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919) 이후 일본정부는 한국인들에게 유화정책 방침을 발표하였으나, 결국 억압과 차별은 계속되었다.
1. 문관 총독 임명이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해방까지 문관이 총독부로 임명되는 일은 없었다. 군사정권이냐??
2. 헌병이 경찰처럼 치안을 담당하는 정책을 폐지하고, 보통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대신 경찰 인원이 대폭 증가하였고, 고등 경찰제가 실시되었다. 급기야 1925년에 치안유지법이 제정되었다.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은 것이다.
3. 1920년 한글 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었다. 그러나 검열이 철저하였다. 일례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였을 때, 동아일보 직원들은 사진의 일장기를 지웠다가 구속되었다.
4. 평의회, 협의회 등 지방 행정에 조선인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납부하는 세금에 따라 선거권이 제한되었다. 즉 보통선거권이 아니었다. 무려 20세기 현대사회에서 말이다.
5. 제2차 조선인 교육령을 통해 조선인 교육 기회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지의 학제와 외지의 학제가 서로 달랐다. 차별이다!
가중수러운 일본의 한반도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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