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한국에서 유명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해. 이 사건은 북한의 잠수정이 한국의 강원도 지역의 해안에 좌초되어 49일동안 일어난 사건이야. 이 사건에 대해 난 일본 wiki에도 없는 자료도 알고 있어. 궁금한게 있다면 질문해도 좋아.
10가지 사실.
1. 북한군의 규모는 26명이야. 정찰(3명)과 안내, 승무원(23명).
2. 잠수정이 좌초되어서 북한군이 잠수정을 소각하고 내륙으로 도주하는 그들을 소탕하는 사건이야.
3. 49일동안 민간인, 군인이 150만명이 동원되었어. 한꺼번에 150만명이 투입된건 아니야.
4. 베트남 전쟁 다음으로 실탄의 소비가 많았다.
5. 아파치 헬기까지 동원되었다.
6. 11명 자살, 13명 사살, 1명 생포, 1명 도주.
7. 화려한 색깔의 명찰과 부대마크로 피해가 컸다. 그곳을 조준사격을 받았다.
8. 북한군은 AK-47과 M-16을 사용했다. 북한 특수부대원은 M-16을 사용했다.
9. 당시에 한국군의 방탄헬멧이 5.56mm 탄환에 너무 쉽게 관통을 당했어. 2003년부터 보급한 신형 방탄헬멧 개발에 많은 영향을 줬다.
10. 과거에는 소총의 숫자가 중요했지만, 이후로는 유탄 발사기의 숫자가 총격전에서 더 유리하가 판단하여 유탄 발사기 보급을 확대했다.그때 진짜 당나라 군대였는데...
포위망 다 뚫리고
아군 끼리 오인 사격이나 하고
노인들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니까
나물 채취한다고 산으로 기어올라갔다가 총 맞아 죽고
활약한 건 소수 특전사들이고
육군 땅개나 예비군은 그냥 병신들 수준이였음예비군 소집 불응이 제일 개그
요새 군대는 캠프네 뭐네 하던 새끼들이
알고보니 실전에서는 무쓸모 쓰레기들이였다니 ㅉㅉ>>4
사진속의 분은 실제로 소탕작전에 투입된 사람이야. 어깨부위에 총알이 명중했지. 하필히면 그 부위가 부대마크가 있는 곳이야. 확실히 화려한 부대마크로 조준사격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그분의 증언 :
침투 49일째인 11월5일 새벽, 강원 인제군 용대리에서 초병들이 북한군과 교전했다. 이 씨는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되뇌이며 현장에 출동했다. 탄피를 분석하며 도주방향을 예측하던 순간, 해가 막 떠올라 시야가 잠시 가려지는 사이 숲 속에서 "탕, 탕, 탕"하는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첫 발은 이 씨의 왼팔 윗부분을 관통해 뼈와 살이 뜯겨졌고, 나머지 두 발은 팔꿈치 아랫부분을 스쳤다.>>17
http://m.blog.naver.com/mnd9090/220815473686
국방부 블로그에서도 1명은 도주에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탈북자 증언으로는 북한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는 말이 있는데 획실하지 않아.>>9
고급자료도 싶은게 있다면 말해줄게. 예를 들어서 수류탄의 안전고리를 빼지않고 투척해서 터지지 않은 사례도 있었어. 그 병사는 처벌을 한국군 교도소에 들어갔어.
매우 황당한 사례도 있었어. 매복해서 졸고 있다가 '유림'라는 북한군이 졸고 있는 한국군에 다가와서 전투식량을 훔치다가 들킨거야. 한동안 서로 대치하는데 황당하게도 서로 이야기도 나누었어. 그리고 그 북한군이 "서로 못 본걸로 하자"라고 말하고 돌아갔어. 그런데 뒤에 지켜보던 한국군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사격을 실시했어. 결국 '유림'라는 북한군은 죽었지.
그때 자세한 진실을 몰랐던 국방부는 처음에는 한국군이 사살했다고 뉴스기자들에게 보도했어. 그런데 진실이 알려지자 그 현장에 있었던 한국군은 처벌되었지.
그 당시의 뉴스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1775_19466.html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1774_19466.html이것은 어떻게 보면 현대 한국군의 흑역사인 것 같다. 나는 군인 시절에 심심해서 생활관에 쳐박혀있던 전술 교범 몇 번 읽었는데, 안 좋은 사례로 많이 소개되었다.
어느 부대는 실탄 배분을 해본 적이 없어서 간부들이 일일히 삽탄해주고, 병사들은 무서워서 야간 정찰 때 일부러 박수를 치고 다니고, 오인 사격으로 민간인도 죽고 예비군 3천 명은 소집거부...
한국군 측에서 아마 대령? 계급이 사망한 것으로 기억한다. 참모진의 조언 무시하고 너무 올라갔다가 피살>>21
당시에 예비군 때문에 작전에 방해가 됬죠. 밤에 모닥불까지 피웠다고 합니다.
대령의 경우 북한군 특수부대원 2명과 교전했던 현장에서 조사를 하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아 사망했죠. 아마도 화려한 계급장을 보고 먼저 저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첫번째로 총격을 받은 분이 계급이 가장 높았던 대령이였죠. 더 무서운건 그 특수부대원 2명은 도주한 현장에서 멀지않는 곳에서 기다렸다가 높은 계급의 한국군이 보이자 저격을 시작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죠.
(사살한 북한 특수부대원 2명의 사진. 사살한 장소가 휴전선의 철책에서 8km의 거리였다고 합니다. 다른 북한군은 비교적 쉽게 소탕했지만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3명 때문에 피해가 심했습니다. )>>23
예비군>>19
또한 송 의원은 매년 1만 명이상이 동원훈련불참으로 연간 40억 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 받고 있고, 96년 강릉무장공비 사건 때의 작전 동원령에 의한 동원률이 73%에 불과했던 사례와 올해 울산지역과 예산지역의 수해로 인한 재난 동원시 동원률이 75%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시 등 혼란과 악조건에서의 동원률은 이보다 훨씬 저조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특히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45% 가량이 “전쟁이 일어나도 군에 자원입대 하지 않겠다”고 밝혀 충격을 준 사례까지 덧붙인다면 더욱 비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73%임>>29
일본은 한국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육상자위대와 일본경찰을 엄청나게 투입되야 합니다. 영화처럼 [군인10명 vs 군인 10명]은 불가능해요. 인력이 이때부터 중요해집니다. 아파치 헬기까지 투입되었지만 보병에 의해서 한명씩 사살해야합니다. 숲으로 전차, 장갑차가 들어가기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일단 최초 발견지점에서 차단선을 여러 단계을 구축해야 합니다. 최소한 만 단위의 병력으로 도주로를 막아야 합니다. 도로, 산, 강, 호수 등을 전부요. 가까운 도시와 마을로 도주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차단선을 구축했다면 그곳 안에서 북한군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가 않아요. 작은 굴을 파서 숨거든요. 한번이라도 차단선이 뚫리면 더 많은 인원으로 더 넓은 차단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한국 경찰처럼 무기고에 M-16정도의 무기가 없다면 일본 경찰은 권총으로만 상대해야하니 대테러 담당이었던 경찰을 제외하면 고전하겠네요.>>30
어차피 M16은 해외에도 많은 물량이 있으니까요
그걸 밀수했을수도 있고 또는 불법 카피했을 경우도 배제못합니다.>>37
맞아. 너가 말한 총기도 사용했어. Pps43을 초기에 매우 많이 사용했지. 가볍고 짧아서 사용하기 편했을거야. 게다가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 같은 아주 작은 권총과 소음기도 장착한 사례도 있었지. 그런데 희안하게도 보통 침투하는 북한군의 실탄에는 일련번호(고유번호)가 없는데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의 실탄에는 있다라고.詳細で勉強になる記事は無条件に評価する
これは良スレ。
スレ主に感謝します。
国と国、お互い引っ越すことはできないのだから、同じ側にある間は、共有すべき事実を交換していきたいと考えます。생포된 북한군이 훈련을 받을때 한국군 군복 가슴에 있는 황색 명찰을 노려서 사격 하라고 배웠다고 한다.
한국군 간부가 빤짝이는 계급장을 달았다가 저격 당해 전사했다.
그후에 눈에 띄지않는 검은색 명찰 계급장으로 변경했다.한국 방송사들이 국군의 동선을 방송으로 하고 북한군들은 라디오를 듣고 국군의 동선을 파악하고 국군간부가 대변을 보려고 풀숲으로 들어갔다가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하고
>>34
警察でライフルや短機関銃で武装しているのは特殊部隊(SATや銃器対策部隊)だけです。
一般の警察は、ライフルなんて持ったことすらないのではないかな。>>46
なぜか変な文章になってるから書き直します。
即応予備自衛官8075人、予備自衛官47900人です。山の中でグレネードランチャーはどうやって使えば効果的なんだろうか。
>>52
日本はミサイルには何重にも備えているように
見えるが、こういった事には心もとない。>>53でも古里原発で放射能漏れ事故起こしたからもとも子もないけどね。4回も事故起こしてるし。そのほとんどが人災。
군 내부에서는 실패한 작전으로 치부하는 걸로 알고있다.
저때 제대로 활약한 부대는 특전사뿐..日本の映画では北の特殊部隊はとても強い集団として登場することが多い。
実際に人権無視で過酷な訓練されて毎日腕と肩が痛くなるほど大量の弾薬で射撃訓練がおこなわれているから強いのは間違いないと思う。
通常の兵士は射撃訓練は年に数回だけど、特殊部隊は弾薬が余って隠れて捨てるほどの弾薬を与えられている。>>59
당시에는 현재처럼 인터넷이 발달된것도 아니었고 정보를 입수하는데 한계가 있었겠죠. 지금은 민간인이 드론 띄워서 불법이지만 군부대에 접근해서 촬영하거나 USB에 가득 사진을 저장해서 북한으로 보낼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수단도 기술도 없었고요.
당시에 북한군이 소지했던 장비에는 일본제 카메라, 필름이 많았고, 필름에는 공군비행장, 고속도로, 발전소 같은 중요시설이 찍혀있었기에 아마도 전쟁이 발생하면 중요한 지점이기에 정보를 필요가 있었을겁니다.>>59
그리고 당시에 침투한 북한군 침투요원 3명은 정말로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일반적인 재일 한국인으로 위장한 스파이와 비교할 수 없죠. 80~90년대 한국에서 총격전까지 벌이면서 사살한 일반적인 북한 스파이 대부분은 3일도 못 버텼지만, 1996년 사건때는 150만명이나 동원된 소탕이었는데 중요한 침투요원 3명은 40일 넘게 도주했고 1명은 끝내 도주로 마무리되었고요.
듣기로는 김정일이 특히 아꼈던 특수요원이었다네요. 1명을 대상으로 수천명과 바뀌자고 해도 거절할정도라고 합니다.しんほごと
1996년 9월 18일 강릉 북한군 침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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