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畿道議会」が議員のお金を集めて議会庁舎に『慰安婦像』を設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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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横に遠征売春婦像も立てろ2018/10/16(Tue) 19:05:23ID:UwODE5MzY(1/1)NG報告

      京畿道議会、独島の代わりに議会庁舎に『少女像』設置

      『独島平和の少女像』設置に出て中断した京畿道議会が、再び事業推進に出る。

      少女像は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が2011年12月に水曜デモ1000回を記念して製作した青銅彫刻像だ。
      16日、道議会によれば、道議員同好会である『独島愛・国土愛の会』ミン・ギョンソン(共に民主・高揚4)委員長は、第9代道議会当時である2016年末の5分自由発言を通じて、独島と道議会の2か所に少女像設置を提案し、2017年初めにこの事業のための対国民募金運動を始めた。

      だが、独島の管轄機関である慶尚北道と慶尚北道議会が否定的な反応を示したのと同時に、政府が『寄付金品の募集および使用に関する法律』を根拠に募金運動を行うことは違法であると通知したことにより、事実上、中止になった。

      ミン会長は第10代道議会が始まったことにより、対国民募金運動ではなく道議員が直接お金を集め、独島ではなく道議会庁舎の前に少女像の設置を推進することにした。

      設置費用(推定)は約3,500万ウォンで、道議会共に民主党135人全員が1人あたり25万ウォン(1人あたり5か月間、5万ウォンずつ負担)を出す方式で行う計画だ。

      自由韓国党2人、正義党2人、正しい未来党1人の議員も参加意思を明らかにしており、少女像設置完了時点は今年12月14日とした。
      ※第10代道議会:2018年6月から4年。142議席(共に民主党135、自由韓国党4、正義党2、正しい未来党1)

      ミン会長は「少女像設置を通じて、日本軍慰安婦被害おばあさんに対する日本の真の心のこもった謝罪と反省を促すのはもちろん、道議会が民意の殿堂であるから人権死角地帯に置かれた方々をさらに考えようということ」としながら、少女像設置趣旨を説明した。

      http://news1.kr/articles/?3451698

    • 14名無し2018/10/17(Wed) 11:08:53ID:QwMDg3MDI(2/17)NG報告

      >>12

      民間人だからだろ。

    • 15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11:49ID:AwMDAwODY(3/17)NG報告

      >>12
      jap comfort girl이라는 제목의 1944년 11월 30일 미국 <라운드업> 신문

      중국 국민정부군이 중국 윈난성에 있는 살윈강 전선에서 일본군 요새들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10명의 일본인과 조선인 여성들을 체포하여 숭산에 있는 전선으로 여성들을 배에 태워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에는 숭산과 살윈 전선에서 당시 국민정부군과 합류한 미군장교가 덩위에(騰越)에서 일본군의 야만행위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적혀있다. 그들은 한 조선인 여성을 산 채로 화약고에 넣어 "죽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또 미군 통역자로 일한 중국인 학생은 만주에서 탈출한 뒤, 숭산에서 전해들은 비극적인 다섯 명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 놓았다. 그 여성들은 "24세에서 27세 된 조선인 농부의 딸이었다" 며 "옷차림은 싱가포르에서 산 것으로 추정되는 서양식 의복을 입고 있었다" 고 전했다.

      이 여성들은 1944년 이른 봄, 일본인 관리자가 평양에 있는 집에 찾아 와서 'WAC'(비전투 지역인 싱가포르로 가는 조직) 조직을 홍보하면서 "여기에 참여할 것을 선전했다"고 증언하면서, 이들은 일본군대가 있는 지역에서 군인들을 위안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직업을 "알선해 주겠다"며 각종 포스트를 보여주고 "여성들을 모집했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돈이 필요했으며 그 중에 농부의 딸이었던 한 여성은 아버지가 무릎을 다쳐서 빚을 갚기 위해 "1500엔(당시 12달러)에 팔렸다"고 설명했다.

    • 16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12:47ID:AwMDAwODY(4/17)NG報告

      >>15
      그와 비슷한 18명의 조선인 여성들은 1942년 7월, 해상으로 싱가포르에 수송되었다. "여성들은 일본군의 승리와 동남아시아의 승리를 전해들었으며 싱가포르에 직송될 때만 해도 막연히 두렵기만 했는데, '랑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기 시작했을 때는 운명을 직감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여성들은 숭산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도착했을 때, 24명의 여성들은 35세의 일본인 매춘부 조장 예하에 배치되어, 일본군의 성적인 처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취사, 세탁, 동굴 청소 등 모든 일을 맡아서 했으며 동전 한 푼과 집으로부터 편지도 받지 못했다.

      이 신문은 또한 "여성들은 중국 국부군이 숭산을 공격했을 때, 방공호 안에 있었으며 24명 가운데 14명이 폭격으로 사망하고, 5명이 생포되었다. 그 중에 4명이 조선인 여성이었고, 1명은 일본인 여성이었다. 그들은 중국 국민정부군의 포로가 되면 모두 고문을 당할 것이라는 일본군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있었다. 포로가 되어도 고향의 가족이 혹시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자신의 이름을 거짓으로 말했으며 여성들은 그 곳으로 온 후, 모두가 지난 2년 동안의 삶을 '일본 대군주천황'에 대한 순진한 믿음으로 인해 인생은 완전히 불행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

    • 17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15:47ID:AwMDAwODY(5/17)NG報告

      >>16
      한편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기업들이 '기업위안소'를 운영해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도 공개되었다. 이 자료들은 1940년에 작성된 일본 육군성 정비국 전비과 문서와 대동아성 기획원 각의 결정문서, 당시 내무성에서 발간한 문서 등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1939~40년의 일본 신문 자료, 일본 시민단체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1940년 육군성이 홋카이도(北海島) 탄광주식회사 자료과장에게 보낸 문서를 보면, "탄광 내 노무자들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 조선과 중국의 창부를 유치할 것"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정진성 교수는 "기업 위안부들은 낮에는 노동을 했고 밤에는 '위안부'로 활동했으며, 노동자 1천명당 20여명의 위안부가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략 1만5000명~2만명 정도가 '기업위안부'로 동원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기업의 성노예 운영 사실 자체는 이미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적, 학문적 관심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치중되면서, 일본기업의 성노예 문제는 사실상 사각지대로 남아왔다.

      또 1942년, 1943년에 작성된 대동아성 기획원 문서에는 "노동자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화북지방에서 노동자들을 도입하되, 이들을 위해 위안부를 수반해야 한다"는 각료회의 결정문이 들어있다.

      정 교수는 "특히 대동아성의 문서에는 '세탁부 등의 명목으로 위안부들을 데려올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서 "일본정부는 위안부를 동원하기 위해 앞장서서 사기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 18名無し2018/10/17(Wed) 11:15:47ID:QwMDg3MDI(3/17)NG報告

      >>16

      まず、銃を突き付けて処女狩りしたと言う嘘に謝罪は無いの?

    • 19名無し2018/10/17(Wed) 11:18:56ID:QwMDg3MDI(4/17)NG報告

      >>17

      日中には、労働をし、夜には「慰安婦」

      これ、韓国戦争で、共産主義者として拉致した女性の事でしょ?

      日本軍は慰安婦と挺身隊が別だ。
      慰安所は利用料払って営業時間も決まってた資料が大量にある。

    • 20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19:49ID:AwMDAwODY(6/17)NG報告

      >>17
      이밖에 1939년 당시 일본의 오타루(小樽)지방의 한 신문에 실린, “기업에서 북해도청에 위안소 설치를 허가해 달라는 청원을 하여 조만간 허가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도 공개됐다.

      그리고 일본군이 조선인 부녀자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위안부를 강제로 징집했음을 뒷받침해주는 판결문 기록이 발견되었다.

      일본 요시미 교수가 1980년 위안부 관련 서류를 우연히 발견한 서류에는 중국 북부를 점령한 일본군의 참모가 위안소의 설치를 명령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56년에 중국에서 열린 일본인 전범 재판에서 스즈키 히라쿠 중장의 자필 진술서에는 조선인과 중국인 여성을 유괴해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진술이 적혀 있다.

      교토시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정한 ‘전쟁의 진실을 말하는 모임’에서 1942년 싱가포르에서 육군 헌병대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나가세 다카시(永瀨隆·89) 씨는 “조선 위안부들은 모두 군용선박에 실려 왔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당시 상부의 명령으로 한반도에서 온 여성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러 와 있던 그에게 그 여성들은 “싱가포르의 일본군 식당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에 도착하자 (일본군이) 위안부에 종사할 것을 강요했다”라고 말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증언했다.

    • 21名無し2018/10/17(Wed) 11:21:52ID:QwMDg3MDI(5/17)NG報告

      >>20

      戦犯裁判でも3件しか存在しない敵国民の強制が慢性的だったと言えるの?

    • 22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22:32ID:AwMDAwODY(7/17)NG報告

      >>20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일본인(아오치 와시오, 1967년 야스쿠니에 합사되었음)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 재판에서 "아오치는 1943년 6월 2일 군정감부로부터 매춘업소를 개설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차 지시를 받은 후 이를 수용했다"라고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를 지시했음을 인정했다.

      일본 국립국회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의 문서 중에서 인도네시아 모어섬에서의 일본 육군 중위에 대한 심문조서에는 현지 여성을 강제로 '위안부'로 만든 사실이 진술되어 있다.

      일본군의 군용선박까지 이용해서 수송했는데 일본군이 개입을 안했다니!?

    • 23日本の王2018/10/17(Wed) 11:23:01ID:kxMjcyMjA(1/1)NG報告

      日王の住む王宮に慰安婦像を建てましょう。

    • 24名無し2018/10/17(Wed) 11:23:38ID:QwMDg3MDI(6/17)NG報告

      >>22
      視察の日本軍大尉が違反を発見して止めさせた事件ですよ?

      日本軍が強制を認めてなかった証拠です。

    • 25名無し2018/10/17(Wed) 11:24:15ID:QwMDg3MDI(7/17)NG報告

      >>23

      韓国戦争の共産主義狩りは知ってるのか?

    • 26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24:15ID:AwMDAwODY(8/17)NG報告

      2. 일본군 하청 위안부 관리자의 대부분이 조선인이었다!?

      당시 상하이 위안소만 살펴보아도 158곳인데, 그 중에서 11곳만 조선인이 관리인

      일본인들이 맨날 가져오는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에도 조선인 관리인은 20여명 밖에 안 나온다.

    • 27名無し2018/10/17(Wed) 11:25:10ID:I0MTg0NDY(1/1)NG報告

      単なる売春婦の話だな

    • 28名無し2018/10/17(Wed) 11:25:28ID:QwMDg3MDI(8/17)NG報告

      >>26

      コリアンが20人出てきて、日本人が何人出てくるか言わなきゃ意味ないだろ。

    • 29名無し2018/10/17(Wed) 11:26:59ID:QyMTQ3MDM(1/2)NG報告

      >>1
      韓国の議員って活動家レベルだよね
      日本の議員のレベルも低いけど、韓国はそれ以上にやばいね

    • 30名無し2018/10/17(Wed) 11:27:28ID:QwMDg3MDI(9/17)NG報告

      聞こえないのかな?

      銃を突き付けて強制連行の資料が全く出てこない事に問題は無いのか?と。

    • 31名無し2018/10/17(Wed) 11:28:10ID:Q0NjUyOA=(1/4)NG報告

      1.「強制連行の証拠はいくらでもある」と言っておきながら韓国政府は一つも証拠を出していない。
      2.アメリカの調査によると強制の証拠は見つからなかった。

      以上。何回論破されれば分かるんだよ…

    • 32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28:52ID:AwMDAwODY(9/17)NG報告

      >>26
      3. 일본 정부가 오히려 위안부 납치를 막았다!?

      아래의 자료는 일본인들이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하기 위해 항상 가져오는 자료인데,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공문서는 조선을 대상으로 내려진 공문서가 아니다.

      이 자료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내지에 있는 종업부 모집" 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내지"는 본토, 즉 일본 열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일본열도의 여성에 대한 군대와 업자의 납치 행위에 우려를 표한 공문서이지, 조선인 여성과는 전혀 무관한 자료이다. 외지로 분류되는 조선에 보낸 공문이 아니었던 것.

      (조선에서도 분명 위안부 모집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 조선에는 내지와 달리 이같은 내무성 경보국장의 통첩이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 공문은 일본 군부가 민간업자를 이용해 자국의 여성조차 위안부로 끌고 가니까 내무성이 그 사실을 알고 "본토 대상"으로만 보낸 공문일 뿐...외지였던 조선의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 33名無し2018/10/17(Wed) 11:30:35ID:QwMDg3MDI(10/17)NG報告

      >>32

      強制を許可した文書を出さねば意味が無い。

      コリアンはアホだから常識が通じない。

    • 34名無し2018/10/17(Wed) 11:32:25ID:I2OTMzNzQ(1/1)NG報告

      吉田清治の嘘からはじまった慰安婦問題。

    • 35名無し2018/10/17(Wed) 11:32:36ID:QwMDg3MDI(11/17)NG報告

      >>32


      頭の悪い韓国と違って、世界では反論を潰さねば主張が認められることは無い。

    • 36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33:05ID:AwMDAwODY(10/17)NG報告

      >>32
      군대가 본토에서도 직접 이러한 ‘인신매매’를 주도했단 사실은 당시 일본 경찰한테도 매우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야마가타현, 군마현, 이바라키현, 고치현 등 각 현의 경찰들은 일본 내무대신에게
      “군부의 방침이라고는 믿기 힘든 것”
      “질서양속에 위반되는 것 같은 사안을 공공연히 선전하는 듯한 행보는 황군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것”
      이라는 보고서를 올린다.
      실제로 와카야마현 경찰은 이 같은 업자들이 부녀자들을 속여서 유괴하려는 것일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면서, 업자들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하며 수사에 돌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배경에 정말로 군대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와카야마현 경찰은 이들을 즉시 석방하기에 이른다.

      나가이 가즈 교토대학 교수는 지난해 9월 <세카이>에 실린 논문, >위안부 문제-파탄난 ‘일본군무실론’>에서 “이런 모집이 군대의 의뢰에 의한 것이란 사실이 증명된 시점에서, 범죄의 용의가 농후해진 행위가 범죄가 아니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에서도 분명 위안부 모집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 조선에는 내지와 달리 내무성 경보국장의 통첩이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37名無し2018/10/17(Wed) 11:35:00ID:QwMDg3MDI(12/17)NG報告

      >>36

      日本軍が性奴隷など有り得ないと言ってる記録をありがとう。

      コリアンはアホだから意味が理解できない。

    • 38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36:35ID:AwMDAwODY(11/17)NG報告

      >>36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는 작년 5월에 펴낸 저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에서
      “조선, 대만에서도 여성 모집에 대한 요청이 이뤄졌다. 내지에서처럼 총독부, 도지사, 말단 경찰 등에 협력이 요청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외지의 경찰이 내지의 경찰이나 도호쿠 지방의 당국처럼 (군대가 주도하는 위안부 여성 모집에) 반발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총독부는 도쿄의 내무성보다 중국 현지 일본군의 요청에 더욱 응답하려는 자세를 보였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첩은 기본적으로 행정당국 내에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이를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선의 경찰은 내지의 경찰과 달리 자신의 딸들도 아닌 어린 여성들을 보호하려는 관념이 희박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일본 정부가 당시 가입했던 국제조약인 ‘부녀매매에 관한 국제조약’을 조선과 대만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유보’했기 때문이다.

      김부자 도쿄 외국어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군은 이런 국제법의 빈틈을 통해 일본에서는 국제법의 속박이 있어 징집하지 못하는 미성년자이고, 매춘업에 종사한 적이 없으며, 성병이 없는 여성을 조선이나 대만에서 대량으로 모집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39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38:34ID:AwMDAwODY(12/17)NG報告

      >>38
      1)일본군 장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구출했다?
      →일부 극소수 장교들이 구출해준 사례를 보고일본인들이 자위하는 것이라면, 쉰들러리스트를 보고 독일 장교들이 유대인 해방에 앞장섰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논리

    • 40名無し2018/10/17(Wed) 11:41:07ID:QwMDg3MDI(13/17)NG報告

      >>38
      募集と言いながら、内容が強制だったと歪曲している事が誰にでもわかる。

      日本人が読めば内容が異常なので意味が無い。
      しかし、コリアンは知能が低いので理解できない。

    • 41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41:13ID:AwMDAwODY(13/17)NG報告

      >>39
      4.위안부 할머니들이 충분한 급여를 받았다!?

      일본인들은 버마의 위안부 보고서를 제시하며 문옥주 할머니 등 위안부 할머니들이 충분한 급여를 받았다고 날조하는데, 애초에 보고서에 나오는 조사 대상 위안부는 겨우 20여 명.......

      전체 위안부의 극소수에 불과한 겨우 20명을 조사한 버마 지역의 자료를 맨날 가져오네.

      또 버마 지역은 초인플레이션 지역이라 화대를 얼마나 받았든 화폐 가치가 없음. 그냥 종이 쪼가리를 받은 것...
      군표 타령도 하는데, 나중에 군표를 현금으로 환전받은 할머니는 전체 위안부의 0.01%도 안 된다.

      자세한 자료는 http://fightforjustice.info/?page_id=3252&lang=ko

      당시 위안부 미군 보고서를 봐도 다른 지역은 위안부 상황이 엄청 열악한 반면
      버마 지역 20여명이 있던 위안소만 특이하게 대우가 상대적으로 다른 위안소 비해 그나마 나은 편 이라고 기록되있음.

    • 42名無し2018/10/17(Wed) 11:43:05ID:QwMDg3MDI(14/17)NG報告

      >>39

      強制が許可されていない証拠


      シンドラーのリストは人材に別の使い道を提示した話し。
      コリアンはアホなので違いが理解できない。

    • 43名無し2018/10/17(Wed) 11:44:00ID:QwMDg3MDI(15/17)NG報告

      >>41


      慰安婦の強制証言者はわずか16人w

    • 44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44:09ID:AwMDAwODY(14/17)NG報告

      >>41

      아키압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한 친구가 강에 몸을 던지는 일이 일어났다. 괴로웠던 것이다. 그 이름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데, ‘처녀공출’을 한다고 경찰관이 찾아와서 딸을 내놓으라고 할 때, 천장애 숨어 있다가 들켜서 끌려온 자매 중 동생이었다. 3일 정도 지나서 강 아래쪽에 쓰러져있는 나무에 걸려 있던 그의 시신을 버마 사람이 보고 우리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 소식을 듣고 다 같이 달려가 보니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고,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배가 불룩했다.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할머니 일대기 역사의 증언 -

      ↑ 일본인들은 이같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은 제외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만 캡쳐해서 위안부가 마치 잘먹고 잘살았다는 듯이 서술한다.

    • 45名無し2018/10/17(Wed) 11:46:29ID:QwMDg3MDI(16/17)NG報告

      >>44

      >「処女供出」

      これ自体が全く裏付け出来ない妄想
      当時の公文書に誰一人証言者が居ない。

      就職詐欺じゃなかったのか?

    • 46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1:50:14ID:AwMDAwODY(15/17)NG報告

      >>44
      미국 연방 정부 합동조사단, “위안부는 일본 정부의 조직적 강제 행위”
      http://m.mk.co.kr/news/headline/2014/466349

      https://www.google.co.kr/amp/m.khan.co.kr/amp/view.html%3fart_id=201508172225075&sec_id=970204

      전세계 학자들도 반일 민족주의자인가??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50519190600071&mobile

    • 47名無し2018/10/17(Wed) 11:50:15ID:Q0NjUyOA=(2/4)NG報告

      ムンオクジュも証言がコロコロ変わる有名慰安婦の一人ですね。

    • 48名無し2018/10/17(Wed) 11:50:31ID:QyMTQ3MDM(2/2)NG報告

      >>41
      0.01%って最低でも慰安婦の人数が1万人って事?
      何人両替出来たの?
      20万人説を信じてるの?

      0.01%と断言するなら答えられるよね?

    • 49名無し2018/10/17(Wed) 11:50:33ID:czMzE5MzY(1/3)NG報告

      大使館、領事館前以外はお好きにどうぞ。

    • 50名無し2018/10/17(Wed) 11:54:28ID:czMzE5MzY(2/3)NG報告

      >>46戦後すぐの聞き取りでは関与は無い報告書があるからそれでいい。今は偽物のババアがいるからな朝鮮戦争時の慰安婦が日本の慰安婦だったと喚いている。

    • 51名無し2018/10/17(Wed) 11:55:30ID:Q0NjUyOA=(3/4)NG報告

      めんどくさいのでコピペな↓

      日本政府は、強制動員をさせるどころか、慰安婦募集が日本軍の名前を使って募集することに注意するように要求しており、募集者が誘拐前科がある業者ではないか注意して欲しいと公文書を下達したほどだ。

      加えて、慰安婦強制連行の証拠はおろか、強制連行がなかった証拠は溢れる様に多い。証拠を全部集めれば、一冊の本とまとまってしまう程だ。

      上記の証拠を総合してみると、慰安婦は民間次元で行われ、その過程で拉致や詐欺のようなものが存在したものとみられる。

      そして、その内の慰安婦は、もともと体を売る仕事をした人が自発的に慰安婦に加担したとも書かれている。

      実際、韓国は70~80年代だけでも誘拐拉致して人里離れた島に送り、売春婦に売り渡す場合が珍しく無かった。

      親が借金のために子を売り渡す場合も珍しくなかった。 1930年~1940年代には、恐らくその時代より酷かったのは想像に難しく無い。

      しかし、韓国は何の証拠もなしに、これまで「日本軍が慰安婦を強制的に拉致した」と日本の謝罪を要求してきた。

      日本は証拠がないから「慰安婦募集は民間レベルで行われた」と続けて繰り返してきたのだ。

    • 52名無し2018/10/17(Wed) 12:00:29ID:czMzE5MzY(3/3)NG報告

      >>36お前自ら業者と書いているだろ?朝鮮人の業者が勝手にやっていた事だよ。それに日本軍と言っているが朝鮮人も日本軍にいるのだよ。お前らの同胞がやったんやろ。

    • 53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2:00:32ID:AwMDAwODY(16/17)NG報告

      >>46
      요약
      1. '모집'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해도 힘으로 연행했든, 민간업자가 속여서 데려갔든, 합의를 하고 갔든 탈출이 불가능하면 모두 강제동원이다.

      2. 위안부 모집 방책으로 조선인을 이용했다는 것은 마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납치한 사람은 같은 흑인들이라는 논리다. 그들도 결국 일본정부에게 돈을 받고 위안부를 넘겼으므로 결국 일본이 직접 모집했다고 볼 수 있다.

      3.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은 대부분 저학력에 문맹인데다 나이도 많고 시간도 오래 지났고, 큰 충격에는 기억을 왜곡하는 현상이 있으므로 진술이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도 핵심적인 진술 내용은 바뀌지 않았고, 게다가 그 피해자가 너무 많아서 설령 한두명은 다른 진술은 하였더라도 전부 날조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

      4. 힘으로 연행했든, 속여서 데려갔든, 일단 합의하에 갔든 그 이후에 위안부를 하지 않을 선택권이 배제된 상황이라면 당연히 강제적인 위안부다. 일본 정부는 뇌가 없나? 일본군이 위안부 수송선을 미군이 장악한 지역에 보내서 위안부들이 죽게 했었던 사건도 있었고, 해양쪽은 아예 한번 나가면 위안부는 절대 돌아갈 권리가 없었는데.

      5. 그리고 문옥주 할머니가 버마 지역에서 큰 돈을 벌었다고 날조하는데, 버마지역은 초인플레이션 지역이라 화대를 얼마나 받았든 화폐 가치가 없음. 그냥 종이 쪼가리를 받은거... 군표 타령하는데 나중에 군표를 현금으로 환전 받은 할머니는 전체 위안부의 0.01%도 안 된다.
      자세한 자료는 http://fightforjustice.info/?page_id=3252&lang=ko

      6. 일본군 장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구출했다?
      →일부 극소수 장교들이 구출해준 사례를 보며 자위하는것이라면, 쉰들러리스트를 보며 독일 장교들이 유대인 해방에 앞장섰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논리

      7. 세계의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일본군의 직접적 주도하이 일어난 일이라고 규정하는데, 일본인들만 교묘한 날조 자료로 강제성을 부인하는 중

    • 54名無し2018/10/17(Wed) 12:21:47ID:gwMDM1ODg(1/1)NG報告

      反日原理主義カルト教団統一国家(朝鮮半島)は、今日も元気です。

    • 55名無し2018/10/17(Wed) 14:22:47ID:gyMTEzNTY(1/1)NG報告

      ところで、
      なぜ「慰安婦像(少女像)」が裸足なのか知ってる?
      なぜ空いている椅子が隣にあるか知ってる?

      ・2002年、在韓米軍基地に忍び込んで遊んでいた女子中学生のシン・ヒョスンさんとシム・ミソンさんが米軍の装甲車に轢かれ死亡。
      ・韓国国内各地で反米デモが加熱。
      ・反米親北のキム・ウンソン&キム・ソギョン彫刻家夫妻が「二人の女子中学生の像」を制作し、現場に設置する運動が高まる。
      ・彫像デザインは、事故当時、二人の靴が脱げていた事から裸足とし、韓国人が虐殺された事を米軍へアピールするため韓服とした。
      ・完成後に事故現場へ像の設置を試みるも米国の抗議で韓国政府が許可しなかったため、激しい抗争のあと、現場には慰霊碑のみが設置された。
      ・行き場を失った像だが、轢死事故のもみ消しと、日本との慰安婦問題に目を付けた政府が「慰安婦像」として急遽転用することを思いつく。
      ・慰安婦像は別な物を作れと当然遺族は反対したが、製作にかかる時間でタイミングを逃したくない政府が金の力で屈服させる。
      ・流用された像なので当初は二人が並んでいたが、「仲間がいてはおかしい」という事でいつの間にか相方のシン・ヒョスンさんの像が外される。

      このように「慰安婦像(少女像)」とは、金と権力と欲望の歪曲により二人の若い犠牲者を冒涜しながら誕生した。
      「慰安婦活動家」のみならず、2002年に起きた事故なので像が誕生した経緯を知る者は少なくないはずだが、
      事実上の社会主義国家である韓国で二人の中学生を悼み、像が辿った悲運に声を挙げるなど、良心を持った韓国人などすでに皆無である。

      ちなみに、一体増産される毎にキム・ウンソン&キム・ソギョン夫妻へ三万ドルほどの版権料が入るらしい。

    • 56名無し2018/10/17(Wed) 15:02:12ID:M5NjI0Njk(1/2)NG報告

      >>15
      >彼らは朝鮮人女性を生きたまま火薬庫に入れて、「ころすのを見て驚いた」と話した。

      その原文を教えてくれるかい?

    • 57名無し2018/10/17(Wed) 15:18:41ID:QwMDg3MDI(17/17)NG報告

      >>53

      1 慰安所の日記に帰郷する慰安婦が書かれてる、解放されなかったのは韓国軍慰安婦

      2 親の同意を義務として強制連行は認められていない。就職詐欺じゃなかったのか?
      強制連行は韓国戦争の共産主義狩り

      3 韓国人の女性軽視が問題で、親が同意した売買である。

      4 強制連行と就職詐欺は同時に起きない、強制連行が許されているなら騙す必要はない。
      強制が許されていたのは、韓国戦争の韓国軍による共産主義者狩り

      5 慰安所の日記に給料を送金した記録がある、ビルマは日本軍が暴落前の価格で物資を販売した。
      給料が無いのは、韓国戦争の共産主義容疑で連行された性奴隷の少女達

      6 そもそも、助けた記録しか無い。

      7 韓国人が渡した捏造資料に騙された人しか居ない。世界の誰も強制の証拠が出せない。
      強制連行の証拠が有るのは、韓国戦争の共産主義者狩り

    • 58名無し2018/10/17(Wed) 16:17:48ID:M5NjI0Njk(2/2)NG報告

      >>53
      ここのコピーだった。笑
      この人に質問しても無駄か。ははは!

      http://archive.fo/7IyPi


      ムンオクジュのその他の記述も読んでね。
      http://scholarsinenglish.blogspot.com/2014/10/former-korean-comfort-woman-mun-oku.html

    • 59일본인 체모 굵기2018/10/17(Wed) 16:26:04ID:AwMDAwODY(17/17)NG報告

      >>58
      기어코 찾아 냈구나......! 아이고오~~~~~

    • 60名無し2018/10/17(Wed) 16:27:57ID:Q0NjUyOA=(4/4)NG報告

      昔から売春婦が多い韓国において、給料が高い従軍慰安婦募集に飛びつく人が大勢いたのは想像に難くない。

    • 61がんばる無職◆ArSJIX9PP.2018/10/17(Wed) 16:31:17ID:I0ODYxOTg(1/1)NG報告

      本当にあのお婆さんたちがかわいそうと思うなら、お婆さんたちにお金あげなよ

    • 62名無し2018/10/17(Wed) 19:52:24ID:AyODkyMTk(1/1)NG報告

      不可逆的だなぁ(呆れ

    • 63名無し2018/10/17(Wed) 21:41:00ID:I4OTMwMzM(1/1)NG報告

      日本は謝罪も賠償もする気が無いと何度も言ってるのに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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