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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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ヤマタイ2017/02/27(Mon) 18:00:10ID:g4OTM5MzA(1/1)NG報告

      일본이란 국명이 어디에서부터 유래되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옛 삼한인들이 일본열도를 부를 때 사용했던 말입니다
      당신들은 국명조차도 베끼는 자주성 자립심따위는 찾아볼수 없는 매우 저열하고 가련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일본이란 국명자체가 당신들의 나라가 한국민족과는 전혀 관련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냥 국명을 야마토 (大和)로 바꾸세요 그렇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한국과 전혀 관련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 3名無し2017/02/27(Mon) 18:16:15ID:YzNTQ0MzY(1/1)NG報告

      日本の起源は韓国nidaですね。わかりました。

    • 4名無し2017/02/27(Mon) 18:16:27ID:AxMjU0NDI(1/1)NG報告

      환빠 san konnitiwa !!

    • 5サムズアッパーたける2017/02/27(Mon) 18:21:45ID:U0Njk4NjE(1/1)NG報告

      >>1
      かんこくじんのおかげでまたひとつあたまがよくなったよ

    • 6astr'ee2017/02/27(Mon) 18:21:45ID:kwMTc2NzQ(1/1)NG報告

      宇宙創世万物の起源は韓国だからな。
      アメリカもロシアも全て古の韓国人が名付けたんだよ。
      何を今更言ってんだ?バカなの?死ぬの?
      だから、韓国人と言われるをだよ?
      無能白痴キチガイwww

    • 7名無し2017/02/27(Mon) 18:34:13ID:MxODIzNTU(1/1)NG報告

      >>1
      「日本」と名付けた昔の三韓人は、なかなかネーミングがセンス良いですね。 もしかして旭日旗や日章旗も、昔の三韓人がデザインしてくれたのか。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でも現代の韓国人は、なぜ自国名を「大韓民国」なんて、クソダサい名前にしたの? 太極旗もクソダサいデザインだよね? 韓国人が、劣化した理由を教えてください。

    • 8名無し2017/02/27(Mon) 18:37:58ID:QzNDYzMzI(1/1)NG報告

      >>1
      はいはい認バイ認バイ。

    • 9名無し2017/02/27(Mon) 18:39:00ID:k1MjM1MjI(1/3)NG報告

      >>1
      日本と倭国を勘違いしてる?
      何が言いたいの?

    • 10名無し2017/02/27(Mon) 18:45:41ID:IxNTg3MTU(1/1)NG報告

      >>1
      ハイハイ、良かったね。

    • 11名無し2017/02/27(Mon) 18:46:59ID:MzNzIzMTU(1/1)NG報告

      >>9

      たぶんスレ主は、ヤマタイ国(邪馬台国)とヤマト政権(大和政権)の区別すら付いてないんだと思うよ。
      そして書き込みから察するに邪馬台国(ヤマタイ国)が、
      今に至るまで続く日本の皇族と政府だと勘違いしているようである。

      ヤマタイ国とヤマト政権は全くの別物だぞ

    • 12名無し2017/02/27(Mon) 18:48:23ID:IyODc3NTM(1/1)NG報告

      これで史料に禰軍墓誌とか出してきたら大爆笑だが

    • 13名無し2017/02/27(Mon) 18:48:23ID:A2MTY4MzE(1/1)NG報告

      >>1
      知らない振りしなさい 目を合わせちゃダメだよ

    • 14名無し2017/02/27(Mon) 18:48:26ID:Y3MDA5OTU(1/1)NG報告

      まーたチョウセンジンの戯言か。

    • 15名無し2017/02/27(Mon) 19:30:18ID:A4NzA5OTY(1/2)NG報告

      >>1
      あなたは、それを大学で教わったのですか?
      韓国人は勉強熱心ですね。あなたのような賢い人が韓国にもっと増えると、ノーベル賞もいずれ授賞できると思いますよ。

    • 16左巻きの名無しさん2017/02/27(Mon) 21:18:16ID:Y5MjMzNDU(1/1)NG報告

      >>1

       この様に、直情的な扁桃体反応を晒してる貴方の「자주성자립심」って何なのですか?

       これって、何処かの書込みを視て、興奮を覚えて、自分も悦に浸りたく成っただけでしょう?
       悦に浸りたくなっても構わないけど、この様に稚拙な我が身に帰って来る「猿真似」して「자주성자립심」を問う貴方自身はそうではないのですか?


       この様な言動を繰返すから、半島の皆さん全体が恥ずかしい想いをして、迷惑しているのですよ。一度ゆっくりで構わないから、落ち着いて考えて試た方が良いですよ。
       >>1

       この様に、直情的な扁桃体反応を晒してる貴方の「자주성자립심」って何なのですか?

       これって、何処かの書込みを視て、興奮を覚えて、自分も悦に浸りたく成っただけでしょう?
       悦に浸りたくなっても構わないけど、この様に稚拙な我が身に帰って来る「猿真似」して「자주성자립심」を問う貴方自身はそうではないのですか?


       この様な言動を繰返すから、半島の皆さん全体が恥ずかしい想いをして、迷惑しているのですよ。判らなかったら、一度、ゆっくりと落着いて考えて試て下さい。 「자주성자립심」は敢えて日本人にとっては暗号に視えるハングルにして伏せ字にして居ますので、貴方に似た様な二番煎じで悪乗りする者は多くならないでしょうから、ゆっくり考えて試ましょうね。

    • 17名無し2017/02/27(Mon) 22:07:11ID:c5ODUxMDU(1/1)NG報告

      >>1
      さすが国民の9割が認知障害だけありますねwwww

    • 18名無し2017/02/27(Mon) 22:12:21ID:I4ODAwNTM(1/1)NG報告

      딜교환 ㅆㅅㅌㅊ

    • 19名無し2017/02/27(Mon) 22:14:54ID:Q3OTQ2Mzg(1/1)NG報告

      >>18zzzz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名無し2017/02/27(Mon) 22:16:12ID:Y2MzkyODM(1/1)NG報告

      >>1

      韓国人は日本に劣等感があるから、日本が残したものは日帝残滓と騒ぎ取り壊し、
      どうしても変えられないものは韓国起源に置き換える。

      日本人にはそういう劣等感はないので、そのような扇動に乗りません。

    • 21ららら太陽2017/02/27(Mon) 23:05:25ID:kwOTUyNjc(1/1)NG報告

      日本人なら誰でも知ってるからわざわざ書くのはどうかと思うけど、正式には700年ぐらいに大宝律令で定めたんだよ。

    • 22名無し2017/02/27(Mon) 23:31:21ID:QwNzI5MTI(1/1)NG報告

      朝鮮人が考えなきゃならないことは
      「かつては日本に(中国の文化などを)いろいろ伝達する立場でもあった朝鮮が、何千年の時を経て
      なんでこんな状況になってしまったのか?」
      だろ…

      「偉大な日本の国名を付けた朝鮮民族はやはり偉大!」
      みたいなのは妄想としても悲しいよ…

    • 23名無し2017/02/27(Mon) 23:41:01ID:I1MjI1NzM(1/1)NG報告

      701年に日本と言う言葉が書物より確認されております

      まず中国や朝鮮が当時日本の事は倭と呼んでました。

      書物にも日本とは呼ばず朝鮮人は倭と呼びと記録にあります。

      それはどこの物語を韓国人は
      書いたのでしょか?

    • 24名無し2017/02/28(Tue) 09:15:09ID:k1NjQ1NDg(1/1)NG報告

      宇宙はトンスルの一滴から始まった。

    • 25zz名無し2017/02/28(Tue) 10:11:46ID:Y4OTAyNDQ(1/1)NG報告

      >>1
      海も見たことなかった、エベンキの末裔亜人よ
      言いたいことは、それだけか

    • 26うん?◆KyUpmG9.1.2017/02/28(Tue) 10:18:03ID:U0MDU1MDQ(1/1)NG報告

      >>1
      無知がいる。

    • 27名無し2017/02/28(Tue) 10:18:45ID:Y4NjU4MzY(1/1)NG報告

      世界中に太陽神の神話が残されているように、古代より太陽は聖なるものであった。

      半島民族が列島を日本(日の本)と呼ぶとは、列島はどれだけ崇め奉られていたのであろうか。
      当時から半島と列島に、土人と神レベルの差があったことの証明ですね。

    • 28名無し2017/02/28(Tue) 10:20:25ID:Y5ODQwNzY(1/1)NG報告

      それ言ったら、朝鮮の名前は中国が付けたんじゃなかったか?

    • 29名無し2017/02/28(Tue) 12:41:29ID:g3MzE1NzY(1/1)NG報告

      これぞ朝鮮人って感じの電波脳だな
      流石歴史書や史書の整合性が日中韓で唯一取れない国なだけはある

    • 30名無し2017/02/28(Tue) 17:39:45(1/2)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31名無し2017/02/28(Tue) 17:40:15(2/2)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32名無し2017/02/28(Tue) 23:56:37ID:Q4ODczNDQ(2/2)NG報告

      >>31
      私の先祖は豊臣配下の武将で、朝鮮に侵攻して武勲を上げました。
      何か知りたいことはありますか? 
      敗者の子孫である気の毒なあなたに、こっそり教えてあげましょう。

    • 33名無し2017/03/01(Wed) 05:24:34ID:k5NjIyOTA(1/1)NG報告

      えーと、30、31は、あまりにお馬鹿な妄想をばらまく同胞を正論と皮肉で弄り倒す日本人に対して、さらにお馬鹿な妄想で塗りつぶそうと援軍に来た朝鮮人ってことかな?
      日本人の先祖がー、遺伝子がー、聖地がー、と騒いでも日本人は気にしませんし、朝鮮人の序列は上がりませんよ?朝鮮人風に書くとこんな感じ→人類>類人猿>越えられない壁>朝鮮人

      ところで>>31は「韓国の左派」って名乗るの止めたの?通報食らって別アカ?

    • 34名無し2017/03/01(Wed) 07:46:32ID:E3NzYzNzA(1/13)NG報告

      일본이라는 것은 백제를 가르키는 말인데 왜인들이 백제가 멸망한후 빼앗아갔다. 원래대로 왜국으로 바꾸어라.

    • 35名無し2017/03/01(Wed) 07:48:24ID:E3NzYzNzA(2/13)NG報告

      백제 유민으로 중국 당나라의 신하가 된 예군(禰軍·613∼678) 묘지명(墓誌銘)에 등장하는 ‘일본(日本)’이란 단어는 국호(國號)가 아니라 당나라 동쪽의 해 뜨는 나라, 그중에서도 백제를 가리키는 호칭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이성시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문학학술원장은 지난 20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 제16회 정기발표회에서 “‘예군 묘지’속의 ‘일본’은 ‘부상(扶桑)’ ‘풍곡(風谷)’ ‘반도(盤桃)’ 등 동방을 의미하는 어구(용어)와 함께 기록돼 있는데, 문맥상 백제를 지칭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밝혔다.

    • 36名無し2017/03/01(Wed) 07:49:12ID:E3NzYzNzA(3/13)NG報告

      이와 관련, 지난해 도노 하루유키(東野治之) 나라(奈良)대 교수도 예군 묘지 속의 ‘일본’이라는 단어의 국호설을 부정하고 ‘일본’이 백제를 나타내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도노 교수의 연구가 ‘일본’이란 단어의 국호 여부에 집중한 반면, 이 원장은 처음으로 역주 성과에 기반한 예군 묘지의 번역문을 제시하고 전체적인 내용과 문맥 속에서 바라본 것이 특징이다.
      예군 묘지는 지난 2011년 왕롄룽(王連龍) 중국 지린(吉林)대 고적연구소 연구원이 학술잡지 ‘사회과학전선’ 7월호에 탁본사진과 판독문을 공표하면서 처음으로 존재가 알려졌다.
      왕 연구원이 공개한 탁본사진에 따르면, 예군 묘지는 1행에 4글자씩 4행 16자가 음각된 덮개석과 31행에 모두 884자가 음각된 지석으로 구성돼 있다. 왕 연구원은 ‘일본’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이 묘지가 일본 국호의 성립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새 사료(1차 사료)라고 주장했다. 일본이란 국호는 일반적으로 701년 다이호(大寶) 율령 제정 시기에는 성립해 있었다고 추정된다.

    • 37名無し2017/03/01(Wed) 07:49:35ID:E3NzYzNzA(4/13)NG報告

      예군은 660년 나당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할 당시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에 넘기고 중국에 들어가 무관으로 출세한 예식진의 형이다. 예군 묘지에는 그가 당나라 신하로 살았던 660년부터 당 지역에서 죽는 678년까지의 생애와 업적 등이 주로 묘사돼 있다.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의 기록을 보면, 670년 7월 고구려 유민의 반란 당시 웅진도독부 사마(司馬)로 신라에 사자로 파견됐던 예군은 스파이 활동을 이유로 1년 10개월 동안 억류됐다 풀려났으며 왜(倭)에 사자로 두 차례 파견되는 등 당의 외교, 특히 백제 고지의 점령지 정책이나 신라·왜와의 교섭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예군 묘지명 14행에 등장하는 ‘참제일단칭신(僭帝一旦稱臣·참제가 갑자기 신하라고 칭하였으므로)’의 ‘참제’를 기존 연구에서 추정해온 ‘백제 의자왕’이 아닌, ‘신라 문무왕’으로 본 것이 이 원장 발표의 핵심이다. 당나라 입장에서 볼 때, 고구려의 잔존세력을 금마저(익산)에 머물게 하고 안승(安勝)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한 신라 문무왕은 ‘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예군은 바로 이때 신라에 체재하고 있었다는 것.

    • 38名無し2017/03/01(Wed) 07:50:01ID:E3NzYzNzA(5/13)NG報告

      예군 묘지명 10행 ‘우시일본(于時日本)’부터 15행 ‘좌융위낭장(左戎衛郎將)’까지 내용은 바로 예군의 외교사자로서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 원장은 10행 ‘우시일본’ 이하 동방을 의미하는 어구가 등장하는 구절을 “때마침 일본(백제)의 잔당은 부상(왜)에 의거하여 주벌(誅罰)을 피하고 있었다. 풍곡(고구려)의 잔당은 반도(신라)를 거점으로 하여 (그 적을 막는 모습은) 견고하였다”고 해석했다.
      예군 묘지에는 동방을 지칭하는 많은 용어와 함께 ‘일본’이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동 시기에 사용되던 국호는 하나도 기록돼 있지 않다. 이 원장은 이 같은 사실이 예군 묘지가 제작된 시점, 즉 678년에 ‘일본’이 국호로서 성립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강조했다. 예군 묘지는 일본 국호의 성립이 678년 이후의 일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료란 것이다.
      윤선태(역사교육) 동국대 교수는 “‘일본’이란 단어가 일본에서 생산된 용어라기보다는 한반도에서 사용됐던 용어이며 일본의 국호 제정 과정에서 백제 유민들의 지적인 역할을 추정케 해준다”고 평가했다.

    • 39名無し2017/03/01(Wed) 07:59:23ID:E3NzYzNzA(6/13)NG報告

      국호 ‘일본(日本)’ 백제와 왜(倭) 중 누가 먼저 사용했을까?


      http://blog.naver.com/jan835/40197819209

    • 40名無し2017/03/01(Wed) 08:01:13ID:AzNTg2Mjk(1/1)NG報告

      韓国人は、自分に都合のいい歴史を作ろうとする。

      史料というのは、歴史を推測する道具であって
      それは事実ではない。

    • 41名無し2017/03/01(Wed) 08:01:22ID:E3NzYzNzA(7/13)NG報告

      일본(日本)이란 국호는 백제와 왜국 중 어느 나라에서 먼저 사용했을까?
      이러한 문제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우선 ‘해 뜨는 곳의 땅’이라는 의미인 ‘동쪽이라는 방위개념’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에도 물론 있었다. 성덕태자 때의 일이다.
      왜대왕 추고(推古) 때의 섭정이었던 성덕태자가 서기 607년에 수양제에게 국서를 보냈다. 그 당시의 국서 내용을 보면, 당시의 왜국 국력으로써는 너무 자신에 찬 내용이었다. 즉, 국서에서 성덕태자는 “해 뜨는 나라의 천자가 해지는 나라의 천자에게 서신을 보낸다(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無恙云云).”라 하여 괄괄하였던 수나라 양제가 격노했다고『수서』에 전하고 있다. 이에 동쪽 바다에 떠 있는 왜국이란 나라가 과연 어떤 나라이기에 ‘해 뜨는 나라의 천자’라고 건방을 떠는가 하고 확인 차 수양제는 608년 문림랑(文林郞)과 배세청(裴世清) 일행을 왜국에 사신으로 보냈다.
      과연 세계의 중심 수나라가 있는데, 동쪽의 왜국이 어떤 나라이기에 이렇게 무도한가 하고 확인 차 보냈을 것이다.
      이때도 일본이란 국호는 열도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일본이란 국호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670년 문무(文武10년12월)조에 나온다. 즉, “왜국(倭國)이 국호를 바꿔 일본이라 하였다. 이는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그와 같이 이름을 지은 것이다(‘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以爲名’).”라고 하였다.

    • 42名無し2017/03/01(Wed) 08:02:18ID:E3NzYzNzA(8/13)NG報告

      또한 중국의 ‘구당서’ ‘동이전(東夷傳)’에서도 서기 670년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국은 왜의 다른 명칭이다. 이는 그 나라가 해 뜨는 곳에 있어서 만들어진 이름이요.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라 함이 아름답지 못한 이름으로 스스로 싫어하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이란 이름으로 고쳤다(“日本國者倭之別稱也 以其國在日處故爲名.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故改爲日本).”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왜국에서 일본이라는 국호의 공식적인 사용은 서기 701년 다이호오(大寶) 율령 제정 후에 쓰이게됐다.
      그렇다면 백제가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하고 663년 부흥운동마저 실패한 후로부터 40여 년 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백제 멸망 후 왜국이라는 기존의 일본열도를 나타내는 국호로부터 일본(日本)이란 새로운 국명이 정식 채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망한 백제 왕족과 귀족들은 상당수가 왜국으로 건너가 융숭한 대우를 받았다. 이는 무령왕과 왜대왕 계체나 성왕과 흠명, 의자왕과 제명여제의 관계로부터 추정하건데 혈연관계로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긴밀히 밀착된 관계였다.
      때문에 기존에 왜열도를 가리켜 일본(日本)이라 부르던 백제인들이 패망 후 상당수가 열도의 귀족층화 해가면서 ‘키가 작다’, ‘추하다’란 의미가 들어있는 왜국을 버리고 일본이라 고치자고 40여 년간 야마토정권에 주장하거나 건의, 또는 논의하는 과정이라 보인다. 즉, 백제 지식인들의 권고로 왜국에서 일본으로 국호가 변경됐을 것이란 추정이다.

    • 43名無し2017/03/01(Wed) 08:03:49ID:E3NzYzNzA(9/13)NG報告

      왜국이 자신들의 나라를 일본이라 했을 가능성은 적다. 왜냐하면 일본열도에서 ‘해 뜨는 나라’, ‘해 뜨는 곳(땅)’을 찾는다면 분명 태평양상의 괌과 같은 섬나라가 될 것이다. 물론 당시까지도 태평양 동쪽은 미지의 세계였다. 때문에 백제에서 해 뜨는 곳 동쪽의 나라로 왜국을 일본이라 불렀다함은 자연스럽다.
      그러면 백제를 중국에서 일본이라 불렀을까? 물론 있다.
      백제 유민으로 중국 당나라의 신하가 된 예군(禰軍·613∼678)의 묘지명(墓誌銘)에 등장하는 ‘일본(日本)’이란 단어가 있다. 이 묘지명에서는 국호(國號)가 아니라 당나라 동쪽의 해 뜨는 나라, 그중에서도 백제를 가리키는 호칭이란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성시(재일동포 사학자)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문학학술원장과 토오노 하루유키(東野治之) 나라(奈良)대 교수가 있다.
      예군은 660년 나당연합군이 웅진성(공주)을 공격할 때 그곳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군에게 넘기고 중국에 들어가 무관으로 출세한 예식진의 형이다.
      예군 묘지는 지난 2011년 왕롄룽(王連龍) 중국 지린대(吉林大) 고적연구소 연구원이 학술잡지 ‘사회과학전선’ 7월호에 탁본사진과 판독문을 공표하면서 처음으로 존재가 알려졌다.
      왕 연구원이 공개한 묘지석 탁본사진에 따르면, 예군 묘지(墓誌)는 1행에 4글자씩 4행 16자가 음각된 덮개석과 31행에 모두 884자가 음각된 지석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 44名無し2017/03/01(Wed) 08:04:32ID:E3NzYzNzA(10/13)NG報告

      이 비석의 10행에 ‘우시일본(于時日本)’이란 문장이 나온다. 이는 예군이 백제(日本)출신임을 지칭한다.
      이 지석 명문에서 일본이 국호가 아니라 방위개념으로 쓰였다. 즉, ‘동쪽 국가를 의미’하는 어구로, “때마침 日本(백제)의 잔당은 부상(扶桑:왜지)에 의거하여 주벌(誅罰)을 피하고 있었다. 풍곡(風谷: 고구려)의 잔당은 반도(盤桃: 신라)를 거점으로 하여 (그 적을 막는 모습은) 견고하였다”라고 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방위의 개념으로 중국에서는 백제를 일본(日本)으로 표기했다는 점이요, 백제는 왜국을 일본(日本)으로 불렀다는 점이다. 고로 일본은 ‘동쪽의 해 뜨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을 숨김없이 솔직히 토로하는 학자들도 일본에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1907년에 출간된 일본의 저명한 고대 사학자 요시다 토오고(吉田東伍·와세다대 교수)가 쓴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제 4부로 나눠져 있는데 제3부 ‘국호편’에서 “‘일본’이라는 국명은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사용해 온 것으로 그 이름이 아름다워 우리나라 이름으로 정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호가 되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외에도 일본 국호가 한국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을 싣고 있다. 차례로 보면, 먼저 키무라는 “일본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사용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호가 됐다(木村正辞)”라 하고, 호시노는 “일본이라는 문자는 상고로부터 사용해 온 말에 적당한 한자를 붙인 것으로 ‘일본’이라는 이름 자체는 삼한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星野恒)”라 했다.
      반 노부토모는 “일본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사용해 왔던 것으로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다워 국호로 결정했다(伴信友)”라고 나온다.
      이처럼 일본이란 국호는 처음 백제인이 사용했던 것이다.

    • 45名無し2017/03/01(Wed) 08:05:07ID:E3NzYzNzA(11/13)NG報告

      아울러 백제 멸망 후 왜열도로 건너간 그들을 따뜻이 받아주었던 야마토정권과 백제왕족 간에는 역사적으로 기록하기 힘든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서기’ 기술 내용이 일본열도에 관한 내용으로 대부분 기록되어야함에도 한반도 국가에 70% 정도의 과다한 비중으로 편찬되었음은 뭘 말하겠는가?
      또한 ‘일본서기’는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라는 백제3서에서 인용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서에 보이지 않는 백제관련 부분은 ‘일본서기’ 편찬 후 보이지 않는 이들 3서에 간접 투영돼 어렴풋한 백제사가 조금은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편찬자가 한반도 백제인의 시각에서 가야와 고구려, 신라를 보고 ‘일본서기’를 기술하고 있는 것도 문제요, 이후 백제3서가 전해지지 않음도 의문이다.
      양직공도에 나타나듯 백제는 한반도 주변의 여러 나라를 소국시하는 천하관을 가진 나라였다. 아울러 중국 연호도 사용치 않는 등 독자적인 중심국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변 여러 나라를 방소국(旁小國)이라 하여 반파, 다라, 하침라 등의 7개국을 직접 지배하고 있다고 대 양나라 외교를 통해 자랑한 것이 중국 측 기록에 남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백제가 왜열도를 일본이라 부르고, 패망 후에는 야마토정권에 협조하면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새로이 지어 부르는데 도움을 주고, 백제3서를 인용하면서 ‘일본서기’를 편찬하였다.

    • 46名無し2017/03/01(Wed) 08:05:51ID:E3NzYzNzA(12/13)NG報告

      때문에 일부 학자는 ‘일본’이라는 국호와 ‘일본서기’ 편찬을 한반도에서 패망한 백제가 일본열도에서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면서 내건 독립선언서라고 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고로 일본이라는 국호 또한 백제인이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의미로 먼저 사용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백제가 동해상에 떠 있는 왜국을 일본으로 부르다가 한반도에서 나당연합군에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일본, 일본 하던 것이 왜국정부에서 정식으로 채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구당서’ 동이전과 ‘신당서’ 동이전 일본조에는 이상한 문장이 있다. 즉, ‘구당서’는 “일본이 왜를 제압 합병하고, 일본이라는 국호를 취했다.” 하고, ‘신당서’는 “왜가 일본을 제압하고 일본국호를 취했다”고 거꾸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왜가 일본이 됐다는 선입견으로 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오기로 생각하나, 일본=백제라 보면 이해가 된다.
      이를 풀어보면, ‘구당서’ 기록은 “백제(일본)가 왜를 제압 합병하고, 일본이라는 국호를 취했다”가 되고, ‘신당서’는 “왜가 백제(일본)를 제압하고 일본국호를 취했다”가 된다. 즉, 이는 백제 패망 후 왕족과 귀족층 상당수가 왜국의 야마토정권으로 들어갔다. 고로 이를 두고 왜국이 일본인(백제인)들을 흡수하고 국호를 일본이라 바꿨다고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어 쓸 수 있다. 고로 일본이라는 국호는 백제인들이 먼저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즉, 중국에서는 그들의 동쪽에 있는 백제를 일본이라 했음이 예군의 묘지석에서 증명되었듯, 구당서와 신당서에서의 일본이라는 상기 문장은 분명 패망 전과 후의 백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47名無し2017/03/01(Wed) 08:07:30ID:E3NzYzNzA(13/13)NG報告

      >>40 그러면 아니라는것을 증명 하던지

    • 48名無し2017/03/01(Wed) 15:14:15ID:IxOTMwMjY(1/1)NG報告

      東側ならまだしも、朝鮮半島の西側にあった百済を日本(日出る国)と言うのはあり得ない事。
      660年百済滅亡前の第二回遣唐使の時代607年に隋に対し倭朝廷は自らを「日出る国」と自称している。
      大昔から日本は大小さまざまな国があり、倭朝廷成立後も各国と弱い連合国を作り、5世紀前後には連合の証に前方後円墳を作っていった。そうした国々の中でも東国(=関東・東北)は倭国とは別に「日本」と呼ばれていた。倭から見て太陽の登る方角だからでもある。東国は倭朝廷との連携を深め有数の前方後円墳数を誇っている。最終的には倭と日本は平和裏に併合し、大倭(拡大した倭)=大和=大日本になった。

      その後、「日本国」に国号を変更したのは天武天皇の時代と言われるが、天武天皇は東国の支援を受けて壬申の乱を勝ち抜いて天皇に即位した方。支援を受けた東国を尊重して新国号に見栄えのする「日本」を採用しても不思議はない。以後、首都も「倭京」という呼び名を使わずに「京」と呼ぶようになった。

      なお、保護している難民の百済から国号を貰う事はあり得ない。

    • 49ららら太陽2017/03/01(Wed) 15:51:56ID:gxMDMyNjE(1/1)NG報告

      聖徳太子が500年代に日の出ずる国と中国に国書送ってるから600年代ではダメだね(笑)さあ、朝鮮人の諸君!400年代の証拠を探そう!

    • 50名無し2017/03/01(Wed) 16:29:54ID:QzMzc4ODY(2/3)NG報告

      日本の名付親には他の説もあり、

      『伊福部臣古志』として知られる、因幡国の郡領氏族であった伊福部臣氏の系図。序文末尾の記述(「于時延暦三年歳次甲子也」)より、
      延暦三年(784)の時点で系図の旧い箇所については原型が存在したと考えてよく、古代地方氏族のあり方を理解する上で貴重な一素材となる史料である。
      九州大学付属図書館所蔵本には「享保八年四月十六日書之(花押)」の奥書があり、18世紀の写本であることが理解できる。

      第八代・櫛玉饒速日命の条に、
      「この命、天磐船に乗り、天より下り降りる。虚空に浮かびて遥かに日の下を見るに、国あり。
      因りて日本(ひのもと)と名づく。
      見るところの国、正に日の出に当れり。故、葦原中国を、また、日本国と名づく」
      とあります。

      http://www2.lit.kyushu-u.ac.jp/~his_jap/siryo/photo/ioki/3.jpg

      左ページの右下端に日本と書いてあります。

    • 51名無し2017/03/01(Wed) 17:05:28ID:QzMzc4ODY(3/3)NG報告

      記載漏れの追加です。

      延暦3年(784年)に伊福部富成が編纂した同氏の系譜である『因幡国伊福部臣古志』によれば、父伊福部久遅良(くぢら)と母熊媛(くまひめ)との間の子で、同氏の26代目当主にあたるという。


      大日本地名辞書とはこれですね。

      http://dl.ndl.go.jp/info:ndljp/pid/2937061/114

      旧字体が多いので判る人居ればお願いします。

    • 52名無し2017/03/01(Wed) 18:45:26ID:k5MTEzNTA(1/1)NG報告

      >>35
      禰軍墓誌を持ち出す馬鹿がやっぱり出てきたか。
      そもそもこれは中国の役人が中国で書いた墓誌だから韓国人がどんな言葉を使ってたとかには1ミリも関係ない。

      因みに言えば墓誌の紀年は不明確で、「宇時日本餘噍~」が660年の百済滅亡の時点である確証はないし、当時「扶桑」の名称が日本を指す事も固まっていない。

      大昔の学者の名前を持ち出してるが、思い付きレベルの話で現在では相手にされるような代物ではない。

      全体的に根拠薄弱な妄想ですね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
      なんか九州王朝説(トンデモ)の都合の良いところだけ摘み食いみたいなことやってる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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