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時代의 代表的인 降倭들

247

    • 1國漢文混用蟲2017/02/05(Sun) 21:40:21ID:YyNjQ2NzI(1/19)NG報告

      早田左衛門太郞
      朝鮮王朝實錄에는 羅可溫, 林溫이라는 이름으로도 記錄되어 있다. 太祖 6年(1397年)에 24隻의 兵船을 이끌고 投降했고, 宣略將軍, 宣略將軍行郞將의 官職을 除授받았다. 1406年에는 倭寇가 全羅道 海岸 地方에 侵入하자 다른 降倭들과 함께 自進해서 倭寇 討伐에 從軍, 戰功을 세웠다. 1411年에는 對馬島로 돌아갔고, 1413年부터 朝鮮과 通交, 以後 豆知浦를 中心으로 活動한다. 1418年에 宗貞茂가 죽자 島內의 實權을 掌握, 根據地를 小船越로 옮긴다. 己亥東征 때는 朝鮮의 征伐軍에게 協調的인 모습을 보였고, 回禮使로 派遣된 宋希景을 몸소 待接하기도 했다. 以後 朝鮮 朝廷에 巨濟島 等地에서의 農耕權과 浦所의 開港을 要請하여 對馬島內의 權益 確保를 圖謀했다. 1428年 무렵에 死亡했다.

      平道全
      宗氏의 代官. 太宗 7年(1407年)에 土物을 바치고 被虜人들을 送還, 投化하여 員外司宰少監에 除授되었다. 다음 해에 護軍에 任命되어 朝廷에 侍衛, 朝鮮과 對馬島를 往來하면서 兩側의 外交 關係를 圓滑하게 措定하는데 크게 寄與했다. 宗貞茂는 平道全을 통해 자신의 意思를 朝鮮에 傳達했다. 1410年 2月에는 아들 平望古와 함께 慶尙, 全羅, 江原道의 倭賊을 防禦, 同年 5月에는 自願해서 倭寇 討伐에 從軍했다. 宗貞茂의 病 問安을 위해 一時 歸島했다가 1418年에 宗貞茂의 病患을 治療할 藥材를 구하는 한편, 倭賊船이 朝鮮을 侵掠하려는 것을 알려 各 浦의 兵船으로 對備하도록 했다. 1419年에 倭寇가 忠淸道 庇仁縣에 侵入하자, 從軍하여 白翎島에서 싸웠으나 己亥東征 直前에 討伐에 盡力하지 않고 對馬島와 暗通, 私的으로 알고 있던 捕虜를 죽이지 말 것을 要請한 것이 發覺되어 妻子들과 함께 平壤에 安置, 그 伴人들은 咸吉道에 分置되었다. 流配地에서 困窮한 삶을 살다가 死亡한다.

      (繼續)

    • 198名無し2017/02/07(Tue) 01:15:36ID:A4MzE1OTA(41/59)NG報告

      히데요시의 크리스찬 탄압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다루지만(*역주 : 우리
      나라에서도 조선이 천주교를 탄압했던 것처럼, 일본 역시 전국시대 당시 전래된 천주교
      에 대해 히데요시가 대대적으로 탄압을 한 바 있습니다. 이후에 정권을 잡게되는 도쿠
      가와 이에야스 역시 초창기에는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결국 탄압을 하게 됩니다)
      일본인 여성을 크리스찬들이 노예로서 해외에 팔아치운 일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히데요시가 왜 크리스찬 탄압에 나서게 되었는가는 학생
      들이 알지 못하지요.
      사극에서도 다카야마 우콘 등의 크리스찬 영주들이 나오지만, 그런 크리스찬 영주들이
      화약을 얻기 위해 화약 한 통 당 일본인 여성 50명을 팔아치운 일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이유가 되어 당시 카톨릭에 대한 일본국민의 이미지가 나빠졌고,
      이후로는 제 아무리 선교사를 보내도 단 1%도 신자들이 증가하지 않게 됩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히데요시의 크리스트교 탄압을 단순한 이교도 배척으로만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 전국시대의 노부나가, 히데요시 모두 크리스찬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적이
      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식민지화 하려는 선교사들의 야심을 간파하고 점차 경계하던
      도중, 신사/불각을 파괴하는 행동이나 일본인을 노예로 팔아치우는 행위를 알게 된 후
      크게 노여워하고는 그들을 탄압하게 된 것입니다.

    • 199名無し2017/02/07(Tue) 01:16:22ID:A4MzE1OTA(42/59)NG報告

      ☆칼럼:중세 노예무역 시대의 일본인 노예
      Column : Japanese Slaves in the Age of the Middle Passage
      덴쇼(연호) 15년(1587년) 6월 18일,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선교사 추방령을 발표한다. 그
      법령에는, 포르투갈 상인에 의한 일본인 노예매매를 엄하게 금지한 규정이 있다. 일본이
      쇄국체제를 확립하게 된 그 이유 중에는, 노예무역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중략)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본국이나 남미 아르헨티나에까지 일본인 노예가 팔려나갔고,
      1582년 로마에 파견된 일본의 소년 사절단 일행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일본인이 노예신
      분으로 지내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곤 경악한 바 있다.

      「우리 일행 앞으로 지나간 일본인 노예들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런 싼 값에 가축처럼
      팔려온 일본인들을 나몰라라 하는 우리 민족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당장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남녀와 어린 소년 소녀들이 전 세계에 이렇게 싼 값에
      팔려와 비참한 모습으로 험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이러한 내용이 사절단의 회화록에 남아있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 지역을 재패한
      직후, 하카다에서 예수회의 리더였던 가스팔 코엘료에 대하여,
      「왜 포르투갈인은 이렇게나 열심히 크리스트교의 포교에 힘을 쓰는 것이며, 일본인을 사서
      노예로 팔아치우는 것인가」하고 힐문한 바 있다.
      서양인이 가져온 진기한 물건이나 새로운 지식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매혹된 그였지만,
      그러한 무역이 일본인들을 대량으로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엄
      청난 분노를 하게 된 것이었다.

    • 200名無し2017/02/07(Tue) 01:16:59ID:A4MzE1OTA(43/59)NG報告

      큐슈지역에서의 히데요시의 행적을 기록한 책(*역주 : 조선시대, 왕들의 행적을 사관들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마냥, 히데요시 역시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습니다)인
      큐슈어동좌기(九州御動座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백성들의 종교를 자신들의 사이비 종교로 끌어들임은 물론, 수백명
      의 일본인들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들여 자신들의 배에 태워 싣고가서 해외에 팔아치
      운다. 그들은 일본인 노예들의 손발에 철제 쇠사슬을 묶은 후 가득 몰아넣고 산 채로 가
      죽을 벗겨내는 등 지옥의 고통보다 더한 축생도를 펼치고 있다」
      위의 기술로 미뤄볼 때, 당시의 일본인 노예 무역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히데요시는 그러한 상황이 일본을 혼란케하고, 농촌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고 진심
      으로 우려했다고.
      그러나 히데요시는 명나라 정복을 기치로 내걸고 조선을 침략하는데, 그 당시 일부 지방
      영주들은 많은 조선인들을 일본으로 끌고가서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아치워 큰 이
      익을 본 이도 있다 고 한다.
      노예무역이 얼마나 이익이 큰 상업활동이었는지는 위와 같은 에피소드로도 충분히 추측
      할 수 있을 것이다.

    • 201名無し2017/02/07(Tue) 01:17:23ID:cwMTk3OTI(28/28)NG報告

      君の日本人に対する劣等感が、いつか祖国統一により日本を追い抜くことで晴れることを願う。

      私の今の気持ちは朝鮮人に哀悼と忠義を尽くした金忠善のようだ…
      ありがとう

    • 202名無し2017/02/07(Tue) 01:17:47ID:A4MzE1OTA(44/59)NG報告

      * 일본의 노예제와 포르투갈의 노예제
      당시의 일본에는 서양처럼 공인된 노예제도는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예로
      삼을 만한 대상이 극단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사람을 사고 파는 경우는 일
      반적으로「(먹고 살기 힘든)부모가 아이를 판다」경우가 압도적입니다.
      당시의 일본은 신분제도상 양민(백성)과 천민이 있었는데, 통상적으로 인신매매는 금지
      되고 있었습니다만 천민은 암암리에 인신매매가 이뤄지고 있었고, 기근이나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는 인신매매가 묵인되곤 했습니다.
      헤이안 시대부터는 아예「인신매매 상인」이 횡행합니다. 도시의 젊은이들을 납치하여
      지방 변경에 팔아치우는 것이었습니다. 변경은 아직 개발이 덜 되었던만큼 노동력이 필
      요했고, 그러한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키는 매매였던 것입니다. 조금 천박한 이야기입니
      다만 미청년이나 미소녀도 비싸게 팔리곤 했지요.

      당시의 정부는 물론 금지령을 냅니다만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인신
      매매가 번창하게 된 것은 무로마치 시대 이후입니다.

      게다가 1543년에 포르투갈의 배가 타네가시마에 표착한 이후부터 일본은 노예무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남만과의 교류 역시 일본인 노예무역을 부추기게 되는데, 그러나 일
      본인도, 포르투갈인도 그 서로의 노예매매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구인에게 있어서 일본의 노예 시장은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무려 통상의 1/3 가격
      으로 매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인 노예상인이「사라, 사라」하고 서구인
      들에게 강매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이 때 노예무역의 평균 시가는 오늘날의 값으로 따
      지면 아프리카인 노예가 20만엔 정도로 거래되었습니다만, 일본인은 겨우 6만엔이었습
      니다. 서양 노예상인 입장에서는「이렇게 싸다니!」하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노예에 대한 서구인과 일본인의 개념차이에서 발생한 착각이었습니다.

    • 203名無し2017/02/07(Tue) 01:18:56ID:A4MzE1OTA(45/59)NG報告

      서구인에게 있어서 일본의 노예 시장은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무려 통상의 1/3 가격
      으로 매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인 노예상인이「사라, 사라」하고 서구인
      들에게 강매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이 때 노예무역의 평균 시가는 오늘날의 값으로 따
      지면 아프리카인 노예가 20만엔 정도로 거래되었습니다만, 일본인은 겨우 6만엔이었습
      니다. 서양 노예상인 입장에서는「이렇게 싸다니!」하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노예에 대한 서구인과 일본인의 개념차이에서 발생한 착각이었습니다.
      서구인에게 있어서 노예란 물건이나 가축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있어선
      일종의 채무를 떠안은, 같은 인간입니다. 즉 채무만 완전히 값으면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판매가격의 책정이「채무+이익」이기 때문에, 서양에서 거래되는 노예
      보다 가격이 싼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양에 대해 너그러웠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서구 배척」의 태도로
      바뀐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해외에서 가축처럼 혹독하게 부림을 당하며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의 존재를 알게된 것입니다.
      서구인에 있어서는 인신매매는「소유권의 이전」입니다. 일본인에 있어서 인신매매는
      현대에 비유하자면「파견 사원」에게 가깝습니다.
      「채무를 완제할 때까지가 노예이며, 평생 노예는 있을 수 없다」
      라는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서민 출신이었던 히데요시는 자국민들이 그러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격노, 포르투갈 정부에까지 항의를 하기에 이릅니다. 1587년
      이 문제는 외교문제가 되어, 포르투갈 정부는 고심한 끝에 다음과 같은 변명을 합니다.
      「너희가 거래에 응했기에 우리측 상인들이 거래를 한 것 뿐이고, 이미 거래가 끝난
      경우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포르투갈 정부는 대응책으로서 해외에 존재하는 일본인 노예의 매매를 금지했습니다만
      이미 스페인은 물론 아르헨티나까지 일본인 노예들이 팔려간 후였기에 이미 뒤늦은 감
      마저 있는 조치였습니다.
      )

    • 204名無し2017/02/07(Tue) 01:20:10ID:A4MzE1OTA(46/59)NG報告

      * 외국의 시각에서 본 당시의 일본 노예무역
      전국시대 말기의 일본은 꽤 이상한 상황의 나라라서, 법적으로 노예라는 신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만 빈번히 인신매매가 이뤄졌고, 전문적인 노예상인까지 존재했기에 외국에서
      보자면 이미「노예무역 국가」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포르투갈측의 증언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 일본인은 노예들을 귀여워한다. 양자로 삼거나 아내, 며느리로 삼거나 하기도 한다.
      > 심지어 노예신분에서 해방해 주는 일조차 흔한 이야기.
      > 반면에 우리가 노예를 구입하지 않으면「노예를 죽인다」라는 노예상인도 있었다.
      > 비합법적 수단으로 손에 넣어 온 것이 분명하다. 이런 케이스는 드물지만.
      이후 히데요시는 인신매매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노예 매매를 중지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농사에 전념,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1598년 히데요시는 병사해버려,
      이 인신매매 금지법은 또 다시 사문화되고 맙니다.

    • 205名無し2017/02/07(Tue) 01:31:26ID:QwNDg1NDY(1/1)NG報告

      >>204 이건 너무 심한데...

    • 206名無し2017/02/07(Tue) 01:32:01ID:A4MzE1OTA(47/59)NG報告

      일본인 들이 포루투갈인 들에게 팔아치운 일본녀들도 위안부 인것입니까?

    • 207名無し2017/02/07(Tue) 01:33:50ID:A4MzE1OTA(48/59)NG報告

      1582년 로마에 파견된 일본의 소년 사절단 일행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일본인이 노예신
      분으로 지내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곤 경악한 바 있다.
      「우리 일행 앞으로 지나간 일본인 노예들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런 싼 값에 가축처럼
      팔려온 일본인들을 나몰라라 하는 우리 민족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당장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남녀와 어린 소년 소녀들이 전 세계에 이렇게 싼 값에
      팔려와 비참한 모습으로 험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 208名無し2017/02/07(Tue) 01:34:52ID:A4MzE1OTA(49/59)NG報告

      일본은 들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왜구이자 포르투갈 노예였다.

    • 209名無し2017/02/07(Tue) 01:36:37ID:A4MzE1OTA(50/59)NG報告

      기뻐해 주십시요 동포여러분 한국이 이겼습니다. ㅋㅋㅋㅋ 일본인들 꿀먹은 벙어리 쨈

    • 210名無し2017/02/07(Tue) 01:45:50ID:Y4MzcyMDY(23/27)NG報告

      >>179
      >俺は確信したよ
      >日本人と朝鮮人とは歴史認識が相いれるはずがない
      全く同じ文言を別のスレで以前見た記憶があるぬ……

    • 211名無し2017/02/07(Tue) 01:47:36ID:A4MzE1OTA(51/59)NG報告

      전국시대 일본인들이 유럽여행 갈때 타고간 배의 침대

    • 212名無し2017/02/07(Tue) 01:51:37ID:Y4NTg4OTY(1/4)NG報告

      >>192
      2002年に盛大にやらかして、セリエAから韓国人選手が追放されたのをもうお忘れかい?w

      君の言う奴隷民族の日本人より扱いが酷いと思うのだけどw

    • 213名無し2017/02/07(Tue) 01:58:09ID:A4MzE1OTA(52/59)NG報告

      >>212 안정환은 세리 a 페루자에서 골도 많이 넣었다. 하지만 혼다는 실력도 없는 주제에 입을 나불거려 이지메를 당했지

    • 214名無し2017/02/07(Tue) 02:08:27ID:Y4NTg4OTY(2/4)NG報告

      >>213
      返信早w
      ニート?俺は夕方勤務だからレスしてるけど?

      まぁ、本田の件には同意だけど、でも日本人はセリエAから追放処分は受けてないぞw
      ましてや、ゴールたくさん決めた奴が追放されるって国ぐるみで余程、悪質な事をやったって意味だぞ?

      つい最近も全北がACL出場権剥奪されたし、自業自得とは言え韓国人って、今も昔もめっちゃ虐められてるねw

    • 215名無し2017/02/07(Tue) 02:18:11ID:Q0NjI2NTM(2/8)NG報告

      >>213 韓国の妄想日本史。笑

    • 216名無し2017/02/07(Tue) 02:46:10ID:Y4NTg4OTY(3/4)NG報告

      >>213
      てか、安貞桓を調べたらセリエ時代、全然、点取ってないじゃんw
      出場時間も本田以下って見事に釣られたわ〜w

      あと、君、長々と日本人売春婦に言及しているけど、それは大昔の事であって、韓国人売春婦は現在も世界各地で猛威を振るってる事をお忘れなくw

      ・・・あっ、数十年後にまた「日本に強制連行されたニダ〜!!」って大嘘ついて騒ぐのは無しねw

    • 217名無し2017/02/07(Tue) 02:49:25ID:A4MzE1OTA(53/59)NG報告

      >>216 네다 너희 할머니 가라유키상

    • 218名無し2017/02/07(Tue) 02:49:59ID:A4MzE1OTA(54/59)NG報告

      >>2161582년 로마에 파견된 일본의 소년 사절단 일행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일본인이 노예신
      분으로 지내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곤 경악한 바 있다.
      「우리 일행 앞으로 지나간 일본인 노예들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런 싼 값에 가축처럼
      팔려온 일본인들을 나몰라라 하는 우리 민족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당장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남녀와 어린 소년 소녀들이 전 세계에 이렇게 싼 값에
      팔려와 비참한 모습으로 험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 219名無し2017/02/07(Tue) 02:50:38ID:A4MzE1OTA(55/59)NG報告

      >>215일본은 들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왜구이자 포르투갈 노예였다.

    • 220名無し2017/02/07(Tue) 02:53:11ID:Y4MzcyMDY(24/27)NG報告

      スレ立った当初はこんなことになるとはだれが予想しただろうか

    • 221名無し2017/02/07(Tue) 03:01:12ID:Y4NTg4OTY(4/4)NG報告

      >>219日本や中国の奴隷だった民族がなんだって?
      ・・・おっと、今は世界中の国々の奴隷だったねw

      あと、君に限らず韓国人ってDNA検査した方が良いと思うよ?
      売春大国韓国だし、実は本当のお父さんは売春婦時代のお母さんのお客さんって可能性も充分、あり得るからさ?

    • 222バカ殿様ご乱心◆GuTbk9G1MQ2017/02/07(Tue) 03:08:00ID:c0MzI4NDQ(1/3)NG報告

      >>219
      あなたの戦国時代の日本人奴隷と秀吉、大友宗麟の遣欧使節団の話しははだいたいまちがってはいない。
      教科書に載っていないからといっても、歴史好きの日本人は知ってる人もいる。
      何よりあなたの資料は日本人が書いたものが多い。

      ちなみに、家康はイギリスからカルバリン砲を手に入れ大阪城に砲撃したが、このときイギリスとも関係
      があった。
      1613年イギリス国王の使者が家康の元にきている。
      国交樹立の記念に2代将軍秀忠が鎧を送っており、今でもロンドン塔に展示されている。
      1621年 元和7年、江戸幕府からイギリス商館長への通遺書が残っている。
      「外国へ日本人を人身売買すること」を禁止している。
      おなじキリスト教で、スペイン、ポルトガルのカトリックではなく、プロテスタントのイギリスとの関係
      を絶ち、オランダと交易したのはこのためである。
      この時代、当時のヨーロッパのカトリック、プロテスタントの勢力争いと、当時の覇権国家の勢力争いという世界史レベルでの複雑な関係に対応する日本外交があった。
      日本人は別に歴史を捏造しているわけでもなんでもない。
      むしろキリスト教の影響を鎖国という手段で排除しながら、オランダから情報を得る政策をとった。
      以後、日本は300年近い平和と文化的発展を手に入れたのである。

    • 223バカ殿様ご乱心◆GuTbk9G1MQ2017/02/07(Tue) 03:08:06ID:c0MzI4NDQ(2/3)NG報告

      >>219
      何を持って「日本ははサムライではなく、倭であり、ポルトガルの奴隷であった。」となるのか
      >>209 喜んでください同胞の皆さん、韓国が勝ちました。
      の「勝ち」とは何かもよくわからない。精神勝利ということだろうか?
      世界史にあまりかかわりの無い韓国では学びずらいかもしれないが、もう少し複眼的に歴史を見ることをおすすめする。

    • 224名無し2017/02/07(Tue) 03:10:31ID:Y4MzcyMDY(25/27)NG報告

    • 225名無し2017/02/07(Tue) 05:34:41ID:A4MzE1OTA(56/59)NG報告

      >>221 중국인 한테 점령당한적 없다. 몽고와 만주족에게 전쟁에서 져서 강화협상을 했을 뿐이지 일본제국이 미국에게 져서 강화협상을 했듯이 ㅋㅋㅋㅋ

    • 226名無し2017/02/07(Tue) 05:44:35ID:A4MzE1OTA(57/59)NG報告

      ‘일계 브라질인(日系ブラジル人)’은 브라질로 이민간 일본인 후손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보사노바 가수 오노 리사도 브라질에서 태어난 일본계다. 브라질은 현재 재외일본인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다. 브라질에 사는 일본계는 약 150만 명이며 페루 등 인근 남미 국가로 이주한 일본계도 상당수다.
      일본인들의 브라질 이주는 1908년에 시작됐다. 790명의 일본인 농부들이 카사토 마루 호를 타고 고베항을 출발해 브라질로 향했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대규모 커피·목화 경작이 이뤄졌다. 19세 중반까지만 해도 브라질 농장주들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를 활용해 농장을 운영했다. 아프리카 내 민족운동 등으로 1850년대부터 노예 수급이 끊기자 브라질 정부는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처음 브라질 땅에 발을 디딘 일본인들은 상파울루 주변 커피농장에 정착했다. 일본과 완전히 다른 기후는 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초창기엔 풍토병에 걸려 숨지는 이들도 상당했다. 이들은 인종차별을 겪으면서도 특유의 성실함을 무기로 부를 일구어냈고, 속속 브라질 주류 사회에 진출했다. 이민 20여 년 만에 농장을 인수해 농장주가 되는 일본인도 등장했다.
      브라질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사례도 폭증했다. 먼저 건너간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일본 내에 전해져 ‘브라질 드림’ 붐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1960년대까지 브라질로 건너간 일본인은 22만 명을 헤아린다.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뒤로는 브라질에서 역이민 바람이 불었다. 일본 정부는 1990년 귀국을 원하는 이민자 후손에게 영주권을 주는 법안을 마련했다.


      흑인노예를 대신해 포루트갈 인 들의 나라 브라질의 노예가 된 일본인들

    • 227名無し2017/02/07(Tue) 05:45:40ID:A4MzE1OTA(58/59)NG報告

      대대로 일본인들은 포르투갈인들의 노예로 살았다.

    • 228名無し2017/02/07(Tue) 05:50:43ID:Q0NjI2NTM(3/8)NG報告

      >>225 韓国は国が何度も潰れているのにw

    • 229名無し2017/02/07(Tue) 05:52:02ID:Q0NjI2NTM(4/8)NG報告

      >>226 日韓併合で朝鮮人が日本へやってきて(密入国多数)押し出された人達

    • 230名無し2017/02/07(Tue) 05:54:40ID:Q0NjI2NTM(5/8)NG報告

      >>227 ポルトガル人が奴隷の密輸出をしていることが発覚して”バテレン追放令”が出された

    • 231zz名無し2017/02/07(Tue) 05:59:33ID:MwOTYwMTE(1/1)NG報告

      現在進行形で、財閥の奴隷朝鮮人が、劣等感爆発だな
      哀れよなあ

    • 232バカ殿様ご乱心◆GuTbk9G1MQ2017/02/07(Tue) 08:05:06ID:c0MzI4NDQ(3/3)NG報告

      せっかくの知識も情動で歪んで見ては客観視できない
      韓国には感情論はあっても議論は無ないか・・・・・

    • 233常識疑え2017/02/07(Tue) 09:58:48ID:U0NjEyODc(1/1)NG報告

      南米への移住を奴隷と表現するのか?w
      やはり韓国人はファンタジーだな。

    • 234名無し2017/02/07(Tue) 10:13:17ID:AxNTU4NA=(4/4)NG報告

      キリシタン大名が売った農民と慰安婦を同じものとして結論づけるわけか
      そして日本人は女性を性奴隷として扱う人種だと言いたいわけだ
      そして朝鮮は道徳心が強いから国が弱くて侵略されたと言いたいわけだ
      キリシタン大名なんて全国の大名のうちの何%だと思ってるのか
      戦国大名なんて武田信玄だろうが上杉謙信だろうが戦争で負けた相手の領民を奴隷にするなんて普通だ
      そして指導者である豊臣秀吉がキリスト教と奴隷貿易を禁止してるというのに

    • 235國漢文混用蟲2017/02/07(Tue) 14:50:27ID:I2ODQxODE(17/19)NG報告

      >>170
      友鹿里 道路 擴張 工事 中에 發掘된 鳥銃, 唐彩木刻燭臺. 達成 韓日友好館에서 所藏하고 있다.
      http://www.dskjfriend.kr/page/menu01_sub04

    • 236名無し2017/02/07(Tue) 14:52:17ID:Q0NjI2NTM(6/8)NG報告

      >>235 王が入れ替わるときの戦利品コレクションだけだよね

    • 237名無し2017/02/07(Tue) 14:53:30ID:Q0NjI2NTM(7/8)NG報告

      >>235 朝鮮の文化は線で繋がってない、点でバラバラ

    • 238國漢文混用蟲2017/02/07(Tue) 15:01:35ID:I2ODQxODE(18/19)NG報告

      >>236
      >>237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전혀 意味不明.

    • 239國漢文混用蟲2017/02/07(Tue) 15:10:09ID:I2ODQxODE(19/19)NG報告

      (코멘트들을 일일이 읽으며)후... 나무아미타불...

    • 240名無し2017/02/07(Tue) 15:54:51ID:A4MzE1OTA(59/59)NG報告

      >>233 말만 이민이지 실제는 노예나 다름없었지 흑인 노예를 대체 하였으니 ㅋㅋㅋ

    • 241名無し2017/02/07(Tue) 16:34:28ID:Q5MDE3ODI(1/1)NG報告

      >>203 >派遣社員

      大体その通りだと思います。
      海外の奴隷売買を、日本では「奉公」と言う就職の一形態と誤解してたようですね。日本の仏教的世界観では奴隷と言うものがあり得ない存在ですから。

    • 242名無し2017/02/07(Tue) 17:34:51ID:AyMTA4ODc(1/1)NG報告

      黒色火薬の原料は木炭、硫黄、硝石。
      日本では木炭と硫黄は簡単に手に入ったが、硝石が手に入らなかった。
      そのため硝石1樽と日本人女性50人の奴隷密売がキリスト教宣教師とキリシタン大名により行われた。
      その事を知った豊臣秀吉は激怒し、キリスト教を激しく弾圧した。
      その一方で日本ではヨモギの葉を使い硝石を生成する方法を発見し、自国内での生産を可能にした。

      税の統一規格化(太閤検地)
      治安維持(刀狩り)

      豊臣秀吉は偉大だな♪

    • 243名無し2017/02/07(Tue) 19:22:39ID:E0MDQzNzA(2/2)NG報告

      こういう人物が人気あるってのはやっぱり朝鮮人に内在する劣等感が刺激される(あの偉大な日本人であっても我々に屈する事がある!)
      からなんじゃないかと俺は思うんだが、朝鮮人自身はどう考えてるんだろう

      この特定の人物がどうこうよりも、そういったマクロ的な見方に関する話の方が興味あります

    • 244名無し2017/02/07(Tue) 19:26:10ID:Q0NjI2NTM(8/8)NG報告

      『朝鮮人は金目のものなら何でも盗みます』ってことでしょ?

    • 245名無し2017/02/10(Fri) 03:02:04ID:kyMjgxODA(26/27)NG報告

      >>235
      おお、残っているんだ。
      HP覗いてみたら鹿洞書院でいまでも祭祀が続いているんだな
      と言うか記念館も建っているのね。

    • 246名無し2017/02/10(Fri) 03:08:57ID:kyMjgxODA(27/27)NG報告

      ここで紹介を受けた”칼부림”タダで読めることに気づいて
      無料公開分を言葉も分からないまま一通り読んだけど
      これは凄いな
      降倭らしい登場人物がやたらとカッコイイのが嬉しい
      何で無料なのかが分からない
      振り込めない詐欺
      日本語版希望

    • 247名無し2017/02/10(Fri) 08:58:05ID:IyMDQ4NTA(1/1)NG報告

      >>246
      webtoon은 공짜로 연재되는 만화이니까요.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02916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レス投稿

画像をタップで並べ替え / 『×』で選択解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