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6월의 독립운동가 장덕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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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7/05/31(Wed) 10:27:41ID:U5NzEyNjY(1/3)NG報告

      2017년 05월 31일
      동포 학살 참극을 알리려다 일제에 암살당한 순직기자

      [ 시티저널 이명우 기자 ]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개관3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동포 학 살 참극을 알리려다 일제에 암살당한 순직기자 장덕준(張德俊)을 올해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장덕준은 1892년 6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나무리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아일보 창간 당시 주필이자 후에 정치가로 활동하는 장덕수가 그의 동생이다. 장덕준은 명신중학교에 진학해 1911년 졸업하였으며 그 후 모교 교사로 2년 간 봉직했다.

      1915년에는 일본 유학을 떠나 세이소쿠(正則)예비학교서 공부하며 동시에 재동경조선인유학생 학우회 평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유학생들이 발행한 잡지인 ‘ 지광(學之光)’ 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이 시기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와 같은 자유주의 지식인과 교류하였으며, 귀국 후 신문을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3·1운동 이후 장덕준은 동아일보 창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간 당시 장덕준은 논설반원과 통신부장, 조사부장을 겸했다. 그는 1920년 4월 2일부터 4월 13일까지 ‘조선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을 써서 3․1운동을 왜곡한 일본여론을 비판했다.

      장덕준은 지병인 폐결핵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계속해나갔다. 특히 1920년 여름에는 동아시아를 방문하는 미국의원단을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특파됐다. 그는 이곳에서 안창호와 함께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인 포터를 만나 한국의 실정을 설명했고, 의원단장인 스몰을 인터뷰해 기사로 실었다.

      http://www.gocj.net/news/articleView.html?idxno=89174

    • 2名無し2017/05/31(Wed) 12:25:48ID:U5NzEyNjY(2/3)NG報告

      >>1
      ▲ 장덕준 기자가 취재하기 위해 만주로 떠났던 간도참변에서 희생된 한국인들

      ↓ 징덕준 선생

    • 3名無し2017/05/31(Wed) 12:26:53ID:U5NzEyNjY(3/3)NG報告

      ↓ 동아일보 창간호

    • 4ボンド2017/05/31(Wed) 12:41:59ID:k3MDc3MjE(1/1)NG報告

      >1920年4月2日から4月13日まで「朝鮮かかるに対する日本の世論を批判する」という論説を書いて3.1運動を歪曲した日本の世論を批判した。
      えっ?
      韓国人が思い描く地獄のような日帝の弾圧が本当なら
      こんな事を書いたらすぐ投獄されてしまうのではないの?
      おかしいなぁ〜

    • 5名無し2017/05/31(Wed) 12:54:16ID:M1MTgwMjM(1/1)NG報告

      >>4
      吉野作造みたいに日本人の中にも三・一運動に同情的な人がいて、そういう人の保護があると官憲も手を出しにくかったのは事実

    • 6名無し2017/05/31(Wed) 13:48:40ID:g1NDU0Nzk(1/1)NG報告

      う~ん、未来志向は、無さそうだね。

    • 7名無し2017/06/03(Sat) 11:15:08ID:MwNTgyNzA(1/1)NG報告

      併合がなければ貧農のまま生涯を終えただろうなw

    • 8名無し2017/06/03(Sat) 13:05:22ID:kyNzU2Nzk(1/2)NG報告

      間島問題の地域。現在は延辺朝鮮族自治州。女真族満州族の地として清と李朝で越境問題。
      清、ロシア、と日本の争い。
      北朝鮮は間島パルチザンを朝鮮革命の起源としている。万宝山事件、青山里戦闘、間島共産党暴動など抗日パルチザンが活動。
      中国は「東北工程」に。

    • 9白妙2017/06/03(Sat) 14:23:57ID:kwOTIwNw=(1/1)NG報告

      小物のようですね

    • 10名無し2017/06/03(Sat) 16:30:07ID:kyNzU2Nzk(2/2)NG報告

      女真族満州族と、漢民族や朝鮮民族やアフリカ人に共通点があっても同じとするのもおかしいね。
      高句麗まで溯っていけば現在の半島国家国民と当時の地域住民や支配層や各地民族は別物ともできる。扶余諸語やツングース系とされる高句麗語については『後漢書』や『三国志』にも書かれている。
      「清」が満州人ではなく朝鮮人によって建国されていばこの地域での越境問題は無かったが、満州は朝鮮人の地と考えることには無理がある。

    • 11名無し2017/06/05(Mon) 08:10:12ID:U5NzgwOTU(1/1)NG報告

      韓国人っていつもすぐ馬脚を現すよねwきっと前頭葉に何らかの欠陥があるの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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