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생 할아버지의 일제시대 관련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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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노무현2016/12/20(Tue) 08:18:11ID:A1OTM1NjA(1/7)NG報告

      나는 1923년생입니다. 이제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상당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생명의 위협도 각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사명입니다.

      그 당시의 한국인은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입니다. 극장에 가면 영화의 상영전에 전쟁의 뉴스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뉴기니에서 일본이 이긴 영상이 흐르자, 박수와 만세의 폭풍우입니다. 나는 영화를 좋아해, 토쿄에도 갔습니다만, 일본인은 냉정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전원이 미친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보통 모습이었습니다.그러니까 친일파라고 하는 말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사용해, 선조까지 비판하고 있습니다. 친절하고 상냥한 일본인의 인상을, 필사적으로 지우기 위해 반일교육을 하고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을 비교하면, 일본이 10%왜곡이라고 하면, 한국은 90%왜곡입니다. 조선말기의 비정상적인 정치 부패를 가르치지 않고, 일본이 관여하지 않으면 독립을 할 수 있던 것처럼 쓰여져 있습니다.

      한일합방에 의해 ‘교육’ ‘의료’ ‘공업’ ‘사회 인프라’가 정비되었습니다.근대국가의 기초가 쌓아 올려진 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실적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의 산물이다!’라고 규탄하는 한국에는 기가 막힙니다. 더욱 ‘일제가 민족 산업을 정체시켰다!’라고 하는 주장에는 코멘트하고싶은 마음도 사라집니다.

      민족 산업을 죽인 것은, 조선왕조입니다. 근대화를 주장하는 선진적인 사상가는 반역자로서 친족까지도 처형되었습니다. 한국인은 ‘일제의 학대! 성 노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만,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말기는 지옥. 그것은 대한제국 시대가 되어도 같습니다. 1904년 , 일본은 조선의 참상을 구하기 위해, 재정 지원을 결단합니다. 예를 들면 1907년도 , 조선왕조의 세입은 748만엔이었지만 , 세출은 3000만엔 이상이었습니다. 그 차액은 일본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1908년에는 더욱 증가해 3100만엔을 지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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