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기타 몇 가지 사실 : 위안부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하루에도 수 십명의 군인을 받아야 했고, 죽음의 전투를 앞둔 일본군의 폭력적, 변태적 성행위에 시달리기도 했다. 포주나 일본군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일본군과 막장의 인생이 상호 연민으로 작용하여 일본군과 같이 울고 사랑에 빠진 위안부도 있었다. 일본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일본군 장교의 현지처 같은 생활을 즐기며 함께 말탔던 추억을 그리는 위안부도 있었다. 반면 악착같이 돈을 모은 사람도 있었다. 빌린 돈을 다 갚고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도 남아 있으려는 위안부도 있었다. 이상은 지금도 흔히 있는 윤락녀들의 모습이다.
일본군은 점령지의 여성들을 약탈물로 간주하여 강간을 하고 죽이기도 했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약탈물이 아니었기에 동료 또는 군수품같이 생각하여 적국 여성들처럼 대우받지는 않았다. 일본군이 전투에 나가면 반드시 이기라며 일본군을 응원하는 위안부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12.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배상할 일이 아니다. 당시 위안부 모집은 엄연히 불법이었다. 그러므로 돈벌이에 눈이 멀어 불법에다가 비도덕적 상행위를 했던 인신매매범이나 포주가 비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착취, 즉 페미니즘적 시각 또는 사회안전망 시각에서 접근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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