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済と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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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nidaro2016/10/07(Fri) 12:45:17ID:Q4NDk2MTQ通報

    一つ理解できない事がある。

    韓国人は新羅よりも百済を自慢する。百済の今の土地は全羅道であるが・・。

    なのに「全羅道」というと田舎者と馬鹿にしているのをよく見かけるw

    WHY?

  • 212名無し2017/02/06(Mon) 23:11:31ID:kxNjcxMzY(1/2)NG通報

    東南アジア人というのが朝鮮人にとっては蔑称になるということはよくわかった
    地域対立が酷いということもわかったし、
    やっぱり大半の朝鮮人が信じてる歴史はファンタジーなんだなということもわかった

  • 213名無し2017/02/06(Mon) 23:14:21ID:QyNjUxNTI(1/17)NG通報

    >>212 이전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의 뿌리는 동남아시아인이라고 밝혔는데 그걸 보고 하는 소리인것 같은데?? 이런 피해의식을 가진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당신들 동남아시아인이 선조 아닌가??

  • 214미군2017/02/06(Mon) 23:17:28ID:UxNzEyNDI(1/3)NG通報

    전라도 사람과 일본 사람의 공통점: 구밀복검

  • 215미군2017/02/06(Mon) 23:18:09ID:UxNzEyNDI(2/3)NG通報

    口蜜腹劍

  • 216미군2017/02/06(Mon) 23:18:32ID:UxNzEyNDI(3/3)NG通報

    口-蜜-腹-劍

  • 217名無し2017/02/06(Mon) 23:19:02ID:UxMjM1MDg(1/1)NG通報

    일본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불리하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조선인들은 판타지를 말한다고 말한다. 정작 그 근거는 자신들이 아무것도 없다. 기록이 있는것도 아니고. 한국인들은 출처를 분명히 '동국통감' '구당서' '신당서' '삼국사기'등을 말해도.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믿기 싫은 한국의 화려해 보이는 과거는 '조작, 날조'라고 말한다. 정작 그 날조와 조작의 근거는 일본인들이 제시하지 못한다. 동남아시아인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가 대만인과 필리핀인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몽골인을 후손이라고 놀리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서지방을 근거로한 북방의 민족과 몽골의 초원에서 남하한 여진족들의 먼 조상들이 한국인들의 조상이다. 이 차이는 분명하지 않나? 일본인들은 같은 섬나라인 대만과 필리핀과 같은 조상을 공유. 한국은 북방의 민족과 베트남인들의 머나먼 조상, 그리고 남중국인들이 그 프로토 타입이다. 걔중에는 서쪽의 먼 초원에서 스키타이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있다. (신라)

  • 218名無し2017/02/06(Mon) 23:19:08ID:YyMDU2MTI(4/6)NG通報

    百済平定は高句麗を滅ぼすための布石で、戦後唐が百済や高句麗に都督府を置いたのはぶっちゃけおまけだからねぇ

    「主上欲呑滅高麗 先誅百濟 留兵鎮守 制其心腹」(旧唐書 劉仁軌伝)

  • 219名無し2017/02/06(Mon) 23:21:43ID:QyNjUxNTI(2/17)NG通報

    >>218 그리고 그 고구려 멸망은 한반도 전체 평정을 위한 당나라의 포석. 고구려를 멸망 시킨이후에 백제의 도독부에 백제의 왕족들을 귀국시켜서 신라와 이간질 시킨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고 신라가 선제공격을 한다. 이 기회를 틈타서 백제, 고구려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삼국연합 vs 당나라의 전쟁이 시작된다.

  • 220名無し2017/02/06(Mon) 23:22:27ID:E0NTgxNTg(2/4)NG通報

    >>211
    それは単純に唐が百済や高句麗のみならず、新羅まで支配しようとした為、
    新羅は百済故地に残留した百済の支配層を新羅の貴族階層へ取りこんでいくことで新羅支配の実効性を確保しただけで、
    もし唐が新羅支配を認めたのなら、何もしなかったでしょう。

  • 221名無し2017/02/06(Mon) 23:24:49ID:QyNjUxNTI(3/17)NG通報

    >>220 당신의 논리가 정확하게 경상도의 헛소리와 일치한다. 신라가 백제의 하층민들을 억지로 전쟁에 동원한다고? 장난하나? 백제가 멸망하고도 1년안에 30개의 성이 함락당하고 백제의 거의 모든 지역이 다시 백제유민들에게 재 점령당한다. 이정도로 백제의 국력은 멸망당했다고 하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제발 머리속의 상상을 팩트인것 처럼 말하지마라. 기벌포의 전투에서 백제제독들이 신라에게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백제는 전통의 해양강국이었기 때문이다.

  • 222名無し2017/02/06(Mon) 23:25:43ID:QyNjUxNTI(4/17)NG通報

    >>220 설사 백제를 강제동원했다고 하자. 그럼 도대체 만주의 고구려인들이 신라와 함께 싸운 이유는 뭔가? 이것도 신라가 강제동원 한건가? 신라의 국토가 아님에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23名無し2017/02/06(Mon) 23:28:28ID:kxNjcxMzY(2/2)NG通報

    >>217
    基本的に、歴史書というのは、他国のほかの文献や史跡との整合性が取れない場合は反証されたとは言えない。(合理的な信憑性は薄い」

    朝鮮人はよくこう言う
    『「三国史記」に書かれている!』

    しかし、「三国史記」に書かれていただけでは歴史的な事実ではない。
    それらは創作や書いた人間、勢力の都合のいいように書かれている場合があるからだ。
    それらと他国の文献の記述、遺跡や出土した品の整合性を取る必要がある
    (確証バイアスに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

    日本で「日本書紀」に書かれているからこれは事実で~
    などという論法は通用しない。もちろん中国で「三国志演義」に記されるところによると~などと言っても誰も信じない。

    ここが君たちが科学的ではない「ファンタジー」と言われる所以だ

  • 224名無し2017/02/06(Mon) 23:31:15ID:QyNjUxNTI(5/17)NG通報

    >>223 구당서와 신당서에 기록되어있다.. 제발 좀 상식을 알고 말해라. 당신들 패턴이야 이미 다 알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오히려 부탁하고 싶은게. 제발 삼국시대의 이야기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아무말도 안했으면 좋겠다. 정작 대화를 해보면 아무런 지식도 없고. 그저 화만 낸다.

    '조선인은 거짓말을 한다!'

    동남아시아인들도 대책없이 남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 않는데.. 실재로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는 정말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근데 그 후손인 일본인들은...

  • 225名無し2017/02/06(Mon) 23:32:19ID:QyNjUxNTI(6/17)NG通報

    분명히 중국의 사료도 보임에도 '삼국사기'만을 강조하는 이런 정신병을 도대체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26名無し2017/02/06(Mon) 23:32:41ID:QyNjUxNTI(7/17)NG通報

    >>223설사 백제를 강제동원했다고 하자. 그럼 도대체 만주의 고구려인들이 신라와 함께 싸운 이유는 뭔가? 이것도 신라가 강제동원 한건가? 신라의 국토가 아님에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동남아시아의 후예 일본인.

  • 227名無し2017/02/06(Mon) 23:33:33ID:QyNjUxNTI(8/17)NG通報

    사 백제를 강제동원했다고 하자. 그럼 도대체 만주의 고구려인들이 신라와 함께 싸운 이유는 뭔가? 이것도 신라가 강제동원 한건가? 신라의 국토가 아님에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동남아시아의 후예 일본인.

    이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라. 심지어 고구려의 대귀족들과 왕실의 고안승이 귀순해서 신라와 함께 싸운다. 왕족들과 귀족들이 당나라로 끌려가지만. 당나라에 끌려가지 않은 고구려인들은 신라와 백제와 함께 당나라에게 싸운다.

  • 228名無し2017/02/06(Mon) 23:43:56ID:YyMDU2MTI(5/6)NG通報

    >>219
    隋代から高句麗には何十年と掛かってしつこく遠征してるのに、数年でやめた新羅含む半島制圧が最終目標な訳ないだろ。
    最終的に新羅征討止めたのは吐蕃との戦闘のためじゃん。

  • 229名無し2017/02/06(Mon) 23:51:31ID:U0NDgzNTg(1/2)NG通報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LKxsc9GUGJg
    許 黄玉(きょ こうぎょく)
    金官伽倻の始祖首露王の妃。金官伽倻の第2代の王居登王を生む。
    許黄玉はインドのサータヴァーハナ朝の王女で、インドから船に乗って48年に伽耶に渡来し、首露王と出会い、その時にインドから持って来た石塔と鉄物を奉納した。許氏は首露王との間に10人の息子をもうけたが、そのうち2人に許姓を与え、それが金海許氏の起源とされる[1]。
    2004年に、許氏の「インド渡来説」を立証する科学的証拠が示された。ソウル大学医学部の徐廷ソン教授と翰林大学医学部のキム・ジョンイル教授は、韓国遺伝体学会で、「許氏の子孫と推定される金海にある古墳の遺骨を分析した結果、韓民族のルーツであるモンゴル北方系とは異なり、インド南方系だった」と報告。「インド渡来説」が事実なら、子孫は母方の許氏のDNA形態を受け継いで、インドなど南方系のミトコンドリアDNAを持っている。「4つの遺骨のうち、1つからこのような結果を得た」とし「『インド渡来説』の立証を確固たるものにするには、もう少し綿密な研究を要する」というドラマ。

  • 230名無し2017/02/07(Tue) 00:06:40ID:Q3MDk4MTQ(6/6)NG通報

    >>229
    ミトコンドリアとか言うから今までDNA分析なのかと思ってたが、よくよく見たら人骨の形質分析して南方系って言ってただけなのか
    ああ、そういうことね…

  • 231名無し2017/02/07(Tue) 00:13:09ID:Q3MzA2NA=(1/1)NG通報

    >>230 한국은 베트남인들의 조상과 인도인 그리고 남중국인들도 조상이 있어요! ^^ 일본인들은 단일민족이라지요? 여기와서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은 필리핀, 타이완인들의 조상과 같다는걸 봤습니다. 한국인은 하지만 남방계는 그 숫자가 적어요 아무래도 바다를 통하기 보다는 육지를 통해서 이동하기가 쉽거든요. 그래서 90%이상이 동북아시아의 인종입니다. ^^ 일본은 저희랑 다르게 동남아시아인이 많지요?

  • 232名無し2017/02/07(Tue) 00:19:28ID:QxNzk3NTE(3/4)NG通報

    >>227
    高句麗もそうなんだけど、日本人にはより身近な百済は、白村江の戦いで百済復興運動を興し、百済人は、その戦いで多くの犠牲者を出している。
    唐と組んで寝返った憎き新羅とわずか10年もたたないのに仲直りして、その新羅のために唐と戦うなんて、日本人には、何か裏があるよねと考えてしまうわ。
    韓国人は素直だから感動的なんだろうけど。

  • 233名無し2017/02/07(Tue) 00:21:40ID:M4NzI4Mw=(1/1)NG通報

    >>232 그야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적국이었지만. 고구려의 세계관 아래에서 싸운 세월만 700년 이니까요. '같은 민족'은 아니라도. 사는곳이 같고. 특히나 신라와 백제는 결혼동맹도 했었고. 고구려도 당나라보다는 신라 백제가 더 좋았던거죠.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극적이기는 하네요. 아무래도

    700년간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최초로 하나가된 일이 바로 당나라와의 싸움이니까요.

  • 234名無し2017/02/07(Tue) 00:40:03ID:QxNzk3NTE(4/4)NG通報

    >>233
    でも高句麗だけで唐に勝ってたじゃないですか。
    新羅が、いらない工作をしたお陰で朝鮮半島を戦いの海に巻き込んだわけで。
    未だに現代でも三国のわだかまりが残るのは、
    そこに原因があるのではないですか?

  • 235nidaro2017/02/07(Tue) 00:41:20ID:U0MjgwMTQ(6/6)NG通報

    スレ主ですよ。久々覗いてみれば、韓国人たちが大多数議論に参加して嬉しい限り^^


    三国史記は12cの書だし、ちょっと資料価値に劣るのを韓国人は認識したほうがいい。
    当時のでない後世の書ほど、自分の都合で嘘を書かれるものだ。

    確か今の韓国教科書には、「誇らしい世界大統領の登場。潘基文!」と書かれているらしいじゃないかw
    (まだ修正されてないらしいしw)

  • 236名無し2017/02/07(Tue) 00:59:49ID:k5NDI5NDQ(9/17)NG通報

    >>235三国史記は12cの書だし、ちょっと資料価値に劣るのを韓国人は認識したほうがいい。
    当時のでない後世の書ほど、自分の都合で嘘を書かれるものだ。

    사실 사실과 괴리되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실재로 사실과 겹치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나 일본서기와 정확하게 교차검증되는 부분도 많고. (일본서기는 삼국사기이후 600년이 지나서 한반도에 소개됩니다. 즉, 김부식은 일본측 사료를 본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구당서, 신당서를 비롯해서 중국의 자료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한국의 고대기록을 근거로 작성된 문서들이고.

    이 기록들을 근거로 발굴한 결과 적지 않은 유물들이 정말로 출토되었습니다.

    삼국사기가 신뢰가 떨어질수는 있지만. 일본인들의 주장대로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 237名無し2017/02/07(Tue) 01:02:15ID:k5NDI5NDQ(10/17)NG通報

    [현경(顯慶) 5년(660년) 에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소정방(蘇定方)을 웅진도대총관(熊津道大總管)에 임명하여 수군(水軍)과 육군(陸軍) 10만을 거느려 [출군시켰다.] 이어서 춘추를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에 임명하여 정방(定方)과 함께 백제(百濟)를 토평(討平)하게 하니, 그 나라의 왕 부여의자(扶餘義慈)를 사로 잡아다 궐하(闕下)에 바쳤다.이로부터 신라(新羅)가 점차로 고려(高麗)·백제(百濟)의 땅을 차지하게 되니, 그 땅은 더욱 넓어져 서쪽으로는 바다에까지 이르렀다. 용삭(龍朔) 원년(661년)에 춘추(春秋)가 졸(卒)하니, 조서를 내려 그의 아들 태부경(太府卿) 법민(法敏)으로 뒤를 잇게 하여,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新羅王)으로 삼았다. 3년(663)에 조서를 내려 그 나라를 계림주도독부(雞林州都督府)로 삼고, 법민(法敏)에게 계림주도독(雞林州都督)을 제수(除授)하였다. 법민(法敏)이 개요(開耀) 원년(681년)에 졸(卒)하니, 그의 아들 정명(政明)이 위(位)를 이어 받았다. -구당서 권199 동이열전 제 149(舊唐書 卷 199 東夷列傳 第 149)-]

  • 238名無し2017/02/07(Tue) 01:02:58ID:k5NDI5NDQ(11/17)NG通報

    [함형(咸亨) 5년(674) 에 [新羅에서] 고려(高麗)의 항거하는 무리들을 받아들여 백제(百濟) 땅을 점령하여 지키게 하였다. 고종(高宗)이 노하여 조서를 내려 [法敏의] 관작(官爵)을 삭탈하고, 그의 아우 우효위원외대장군(右驍衛員外大將軍) 임해군공(臨海郡公) 인문(仁問)을 신라왕(新羅王)으로 삼아 경사(京師)에서 본국으로 돌려 보냈다. 조서(詔書)를 내려 유인궤(劉仁軌)를 계림도대총관(鷄林道大總管)으로 삼고, 위위경(衛尉卿) 이필(李弼)과 우영군대장군(右領軍大將軍) 이근행(李謹行)을 부총관(副摠管)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가서 힘을 다하여 치라고 하였다. 상원(上元) 2년(675) 2월에 인궤(仁軌)가 칠중성(七重城)에서 그들을 쳐부수고, 말갈병(靺鞨兵)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서 남쪽 지역을 공략(攻略)하니, 목을 베고 또 사로잡은 포로가 매우 많았다. 조서(詔書)를 내려 이근행(李謹行)을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삼아 매소성(買肖城)에 주둔시키니, 세 번 싸워서 노(虜)가 모두 패배하였다. 법민(法敏)이 사신(使臣)을 보내 입조(入朝)하여 사죄를 하는데, 공물(貢物)의 짐바리가 줄을 이었다. 인문(仁問) 또한 [新羅에서] 돌아와 왕위(王位)를 내놓으므로, 조서(詔書)를 내려 법민(法敏)의 관작(官爵)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新羅는] 백제(百濟)의 땅을 많이 차지하고, 드디어는 고려(高麗)의 남부까지 점령하였다. 상주(尙州)·양주(良州)·강주(康州)·웅주(熊州)·전주(全州)·무주(武州)·한주(漢州)·삭주(朔州)·명주(溟州)의 9주(州)를 설치하고, 주(州)에는 도독(都督)을 두어 10군(郡) 내지 20군(郡)을 통솔하게 하였다. 군(郡)에는 태수(太守)를, 현(縣)에는 소수(小守)를 두었다.

  • 239名無し2017/02/07(Tue) 01:03:10ID:k5NDI5NDQ(12/17)NG通報

    개요(開耀) 원년(681) 에 [法敏이] 죽고, 아들 정명(政明)이 왕위(王位)를 세습하였다.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근(朝覲)하고, 『당예(唐禮)』및 기타의 문사(文辭)를 요구하므로, 무후(武后)는 『길흉예(吉凶禮)』와 함께 [이름난] 문장(文章) 50편을 내려 주었다. -신당서 권220 동이열전 제145(新唐書 卷220 東夷列傳 第145)-]

  • 240名無し2017/02/07(Tue) 01:04:42ID:k5NDI5NDQ(13/17)NG通報

    일본인들의 정신병을 종결시키지요. 보이십니까? 이건 전부 중국측의 기록입니다. 중국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라 + 高麗 + 백제의 연합군과의 최후의 결전에서 결국 중국은 패전합니다. 저기에서 간략하게 기록된 매소성의 전투는 20만의 당나라의 2전선의 병력이 괴멸되는 대 전투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조선인은 거짓말을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 당나라의 저 기록이 중국인들이 조작했다는 증거를 보이셔야 합니다. 한국측에는 이보다 더 자세한 기록이 있지만 어차피 믿지도 않을 것이니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 241名無し2017/02/07(Tue) 01:05:40ID:k5NDI5NDQ(14/17)NG通報

    舊唐書 卷 199 東夷列傳 第 149 新唐書 卷220 東夷列傳 第145 모두 거짓말이라는 증명하세요. 알겠습니까? 참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부럽습니까? 한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선조를 가진것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42名無し2017/02/07(Tue) 01:06:27ID:c1Njc3NzE(7/7)NG通報

    >>240
    朝鮮人がまた「大嘘」をついてる

  • 243名無し2017/02/07(Tue) 01:08:07ID:k5NDI5NDQ(15/17)NG通報

    >>242 舊唐書 卷 199 東夷列傳 第 149 新唐書 卷220 東夷列傳 第145 모두 거짓말이라는 증명하세요. 알겠습니까? 참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부럽습니까? 한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선조를 가진것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증명해라 쪽바리야. 내가 분명히 구절까지 다 말해줬다? 한자할줄 알지? 논리적인 반론 기대한다.

    니가 정확하게 반론한다면 그야말로 역사를 다시 써야 할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44名無し2017/02/07(Tue) 01:08:45ID:k5NDI5NDQ(16/17)NG通報

    舊唐書 卷 199 東夷列傳 第 149 新唐書 卷220 東夷列傳 第145 이 구절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쪽바리들 왜 이렇게 귀엽냐 머리는 텅텅 빈 것들이. 빽 빽 거리는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참..

  • 245名無し2017/02/07(Tue) 01:11:12ID:k5NDI5NDQ(17/17)NG通報

    [얼마지나지 않아 고려의 남은 무리들이 배반했다. 계림도행군총관으로 삼았다. 상주로 유배되었다. 사면되었다. -신당서 권111 설인귀전(新唐書 券111 薛仁貴傳)-]

    [고구려 유민들이 일어나자 설인귀로 하여금 계림도총관으로삼아 경락토록 하였다. 상원(上元)연간에 상주로 유배되었다. 사면을 받고 귀환하였다. -구당서 권83 설인귀전(舊唐書 券83 薛仁貴傳)-]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구려인들이 신라에 가담하는 기록이다. 이것도 반박해라 알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46名無し2017/02/07(Tue) 01:14:48ID:I2MTE2NTE(2/2)NG通報

     紀元前770年の春秋戦国時代の戦国七雄から遊牧民同盟の戦争など周辺との取引は複雑だな。
    共通の敵がいれば仲間。敵の敵は味方。仲間は使い捨て消耗品で裏切りの連続。支配領域から排除。敵でも商売は別、武器や重要な資源は売らないが自由に取引成立。
     遊牧系もトルコ系や他の集団と争い統合したり引入れたり追放したり、中原に注意しながら秦や漢と覇権争い交わっていく。朝鮮半島も影響が大きく大変だが、当事者達は飽きることもなく楽しかったのかもね。

  • 247名無し2017/02/07(Tue) 01:25:56ID:c5MjIzNg=(1/1)NG通報

    >>240
    >>238
    거짓말이 아닙니다. 買肖城의 전투는 그야말로 최후의 결전입니다. 이전투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물론 고구려 +백제 + 신라가 하나가 되어서 싸운 사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감동적이고 남자라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장면 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무려 700년간이나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던 숙명의 라이벌들이 하나가 되어서 최후의 당시 세계최강인 당나라와 싸운 전투 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전투 입니다.

    이 이전의 전초전으로 기벌포의 해전에서 신라의 해군이 압승을 거둡니다. (이 순간에는 아마 적지 않은 倭계 백제인수군과 백제의 제독들도 참전했습니다.) 이 것으로 당나라의 보급이 그야말로 불가능해 집니다. 마지막 결전이 남은 것이 買肖城의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약하지만 자존심이 강하다고 얕보지만 실은 한국인들의 인생자체가 이것 입니다. 중국이라고 불리는 정확하게 말하면 중화의 질서라고 불리는 가치관과 이렇게 피를 흘리면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이곳 이었습니다.

    사대에 대해서 말하자면 당시에 평등한 국가관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유럽도 1684년의 전쟁 이전에는 존재 하지 않던 관념입니다. 신성로마제국 이외에는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공, 공국이 존재했던 것 입니다.

    비슷하게. 한국도 신라가 마치 당나라의 신하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나라가 오히려 동방경영에 신라에게 상당히 의존합니다. 그 증거로 대동강 이북의 영토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신라에게 반환합니다.

    결국 인류는 피의 대가로서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는 것 입니다.

    백제스레드 이지만. 이 전투에 참전한 백제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저도 코멘트 적습니다.

  • 248名無し2017/02/07(Tue) 01:37:12ID:Q0NjI2NTM(41/46)NG通報

    朝鮮半島なんて中国大陸から見たら僻地
    基本的に興味がない

  • 249名無し2017/02/07(Tue) 02:24:14ID:A4MzE1OTA(1/5)NG通報

    >>129 당나라 황제의 아들과 당나라에 포로가된 백제의 공주와 결혼도 하고 백제왕가는 당나라에서도 우대 받는다. 백제출신 장군들이 당나라에서도 활약하게 된다.

  • 250名無し2017/02/07(Tue) 02:27:12ID:A4MzE1OTA(2/5)NG通報

    우리가 아는 백제는 660년, 멸망의 길로 들어서 사라졌다. 유민들은 당나라로 끌려가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묘지석에 적혀있던 831자의 기록과 함께 되살아난 부여태비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 공주였던 부여태비는 당나라를 세운 황제의 옆에 함께 묻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방송 최초로 부여태비의 생애를 추적해본다.

    그녀의 묘지석은 부여씨가 괵지역의 왕비라고 설명하고 있다. 괵지역의 왕은 당고조의 증손 이옹. 그녀는 이옹과 결혼함으로써 당 황실의 일원이 되었다. 부여태비는 후에 그녀의 아들이 왕에 올라 왕비에서 태비로 격상된 것이다. 특히 당나라로 온 백제 유민들은 당나라에서 공을 세우며 활약했고, 백제 유민을 상징하는 부여태비의 지위도 함께 격상됐다.

  • 251名無し2017/02/07(Tue) 02:32:10ID:A4MzE1OTA(3/5)NG通報

    혹시나 반란을 일으킬까봐 처음에 흩어놓았던 백제 유민을
    부여태비 시절에는 옛 고구려 城 인 건안고성에 모여서 살아라 고 했음.
    건안고성이 일종의 마지막 백제였던 셈

    빨간색 점이 당나라의 포로가 된 백제인들이 모여 살던곳

  • 252名無し2017/02/07(Tue) 02:34:26ID:Q0NjI2NTM(42/46)NG通報

    >>251 奴隷になっただけ

  • 253名無し2017/02/07(Tue) 02:37:56ID:A4MzE1OTA(4/5)NG通報

    >>252 노예라기 보다 당나라의 군인이 되어 토번(吐蕃)이나 고구려 유민들을 견제 하는 역활을 한것 같다.

  • 254名無し2017/02/07(Tue) 02:44:00ID:Q0NjI2NTM(43/46)NG通報

    >>253 それが奴隷でしょ

  • 255名無し2017/02/07(Tue) 02:45:18ID:A4MzE1OTA(5/5)NG通報

    >>254 어차피 관계 없어 나의 선조는 신라인이 니까 ㅋㅋㅋ

  • 256名無し2017/02/07(Tue) 02:50:02ID:Q0NjI2NTM(44/46)NG通報

    >>255 お、君は分かっているね。百済は現代の韓国人とは無関係の民族だ。

  • 257名無し2017/02/07(Tue) 02:51:48ID:M0MDk5MzE(1/1)NG通報

    >>256 당나라는 그야말로 당시 세계최강. 관대함과 문화는 세계제일이었습니다. 적이라고 해도 훌륭한 인물은 모두 등용해서 차별없이 그 능력에 따라서 인재를 등용합니다. 한국인 출신으로는 고선지, 흑치상지등이 당나라에서 출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후 남북국시대의 장보고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산동성에는 백제의 유민들이 지금으로 치면 코리아타운을 결성합니다.

  • 258名無し2017/02/07(Tue) 03:01:40ID:Q0NjI2NTM(45/46)NG通報

    >>257 唐に行った百済人の話は興味深いですね。

  • 259名無し2017/02/07(Tue) 03:02:56ID:Q0NjI2NTM(46/46)NG通報

    >>257 中国のどの文献を読めばいいのでしょう?

  • 260名無し2017/02/10(Fri) 15:56:28ID:k5NzMyNzA(3/4)NG通報

    >>1
    そうなんですか?

  • 261名無し2017/02/12(Sun) 20:55:15ID:A1NDY0NDQ(4/4)NG通報

    >>1
    民族が違うので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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