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53년 전 1867년 초 다량의 도자기가 나가사키 항에서 일본 배에 실려 요코하마로 이동합니다. 거기에서 영국 상선으로 옮겨탄 도자기는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 지중해의 마르세이유 항구에 도착한 후 육로로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하늘 저 너머 파리 만국박람회에 선을 보인 도자기는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채색 도자기는 유럽의 예술감정가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왜란 때 끌려간 박평의의 후손 박정관의 작품 '금수대화병'이 서양인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습니다.
187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뉴욕에 도자기 지사가 개설되었습니다. 1878년 다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188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박람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서 명성을 굳혀 갔습니다. 해외로부터 주문이 쇄도하자 일본의 도자기 수출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조선의 도예가 일본에 황금알을 안겨 줌으로써 메이지 유신의 자금줄이 된 것입니다.
사토우 서기관이 일본왕립협회에 발표한 논고의 첫 머리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조선은 옛날 한때 오늘날 보다 훨씬 높은 문화를 누렸던 것 같다. 그렇게 볼 근거는 많다. 그러나 지금 조선인들의 문화 생활은 이웃나라들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있다. 이게 그리 놀랄 일이 아닌 것이, 조선은 16세기 말에 일본군의 침략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재난으로부터 회복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몇 세기 전만 해도 일본인이 조선인들에게서 배웠다. 조선인들은 벌써 5세기 전에 몹시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다. 때문에 그 당시 일본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선 도자의 기술과 비법을 얻으려 했다. 500년의 전통을 지닌 조선백자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왜 일본인들이 그토록 조선도예의 비법을 얻으려 했는지를 금방 알아 챌 것이다. "
조선인이 만든 도자기 유럽에 팔아 전쟁 준비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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