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은 유래가 오래되어... 수십 번을 안과 밖을 뛰어넘는 것이 마치 금수(禽獸)와 같으며, 더러 늘 경쟁을 시켜 사심(死心)을 앞다투어 발휘케 하는데 칼을 휘둘러 서로 치며 반드시 죽이기를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칼을 휘두르는 사이에 칼등으로 칼날을 받아쳐서 결국 다치지는 않으니 그 교묘하게 피하는 기술과 능숙하게 부딪치는 기술은 완연히 백원(白猿)의 검법(劍法)이 있습니다. 근기(近技)는 신묘하여 사람마다 검객이 아닌 자가 없고 기계의 정밀함도 다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장검(長劍)과 철환(鐵丸)인데 철환은 비가 내리듯이 쏟아지고 칼은 숲이 서 있는 것과 같으나, 총을 쓰는 것은 칼을 쓰는 것에 비해 자못 뒤떨어집니다.
정탁 『약포집』 1593년 8월 15일 명나라 유생 호환에게 보낸 편지
왜이(倭夷)는 보통 호접진(蝴蝶陣)을 치는데, 전투시에는 부채를 휘두르는 것으로 호령을 삼는다. 한 사람이 부채를 휘두르면 무리들 모두가 칼을 춤추며 일어나 공중으로 칼날을 번뜩이며 재빨리 휘두른다. 우리 병사들이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다가는 한 칼에 베여 버린다.
쌍도(雙刀)는 위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아래를 공격하기 때문에 막기가 어렵다.
표창과 단도는 자루를 드러내지 않고 갑작스럽게 던지는 까닭에 예측할 수 없다.
『주해도편』 왜국사략
비망기로 일렀다.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병조가 아뢰기를, "칼을 잘 쓰는 것이 단병전(短兵戰)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과 절강(浙江)은 이것으로써 천하의 강병(强兵)을 만들었습니다. 선조조(宣祖朝)에는 당상들도 숙달시켰는데, 이는 참으로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조실록』 1630년 1월 6일강 위에 왕래하는 자들이 혹 한둘 혹 서넛이 큰 칼을 메고 작은 칼을 끼고 있는데 햇빛이 내리쏘아 빛나는 번개와 같았다. ... 칼날은 매우 예리하고 알몸으로 나가 싸우며 쌍도(雙刀)를 잘 쓴다. 재빠르게 몸을 날려 적은 수로 많은 수를 이기며 보전(步戰)에 능하고 수전(水戰)에 겁을 먹는다. 칼을 쓰고 총을 쏘는 데는 정밀하나 활과 창을 사용하는 데 서투르며, 진영을 겁박(劫迫)하고 복병을 설치하면 중국인도 그 꾀에 빠진다. (재조번방지)
"어느 전투이건 간에 승부는 모두 단병(短兵)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데에서 결판이 납니다. 그래서 궁병(射者)·창병(槍者)·총병(銃者)·기병(騎者)이 모두 칼을 차고 있는데, 칼을 차고서도 그 기술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절강병과 왜병과 호병을 보면 모두 검법을 알고 있는데, 육박전을 벌일 즈음에 네 가지 기예가 모두 쓸모 없어지게 되면 반드시 차고 있는 칼을 가지고 사생을 결단하려 덤빕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군령이 엄하지 못하여 접전해 볼 겨를도 없이 먼저 저절로 무너져버리고 말았으니, 검술이 전쟁(戰陣)에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여기게 된 것도 진정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인조실록 1628년 9월 29일 기사)
그들의 무기는 칼과 총을 제일로 친다. 칼을 찬 자는 반드시 길고 짧은 두 개의 칼을 차서 긴 것은 치거나 찌를 때 사용하고, 짧은 것은 던져서 남이 뜻하지 않는 사이에 맞히면 당장 죽지 않는 자가 없다.
『해유록』>>4
좋은 기록인데 아쉽다誰か翻訳してくれ。
この時代の韓国は存在したの?
スレ主と重複してる出展もあるだろうけど、俺から、【日本の鎧について】記している部分。
「倭国軍は鬼や獅子の面を被っていたので、人馬が驚いて退き、ぬかるみにはまって動けなかった」
・・・明国、宋応昌『両朝平攘録』
「奇怪な身なりをして敵を驚かせ、牛頭に鬼面をした者もある」
・・・明国、李睟光『芝峰類説』
「おおむね倭人たちは紅黒の鉄の甲冑を着て、色とりどりの鉄兜を被り、口角には髭を縦横に生やし
鉄広大(鉄の衣を着た道化方)のような姿をしており、金冠の黄金色の羽根・金挿・羽衣・羽箒・螺角などことごとく奇怪な形相である。
奢侈であり、鬼神のようでもあり、獣のようにも見えたので、これを見る者、驚かざるをえなかった」
・・・李氏朝鮮、李舜臣『忠武公全書』
「華麗多く、虎皮及び鶏尾をもって戦服を作り、金銀をもって仮面を拵え、馬面及び人面を表す、それは偽り驚かすこと甚だしく、
人の眼に眩いばかりに光り輝いた。壬辰年に敗退した軍の者たちは皆、虎・豹・水石の怪物が一時に出現したようで、不覚にも気を失い、
魂を奪われたと言っている」
・・・李氏朝鮮、姜侃『倭情録』
総じて言えば、日本武士の鎧武装は、不気味な様相をしていたと。papago翻訳>>1
剣術は由来が古くて... 数十回眼科外を乗り越えるのがまるで禽獣のようで、たまにいつも競争させて死心を先を争って発揮させるのに刀を振り回し、必ず殺 すことを目指します。 しかし、刀を振り回す間に刀の甲で刃を突き刺し、結局けがをしないため、その巧妙に避ける技術と巧みにぶつかる技術は、はっきりと白円の剣法があります。 近技は神妙で、人によって剣客ではなく機械が精度を示していたと言えます。 彼らが信じるのは長剣と鉄丸ですが、鉄丸は雨が降るように降り注ぎ、刀は森が立っているのと同じですが、銃を使うのは刀を使うのに比べて遅れをとります。
鄭度『約捕集』1593年8月15日、明の儒生互換に送った手紙
倭夷は普通虎接陣するが、戦闘時には扇子を振ることで号令する。 一人が扇子を振り回せば、群れが刀を踊って立ち上がり、空中に刃を閃かせながら素早く振り回す。 我が兵士たちが無我夢中で眺めていると、一刀で切られてしまう。
対刀は上を攻撃する振りをしながら下を攻撃するため、防ぐことは難しい。
表彰と短刀は、柄を表に出さずにいきなり投げるため、予測できない。
「注海図編」 倭国史略
備忘期で起こした。 「わが国の習俗は、他国の技芸を学ぶのが好きではなく、たまには卑屈に思える。 倭人の剣術は太刀打ちする者がない"
『、宣祖実録』1594年12月27日
兵曹が申し上げることを、「刀をよく使うことが短兵戦で最も重要です。 日本と浙江はこれをもって天下の強兵を作りました。 宣祖朝には唐尚も熟達しましたが、これは実に偶然のこと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人造実録』1630年1月6日>>2
川の上に往来する者たちが、もし一つや二つあるいは三四人が大きな刀を担いで小さな刃物を拱いているのに、日光がネリソて輝く稲妻と同じだった。 ... 刃は非常に鋭利で裸で戦い、銃刀をよく使う。 素早く身を投げ、少ない水路で多くの手を勝ち、保全に長けて水戦に怯える。 ナイフで銃を撃つには精密なが、弓と槍を使うには不器用で、陣営を恐れて伏兵を設置すれば、中国人もその謀略に陥る。 (再試行防止)
>>3
「いずれの戦闘であれ、勝負はすべて短兵で肉薄戦を繰り広げることから決着がつく。 そのため、弓兵)·槍兵 모두銃兵)·騎兵がみな刀を差していますが、刀を蹴っていながらその技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ょうか。 浙江病気と倭兵とホビョンを見ると、いずれも剣法を知っているのに、白兵戦を行う頃に四つの芸がいずれも使い道もなくなるようになれば必ずつけている刀を持って写生を決断しようとかかれます。 ところが、韓国では軍令が厳しいことができないため、接戦して見る暇もなく先に自然に崩れてしまったから、剣術が戦争(戰陣)にあまり関係がないと思うようになったのも真当然のことだと思います。"(人造実録1628年9月29日、記事)
>>5
彼らの武器はナイフと銃を第一とする. 刀を蹴った者は、長くて短い二つの刀を蹴って長いものは打ったり、刺す時に使用し、短いものは投げて他人が思わぬ間に当てると、直ちに死なない者がいない。
「海遊録」>>1
コピー&ペーストをしたのなら、引用元のURLを載せるべきだと思いますよ。
情報源がわからない情報は価値が殆ど無いと思います。>>3
貴方が出した出典を一通りググったけど一件もヒットしなかったわ。
有名な懲毖録とかで出典できない?
そうすれば解りやすいと思うよ。朝鮮語は欠陥言語だと言う事は分かったよ
愚民文字だとGoogleも苦労が耐えないwww😭😭😭
韓国人はGoogleに謝罪と賠償してくださいw😆😆😆ようするに朝鮮はボロ負けしたってこった
>>1
また青空なり他の韓国人が、朝鮮側が勇敢に戦ったとか、亀甲船のデタラメ画像を貼り付けに来るぞ>>4 意訳して欲しいものだ
>>12 よくわからんw
임진왜란 당시 일본 사무라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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