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고 적은 글 '고려도감'
방 안에는 침상과 걸상을 두고 돗자리를 깔았다.
육류보다는 생선을 많이 먹었고 차도 즐겨 마셨다.
중국에서 수입한 밀로 만든 국수가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참외나 복숭아를 먹고
일본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사용하였다.
여인들은 흰 모시 저고리에 노란 치마를 입고
붉은 비단으로 묶은 머리카락을 오른쪽 어깨로 흘러내리게 하였고
남자들의 머리 모양도 검은 띠로 묶은 것을 제외하면 비슷하였다.
또 사람들은 무척 청결하여 중국인이 때가 많다고 비웃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섰다.
여름에는 하루 두 번 시내에서 남녀가 섞여 목욕을 하였다.
그런 만큼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 사랑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쉽게 헤어졌다.
사람들은 학문을 숭상하여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왕실의 도서관 임천각(臨川閣)에는 수만 권의 서책이 소장되어 있었고
일반 서민들이 살고 있는 거리에도 책을 파는 서점이 2~3개씩 있었다.
기술자를 우대하여 관아에서 일을 맡기고, 기술이 뛰어난 거란의 포로들도 적극 활용하였다.
비취색 청자를 위시하여 정교하고 화려한 기물이 만들어진 것이 이러한 정책 때문이었다.
특히 3개의 챕터에 고려의 향로, 병, 찻그릇, 술잔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비취색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기물을 만드는 고려인의 솜씨에 서긍이 감탄하였다.
고려와 송나라는 당시에 전세계 최고 선진국이였습니다.
송나라에는 고려출신 유학생이 굉장히 많았고, 고려에는 송나라 책이 매우 많았다.
또 불교가 엄청나게 발달하였고, 성리학도 유입되기 시작했다. 과거제도도 시행했다.
고려는 무역도 엄청나게 많이 했으며, 고려의 항구에는 외국인들이 매우 많았다.
한국의 영어이름 'KOREA'도 고려에서 나온 말이다. '고려 홍삼'도 유명하다.
당시에 전세계 최고 선진국이였던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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