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의 카미카제 작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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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6/11/07(Mon) 20:02:07ID:YxNzU4MTg(1/7)NG報告

      작년 일본의 TV 아사히에서 드라마화하여 방영한, 아내와 날았던 특공병(妻と飛んだ特攻兵)이 한국의 웹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는 한국의 2차대전 역사 인터넷 게시판에서 구소련의 셔먼 탱크 승무원 '드미트리 로자'(Dmitriy Loza)의 회고록을 번역한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고록에는 소련 탱크에의 카미카제 공격과, 이 카미카제 비행기에 여성이 동승해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대목이 흥미로워서 위키피디아 일본판(特別攻撃隊 항목)을 찾아본 결과, 해당 카미카제 작전 역시 회고록과 동일한 8월 19일에 일어났고, 여성 2명이 동승했으며, 작전의 성공 여부는 불분명하다 (神州不滅特別攻撃隊は故障で墜落した1機を除き、2人の女性を乗せた10機でソ連軍の戦車部隊に向かったが、特攻が成功したかは不明である)라고 서술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神州不滅特別攻撃隊를 일본 구글에서 여러 번 검색해 보았지만, 이 사람들의 최후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없어서, 일본에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Dmitriy Loza의 이 회고록 내용이 일본에 이미 알려졌는지, 그리고 이 카미카제 작전의 유족이나 기념회의 사람들도 이들의 최후를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TV아사히의 드라마 혹은 드라마의 원작이 된 논픽션 서적에도 이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그 논픽션 서적을 읽어볼 방법이 없어서,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아래의 Link는 Dmitriy의 회고록 PDF 영문판 발췌본입니다. 30페이지의 중간 문단을 참조해 주십시오.

      http://theredguard.weebly.com/uploads/1/1/9/4/11945399/soviets20in20us20shermans1.pdf

      그리고 이 thread가 게재되면, 일본어와 한국어 번역문도 차례로 투고할 계획입니다. 한국어 번역을 기반으로 일본어로 번역하였는데,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양해해 주십시오.

    • 2名無し2016/11/07(Mon) 20:29:06ID:EzNzc1MDc(1/1)NG報告

      무섭네 w

    • 3名無し2016/11/07(Mon) 20:30:43ID:A1NDM3ODY(1/1)NG報告

      가미카제 자체는 끔찍하고 미쳤지만
      명령을 실행에 옮긴 군인의 용기는 대단하다.

      주인을 잘못만나서….ㅜㅜ

    • 4名無し2016/11/07(Mon) 20:57:15ID:YxNzU4MTg(2/7)NG報告

      만약에 이 내용이 일본에 이미 알려져 있다면,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 번역 게시판을 이용해서 유족들에게 이 카미카제 참가자들의 최후에 관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유족들이 아직 생존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회고록에 나온 교전 지점을 찾을 수 있다면, 인근에서 매장된 사체나 유품 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KJclub에 해당 내용을 게시한 적이 있지만, 이용자가 소수였기 때문인지, 일본 사람들에게 답변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 5名無し2016/11/07(Mon) 21:01:13ID:YxNzU4MTg(3/7)NG報告

      먼저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하겠습니다.

      (前略)

      8월 19일 1700시, 대열의 선두 부대였던 나의 1대대는 바쿠타(Bakhuta) 측선에 닿았다. 이곳에는 한 평범한 벽돌건물이 서 있었고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차병들과 데산트들(역주 : 전차 외부에 승차한 병사들)은 그들의 축축해진 옷을 벗었다. 이전처럼 사방이 물바다였다. 그리고 이 순간 진격 과정에서 드물었던 조우가 발생했다.


      파수병이 크게 소리쳤다. "하늘!" 승무원들과 함께 있던 사수 지휘관들(gun commanders)은 그들의 덮여진 대공기관총을 향해 달려갔다. 우린 그것들을 며칠째 쏟아지는 호우로부터 덮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소나기와 소나기 사이의 잠깐 동안 그들은 기동 위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They remained in the travel position) 그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적군 항공기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6개의 점이 지평선 너머로 나타나고 있었다. 전폭기들이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부터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우리의 "서방인"들은 독일군 파일럿들이 사용하는 전술을 잘 숙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에 목표물 상공을 맴돌았다. 그렇게 하며 목표 지점을 정한 뒤에야 편대장이 그의 항공기를 강하시켰다. 그러나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이런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우린 심지어 우리 기관총을 제자리에 배치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 특이한 일본군 공습이 어떻게 끝났을 것 같은가?


      첫번째 항공기가 대열의 선두 전차를 향해 저공으로 접근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전속력으로, 전차의 차체를 들이받았다. 동체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항공기의 엔진은 전차궤도 밑에 파묻혔고 불꽃이 셔먼의 차체 주위를 핥았다. 조종수 니콜라이 쥬에프(Nikolay Zuev) 근위하사가 다수의 베인 상처와 타박상을 입었다.

      (계속)

    • 6名無し2016/11/07(Mon) 21:02:02ID:YxNzU4MTg(4/7)NG報告

      (계속)


      대열 선두의 세 전차에 타고 있던 데산트들이 엄폐를 위해 벽돌 건물로 달려들어갔다. 두 번째 일본군 조종사는 이 건물을 목표로 했다. 항공기는 지붕을 뚫고 들어가 다락방에 처박혔다. 우리 병사들 중 다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즉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카미카제가 우리 대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3번째 조종사는 동료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땅을 향해 가파르게 급강하하며 그의 항공기를 건물 창문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목표물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날개가 전신주와 부딪혔고 전폭기는 그대로 땅과 충돌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했다.


      4번째 항공기는 대열을 향해 강하했다. 그는 대대 응급 치료소에 속해있던 트럭과 충돌했고 트럭은 불타올랐다. 마지막 2기의 가미카제 항공기는 이동중인 전차를 향했으나 빽빽한 대공화기 화망과 마주쳤다. 기관총탄에 두들겨 맞은 두 대의 항공기는 모두 철도 제방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물 속으로 추락했다. 공습은 순식간에 끝났다. 6기의 전폭기가 6명의 파일럿과 함께 형체없는 강철더미로 변했다. 그런데 우리를 정말로 놀라게 했던 것은, 2대의 항공기 콕핏에서 여성의 시신들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이들은 파일럿들의 음울한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그들의 약혼녀들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입은 손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트럭 1대가 불탔고 선두 셔먼의 포탑이 패였으며, 한 명의 조종수가 부상을 입었다. 우린 트럭을 재빨리 물 속으로 밀어넣어버리고 보조 조종수에게 전차의 조종을 맡긴 뒤 전진을 재개했다.


      (後略)

    • 7名無し2016/11/07(Mon) 21:04:14ID:YxNzU4MTg(5/7)NG報告

      続いて、日本語訳です。


      (前略)


      8月19日1700時、隊列の先頭部隊であった私の1大隊はバークタ(Bakhuta)側線に到達した。 こちらにはある平凡なレンガ建物が立っていたし雨がやんだ後時間があまり過ぎない時点だった。 タンク乗務員らとデサントゥ(訳者:タンク外部に乗車した兵士たち)は彼らの雨にぬれることになった服を脱いだ。 以前のように四方が水浸しであった。 そしてこの瞬間進撃過程で珍しかった遭遇が発生した。


      番兵が大きく大声を張り上げた。 "空!"乗務員らと一緒にいた射撃指揮官(gun commanders)は彼らの覆われた対空機関銃に向かって走って行った。 私たちはそれらを数日間あふれる豪雨を避けるために伏せておいていた。 そして夕立ちと夕立ち中間の少しの間の間、彼らは起動位置にそのまま残っていた。 (They remained in the travel position.) その時まで私たちを困らせた敵軍航空機は一つもなかった。 しかしもう、6個の点が地平線向こう側から現れていた。 戦闘爆撃機が速い速度で南側から私たちに向かってきていた。 '私たちの西欧の人'はドイツ軍パイロットが使う戦術をよく熟知していた。 彼らは爆弾を落とす前に目標物 上空をぐるぐる回った。 そのようにして目標地点を定めた後に編隊長が彼の航空機を降下させた。 しかしこちらで発生したことはこのようなシナリオとは距離が遠かった。 全てのものがとてもあっという間に起きて私たちはさらに私たちの機関銃を本来の席に配置する時間さえなかった。 この特異な日本軍空襲がどのように終わりそうなのか?


      最初の航空機が隊列の先頭戦車に向かって低空で接近してきた。 そして、それが全速力で、電車の車体に衝突した。 胴体の破片が四方に飛び散った。 航空機のエンジンは電車軌道の下に埋もれ、火炎がシャーマン戦車の車体周りをなめた。 操縦士ニコライジュエプ(Nikolay Zuev)近衛下士が多数の切り傷や打撲傷を負った。

    • 8名無し2016/11/07(Mon) 21:06:46ID:YxNzU4MTg(6/7)NG報告

      (続き)

      隊列の先頭を走る三戦車に乗っていたデサントゥらが掩蔽のためにレンガ造りの建物に走って入った。 二回目の日本軍パイロットはこの建物を目標にした。 航空機は屋根を突き抜いて屋根裏部屋に閉じこもった。 私たちの兵士たちの途中けがした人たちは誰もいなかった。 直ちにあらゆることが確実となった。 神風が私たちの大隊を攻撃していた。



      3番目の操縦士は、同僚たちが犯した間違いを繰り返さなかった。そのひとは地に向かって急激に急降下し、そのひとの航空機を建物の窓に向かった。 しかし、そのひとも目標物に到達しなかった。 彼の翼が電信柱とぶつかり、戦闘爆撃機はそのまま地面と衝突した。 そして瞬く間に燃え始めた。



      4番目の航空機は隊列を向かって降下した。 それは大隊応急治療所に属していたトラックと衝突し、トラックは燃えあがった。 最後の2基の神風航空機は、移動中の戦車に向かったが、うっそうとした対空火器火網に直面した。 機関銃弾に殴られ、二機の航空機は全て鉄道の堤防から遠くない水の中に墜落した。 空襲は瞬く間に終わった。 6基の戦闘爆撃機が6人のパイロットと共に姿無き鋼鉄の山と化した。 ところで私たちを本当に驚かせたのは、2機の航空機のコックピットで女性の遺体が発見されたという事実だった。 多分、この人たちはパイロットたちの陰うつな運命を共にすることに決心したその人たちの婚約者だったのだ。 我々が受けた損失はそれほど大きくなかった。 トラック1台が燃え、首位シャーマン戦車の砲塔がへこんでおり、一人の操縦士が負傷を負った。 私たちはトラックをいち早く水の中に押し入れてしまい、補助操縦士に、タンクの操縦を任せた後、前進を再開した。


      (後略)

    • 9名無し2016/11/07(Mon) 21:08:12ID:M2MDE3Njk(1/1)NG報告

      ヘル帝

    • 10名無し2016/11/07(Mon) 21:09:15ID:YxNzU4MTg(7/7)NG報告

      상기한 것들이 제가 발견한 내용입니다. 혹시나 일본의 web에 관련된 내용이 있다면, 일본인 여러분들도 thread를 통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1名無し2016/11/07(Mon) 21:41:25ID:U0Nzc5Mjk(1/1)NG報告

      世界一勇敢で偉大な民族

    • 12名無し2016/11/07(Mon) 22:02:09ID:c2NTc2MTQ(1/1)NG報告

      満州での特攻は、飛行機というより刺突爆雷が主だったのではなかろうか。

    • 13名無し2016/11/07(Mon) 23:06:35ID:U3MjI5NzI(1/1)NG報告

      満州ではソ連人に20万人ほど凌辱されて虐殺されたので愛する人との心中はむしろ幸せなケース

    • 14名無し2016/11/07(Mon) 23:41:20ID:c3NDQ4OTk(1/2)NG報告

      この件は有名では無いけど、隠されている訳では無く、歴史やミリタリーが好きな人には普通に知られています。

      ただ、この特攻の解釈は2通りあります。
      1) 日本が降伏したのに、ソ連軍がさらに軍事侵攻しようとした。
      この場合は反撃が認められます。
      米軍の爆撃機に零戦が邀撃した事例もあります。

      2) 司令部が認めていないのに、現地の部隊が勝手に攻撃した。
      他にも自力で戦うと宣言した部隊がいくつかあります。


      個人的には、上記2だったと思います。

      理由は
      パイロットは全員教官クラス。 カミカゼ攻撃には若いパイロットを使うのが普通で、ベテランは温存します。
      使用機材はtype97 単座機です。 そこに女性を乗せても攻撃に役立つはずはなく、自殺目的以外には考えにくいです。

      この場合は、命令違反による出撃なので、正式には戦死とカウントされないし、遺族にとっても不名誉な事だったでしょう。
      当時の混乱下で正しく情報が伝わったとは考えにくいですが。

      後に、戦史を整理した時も、遺族の為&日本-ソ連間の関係の為に、あまりアピールしない方が良いと考えたのでしょう。

    • 15名無し2016/11/08(Tue) 10:59:38ID:U2NjIzNTY(2/2)NG報告

      少し調べたところ、
      東京の世田谷に、この攻撃の碑がありました。

      1967年に、戦友と遺族が建てたと記されているので、
      不名誉な扱いはされていなかった様です。

      11機発進したけれど、1機は不時着しているので、碑には10人の名前が記されています。

      碑文には「貴重な飛行機をソ連に渡さないため・・」とも書かれていますが、
      当時の97式戦闘機は、今ならF-86かMig-19クラスなので、ソ連軍が欲しがるほど貴重な飛行機ではありません。
      このあたりは、少し美化されていますね。

    • 16名無し2016/11/08(Tue) 22:36:33ID:Y1NDIxMDg(1/2)NG報告

      東京だけど、うちの地元の墓地にも満州で散った英霊の碑が3つくらいあるよ。
      普通の墓石に比べて豪華で大きく、いつもきれいな花が飾ってある。

      あと1800年代から現在までの年号が入った朝鮮人の立派な墓石もあるよ。
      苗字が金とか李とか朴とか複数で日本名(通名)で〇〇家とか入ってるのが意味不明だけどw

    • 17名無し2016/11/08(Tue) 22:37:48ID:Q3ODE0NDg(1/1)NG報告

      >>11
      는 고대사회에서나 유행 할 듯한 인명경시풍조

    • 18名無し2016/11/08(Tue) 22:47:10ID:Y1NDIxMDg(2/2)NG報告

      >>17
      兵隊に武器を持たせて戦わせること自体が人命軽視だろw

    • 19hato2016/11/09(Wed) 05:44:00ID:kxMjY5Mzc(1/2)NG報告

      >>17
      >は、古代社会でも流行するような人命軽視の風潮

      朝鮮戦争で爆弾三勇士が自爆攻撃をして軍神だと崇めていた半島国家がありましたね。
      「爆弾三勇士」も「軍神」も丸ごと日本のパクリで安定のパクリ民族ですね。

    • 20hato2016/11/09(Wed) 05:55:24ID:kxMjY5Mzc(2/2)NG報告

      戦後の特攻は同じころ、占守島やウラジオストクでもありました。
      軍としては武装解除しているので逃げてもそれを攻める者は居ません。
      これ以上は朝鮮人に説明しても無意味でしょうね。

      朝鮮軍は朝鮮戦争開戦時に橋を爆破して国民を残して逃げるなど醜態をさらしたのですが日本人はそうはいかないのです。
      これも朝鮮人に理解は無理ですね。

    • 21名無し2016/11/10(Thu) 08:57:28ID:A0MTQwMDA(1/2)NG報告

      >>1
      実際に旧日本軍(陸、海軍省と言う、国の行政機関)の、戦争指導は駄目だったので、酷い敗戦を招いてしまった訳だね。
      ただ、我が国では、それらをことさら煽り「軍隊=悪の権化」とする、左派マスコミや、左傾教育のせいで、末端の兵士達の、崇高な精神までも、麻薬の所為にされたり、自爆テロと同義にされたりし続けたのだよ。
      そんなことで、遺族や戦友も、堂々と故人を、顕彰し難い風潮があって、時が経つにつれて、その事実を知る人すら、どんどん減っているのが現実な訳だね。
      戦争指導と言う、国の行なった事に対して、後の世で国政を司る総理大臣が、左派マスコミの作り出した「軍国主義」レッテル貼りの所為で、戦死者の慰霊すら、(日本の左派マスコミに乗せられて騒ぐ)貴国(韓国)や中共に遠慮して、行えない状態で、妻を連れた一兵士の体当り攻撃レベルの事実を、一般の日本国民が、どうやって広く知ることが可能だね?

    • 22名無し2016/11/10(Thu) 09:32:23ID:A0MTQwMDA(2/2)NG報告

      >>17
      今の基準だとしなくても、後半の体当りそのものが目的と化した、馬鹿な戦争指導に対して、精神論優先の人命軽視だと罵られることは、日本人として、甘んじて受け入れてもいいよ。
      しかし精密誘導兵器の開発が、当時の日本の科学技術では、難しかった以上、その完成を待てる余裕も、実際に交戦中なのにあるはずがないよね。
      兵士を誘導装置にしてしまうなど、人道的には、絶対に許されないことだけれど、誘導兵器による戦果拡大は、戦術的に正しいのだよ。
      そもそも対米戦を発生させる、無能外交をしてしまう、当時の日本政府に、現在の人道的見地など、求めることが無意味だよ。

    • 23名無し2022/11/26(Sat) 21:24:29(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 24名無し2022/11/27(Sun) 00:05:08ID:kyODMxODY(1/1)NG報告

      航空機であり、高度な人材資源も投入され、
      優秀だった操縦士の手記には当時の変化する各国情勢の中で合理的ではない戦術であるとしているものもある。
      しかしながら不本意であっても志願することに問題も無いともしている。

      韓国では満州は自国領土とする民族史観もあり白頭山も象徴、中国人である朝鮮族があり同胞民族、
      独立運動家は満州出身もあり生きていれば故郷へ戻り意思決定をする者もあり中国人となっているはずである。絶対的な正しい選択は無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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