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아전쟁을 함께치른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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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달콤한인생2020/05/06(Wed) 21:44:19ID:c5MDA5ODA(1/53)NG報告

      https://blog.naver.com/2greens/221322062861

      쇼와 19년경에 도쿄에 유학하던 조선인들이 경성(서울)의 조선인거리 극장에 들어갔더니 뉴스 영화로 상영되는 일본군의 전황에 관한 뉴스에 관객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도쿄의 영화관조차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쇼와 13년에 군대가 사병을 모집한 결과, 정원 400명에 2,946명이 응모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모집도 경이적인 배율이 됩니다.
      1939년 12,348명 지원 613명 합격
      1940년 84,403명 지원 3,060명 합격
      1941년 144,743명 지원 3,208명 합격
      1942년 254,273명 지원 4,077명 합격
      1943년 303,394명 지원 6,300명 합격
      1944년 일본과동일한 징병제실시
      최정근(高山昇)중위는 오키나와전에서 적함 초계 중에 적함선 무리를 발견하고 적함선을 향하여 돌진했습니다. 급강하 폭격 중에 탄에 맞아 귀환은 바랄 수 없었는데 순간적이었다고 합니다. 이하 그 감상입니다.
      "몸은 반도에서 태어났어도 충성하는 마음으로 나라에 헌신하였으며 앞장서 진두에 서서 부하들을 위해 특별히 헌신하였다"
      쇼와 20년 이오 섬 전투에서도 조선인 군속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용감하게 싸운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폭뢰를 품고 적 전차에 돌입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답니다.
      "원산 지구 육전대의 대다수는 반도인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용맹 과감하게 밤낮 없는 백병전으로 적을 격퇴. 지휘관 아래 그곳을 사수하여 통제하는 전투를 실시하고 있다, 육해군 칭찬의 대상..."(최고사령부앞 전문(電文)
      [출처] 대동아전쟁을 함께 치른 조선인|작성자 박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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