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백제 연합군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부대에 대패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은 고구려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정복왕으로,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한 임금이다. 영락 10년(서기 400년) 왜군이 새카맣게 한반도 남부에 몰려오자, 신라가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광개토대왕이 5만의 군대를 보내 왜군을 쫓아내고 임나가야 종발성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왜군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내용이다.
당시 고구려가 한반도 남쪽에 파병한 5만의 기병과 보병은 당시로선 엄청난 병력이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당시 전체 인구가 69만호였는데, 1호를 5명으로 잡으면 350만명 정도가 된다. 고대에는 인구 증가율이 극히 낮았기 때문에 이 인구를 광개토대왕 당시의 인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중 남자 성년 인구를 100만으로 보면, 신라를 돕기 위해 파병한 5만의 고구려군은 당시로선 엄청난 병력이었다고 할수
있다.
서기 400년 고구려는 이웃 연(燕)나라의 모용(慕容)씨와도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한 셈이다. 광개토대왕은 서쪽 강국인 모용씨의 나라와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신라를 구원하고 이 땅을 침범한 왜군을 몰아내기 위해 동원할수 있는 최대 병원을 파병한 것이다.
신라의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명 그릇을 통해서도 당시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이었다는게 드러났다.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강력한 힘에 맞서 백제와 결혼 동맹으로 견제를 하였다.
바닥에 새겨진 글자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으로 '국강(國罡) 위에 있는 광개토대왕릉용 호우'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광개토대왕의 제사를 위해 만든 제기인데, 어째서 신라로 흘러들어갔는지는 불명. 신라 내물 마립간(왕)의 아들 복호가 볼모로 잡혀있을 때 장수왕으로부터 하사받아 신라로 가져왔다고 추정했다チャンケに5000年属国にされた半島チャンケ
>>1
www>>1
ああ、1600年前から、韓/朝鮮半島では、北部が南部を支配する構造になっている訳ね。
で、現在もそれは変わっていない、と。百済 日本属国
新羅 日本属国
↓
百済 高句麗属国
新羅 高句麗属国
この時代の高句麗は韓国史に含まれない。
新羅→高麗と変わるが、高句麗が滅んで250年後の世界である。
~高句麗668年滅亡
高麗918年建国~
後高句麗は「新羅から独立」そして新羅を倒して高麗建国
新羅の内紛がなぜか高句麗の歴史の根拠になるアホの国
それが韓国>>6
そんな歴史は無いな。当時の東アジアは唐、高句麗、日本だったことが良く分かるよね。
その間に挟まって百済、新羅が二重外交を行っていたんだろう。まぁ、何れにしろ今の朝鮮人の祖先は奴隷層だったんだからどうでもいいだろ
高句麗は紀元前37年頃に満州に建国された。
高句麗を建国したのは朝鮮民族ではない。
高句麗は満州で勢力を拡大し支配領域を広げた。
朝鮮半島には漢が紀元前108年から漢四郡を置いて朝鮮半島の北半分を植民地支配していたので、高句麗は朝鮮半島に侵入す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
しかし高句麗は満州で350年ほど掛けて勢力を拡大し力を付け、西暦314年に朝鮮半島に侵入して漢四郡を攻撃した。
高句麗は、漢四郡を遼東まで追い払って朝鮮半島の北半分を新たに支配領土に加えた。>>11
>朝鮮半島の統一は、韓国がアジアを代表する大国になることを意味する。
そう思うのなら、早く統一して見せろよw 口先だけのハッタリ民族www>>11
そういう歴史があったらいいなぁという願望だけは理解できる。>>6
朝鮮学校では、そう言う歴史を学んでいるのか?【朝鮮半島の統治国の歴史】
紀元前108年~220年:漢(植民地)
221年~245年:魏(植民地)
108年~313年:晋(植民地)
314年~676年:晋宋梁陳隋唐(属国)
690年~900年:渤海(属国)
1126年~1234年:金(属国)
1259年~1356年:モンゴル(属国)
1392年~1637年:明(属国)
1637年~1897年:清(属国)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신라
16
ツイートLINEお気に入り
1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