I5MjIxNDc(1/2)NG報告

      トルコ「ヒッタイトが鉄を伝えたのだから世界はトルコに感謝しろ」
      このような自慢をするトルコ人は見たことがないが
      仮にこのような書き込みを見たら韓国人は何を思うのか聞いてみたいな

    • 96熱湯浴2017/07/17(Mon) 22:40:10ID:Y0NTk0MzQ(1/1)NG報告

      >>1
      真実は違うが、仮に中国文化を百済が伝えてくれたとしたら何だと言いたいのか?
      伝えてあげる立場から伝えてもらう立場に落ちぶれた今の自分達を自慢したいのか?
      或いはその百済を滅ぼした新羅を更に滅ぼした高麗の直系だから偉いと言いたいのか?

    • 97名無し2017/07/17(Mon) 23:14:19ID:IzNDAyODc(1/2)NG報告

      日本だけでなく中国や朝鮮の文献にも朝鮮半島南部への倭国の進出を書いているものがあり、

      日本軍砲兵が改竄したと韓国側が主張した広開土王碑も中国の完全版の拓本や墨本が日本側の主張と一致していたので韓国側の主張は完全に崩壊した。

      いまは韓国側の研究者も倭が朝鮮半島への進出していた事自体は否定していない。倭の影響力が小さいものだったという方向に全力シフトしている。

    • 98名無し2017/07/17(Mon) 23:51:19ID:gzMTcxNDg(1/1)NG報告

      すごいのは百済や朝鮮や韓国ではありません
      すごいのはインドや中国です
      残念ながら朝鮮半島はただの通り道なのです
      前に誰かが韓国をジュースの味を誇るストローと言っていました
      ジュースが中国でストローが韓国で飲み手が日本です
      ストローがなくなるとどうなるか?コップから直接飲めばいいだけです
      韓国人の言うことは中国人にも日本人にも意味不明なのです
      誇らしい歴史感を植え付ける愛国教育の弊害なんでしょうね
      本当に滑稽で面白いので、ぜひ100年後も無条件愛国教育を続けて下さいね

    • 99名無し2017/07/18(Tue) 00:00:41ID:g1MjQ3Mzg(1/1)NG報告

      一応、古代史ではストローの役割としての評価はしてるから安心しろ

    • 100名無し2017/07/18(Tue) 00:44:35ID:Y0Mjg2MDQ(2/2)NG報告

      百済を誇ってる韓国人が良く居るけど、韓国っていろいろ頑張って遡っても百済を滅ぼした新羅系統なんじゃないの?

      まあ、百済も新羅も、今の韓国には何も伝統が繋がってないから好き勝手に誇ってるんだろうけど。

    • 101倭寇2017/07/18(Tue) 00:59:11ID:E3MTA0MTI(6/32)NG報告

      뭐야? 그런 논리라면

      우리입장에서도 중국은 그냥 빨대 일뿐이잖아?

      >>97 ???

      무식하면용감하다.

      왜국이 한반도에서 싸운건 맞지만
      단순한문제.
      백제와 가야의 용병일뿐.

      무슨 한반도내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왔다는
      망상은 혼잣말로 끝내는게 좋아 ㅋㅋ

      한국고대사는 일본을 미개한 왜인으로 표현하고 있지만ㅇㅅㅇ

    • 102テオリア2017/07/18(Tue) 01:09:03ID:kwNTU1MTQ(1/17)NG報告

      酷いスレだな。
      韓国人とは何度も話したが、次から次へと馬鹿が来る。

      また時間がある時にやるよ。

    • 103マニアック日本人2017/07/18(Tue) 01:23:26ID:k2MjA4ODg(1/1)NG報告

      韓国人の祖先は百済を滅ぼして中国とモンゴルの奴隷国家に成り下がった。
      優秀な百済人に嫉妬した韓国人の祖先は、百済人を虐め始めた。
      そしたら知識を持った百済人はみんな日本に逃げていった。
      百済人の子孫は日本人だけど、韓国人とは関係ない。
      ただ朝鮮半島に居た人というだけ。百済の風は日本にだけ吹いてる。韓国には何も残ってない。

    • 104ららら太陽2017/07/18(Tue) 01:29:17ID:I1NTMwMjA(4/5)NG報告

      韓国が古代朝鮮半島にあった国と同列な訳がないだろ。

      韓国はイスラエルと同じ近代に出来た人造国家だよ。イスラエルは国民をユダヤ人と称しているが、ユダヤの言語と風習を守る民族に過ぎなく人種的には微妙だよ。とても古代ユダヤの国家とは同じではない。

      韓国もアメリカの都合で出来た人造国家だという事を本当に知らないの?
      古代朝鮮半島にあった国家となんの関係もない。建国70年の国家だよ。
      イスラエルが古代ユダヤ王国の歴史と同じとはイスラエルは言っていないよ。
      世界で韓国だけが国家の断絶を迎えたのに古代朝鮮半島の国家の後継国だと主張している。易姓革命を主張するなら、これはおかしな理論なんだよ。
      北朝鮮ですら、朝鮮半島の後継国と主張せず、金王家から出来た新しい国家だと主張している。
      まず、古代朝鮮半島にあった国家と韓国がどういう関係なのかを証明して欲しい。幾ら調べても米国によって建国されたとしか出てこないと思う。古代朝鮮半島にあった国家はアメリカによって建国される伝統があったのか?古文書で証明して欲しい。
      古代朝鮮半島にあった国は中国によって、国家として認められる伝統は確かにあったので、同じ国家と主張するのであれば、せめて建国は中国によって行われたと捏造する必要はあると思う。

    • 105名無し2017/07/18(Tue) 01:35:13(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06名無し2017/07/18(Tue) 01:38:13ID:gxNTYwNDI(1/1)NG報告

      >>105
      日王 wwwwwwwwwwwwwwwwwwwwwwwwwwww

      GIF(Animated) / 990KB / 5400ms

    • 107ららら太陽2017/07/18(Tue) 01:39:23ID:I1NTMwMjA(5/5)NG報告

      アメリカは外交戦略として、他国の内政に干渉し軍事的手段も辞さず、友好国を作っていった。
      イスラエル、韓国、サウジアラビア、メキシコなど…

      その人造国家が過去の歴史と繋がってる筈ないだろ。王家を廃してクーデタ起こしているのに…(^^)

    • 108テオリア2017/07/18(Tue) 01:42:31ID:kwNTU1MTQ(2/17)NG報告

      民族主義教育の弊害は酷いな

      百済、新羅は倭国より新興国である。
      その上で下記参照

      世界各国では世界約50カ国で教科書を出版しているオックスフォード大学の出版社が制作している教科書は「5世紀の日本の勢力は朝鮮半島南部まで支配した」と記述している。また、プレンティスホール社が出版しているアメリカの教科書『世界文化』は「西暦400年ごろ、(日本は)幾つかの氏族が連合して日本の大半を統一し、朝鮮南部の地域を統治するまでに至った」と記述してあり、カナダやオーストラリアの教科書もまた、同様の記述が存在する。またコロンビア大学のオンライン百科事典や米議会図書館には、「古朝鮮は紀元前12世紀に、中国人、箕子が朝鮮半島北部に建てた国だ。その当時、朝鮮半島南部は日本の大和政権の支配下にあった」と書かれている。中華人民共和国では上海人民出版社が出版している教科書『世界史講』は「新羅は、半島南方で 早くから長期間にわたって倭人の基盤となっていた任那地区を回復した」と記述している。中華人民共和国の外務省は、同省のホームページの日本史介欄で、「5世紀はじめ、大和国が隆盛した時期にその勢力が朝鮮半島の南部にまで拡大した」と記述していたが、韓国政府からの抗議を受け、第二次世界大戦以前の日本歴史部分を全て削除した。

    • 109テオリア2017/07/18(Tue) 01:51:03ID:kwNTU1MTQ(3/17)NG報告

      「隋書」より
      新羅 百濟皆以俀爲大國 多珎物 並敬仰之 恒通使往來

      要は百済、新羅が、倭は大国で珍物多く倭をを尊敬して仰いでいたとし、使いを通わせていた
      ということだ。

      民族主義的教育では受け入れられんだろうが、
      基本的に百済、新羅は当初は倭国に従属的な国であった。
      当然様々な献上品を倭国にもたらしている。


      しかし韓国の歴史教育は本当に酷いな。

    • 110名無し2017/07/18(Tue) 01:52:28ID:IzNDgwMDQ(4/5)NG報告

      そうさね。懐古趣味もいいが、今日日本の後塵を拝してる現状が惨めになるだけじゃないか。誇らしい高麗から現代の韓国まで。どうしてここまで落ちぶれたか解明する方が賢明というものだ。

    • 111テオリア2017/07/18(Tue) 01:59:17ID:kwNTU1MTQ(4/17)NG報告

      >>101
      無知は悲しいな。

    • 112倭寇2017/07/18(Tue) 02:00:30ID:E3MTA0MTI(7/32)NG報告

      내일 학교(대학교)가야되니 이것만 쓰고 이만 자러가겠음

      너네 계속해서 중국기록이라고 모든것을 맹신할려고 하는데
      이건 역사학에 있어서 아주 큰 문제점과 혼란한 빈틈을 야기시킬수 있다는걸 항상 알아둬라.

      그뒤 고려는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고,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이른다.
      其後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晋平郡 晋平縣
      ─ 송서 97권 동이열전 백제

      백제는 변진(弁辰)의 나라로 진대(晋代)에 일어나 번작(蕃爵)을 받았다.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고려 동북에 두었다.
      ─ 남제서(南齊書) 건강실록(建康實錄)

      진나라 말기, 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낙랑도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6]
      晉末 駒麗畧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 양직공도 백제국사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晉世 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 양서 54권 동이열전 백제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晉世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 남사 79권 동이열전 백제

    • 113倭寇2017/07/18(Tue) 02:01:47ID:E3MTA0MTI(8/32)NG報告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였다.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이다.
      晉時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 今柳城北平之間
      ─ 통전 185권 변방 동이 상

      처음 부여는 녹산에 있었는데, 백제의 침략으로 부락이 쇠하여 흩어졌다. 서쪽 연나라 근처로 이동했는데,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았다. 연왕 황이 세자를 보내어……부여를 습격하였다.
      初 夫餘居於鹿山 為百濟所侵 部落衰散 西徙近燕 而不設備 燕王皝遣世子……襲夫餘
      ─ 자치통감 97권 진기 효종목황제

      고구려·백제 및 우문부·단부의 사람들은 모두 병세에 따라 옮겨진 바, 중원의 의로움을 좇아 여기에 온 것이 아니므로 모두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7].
      句麗百濟及宇文段部之人 皆兵勢所徙 非如中國慕義而至 咸有思歸之心
      ─ 십육국춘추 16권 전연록 모용황

      이해 위나라 오랑캐가 다시 기병 수십만을 보내어 백제를 쳐서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수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어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대를 습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 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

      건무 2년에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지난 경오년에는 험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거꾸로 쳐서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去庚午年 獫狁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 崩若海蕩
      ─ 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에 강병이 백만으로 남으로는 오나라와 월나라를 침범하고, 북으로는 유주와 연나라, 제나라, 노나라를 어지럽혀 중국의 커다란 좀이 되었습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
      ─ 삼국사기 46권 열전 최치원

    • 114倭寇2017/07/18(Tue) 02:03:43ID:E3MTA0MTI(9/32)NG報告

      기록으로만 두면 백제의 영역은 반박할수 없이 대륙에 두었다.

      거기다가 통치기관까지 설치

      그런데 한국학자중에 이런거 맹신하는 사람없고
      교과서에서도 찾을 수 없다.

      왜냐고? 고고학적인 유물 발굴이 안나왔을뿐더러

      그 당시 기록을 남기는데있어서 무조건적으로 신뢰 할 수 없기때문이다.

      제발 적당히해라. 이것말고도

      고구려는 기원전 시대에 중국의 베이징까지 들어갔다.

    • 115名無し2017/07/18(Tue) 02:04:28ID:IzNDgwMDQ(5/5)NG報告

      まあ、肝心なところは避けて論を玩弄するのが朝鮮人気質と言っていいだろうね。

    • 116倭寇2017/07/18(Tue) 02:05:54ID:E3MTA0MTI(10/32)NG報告

      《삼국사기》모본왕條 中-
      二年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肜,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2년(서기 49년)봄,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습격하였으나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이를 대하였으므로 다시 화친을 회복하였다

      《후한서》〈동이열전〉고구려條-
      二十五年春, 句驪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肜, 以恩信招之, 皆復款塞。
      (광무제 건무) 25년 봄, 구려(句驪)가 우북평(右北平)·어양·상곡·태원을 노략질하였으나 요동태수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의로써 이를 초유하니 모두 다시 항복하였다.

      [冬十二月, 鮮卑及高句麗, 寇幽幷二州.] -<동사강목>-
      (신대왕4년)겨울 12월에 고구려와 선비가 한(漢)의 유(幽)ㆍ병(幷) 두 주(州)를 침범하였다

      기록으로는 고구려가 이미 기원전시대에 중원까지 쳐들어갔다.

      그런데 우리 학자중에 이거 믿는사람없다.
      제발 무지하면 용감하다 적당히해라 좀

    • 117テオリア2017/07/18(Tue) 02:23:28ID:kwNTU1MTQ(5/17)NG報告

      >>116
      こいつをファンパと言うらしい。

      一つだけ言っておく。
      お前らの歴史教科書は自国の悲惨な歴史の反動もあり他国と比べ民族主義的な傾向が強い。

      さらに言えば起源論なるものも同様の劣等感が一因となっている。

      古代史は中国、日本、他国教科書はほぼ認識は一致している。

      集団ファンパ育成しているのは韓国だけだ。

    • 118名無し2017/07/18(Tue) 03:07:37ID:A0NTYyNA=(1/1)NG報告

      >>1
      安心しろ。
      そんな細かいとこまで興味ある奴は日本人の0.1%と韓国人の50%だけだ。

    • 119名無し2017/07/18(Tue) 03:16:21ID:MwNjU4NjA(1/2)NG報告

      今で言う朝鮮半島という「地域の歴史」と「国の歴史」を混同するな、と何回言ったら分かる?民族すら違うというのに百済人が聞いたら怒り狂うわい。

      『韓国という国の歴史は、ほんの70年程度である』

      これを肝に銘じとけ歴史捏造民族。
      >>1

    • 120名無し2017/07/18(Tue) 03:25:26ID:AwMDkwNzA(2/3)NG報告

      >>117
      이런 병신이 되지않도록
      끝까지 글을 읽는 습관을 가집시다.

    • 121テオリア2017/07/18(Tue) 03:41:58ID:kwNTU1MTQ(6/17)NG報告

      >>120
      ちゃんと翻訳される文章を書く習慣を身につけるよう言っておけ。

    • 122名無し2017/07/18(Tue) 03:43:06(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23名無し2017/07/18(Tue) 03:56:00ID:A4Mjc5Mzg(2/2)NG報告

      >>112
      日本人に知らせようという気持ちは理解できるが
      長文を貼り付けても翻訳が不十分で内容が解らない部分が多い。
      百済と高句麗の勢力の話だと思うが・・・
      このスレッドの話に関係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あと、中国の記録の全てを信頼できないのは同意するが
      無条件に信頼す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といって全否定もできない
      現在の資料の範囲内で史料批判するしかない以上
      残っている中国の記録に比重が偏るのは仕方がないのでは?

    • 124テオリア2017/07/18(Tue) 04:07:14ID:kwNTU1MTQ(7/17)NG報告

      >>122
      米軍、天皇の写真をレスのコメントの材料に使うのはもう止めとけ。

      日本にはもう不敬罪はないがお前は必要以上の恨みを買う可能性がある。

    • 125名無し2017/07/18(Tue) 07:57:13ID:kwMDg0MjA(2/6)NG報告

      >>119
      うん。天文学や高度な図面技術を伝えた人たちが、何をどうしたらあの100年前の朝鮮人の姿になるのか不思議すぎるだろwww

    • 126名無し2017/07/18(Tue) 09:08:49ID:c5ODAxMDg(4/6)NG報告

      미국의 미술 사학자 존·카터·코벨(John Carter Covell, 1910~1996)이 1941년 「15세기 일본 선 화가 연구」로 콜롬비아대학의 일본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그는 이후, 쿄토의 대덕사에서 불교미술 방법을 연구해, 하와이 대학에서 동양 미술사를 강의하면서 대표적인 일본 미술 사학자로서 활동했다.

      코벨은 그러나,1978년부터 1985년까지는 한국에 머물며 한국 문화를 탐색해 일본 문화에 대한 그림자를
      분명히 하는 문장을1000편이상 쓰게 된다.하와이 대학을 정년퇴직하자 마자 한국으로 날아 온 것은, 일본 미술사를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한국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고 부터 라고 말한다.

      그는 「1930년대, 나라와 쿄토에서 쿠라다(백제) 관음과 같은 불상과 호류사의 아스카 불교미술을 보았을 때,20%는 한국인인들이 직접 들어 왔다던가, 강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1980년대는 한국의 영향이 95%에 이른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라고 술회 한 적도 있다.

      「일본에 남은 한국 미술」이란 책에서는 , 그가 한국에서 다양한 미디어에 기고한 문장의 일부를 정리 한 것이다.최근에는,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 특히 일본의 고대 문화에 큰 영향을 전했다, 라고 하는 이야기는 낡게 느껴지는 만큼 흔히 있다.그런데도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많은 예술품이 사실상 한국의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 알려져 있다, 라고 하는데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에 많이 있듯이, 이집트의 문화재는 런던에, 일본의 문화재는 보스톤
      에 많다.그런데 일본 문화재는 일본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의 한국 문화재는 일본이나 중국의 것으로 왜곡되고 있다, 라고 한다.

    • 127名無し2017/07/18(Tue) 09:16:56(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28名無し2017/07/18(Tue) 09:20:48ID:g3MzE0ODg(1/1)NG報告

      朝鮮人は日韓併合の時まで文化財の保存、保護を知らなかった。
      文化の伝承はとっくに途切れていたのだった。
      土人になった現在は昔の方が誇らしいそうだ。よく分からんが、そうかもしれない。

    • 129テオリア2017/07/18(Tue) 09:28:30ID:kwNTU1MTQ(8/17)NG報告

      >>126
      君達の為に言っておく。
      韓国人の子供をアメリカ人に養子縁組斡旋をしていた、所謂韓国人の子供で商売していた人身売買仲介屋であり、考古学者でも植物学者でも無い人間が言う、韓国人にとって心地よい論がどれだけの価値があると思う。学会が相手にしていると思うか。

      知性ある韓国人なら彼女の論を持ち出す事はむしろ恥ずかしことだと気付くはずだか。

    • 130名無し2017/07/18(Tue) 09:31:25ID:c5MzA3OTQ(1/1)NG報告

      韓国人にとって自分たちの賛辞以外は
      アーアーキコエナーイって民族
      聞こえないっていうより理解すらできない民族
      韓国人を擁護する言葉なら
      稀代の殺人鬼の言葉でも万世すると思うよ

    • 131名無し2017/07/18(Tue) 09:35:26ID:EyNDc0OTg(2/2)NG報告

      >>101
      広開土王碑の内容を知っているの?
      現代語風に簡単に言うと、

      倭の軍勢が新羅を攻めて新羅の王を屈服させてしまった。
      高句麗は五万の軍勢で倭を攻めた。
      黄海道にて倭の軍勢を敗退させた。

      この内容は高麗の三国史記と内容が一致しているので信憑性が高く、

      中国で広開土王碑の完全な拓本や墨本が見つかる前から、日本側の研究を韓国以外のほとんどの国の学者は支持していた。

    • 132名無し2017/07/18(Tue) 09:40:33ID:kwMDg0MjA(3/6)NG報告

      >>126
      だから、日本の歴史教科書にも「日本文化は中国と朝鮮半島から多くの影響を受けた。」とハッキリと書いてるんだよ。
      しかし、当時の朝鮮半島の文化=韓国の文化ではないだろ?なんでわかんないかな。

    • 133倉庫◆aoQJZRtfIo2017/07/18(Tue) 09:46:21ID:MzMTExODA(1/5)NG報告

      >>126
      韓国人らしいまとめ方の文章 ニャ。
      しかも、他者のコピペ。
      仏教美術に見る大陸や半島の影響は当たり前だ、又、日本画における大陸の影響もしかり。
      貴方が紹介した人が仏教1体(1種等)で何を語る?そして韓国で研究して何故?影響の度合いが跳ね上がったのかコピペだから答えられないだろう。
      本の紹介もしているが主観的な言葉と結論有りきで何ら根拠がない。どこぞのホルホル記事のコピペと言える根拠 ニャ。

    • 134名無し2017/07/18(Tue) 09:50:01ID:kwMDg0MjA(4/6)NG報告

      そういや、古い小学校の片隅にトーテムポールがあった記憶が、、、、
      あれは韓国文化の影響でしょうね。この件は認めますw

    • 135名無し2017/07/18(Tue) 09:56:59ID:c5ODAxMDg(5/6)NG報告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기도 할 정도로, 왜군은 조선의 자기장들을 사로잡아 데려가고 조선의 도자기를 가져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도자기 전쟁’에서 범위를 넓히면 ‘문화 약탈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 초기부터 도서부(전적), 공예부(장인), 포로부(한의사, 젊은 남녀), 금속부(병기, 금속 예술품), 보물부(금은보화), 축부(가축) 등의 별도 부대를 편성하여 조선의 문물과 인력을 약탈했던 것이다. 다카도리야키(高取窯), 사쓰마야키(薩摩窯), 아카노야키(上野窯) 등 일본의 많은 주요 도자기 생산지들이 끌려온 조선 자기장들에 의해 발전했다. (‘도공’이라는 표현은 주로 일본에서 많이 쓰며 자기장, 사기장, 장인 등의 표현이 적합하다는 주장이 있다.)
      아리타 지역에서도 이삼평 외에 조선에서 끌려온 김해 출신 여성 자기장 백파선(百婆仙)이 활동했다. 백파선은 김해의 자기장 김태도(金泰道)의 아내였다. 이들은 사가현 서부 다케오(武雄) 지역에서 자기장 집단을 이끌며 생산을 하다가 김태도가 세상을 떠났고, 아리타 지역을 집중 육성하려는 나베시마번 측의 결정으로 아리타로 이주했다. 아리타의 호온지(報恩寺)에는 백파선의 후손이 세운 법탑(法塔)이 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삼평 [李參平] - 조선에서 끌려간 일본 자기(瓷器)의 시조 (인물한국사)

    • 136名無し2017/07/18(Tue) 09:57:33ID:c5ODAxMDg(6/6)NG報告

      조선 자기장들이 대거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일본은 도기 생산에 만족해야 했고 기술적으로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생산 재료, 가마의 구조, 제작 기법, 안료 개발 등 많은 측면에서 조선 자기장들은 일본의 도자기 생산을 혁신시켰다. 이마리에는 조선 자기장들의 넋을 기리는 도공무연탑(陶工無緣塔)이 서 있다. 이삼평이나 백파선처럼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는 자기장은 극소수였고, 대다수 조선 자기장들은 끌려간 타향에서 문자 그대로 무연(無緣), 즉 이름도 자취도 연고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삼평 [李參平] - 조선에서 끌려간 일본 자기(瓷器)의 시조 (인물한국사)

    • 137常識疑え2017/07/18(Tue) 10:07:42ID:cwNjg1NTg(2/2)NG報告

      >>135
      韓国人は秀吉の出兵は明に対する戦争だと何度言えば理解出来るのか?

    • 138せつこ(*゚ー゚)2017/07/18(Tue) 10:11:21ID:YyMDMyODg(3/6)NG報告

      >>134
      トーテムポールって北米インディアンじゃないの?

    • 139名無し2017/07/18(Tue) 10:20:45ID:g1ODEwNjI(1/4)NG報告

      >>138
      朝鮮の100年前の写真「像に祈る朝鮮人」

    • 140名無し2017/07/18(Tue) 10:21:00ID:kwMDg0MjA(5/6)NG報告

      >>138
      あっ、そうだ… ゴメン、せつこ!

    • 141倉庫◆aoQJZRtfIo2017/07/18(Tue) 10:22:41ID:MzMTExODA(2/5)NG報告

      >>136
      朝鮮の白磁は有名 ニャ。
      しかし、起源(大元)は何処?

      未開 ニャ。

    • 142せつこ(*゚ー゚)2017/07/18(Tue) 10:25:57ID:YyMDMyODg(4/6)NG報告

      >>139
      それ、トーテムポールと全然違うと思う。

    • 143名無し2017/07/18(Tue) 10:33:33ID:kwMDg0MjA(6/6)NG報告

      >>139
      なんか顔が怖いね。つり目で頬骨が出てる。
      しかし、この造りを見ると、この人達が百済観音のような繊細で緻密で表現力豊かな美術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とは考えにくいな。

    • 144名無し2017/07/18(Tue) 10:34:05ID:QyMzAxNzg(1/2)NG報告

      >>134
      徳川時代に日本と朝鮮の間で
      朝鮮征伐で捕虜になった人達の引き渡し条約が結ばれたが
      日本に連れていかれた朝鮮人陶磁器達は頑なに帰国を拒否しましたとさ
      めでたし、めでたし

    • 145名無し2017/07/18(Tue) 10:34:25ID:g1ODEwNjI(2/4)NG報告

      >>142
      「韓国 トーテムポール」でたくさん出ます。天下大将軍と書いてるのが多いですね。

    • 146倉庫◆aoQJZRtfIo2017/07/18(Tue) 10:36:15ID:MzMTExODA(3/5)NG報告

      >>141 訂正
      白磁×
      青磁○

      白磁は又、別の話 ニャ。
      朝鮮青磁は有名では有るが中国青磁の方が好きだなぁ。好みの問題ではあるが。

      改めて、訂正とお詫びをする ニャ。

    • 147せつこ(*゚ー゚)2017/07/18(Tue) 10:39:43ID:YyMDMyODg(5/6)NG報告

      >>145
      それ、いつもの「韓国人が言い張ってるだけ」じゃないの?
      北米インディアンが聞いたら気を悪くするよ。

    • 148名無し2017/07/18(Tue) 10:46:05ID:IzODEyNzY(1/1)NG報告

      >>1
      日本は近代以降お前らに西洋文明を教えたから感謝しろ、って言われたら感謝すんの??

    • 149名無し2017/07/18(Tue) 10:51:40ID:g1ODEwNjI(3/4)NG報告

      >>147
      「柱状の木の彫刻」と言い直した方がいいですか?

      調べたら境界等に建てられた村の守り神で、子孫繁栄も願ったものだそうです。
      日本のお地蔵様感覚かな?

    • 150倉庫◆aoQJZRtfIo2017/07/18(Tue) 10:52:07ID:MzMTExODA(4/5)NG報告

      >>145
      私の小学校にも在りました ニャ。
      しかし、その画像のものではなく、インディアン式だった ニャ。

    • 151倉庫◆aoQJZRtfIo2017/07/18(Tue) 11:02:41ID:MzMTExODA(5/5)NG報告

      エ何とか族にもみられるとか?

      朝鮮人のルーツの解明になる ニャ。

    • 152せつこ(*゚ー゚)2017/07/18(Tue) 11:07:12ID:YyMDMyODg(6/6)NG報告

      >>149
      男女の対で、子孫繁栄で、境界線にいるなら、道祖神かな。

    • 153名無し2017/07/18(Tue) 11:10:33ID:AwODEyNDQ(2/2)NG報告

      >>103
      誤)百済人の子孫は日本人だけど、
      正)百済人の子孫は日本にいるけれど

      日本人が百済人の子孫なら、『新撰姓氏録』で百済という項目を作る理由が無い。

    • 154倭寇2017/07/18(Tue) 14:05:32ID:E3MTA0MTI(11/32)NG報告

      >>131 잠시 점심시간에 들려서 이것만 말해주겠다.

      호태왕비? 역시 이게 안나오는건 이상했지
      나오길 바랬다.

      너가 말하는 부분에는 일단 2자가 빠져있다. 한자는 단어 몇개에 따라 글의 주체가 쉽게
      바뀔수 있다는걸 알아둬라.

      그렇다면 너가 주장하는데로 한번 해석해보자.
      "왜(倭)가 신묘년(辛卯年)에 건너와 백잔을 파(破)하고 신라를 …(2자 불명) 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이 글의 전 문단을 보자.
      "백잔(百殘)과 신라(新羅)는 예로부터 속민(屬民)으로서 조공(朝貢)을 해왔는데.."
      호태왕비는 전형적으로 고구려인들의 시선으로 각색된 비석이다.

      백잔(백제를멸시하는호칭) 신라가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이라고 해왔는데
      전~혀아니다.

    • 155倭寇2017/07/18(Tue) 14:07:06ID:E3MTA0MTI(12/32)NG報告

      불과20년전 고구려-백제와의 전투에서 고구려의왕이 백제의 병사에게 죽임을 당할정도로
      고구려는 백제에게 엄청나게 깨진적이있다.
      전형적인 고구려인의 과대해석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에 (영락) 6년(396) 병신(丙申)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잔국(殘國)을 토벌하였다"

      바로 뒷내용이다.
      왜국이 백제를 신민으로 삼았다면 어째서 고구려는 왜를 토벌하지 않고 백제를 토벌하는가?

      그리고 불과 몇년뒤
      "(영락) 9년(399) 기해(己亥)에 백잔이 맹서한 바를 어기고 왜(倭)와 화통(和通)하므로.."

      백제는 왜와 다시 화통하게된다.
      이 당시 백제와 왜의 관계는 칠지도(七支刀)를 통해서 알 수있다.

    • 156倭寇2017/07/18(Tue) 14:10:08ID:E3MTA0MTI(13/32)NG報告

      (영락) 10년(400) 경자(庚子) 교(敎)를 내려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토록 하였다. 남거성(男居城)으로부터 신라성(新羅城)까지 왜(倭)가 그 가운데에 가득하였다. (고구려군의) 관군(官軍)이 이르자[方至] 왜적(倭賊)이 물러났다. …(2자 불명) 뒤를 급히 쫓아 임나가라(任那加羅)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렀다. 성이 곧 귀복(歸服)하자 안라인수병(安羅人戌兵)…신라성(新羅城), ▨성(▨城)을 …하여 왜구(倭寇)가 크게 무너졌다

      이 글의 해석을 보자.

      너네들도 알다시피 신라가 광개토태왕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내용을 보면 왜군을 쫒아 태왕께서 임나가라의 종발성 까지 이르렀다는 내용을 알 수있다.
      그런데 그 임나가라의 성이 곧 귀복하자 왜구가 자연스럽게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수 있느냐?
      그 당시 왜는 가야의 고용을 통해서 온 용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불과 1년전 백제와 왜가 화통했다는 기사를 알 수있다.

      백제-가야-왜 3세력이 연합으로 힘을 도모했다는걸 알 수있다.

    • 157倭寇2017/07/18(Tue) 14:12:33ID:E3MTA0MTI(14/32)NG報告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3078529

      지금 중국이 호태왕비를 바탕으로 또 다시 역사왜곡을 하고있다.

      중화사상 진짜 죽여버리고싶다.

      호태왕비를 이렇게 설명하고있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떨쳐 온 중화민족 비석 예술의 진품으로 불리우는 ‘해동제일 고대 비석’ 즉 호태왕비(好太王碑)가 있고….”

      중화민족이 아니라

      한민족의 유물이다

      짱깨는 반성해야한다.

    • 158名無し2017/07/18(Tue) 14:14:24ID:cyMzI2MzI(1/1)NG報告

      >>155

      歴史書にしっかりと書かれている事を否定しても無駄だろ?
      百済の王子は日本に送られ、百済が逆らえなくしたのは間違いない歴史だ。

      七支刀
      王が持つ剣を日本に献上した歴史

    • 159名無し2017/07/18(Tue) 15:28:42ID:E3NzIyNjg(1/3)NG報告

      >>29
      王仁さんね。知ってるよ。
      日本人は記紀に記録してたけれど、朝鮮では記録すらなかったという話ね。
      日帝と併合後日本人が王仁祭してるのを見て朝鮮人が王仁の存在を初めて知って慌てて朝鮮でも銅像立てたりしたんだよな。
      もともと中国系の学者といわれる。

      ほんとうに間抜けな民族だ。

    • 160名無し2017/07/18(Tue) 20:41:51ID:kwNTU1MTQ(9/17)NG報告

      >>157
      客観的にお前の論は都合のいい解釈の域を出ない。

      細かい話は省略するがまず、高句麗がどっちの歴史かと言えば、日本は百済の子孫と平気で発言する韓国人の思考に則れば、間違いなく中国の歴史だろう。理由は自分で考えてくれ。

      どの歴史書も正確な歴史を記録している訳では無いだろう。しかし、韓国人は民族主義的思考により都合のいいものは積極的に受け入れ、都合の悪いものは無視及び曲解する傾向がある。

      少なくとも、好太王碑、隋書、日本書紀の記載から確実に言える事は、臣民云々はともかくとして、倭国と百済はどんなに譲歩し考慮しても倭国上位の同盟関係であり、人質としての保証人に加え七支刀や、文献の類は倭国に対する献上物であり、少なくとも「教えてやった」という性質のものでは無い。倭国はその上で同盟国としての軍事協力をしていたのだ。傭兵という解釈はどの資料をどう読んでも成り立たない。

      資料は正確なものとは言えない。しかしお前は都合よく曲解し過ぎている。

      また、もう少し翻訳の精度が上がるような書き方を心掛けてくれ。お前の文章は70%位の理解しか出来ない。

    • 161石井四郎2017/07/18(Tue) 20:49:42ID:QzMzI4MTg(1/1)NG報告

      中国のパシリそれが朝鮮
      ちなみに中国はインドのパクリだけどww

    • 162倭寇2017/07/18(Tue) 21:40:59ID:E3MTA0MTI(15/32)NG報告

      >>160

      확실히 중국의 역사?
      적당히 해라 정말 구역질난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기초적인 중화사상의 논리에 어긋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중국은 필사적으로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했다.
      고구려뿐만이 아니다. 부여,고구려,발해 등 중국대륙에 위치한 국가는 기본적으로
      중국이 역사곡해를 시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라 말 할수 있겠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논리는 상당히 가벼운 수준이다.
      고구려가 중화의 국가랑 조공-책봉이라는 관계를 맺었다는 논리인데
      이것을 옳다고한다면
      중국 주변에 위치한 모든 동아시아국가역시 중국사라는 논리가된다.
      하지만 중국은 철처하게 고구려를 건들고있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너네가 그런 논리를 가지고 주장한다면
      어째서 고구려만 건드는가? 라고 말한다면
      중국학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수 가없다.
      결국 근 몇년 주장이 약해지나 싶더만
      근래에 저렇게 관광지원에서 저런 표지문을 세워놓는 치졸함을 보여주고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역사에서 중국은 고구려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한번 자료를 보도록하자.

    • 163倭寇2017/07/18(Tue) 21:47:45ID:E3MTA0MTI(16/32)NG報告

      2월17일 정오에 왕씨 성과 송씨 성의 아찰어사 두 대인이 나를 예빈관에서 대접하고는 묻기를, "당신 나라는 무슨 장기가 있어서 능히 수나라,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지모 있는 신하와 용맹한 장수가 군사를 부리는 데 방법이 있었으므로, 병졸 된 사람들은 모두 윗사람을 친애하고 장상을 위해 죽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고구려는 천하의 백만 군사를 두 번이나 물리쳤습니다. 지금은 신라, 백제, 고구려를 합쳐서 한 나라가 되었으니, 물산은 많고 땅은 크며, 재물은 넉넉하고 군사는 강성하며, 충성스럽고 지모 있는 선비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표해록>-조선 성종때 명나라에 표류한 최부


      "귀국은 고구려 때부터 강국이라 일컬어졌는데 근래에 와서 선비와 서민이 농사와 독서에만 치중한 탓으로 이와 같은 변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선조실록 39권, 선조 26(1593)년 6월 5일 무자 5번째 기사-

      귀국의 강한 군대는 본디부터 천하에 소문이나 천하의 군대라칭했는데, 수(隋)ㆍ당(唐) 때는 그리도 굉장했으면서 풍신수길(豐臣秀吉)의 난에는 어째서 그리 방황하십니까?
      -<금계일기> 5월 20일자 기록-

      이 때 조선의 昇平이 오래 되어 군대는 전쟁을 익히지 않았고 李昖(-선조) 또한 술에 빠져 방비를 게을리 했다. 갑자기 섬의 오랑캐가 난리를 일으키자 모두가 방황해버렸다.
      -<明史> 권320 列傳 208, <朝鮮>-

    • 164名無し2017/07/18(Tue) 21:49:01(1/2)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65名無し2017/07/18(Tue) 21:50:27(2/2)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66倭寇2017/07/18(Tue) 21:56:48ID:E3MTA0MTI(17/32)NG報告

      조선이 태평한 지가 오래되어서 외환(外患)과 내치(內治)를 전혀 생각하지 않아, 일이 없으면 붓을 휘두르는 것으로 즐기지만 일이 있으면 속수 무책이다. 이 때문에 왜의노예들이 그런 정상을 익히 알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함몰시킨 것이다. 그러나 화를 입은 이래 여전히 깊이 징계를 하지 않고서 왜적이 가면 연당(燕堂)에 편히 거처하고 왜적이 오면 초수(楚囚)를 대한 것같이 하니, 오늘날의 조선은 수(隋)·당(唐) 때의 조선도 아니요, 또한 우리 나라 초기의 조선도 아니다. 자꾸만 우리로 하여금 계속 군사를 노숙시켜 오래 수자리 살게 한다면 오래될 경우 중국도 지쳐서 폐해를 받게 될까 염려되니 이는 두 나라가 함께 지치는 길이다. 만전의 대책을 계획하려면 중국의 정치를 본받아서 다스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선조실록 87권, 선조 30년(1597) 4월 13일 계유 7번째기사-


      요동 부총병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조승훈은 요동 출신이라고 조선에 대해 동족의식과 비슷한 발언까지한다.

      총병이 말하기를

      " 앞서 많은 후사를 받았는데 나는 조선과는 한 집안 사람입니다. 요동은 옛 고구려의 땅으로 동령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조선)를 가리켜 본향이라고했습니다. 중국 조정의 문무 관원들이 이곳에 많이 나와 있어 용도가 매우 많으니 두루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받으려면 선뜻 받지 어찌 근교를 기다리겠습니까?"

      -선조실록 103권 31월 8월9일


      성종 12년인 서기1481년,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조선에서는 창덕궁 인정적에서 연회를 베푼다. 이때 사신은 어린 기생이 추던 춤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사신과 성종사에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

      "이것이 무슨춤 입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이 춤은 고구려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름은 <동동무>라 하지요."
      -성종실록 132권 12년8월 3일

    • 167倭寇2017/07/18(Tue) 21:59:38ID:E3MTA0MTI(18/32)NG報告

      고려시대 (918~1392)

      자료도 보여줄까?

      중국은 1000년이 넘게 우리를 고구려의 후예로 인주했고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갑자기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너가 한국인이면 화가 안나겠는가?

    • 168テオリア2017/07/18(Tue) 22:04:21ID:kwNTU1MTQ(10/17)NG報告

      >>167
      もういい。分かった。

    • 169倭寇2017/07/18(Tue) 22:06:39ID:E3MTA0MTI(19/32)NG報告

      >>168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

    • 170名無し2017/07/18(Tue) 22:12:58ID:EwMTkyMzA(1/1)NG報告

      正に一人よがり、他人と意見を交わす気など無いのだろう。
      「そうあるべき」これしか伝わってこない。

    • 171テオリア2017/07/18(Tue) 22:18:29ID:kwNTU1MTQ(11/17)NG報告

      正直な所、高句麗が中国の歴史だろうが朝鮮の歴史だろうがどっちでもいい。
      日本の学者でも意見は分かれている。

      俺は朝鮮の歴史でいいと思うが、そうなるとお前らの中にはツングース系は韓国には一切関係ないと頑なに言う連中がいる。そことの矛盾をどう説明するのか。

      高句麗は住民は四方からの民族が混在した国だが、馬韓と言うもの、それは三国史記の虚構であり、高句麗支配層はツングース系(満州族)だろう。

      再度言うが俺はどっちでも構わない。ただお前らの韓民族意識はツングースを否定する。その矛盾の内包を韓国自体が解決する必要があるだろう。

      まあこっちはどうでもいい。
      まあ高句麗は北朝鮮の歴史だな。

      倭国と百済の関係に異議はないな。

    • 172名無し2017/07/18(Tue) 22:31:39ID:QyMzAxNzg(2/2)NG報告

      >>169
      朝鮮の百済の地は
      天皇陛下の土地なんで侵略者の韓国人直ぐに百済の地から出ていき、天皇陛下に返却してください

    • 173倭寇2017/07/18(Tue) 22:36:32ID:E3MTA0MTI(20/32)NG報告

      >>171 백제-왜 의 관계를 굳이 언급하지 않은건
      너랑 나랑의 견해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꼈다.
      이 부분은 완벽한 시간낭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0198&cid=46619&categoryId=46619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에서 역사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참고하는 사전이다.
      왜냐하면 이 사전은 학자들이 논문을 토대로 계속해서 최신수정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다. 한번 읽어보는것도 추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3013554
      -“하사품” “진상품” 백제 칠지도 둘러싼 韓日논쟁-

      학자들이 알아서 판단할거다.

    • 174倭寇2017/07/18(Tue) 22:53:51ID:E3MTA0MTI(21/32)NG報告

      >>171 내일 일찍 나가야되서 마지막으로 댓글 달겠다.

      일본인들이 고구려는 만주계의 국가라고 주장하는데..

      너네들은 기본적으로 만주족의 역사를 너무 모른다.
      정말 모른다.

      만주족은 원래 오랑캐의 무리
      변방민족 일 뿐이였다.

      훗날 "청" 을 세웠지만 그 이전의 역사는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 175テオリア2017/07/18(Tue) 22:55:03ID:kwNTU1MTQ(12/17)NG報告

      >>173
      まあお前らの受けている教育を考えればしょうがないな。韓国人とは何人かと話したが理解する人間と全くダメな人間がいた。中々面白い。

      日本は根拠資料をまず重んじる。但し資料も100%正確では無い。
      お前らは民族主義による民族主観を重んじる。
      完全否定はしないが、行き過ぎると他国から見ればファンパになる。

      まあ参考に見させてもらう。
      お休み

    • 176テオリア2017/07/18(Tue) 23:00:22ID:kwNTU1MTQ(13/17)NG報告

      >>174
      お前らにそういう民族も自らの国の歴史を構成した一要素と受け入れる柔軟さと寛容さがあれば、高句麗は朝鮮の歴史と胸を張って言えるのにな。

      お前らの民族主義的は邪魔になっていないか。
      それでは再度お休み

    • 177名無し2017/07/18(Tue) 23:03:16(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178倭寇2017/07/18(Tue) 23:20:59ID:E3MTA0MTI(22/32)NG報告

      >>176
      번역기의 한계로 너네들 말 역시 60~70%밖에 이해 못하겠다.
      역시..

      너네들은 역사 너무 모른다.

      고려시대(918~1392)
      고려 태조 왕건의 휘하 유금필장군은 수 많은 만주족의 무리들을 이끌고 있었으며
      이들은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는데 크나큰 개국공신이 되었다.
      만주족의 무리들은 우리나라에 귀부 요청을 하였고 수 많은 만주인들이 고려의 군현에 편제되었다.
      만주족은 우리를 부모의 나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만주족의 무리들이 갈수록 오만해져 1107년 고려대장군 윤관이 20만의 기병을 이끌고
      토벌한다.

      조선시대(1392~1910)
      조선 태조 이성계는 만주족들과 큰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의형제 역시 만주족이 였으며 수십명의 만주족추장들이 이성계의 휘하에 포진되어있었고
      조선 건국에 크나큰 개국공신이 되었다.
      한글을 창제하는 세종 역시 수 많은 만주인들을 포섭하고 동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동화되었던 만주인들도 많지만 만주인들은 성격이 포악하고 사납기때문에 통제하기 어려웠다.

      항상 동화시킬려 노력했지만 너네들은 만주인들하고 싸워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성격을 모른다.

    • 179ゲンゾー2017/07/18(Tue) 23:56:02ID:E1NTg0MTY(5/5)NG報告

      >>178
      1392年に満州族を討伐したのに
      何故1407年に迎恩門が建てられたんだ?

    • 180倭寇2017/07/19(Wed) 00:21:23ID:g4Nzc0NDY(23/32)NG報告

      >>179 무슨소리인지 ㅋㅋㅋ

      만주족 토벌이랑 저거랑 아무 상관없다 ㅋㅋㅋ

    • 181名無し2017/07/19(Wed) 00:22:11ID:QxMTU4MzM(1/1)NG報告

      これ程までに歴史を捏造、改竄している韓国人

      そのまま突き進んで行け

      暗黒朝鮮時代から、嘘を言わないと生きられなかった奴隷乞食生活が数百年の朝鮮人の子孫達

      正直に話した相手を許してあげる文化が数百年の日本人

      嘘つきはどっちだ?w

    • 182倭寇2017/07/19(Wed) 00:23:53ID:g4Nzc0NDY(24/32)NG報告

      고려 태조

    • 183倭寇2017/07/19(Wed) 00:24:51ID:g4Nzc0NDY(25/32)NG報告

      >>181 일본에 수백년이라는 문화는 있어? ㅋㅋㅋㅋㅋㅋ

    • 184名無し2017/07/19(Wed) 00:25:25ID:Y2MDA5MzU(3/3)NG報告

      한국인 혼자서 원숭이들의 날조를 전부 팩트폭격으로 부숴버리는 현장이다.

    • 185倭寇2017/07/19(Wed) 00:33:36ID:g4Nzc0NDY(26/32)NG報告

      우리 백제국의 성왕

      잘 부탁한다.

    • 186テオリア2017/07/19(Wed) 00:34:36ID:k1NzEwMzc(14/17)NG報告

      >>183
      まだいるじゃねえか。

      一つだけ教えてくれ。
      日本では高句麗は今現在は中国の歴史とも朝鮮の歴史とも分類していない。

      基本的な事だがそもそも高句麗の朱蒙は韓民族と教えられているのか。それともツングース系と教えられているのか。

    • 187倭寇2017/07/19(Wed) 00:36:40ID:g4Nzc0NDY(27/32)NG報告

      >>186 너는 그래도 그나마 상식이 통하는 녀석같다.

      너 만큼은 대환영이다.

      너네들의 교과서에는 아무 나라에도 분류하지 않은건가?

      잠시만

    • 188名無し2017/07/19(Wed) 00:45:22ID:Y5MTQyMTI(1/1)NG報告

      韓国様から日本は多くのことを学んだ。

      1)分断国家は危険な存在。
      2)狂人と約束をするだけ無駄。
      3)困ったときに助けるのは愚の骨頂。
      4)K-POPなんか聴いてるとバカになる。
      5)根拠のない自信家に近づくな。
      6)ウソも100回言えば本当になる。
      7)顔も出自も整形でごまかせる。
      8)テロも見方を変えれば愛国。
      9)近所と仲良くする必要はない。
      10)朝鮮人を信じるな。

      ありがとう、韓国様。

    • 189テオリア2017/07/19(Wed) 00:48:59ID:k1NzEwMzc(15/17)NG報告

      >>187
      下らん喧嘩をする気などない。

      日本では中韓への配慮もあるだろう。
      日本では高句麗は中国でも朝鮮でもなく東アジアの歴史に分類されている

      お前らの国で朱蒙が韓民族かツングース系民族かどっちで教えられているか気になった。

      明日は仕事が早いから寝る。

      明日でも構わん。

    • 190倭寇2017/07/19(Wed) 00:51:36ID:g4Nzc0NDY(28/32)NG報告

      >>186
      일단 너의 질문 자체가 깔끔하게 번역되지 않았다.

      너가 물어보는건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출생에 대해서 물어보는건가?
      그가 한민족인지 퉁구스계 민족인지를 묻고있는거야?

      주몽은 부여국의 사람이다.
      부여에서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는 시조가된다.

      그의 아들 온조 역시 남하하여 백제의 시조가된다.

      너네들은 왜이렇게 퉁구스 퉁구스에 집착하는거냐
      만주족은 우리 바로 옆에 수천년간 붙어 있던 애들이다.

      기본적으로 만주족은 우리하고 가장 밀접한 유전관계를 갖고있고
      고대부터 인구수역시 우리가 더 많았다.

      만주족은 우리에게 동화된 사람도 정말 많고
      우리 나라사람 역시 만주족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대부터 우리하고 만주족은 언어가 아예 다르다.
      이건 왜 이런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 학자들도 풀지 못한 숙제라 알고있다.

    • 191倭寇2017/07/19(Wed) 01:01:48ID:g4Nzc0NDY(29/32)NG報告

      >>189

      수 많은 고구려인들은 한국에 동화되었다.

      발해국이 멸망하고 발해세자 대광현은 수십만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려로 귀부해왔다.
      발해국의 건국시조 대조영이 내 할아버지다.
      지금도 한국에는 발해국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2719455

      고구려의 마지막수도는 평양이였고
      최대의 곡창지대는 평안도 일대였다.

      훗날 신라에 의해서 조직되는 황금9서당이라는 무사집단의 3서당이 고구려인들로만 이루어져있었다.
      2서당은 백제인

      고려태조가 고려를 건국할때도 수 많은 고구려유민들의 세력 지원을 받았다.
      후고구려의 수장 궁예역시 고구려호족의 후손이다.

      주몽은 그냥 특출난 사람중 하나였지
      그는 다른 민족이아니다.

      그 어떤나라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에게 1000년이라는 시간동안 제사를 지내고
      그에 대한 공을 보답하고자 했는가?

      우리밖에없었다.

    • 192名無し2017/07/19(Wed) 01:06:09ID:QyNjY0MjI(1/1)NG報告

      奴隷文化しかないだろ韓国人

      仏閣も仏像も韓国起源ではないし
      奴隷に作れるものではない
      制作道具も継承してない

      作れたのは道祖神とかいう民芸品

    • 193倭寇2017/07/19(Wed) 01:08:53ID:g4Nzc0NDY(30/32)NG報告

      이것만 적고 나도 진짜 자야된다. 내일 일찍 나가야되.

      金(1115~1234)에 중원을 평정한 이 나라의 태조역시
      그 혈통이 고려인이다.

      "고려사"예종 4 년 '일찍이 저희 여진의 선조가 대방 (고려)로부터 나왔으니 ...이 오아 속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 나이다 ... 옛 땅을 돌려 주시면 기왓장 한 장 던지지 않겠습니다 . "

      "금 "의 태조는 완 안부 아골타 다.
      그런데 그의 선조가 고려인이다.

      이상"금사 "1 권에 에있는 내용을 발췌 하였음.
      궁금하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직접 사서 읽는 것도 추천 .

      "금 (金)의 시조 (始祖) 휘 (諱)는 함 보이고, 처음 고려 (고려)에서 나올때 나이가 60 세였다.
      형 아 내는 불교를 좋아하여 고려 (고려)에 머물며 나옴을 원하지 않아여 말하길
      후세 자손 (후세 자손)이 필이 상 취하여 모일때가있을 것이니 나는 가지 않겠다 .라고 말하여
      고려에 남았다. "

      훗날 금 태종 천회 14 년 ( 1136 년)에 경원 황제로 추시되었고 묘호는 "시조"라 하였다.

    • 194テオリア2017/07/19(Wed) 01:19:25ID:k1NzEwMzc(16/17)NG報告

      >>190
      返信はいいからもう寝ろ。

      扶余も渤海もツングース系だよな。少なくとも日本での認識はそうだ。高句麗同様渤海は韓国では自国の歴史のように扱っていると聞いている。間違いないか。

      そもそも俺が固執しているのではない。

      にも関わらずこのような韓国人をたまに見かける。

      「朝鮮人を北方の遊牧民(モンゴル、ツングース、エヴェンキなど)と関係付けたがるクズ野郎どもは殆どがファンパ。朝鮮人の薄っぺらな民族主義の最大の裏付けなんだよ。」

      上記は韓国人の書き込みだ。

      一体韓国では何をどういう風に教えているのか
      理解が出来ない。

      一体どういう事だ。

    • 195名無し2017/07/19(Wed) 01:20:22ID:k2NTA3NzE(4/4)NG報告

      ======== 半島の歴史 ver2.0 ==========
      10世紀 長白山が過去2000年間で世界最大級とも言われる
          巨大噴火を起こす(リセット)
      1010年 「契丹」に侵略される。首都開城が陥落。(キタン人化)
      1013年から1019年まで継続して侵略される。   (キタン人化)
      12世紀 「女真」の侵入。侵略。「金」に朝貢。   (満洲人化)
      1231年 「蒙古」に侵略される。首都開城が陥落。国王江華島に逃亡
          長い間、無抵抗の半島はモンゴル軍に蹂躙される。(モンゴル人化)
      1247年 「蒙古」に再侵略される。しばらく蹂躙が続く。 (モンゴル人化)
      1258年 雙城総管府を置かれる。翌年、王子を人質に降伏。(モンゴル人化)
          国内には多くの蒙古軍人が駐留。        (モンゴル人化)
      1270年 東寧府を置かれる。              (モンゴル人化)
          反対派が済州島に移って徹底抗戦。1273年に鎮圧 (モンゴル人化)
      1274年と1281年「元寇」(半島人主力で日本侵略。が、全滅(モンゴル人化)
      1356年から1362年までの紅巾賊侵入により首都開京が陥落 (シナ人化)
      1419年 「応永の外寇」 17000人で対馬を襲撃。船、家を焼き、住民を虐○する。
          しかし、少数の対馬軍に撃退される。
      1592年 と1598年秀吉の「唐入り」 首都漢城が陥落(短期でヤマト化は無理)
      1627年 「後金」に侵略される。平壌を超え、侵略されるが漢城までは来なかった。
          しかし、国王は江華島に逃亡(満洲人化)
      1636年 「清」に侵略される。首都漢城が陥落。清軍が、す早く江華島への道を遮断。
          泥濘の中、朝鮮王仁祖は清の太宗に降伏、大清国属国となる。(満洲人化)

    • 196名無し2017/07/19(Wed) 01:25:27ID:ExMjgwMjQ(1/1)NG報告

      >>191
      韓国人は百済の子孫かもしれないが、韓国は百済と何の繋がりもない。百済は百済の王が建国し、韓国は第二次世界大戦後、諸外国の援助により独立をもたらされた国。
      だいたい、韓国人は漢字を知らないのに過去の遺物や文献を解読なんて出来ないでしょ!あなたが学者達の解説を力説したところでそれ自体信憑性が低い、もっと言えば嘘や妄想、捏造としか受け取れないんですよ。

    • 197倭寇2017/07/19(Wed) 01:26:52ID:g4Nzc0NDY(31/32)NG報告

      >>194 너도 답글 좋으니 그만자라.

      부여,발해가 퉁구스라니 하... 진심으로 한숨만 나온다.
      이봐..
      부여는 494년에 고구려에게 최종 병합되었어.
      너가 그렇게 말하는 퉁구스는

      부여가 아니라 그에 복속되어 있던 읍루족이라는 종족이다.

      너가 말하는 퉁구스는

      발해가 아니라 그에 복속되어 있던 말갈족이라는 종족이다.

      너가 말하는 퉁구스는

      고구려가 아니라 그에 복속되어있던 말갈족이라는 종족이다.

      숙신-읍루-말갈-여진-만주
      만주의 역사이다.

      중국의 동이전 기록을 봐도
      저 종족들만 우리하고 생김새는 비슷한데 언어는 확연히 다르다고 공통적으로 기록해놨다

      저들이 바로 너가 찾는 퉁구스들이야
      진짜 이젠 자러간다.

    • 198テオリア2017/07/19(Wed) 01:39:04ID:k1NzEwMzc(17/17)NG報告

      >>197
      成程な。
      根本的に教育による認識が違う。
      お互いの国の学会の見解が違うんだな。

      よく分かった。

      お休み

    • 199名無し2017/07/19(Wed) 02:05:30ID:Y0NzQxMzM(1/1)NG報告

      >>197
      高句麗と百済は同系統の民族だけど、新羅は別系統の民族でしょ?
      新羅が朝鮮人の正統で、高句麗の末裔だという高麗も朝鮮人の正統?民族が違うのに両方正統なのか?
      李氏 はどっちの系統?どちらでもなくて女真?

      結局朝鮮半島の歴史はあっても朝鮮人の歴史と言えるのは李氏朝鮮からじゃないか?朝鮮人っていうのは新羅人、高句麗人、百済人、漢人、モンゴル人、女真、倭人の混血。
      その全てのルーツが現代の韓国人と同じ程度に混血したのが李氏朝鮮時代だと思っている。


      別に朝鮮人を卑下したい訳じゃないよ。中国だって同じだし、大陸の民族っていうのはそういうものだろ?
      ヨーロッパだってラテン、ゲルマン、アングロサクソン、スラブ、ノルマンの混血だし。

    • 200お願いしたい2017/07/19(Wed) 04:13:17ID:A2NTcwMTg(2/3)NG報告

      >>197

      YouTubehttps://youtu.be/x25QP6iewww

      韓国の歴史教育ってどんなの?

    • 201お願いしたい2017/07/19(Wed) 04:18:47ID:A2NTcwMTg(3/3)NG報告

      自分で字幕つける事できる?
      YouTubehttps://youtu.be/xoTDIq1NWYc

    • 202名無し2017/07/19(Wed) 04:43:18ID:IxOTg1Mjc(1/1)NG報告

      >>198
      日韓の学者同士で歴史を摺合わせたら、韓国の学者が「資料はそうだが韓国に愛はないニカ!!」とか惚けた事を言って話に成らなかったと聞いたが、そんなファンタジー民族とは話し合っても真実にはたどり着かんでしょ

    • 203名無し2017/07/19(Wed) 11:22:42ID:g5MTkyOTA(3/3)NG報告

      >>202
      『日韓歴史共同研究』(Wikipedia)

      この研究委員会に参加した古田博司によると、日韓の意見が対立した時に、日本側が「資料をご覧になってください」と言うと、韓国側は立ち上がって「韓国に対する愛情はないのかーっ!」と怒鳴り、日本側がさらに「資料を見てくれ」と言い返すと、「資料はそうだけれど」とブツブツ呟いて、再び「研究者としての良心はあるのかーっ!」と怒鳴ったという。このような韓国側研究者について古田は、「民族的感情を満足させるストーリーがまずあって、それに都合のいい資料を貼り付けてくるだけなので、それ以外の様々な資料を検討していくと、矛盾、欠落、誤読がいっぱい出てくる」、「要するに『自分が正しい』というところからすべてが始まっており、その本質は何かといえば『自己絶対正義』にほかならず、したがって何をやろうと彼らの『正義』は揺らがない」等々、批判的に評している。

      第2回研究では、韓国側の要求により教科書が研究テーマに加わえられたが、教科書小グループの日本側委員の一人だった永島広紀によると、韓国側では日本側に無断で教科書問題を古代史の研究テーマに加えようとするなど、教科書担当以外のグループが教科書問題に介入を始めた。日本側が抗議すると、韓国側の古代史担当者の一人が「人格攻撃を受けた」と言い出し、長期間会合が紛糾したこともあったという。永島によれば、韓国側の研究者は扶桑社の『新しい歴史教科書』への攻撃に終始していた。

    • 204名無し2017/07/19(Wed) 12:25:50ID:I4Nzg2OTg(1/1)NG報告

      百済独自の文化というものはない。
      漢字は中国の博士高興が伝え
      仏教は東晋から摩羅難陀が伝えた。
      だが、仏教は李氏朝鮮時代に排斥されて衰退し、
      漢字も今はもう使われれなくなってしまった。

    • 205名無し2017/07/19(Wed) 15:18:33ID:EzODIwOTM(1/1)NG報告

      古代、半島から人も物も文化もきていたとは思います。
      その古代人が韓国の皆さんの直接の先祖がどうかはわかりませんが。

    • 206名無し2017/07/19(Wed) 15:44:20ID:A4MzQ5NDU(1/1)NG報告

      数千年前から現在の中国を歴史的に一続きの国と見るのが無理なように、高句麗と現在の韓国までを一つの国の歴史として考えるのは無理があるんじゃないのか?
      場所として同じ(あるいは近い)であっても国として同一と考えるのはおかしい。
      国とは分裂・同化・衰退などを繰り返して現在の姿になったのだから。
      日本だって倭国と天皇が統治するようになった日本が同じだとは言いがたい。
      挑戦併合だってそうだし、琉球王国を吸収した例だってある。

      朝鮮人は併合が「植民地化」ではなく「日本国の一部になった」という意味だと知らないアホが多くて話が通じないのが難点だな。

    • 207名無し2017/07/19(Wed) 20:40:55(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208名無し2017/07/26(Wed) 12:39:14ID:k0MTQwNzY(2/3)NG報告

      >>1
      アメリカ人の英会話の先生が中学校に来たら英語が初めて伝来したみたいな言いがかりだな。

    • 209名無し2017/07/30(Sun) 13:02:55ID:I1MTcxMDA(2/2)NG報告

      >>203
      自分たちに理想から外れる歴史は、どんなFACTがあろうと絶対に認めない。研究者ですらこのザマだ。
      歴史と記憶まで書き換えて、それを他国に押し付けて政治カード化する。これこそ歴史修正主義国家、韓国の姿。

    • 210名無し2017/07/30(Sun) 13:11:20ID:AxNzg4NzA(1/1)NG報告

      どうでもいい
      仮にそうだとして追い越された気分としてはどう?

    • 211名無し2017/07/30(Sun) 13:17:31ID:M3NzYwMjA(1/1)NG報告

      >>1
      韓国人の無知は知っていますから。はやく土人を脱して文明人になって下さい。日本人はできの悪い韓国人に教えることに疲れてきています。

    • 212名無し2017/07/30(Sun) 13:18:45ID:g2NTUwMA=(1/2)NG報告

      >>49
      くだらない、朝鮮は。

    • 213名無し2017/07/30(Sun) 13:46:21ID:c3MTQ4MjA(32/32)NG報告

      일본인들은 역시 귀엽다.

    • 214名無し2017/07/30(Sun) 14:15:18ID:g2NTUwMA=(2/2)NG報告

      ヨソからのコピペですけど。

      「最近朝鮮事情」
      明治39年 衆議院議員  荒川五郎 著

      ・衛生観念は全く無く、獣に近い。
      ・肺結核や解熱として小便を飲む。
      ・いよいよ病気が酷くなると、 大便を食べる
      ・濁っている水だろうが、小便や 糞が混ざっている水でも平気で飲む。とにかく不潔で味噌も糞も朝鮮人にとっては一緒だ。
      ・婦人が洗濯をしているので見てみると小便水と見分けの付かない黒い水に洗濯物を揉んだり打ったりしている。
      ・雨が降って水が濁っても、ろ過して使うという事をしないで濁ったまま水を使う。とにかく衛生観念が無く伝染病がはびこっている
      ・穴で暮らしているから夏は暑いので家の外で寝る。顔の近くを大便や小便が流れているのだが、 朝鮮人にとっては臭くないらしく平気で寝る。
      ・南京虫が多くてとても眠れない。
      ・小便壷が家の中にあり、客がいても平気で小便をする。また、痰を吐くときは口の近くに小便壷を持ってくる。
      ・雨が降るとこれらの不潔物と雨水が一緒になり脛の上まで浸かり、家の中の物が汚水に浸るが、洗うという事はしないでそのまま使っている。
      ・驚くべき事に小便で顔を洗う。 肌のきめが細かくなるそうだ。

      日本人が学んだこと…隣国は未開だった。

    • 215名無し2017/07/30(Sun) 14:29:02ID:gyMzQ5ODA(3/3)NG報告

      >>209

      朝鮮人は基本的に世界一の嘘つき民族ですから。
      自分の欲求やアプライドの為に嘘をつくことに何の躊躇もありませんよ。

      >2013年韓国起訴人数:偽証罪3420人、誣告罪6244人、詐欺罪29万1128人。

    • 216名無し2017/10/18(Wed) 23:22:34ID:MxNjY1MDY(1/1)NG報告

      >>1

      韓国人はウリがウリがと、

      日本人に文化を伝えた事を自慢するが、

      中国人は韓国に文化を伝えたとは、

      恥ずかくて言えない。

    • 217名無し2017/10/18(Wed) 23:24:54ID:MwMTM4MDc(1/1)NG報告

      また百済かよ

    • 218名無し2017/10/18(Wed) 23:33:00ID:c0ODEyNjg(1/1)NG報告

      で、今の韓国は何なの?笑っちゃうんですけどふふふふふふふふふふふふふふふ

    • 219名無し2017/10/19(Thu) 08:34:55ID:U5NjE1MzY(1/1)NG報告

      >>1
      そもそもさあ
      朝鮮半島を通ってすらないものの方が大量にあるんだがww
      当時は陸路の方が時間かかった事も解らないの?
      韓国人馬鹿なの?ねえ馬鹿なの?

    • 220名無し2017/10/19(Thu) 09:13:27ID:A1ODgwNzM(1/1)NG報告

      百済と韓国は全く別だよね?

    • 221名無し2017/10/19(Thu) 09:19:35ID:gwNTU3NjI(1/1)NG報告

      コリアンの妄想
      日本に伝えてやったニダ

      現実
      天皇様から御呼びがかかったニダ


      国の偉人が隣国に移動するんだぞ、お前らサムスンとかトップアイドルとか他国に移籍させるのか?

    • 222zz名無し2017/10/19(Thu) 10:30:41ID:U4NTU0MzY(1/1)NG報告

      百済をぺクチェなんて読む連中が百済を騙るなってw

    • 223名無し2017/10/19(Thu) 10:53:04ID:A2MzYyODg(1/1)NG報告

      日本歴史に影響を与えたと、訴えたいのは理解しますが、ダラダラと長すぎます。必死に、朝鮮半島の歴史を力説するのも構いませんが、数百年前の乞食の様な朝鮮社会が、とても疑問です。当時有能な誇れる朝鮮人はいなかったのですか?現在でも、南朝鮮に優秀な朝鮮人学者や政治家が、出現しないのはどうしてですか?
      歴史5000年もの間、何をしていたのか?とても不思議な歴史です。
      、、、、、、属国と、事大主義の集大成は如何に。(笑)

    • 224名無し2017/10/19(Thu) 10:57:03ID:c5Nzg0Mjg(1/1)NG報告

      >>1
      なぜ李氏朝鮮時代はスッカラカンだったのかね?

    • 225名無し2017/10/19(Thu) 11:08:49ID:I5NzU5MDE(1/1)NG報告

      答え 南朝鮮人は国民全てバカ。

    • 226名無し2017/10/19(Thu) 14:15:54ID:kyMDU1Njc(2/2)NG報告

      金銅製は各地で残ってい物も少なくなく、様式から文化技術の移動や地域性も推測できる。
      北魏・東魏・西魏・北斉・北周や唐式など大陸北部地域や時期がある程度は特定できるが、連結しているので明確な分離は困難。
      三尊様式や蓮華座式などは、ガンダーラから数百年をかけてチャイナ地域や半島や列島に輸入されたとされる、それほど古い時期ではなく2世紀中ごろの北インド以降、更に5百年前の地中海や中央アジアの強い影響や、単純に鋳造法や工芸技法が運ばれて来るだけでなく各勢力や地域集団が遠方まで先取りしに中継地域に出向き物や人材も取引していたことも考えられる。新羅に入るのは他の地域と比べると数百年差の遅い時期になり、7世紀頃には唐式が発展。

    • 227名無し2017/10/19(Thu) 23:08:14ID:gyOTkwNzQ(1/1)NG報告

      韓国人は本気で自分たちは百済の子孫だと思っているのですか?

      古墳に葬られた人のDNAを調べると現代日本人と非常に似ていて、現代韓国人のものとは異なる。
      明らかに当時朝鮮半島には日本(倭)の勢力が強かったことがうかがえます。
      そのような倭系百済人が百済が滅亡する際に故郷の倭に逃げ戻ったと考えるのが自然だと思うのですが。
      そして百済に残った者はその後、淘汰されてしまったわけです。

      今上天皇が百済とは所縁がある、と発言したのも781年に第50代天皇に即位した桓武天皇の母親、高野新笠が10代前に渡来した百済人の子孫で百済系10世だからですが、第125代今上天皇とその百済人との関係性を計算すると、0.0000000000000000000000000013%となり百済人の要素はほぼ0です。

      ちょっと話がずれているかもしれませんが、【1. 名無し ID:cyNDIwMDI】もダラダラと一方的に書きなぐっているだけなので、ご容赦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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