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는 475년 高麗(高句麗)의 서울 침공으로 멸망하고 蓋鹵王이 살해 당하며 3년 만에 겨우 再建國한다. 그 경위는 三國史記보다는 百濟의 사서를 직접 인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日本書紀에 좀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百濟와 倭의 관계는 그 이전에는 倭가 百濟의 侯國이었지만(七支刀 참조), 그 이후에는 百濟가 倭에 볼모를 보내야 할 정도로 종속적인 관계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볼 때 百濟와 倭가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이후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天皇家는 加羅(任那)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加羅(任那)와 倭는 오늘날의 영국과 미국의 관계와 비슷한 혈맹 관계였을 것으로 보인다.
百濟와 倭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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