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동아시아의 결전, 麗遼戰爭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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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한국무장 스레주2016/11/02(Wed) 14:42:16ID:MzNjA1NjQ(4/14)NG報告

      契丹은 步騎 40만을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고 하며 契丹군을 진두지휘했다. 契丹군은 1010년 11월 기존에 알려진 진군로를 따라 행군했지만, 11월 중순까지 서북면의 명장 楊規가 이끄는 방어군의 거센 저항으로 함락시키지 못했다.




      갑자기 契丹은 병력을 둘로 나누어 20만 병력을 우회시켰다. battle of tongju에서 처음에는 승리하지만, 康兆는 결국 패한다. 여기서 중앙병력 3만이 전사한다.

      core를 공격당하게 되자, 왕은 남부 지방으로 피신을 결정한다. 여기서 高麗군의 스파이가 契丹군의 안내를 한다. 그리고 高麗의 땅은 수천리에 달하며, 高麗왕은 이미 전라도까지 도주하였다고 契丹 성종을 속였다.

      이미 퇴로가 위험하여 전세가 불리함을 깨달은 契丹 성종은 이 말을 믿고 남하를 중지한다. 훗날 스파이는 결국 요성종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는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였고, 기록에 따르면 죽인 후 심장과 간이 요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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