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ja.wikipedia.org/wiki/%E5%A5%B4%E9%9A%B7%E8%B2%BF%E6%98%93
(抜粋)
アフリカにとって奴隷貿易の開始は、現代までに続く外部勢力による大規模な搾取・略奪そのものと言われるが、
現実には奴隷狩りを行い、ヨーロッパ人に売却したのは現地アフリカの勢力である。
同様に、朝鮮人奴隷を売ったのは朝鮮人であり、
今、朝鮮人を売っているのは、朝鮮人と中国人である。君ら仲良しだね
草ばっか生やして楽しそう>>39
?
ネトウヨって、朝鮮人なのか
朝鮮人売春婦を騙して連れてきたのも、朝鮮人だったね当時のことを今の価値観で裁こうなんて無意味なことだ
要は、当時の流れを読んで、どう当時の最善の手を尽くしたかだ>>1
個人的な考えなんだけど
大事なのは反省できるかどうかじゃないの?
日本の話出てるけど、原爆は碑石立てて悲劇は繰り返してはならないとか毎年やってるし、沖縄も自分が学生の時に(たしか修学旅行)行ってヒメユリや地下防空壕やらに行って考えさせられた。
外国のこれらの過去への反省があるか知らないからなんとも言えないけど
間違っていると思っているなら行動で示すはず>>45
無茶な戦争を引き延ばそうが、民間人を目標とした虐殺をしていいという理由にはならない
日本は、天皇の存続を望んだのであって、それを認めていれば、もっと早く講和していた
無茶な要求とは思わない
その証拠に、結局アメリカは昭和天皇を裁かなかった>>46
終戦間際、アメリカが敵として見据えていたのはソ連
日本の降伏は時間の問題で、原爆がなくとも8月中には降伏しただろうと
ほかならぬB29部隊の司令官、カーチス・ルメイが証言している
日本へのソ連の介入を怖れ、テストを兼ねて、ソ連を威嚇する目的で、原爆を投下したんだ>>46
ソ連への威嚇
新兵器テスト
原爆開発の莫大な税金消費を米国民に納得させるため
黄色人種うざいから
日本の戦闘意欲を削ぐため>>46
必要の問題ではなく、焼夷弾の大空襲から原爆まで戦争犯罪てんこ盛り。>>28
白人がいつ罪を認めたのかと小一時間今の価値観で語るなら売る側も買う側も同じ悪だし、当時の価値観で語るなら買う側は合法。
売る側も法に従った上なら合法。
人権問題なら現在の世界中の合法でしてる売春婦も含めた議論が必要だし買う側も未成年相手にするべきじゃ無い。
韓国の主張は被害者になるが前提だから強制とか言ってるだけ。証言が証拠なのは一貫性があればの話で年数を経る度に面子は変わらないのに新しく過激になっていく。
証言って事件発生当時に近い程、信憑性が高いし時間が経つと信憑性が低い。
法治国家なら自称慰安婦の証言が証拠として扱われる事は無いから政治問題にして既成事実を作ろうと躍起になってるだけ。
そんな問題に議論の余地は無いし物的証拠を示して反論してれば良いだけ。>>4
日本に抵抗しなかった御先祖様は素晴らしいニダ!
日本はアメリカに抵抗したから原爆を落とされてしまったニダ!
朝鮮人は日本に抵抗しなかったから
朝鮮人は日本の素晴らしい奴隷になることが出来たニダ!
御先祖様マンセー日本には奴隷制度無かったけど、韓国にはあったんだね。さすが先進的民主主義国。
포르투갈에 일본인을 노예로 판것도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 아프리카 노예와 같은 방식으로 나가사키에서 포르투갈 노예선에 실려 마카오 필리핀 인도고아 유럽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에 팔려갔고 심지어 남미 멕시코 아프리카까지 팔려갔던 일본인 노예가 50만명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인들에게 럼주 댓포 초석같은 화약을 주고 다른부족의 아프리카인들을 사로잡게 해서 노예를 산다. 일본전국시대 대포 화약이나 선진유럽의 문물을 구입하는댓가로 자국의 영지에 있던 여자들이나 다른 다이묘와의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나가사키에서 포르투갈인에게 매매 싼값에 팔리간 일본노예들은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강간을 당하고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죽었지
火病の発作起こしてる人がいるね
>>61
君のつくった個人的な物語なんか聞いてないよ
信頼できるニュースサイトや、公的報告書へのリンクを張ってね히데요시의 크리스찬 탄압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다루지만(*역주 : 우리
나라에서도 조선이 천주교를 탄압했던 것처럼, 일본 역시 전국시대 당시 전래된 천주교
에 대해 히데요시가 대대적으로 탄압을 한 바 있습니다. 이후에 정권을 잡게되는 도쿠
가와 이에야스 역시 초창기에는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결국 탄압을 하게 됩니다)
일본인 여성을 크리스찬들이 노예로서 해외에 팔아치운 일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히데요시가 왜 크리스찬 탄압에 나서게 되었는가는 학생
들이 알지 못하지요.
사극에서도 다카야마 우콘 등의 크리스찬 영주들이 나오지만, 그런 크리스찬 영주들이
화약을 얻기 위해 화약 한 통 당 일본인 여성 50명을 팔아치운 일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이유가 되어 당시 카톨릭에 대한 일본국민의 이미지가 나빠졌고,
이후로는 제 아무리 선교사를 보내도 단 1%도 신자들이 증가하지 않게 됩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히데요시의 크리스트교 탄압을 단순한 이교도 배척으로만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 전국시대의 노부나가, 히데요시 모두 크리스찬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적이
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식민지화 하려는 선교사들의 야심을 간파하고 점차 경계하던
도중, 신사/불각을 파괴하는 행동이나 일본인을 노예로 팔아치우는 행위를 알게 된 후
크게 노여워하고는 그들을 탄압하게 된 것입니다.☆칼럼:중세 노예무역 시대의 일본인 노예
Column : Japanese Slaves in the Age of the Middle Passage
덴쇼(연호) 15년(1587년) 6월 18일,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선교사 추방령을 발표한다. 그
법령에는, 포르투갈 상인에 의한 일본인 노예매매를 엄하게 금지한 규정이 있다. 일본이
쇄국체제를 확립하게 된 그 이유 중에는, 노예무역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중략)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본국이나 남미 아르헨티나에까지 일본인 노예가 팔려나갔고,
1582년 로마에 파견된 일본의 소년 사절단 일행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일본인이 노예신
분으로 지내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곤 경악한 바 있다.
「우리 일행 앞으로 지나간 일본인 노예들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런 싼 값에 가축처럼
팔려온 일본인들을 나몰라라 하는 우리 민족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당장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남녀와 어린 소년 소녀들이 전 세계에 이렇게 싼 값에
팔려와 비참한 모습으로 험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이러한 내용이 사절단의 회화록에 남아있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 지역을 재패한
직후, 하카다에서 예수회의 리더였던 가스팔 코엘료에 대하여,
「왜 포르투갈인은 이렇게나 열심히 크리스트교의 포교에 힘을 쓰는 것이며, 일본인을 사서
노예로 팔아치우는 것인가」하고 힐문한 바 있다.
서양인이 가져온 진기한 물건이나 새로운 지식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매혹된 그였지만,
그러한 무역이 일본인들을 대량으로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엄
청난 분노를 하게 된 것이었다.>>63
掲示板は、信頼できるニュースサイトでは、ない!
言うだけ無駄やな큐슈지역에서의 히데요시의 행적을 기록한 책(*역주 : 조선시대, 왕들의 행적을 사관들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마냥, 히데요시 역시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습니다)인
큐슈어동좌기(九州御動座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백성들의 종교를 자신들의 사이비 종교로 끌어들임은 물론, 수백명
의 일본인들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들여 자신들의 배에 태워 싣고가서 해외에 팔아치
운다. 그들은 일본인 노예들의 손발에 철제 쇠사슬을 묶은 후 가득 몰아넣고 산 채로 가
죽을 벗겨내는 등 지옥의 고통보다 더한 축생도를 펼치고 있다」
위의 기술로 미뤄볼 때, 당시의 일본인 노예 무역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히데요시는 그러한 상황이 일본을 혼란케하고, 농촌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고 진심
으로 우려했다고.
그러나 히데요시는 명나라 정복을 기치로 내걸고 조선을 침략하는데, 그 당시 일부 지방
영주들은 많은 조선인들을 일본으로 끌고가서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아치워 큰 이
익을 본 이도 있다 고 한다.
노예무역이 얼마나 이익이 큰 상업활동이었는지는 위와 같은 에피소드로도 충분히 추측
할 수 있을 것이다.1582년 로마에 파견된 일본의 소년 사절단 일행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일본인이 노예신
분으로 지내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곤 경악한 바 있다.
「우리 일행 앞으로 지나간 일본인 노예들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런 싼 값에 가축처럼
팔려온 일본인들을 나몰라라 하는 우리 민족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당장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남녀와 어린 소년 소녀들이 전 세계에 이렇게 싼 값에
팔려와 비참한 모습으로 험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69 조선인은 최소한 외국에는 자국인을 팔지 않아 동남아시아에 일본인 노예들이 넘쳐나고 일본인 노예마을이 있을정도 였으니
>>71 어느나라나 영광의 시기가 있고 비참한 시기가 있지 로마제국도 그랬고 몽골제국 역시 그랬다. 몽골인들도 제국이 멸망하고 청나라인들에게 사로잡혀 노예로 팔렸다.
>>78 조선은 유교를 받아들인후 쇄국 무역은 명나라와 의 조공무역 일본 대마도 와의 무역 만주족과의 무역만 했을뿐 다른국가와는 무역을 하지 않았다.
>>71
日本の奴隷 国家非公式
朝鮮の奴隷 国家公認
こんな感じか。朝鮮人奴隷なら、今でも中国で買えるんだよな。
そもそも、韓国人は自称日本の奴隷だろ?
奴隷像まで作るぐらい日本に平伏してるし。日本の感覚では奴隷ではなく奉公。というのは親が食扶持を減らすために子供をよそに出すというのは日本ではあった。受け取ったお金分働いたら、(年季が明けたら)自由になれるのが日本の当時の一般人の感覚。これは遊郭に娘を売っても同じ。ヨーロッパ人は奴隷はほぼ一生奴隷。ただ悪質な業者はいたことは否定しないが。
当時の日本人の常識とヨーロッパ人の常識の違いが大きいのは事実。それに気づいた為政者がカソリック禁止をした。(要因のすべてではないが一つにはある)
黒人奴隷を白人に売ったのは黒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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