早田左衛門太郞
朝鮮王朝實錄에는 羅可溫, 林溫이라는 이름으로도 記錄되어 있다. 太祖 6年(1397年)에 24隻의 兵船을 이끌고 投降했고, 宣略將軍, 宣略將軍行郞將의 官職을 除授받았다. 1406年에는 倭寇가 全羅道 海岸 地方에 侵入하자 다른 降倭들과 함께 自進해서 倭寇 討伐에 從軍, 戰功을 세웠다. 1411年에는 對馬島로 돌아갔고, 1413年부터 朝鮮과 通交, 以後 豆知浦를 中心으로 活動한다. 1418年에 宗貞茂가 죽자 島內의 實權을 掌握, 根據地를 小船越로 옮긴다. 己亥東征 때는 朝鮮의 征伐軍에게 協調的인 모습을 보였고, 回禮使로 派遣된 宋希景을 몸소 待接하기도 했다. 以後 朝鮮 朝廷에 巨濟島 等地에서의 農耕權과 浦所의 開港을 要請하여 對馬島內의 權益 確保를 圖謀했다. 1428年 무렵에 死亡했다.
平道全
宗氏의 代官. 太宗 7年(1407年)에 土物을 바치고 被虜人들을 送還, 投化하여 員外司宰少監에 除授되었다. 다음 해에 護軍에 任命되어 朝廷에 侍衛, 朝鮮과 對馬島를 往來하면서 兩側의 外交 關係를 圓滑하게 措定하는데 크게 寄與했다. 宗貞茂는 平道全을 통해 자신의 意思를 朝鮮에 傳達했다. 1410年 2月에는 아들 平望古와 함께 慶尙, 全羅, 江原道의 倭賊을 防禦, 同年 5月에는 自願해서 倭寇 討伐에 從軍했다. 宗貞茂의 病 問安을 위해 一時 歸島했다가 1418年에 宗貞茂의 病患을 治療할 藥材를 구하는 한편, 倭賊船이 朝鮮을 侵掠하려는 것을 알려 各 浦의 兵船으로 對備하도록 했다. 1419年에 倭寇가 忠淸道 庇仁縣에 侵入하자, 從軍하여 白翎島에서 싸웠으나 己亥東征 直前에 討伐에 盡力하지 않고 對馬島와 暗通, 私的으로 알고 있던 捕虜를 죽이지 말 것을 要請한 것이 發覺되어 妻子들과 함께 平壤에 安置, 그 伴人들은 咸吉道에 分置되었다. 流配地에서 困窮한 삶을 살다가 死亡한다.
(繼續)
朝鮮時代의 代表的인 降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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