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島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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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まるだし2016/12/09(Fri) 11:33:16ID:Q3NTYxNDc通報

    韓国の方にお聞きしたい。竹島(韓国名 独島)が韓国に帰属する理由について、歴史的な証拠を上げていただきたいです。
    誰がどう考えても不当に占拠されている日本国の領土であると思うので。

  • 167fff2016/12/13(Tue) 00:21:27ID:U3ODM2OTk(9/25)NG通報

    >>166

    70. 위 55의 문제를 위 7의 문서 작성자들이 피해간 방법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71. 위 7의 문서 작성 직전까지 일본인은 울릉도를 竹島, 松島, 또는 울릉도라고 불렀다.
    72. 나카이 요자부로의 대하청원에는 울릉도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73. 위 41의 문서에는 울릉도가 竹島라고 표시되어 있다.
    74. 위 41의 문서에 독도는 松島로 표시되어 있다.
    75. 위 7의 문서에서 73-74의 이름을 계승하면 위 53의 요건을 피할 수 없었다.
    76. 울릉도에 마츠시마라는 이름을 붙이면 위 41의 문서는 해독하기 어렵게 된다.
    77. 위 76의 난해함은 현대 일본 학자 시모조 마사오가 겪은 바 있다.
    78. 위 76의 이유로, 위 7의 문서 작성자들은 위 71의 이름 중 마츠시마를 택하기로 했다.
    79. 위 78의 선택으로 인하여 위 73의 竹島는 울릉도가 아닌 섬의 이름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80. 위 79에 관련하여, 위 73의 竹島는 독도 바로 옆의 죽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81. 위 80의 사실은 위 77의 사실로써 증명된다.
    82. 위 79에 관련하여, 위 73의 타케시마는 한반도와 울릉도 사이의 상상의 섬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83. 위 82의 가능성은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2008년에 있던 이름 변천 설명으로써 증명된다.
    84. 위 78의 수단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위 73의 竹島를 독도에 갖다 붙이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85. 위 7의 문서 직전까지 일본인은 독도를 松島 또는 양코시마라고 불렀다.
    86. 위 85에 관련하여, 일본은 그때까지 독도를 '竹島'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
    87. 위 83의 설명에서, 독도를 竹島라 한 것은 울릉도가 松島라 불렸기 때문이라 했다.
    88. 위 87의 사실은 위 83을 증명한다.
    89. 위 71-88에서 보는 바, 일본은 타케시마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위 55의 문제를 피해간 것이다.
    90. 위 89에 의거, 타케시마라는 이름은 위 7의 문서의 불법성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 168fff2016/12/13(Tue) 00:21:52ID:U3ODM2OTk(10/25)NG通報

    >>167

    91. 위 58과 위 90의 관점에서, 일본이 위 7의 문서를 합법적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를 검토한다.
    92. 위 91를 위해서는 위 53의 요건이 이행될 수 있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93. 위 53의 요건은 위 7의 문서 속에 "이로써 1877년 태정관지령은 수정된다"고 명시하는 것이다.
    94. 위 93을 위해서는 독도에 관한 관점이 바뀌는 사유가 있어야 한다.
    95. 위 94의 사유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실 조사에 대한 노력이 필요했다.

  • 169fff2016/12/13(Tue) 00:22:17ID:U3ODM2OTk(11/25)NG通報

    >>168

    96. 한일의정서는 1904년 2월에 작성된 한일간의 조약이다. .
    97. 위 96의 문서에 의거, 일본은 한국의 국토를 보전해줄 의무를 지고 있었다.
    98. 위 97의 댓가로 한국은 러일전쟁을 위해 일본에게 필요한 땅을 제공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99. 한국은 위 98의 의무를 다했다.
    100. 위 99은 쓰시마 해전을 위해 일본 함대가 출발한 곳이 한국땅 진해였음으로써 증명된다.
    101. 제1차 한일협약은 1904년 8월에 작성된 한일간의 조약이다.
    102. 위 101에 의거, 한국은 일본이 추천하는 외교고문을 고용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103. 위 7의 문서 작성 당시 위 102의 외교 고문이 이미 한국에 고용되어 있었다.
    104. 위 103의 외교고문은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ns)였다.
    105. 위 104의 인물은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의 권총을 맞고 죽었다.
    106. 위 96-104에 의거, 위 92의 노력은 한국쪽의 문서를 검토하는 절차를 포함한다.
    107. 위 106에 의거, 위 91의 의문은 한국쪽 문서를 조사했는지 않았는지에 달려 있다.

  • 170fff2016/12/13(Tue) 00:23:56ID:U3ODM2OTk(12/25)NG通報

    >>169
    108. 위 95의 필요성과 위 101의 조약을 검토할 때, 위 107의 조사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09. 당시 한국에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발효중에 있었다.
    110. 위 109의 문서에는 鬱陵島, 竹島, 石島가 한국 관할 섬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111. 위 110의 두 이름 중 竹島는 한자 표기일 뿐, 실지 이름은 대섬이었다.
    112. 위 111의 사실은 일본인이 작성한 1906-1907 지도에 나타난다.
    113. 위 25의 문서에는 "한국인들은 이를 독도라고 기재한다"고 되어 있다.
    114. 위 113은, 문제의 섬의 실지 이름은 '독섬'이었음을 뜻한다.
    115. 위 112의 사실은 그 섬이 1950년대까지 그냥 '독섬'으로 불렸던 사실로써 증명된다.
    116. 위 113의 사실은 위 111의 사실로써 보강된다.
    117. 위 113의 사실은 위 112의 지도에 나타나는 다른 섬 이름 '섬목'으로써 보강된다.
    118. 문제의 초점은 위 110 에 나타나는 '석도'가 '독섬'의 기재방법이 될 수 있는가에 있다.
    119. 그 주변의 섬 대섬은 그 뜻에 따라 죽도로 적혔다.
    120. 그 주변의 섬 섬목은 그 뜻에 따라 도항으로 적혔다.
    121. 따라서 위 113의 기재방법은 기록자가 독섬의 뜻을 "외로운 섬"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122. 한국어 '독'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
    123. 위 122 중 독도의 특성에 해당되는 뜻은 세 가지가 있다.
    124. 독도의 모습은 독 같이 생겼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옹도'라고 표기할 수 있다.
    125. 위 124의 표기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옹도로 읽기도 하고 독섬이라 읽기도 했다.
    126. 독도는 울릉도에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독도'라고 표기했다.
    127. 위 126의 표기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독도로 읽기도 하고 독섬이라 읽기도 했다.

  • 171fff2016/12/13(Tue) 00:24:28ID:U3ODM2OTk(13/25)NG通報

    >>170

    128. 독도는 수목이 없는 돌섬이며, 당시 다수 울릉도 사람들은 돌섬을 '독섬'으로 발음했다.
    129. 위 128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石島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130. 위 129의 표기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석도, 돌섬, 또는 독섬으로 읽었다.
    131. 위 111-130의 사실에 의거, 위 111의 석도의 실지 이름은 돌섬 또는 독섬이었음이 분명하다.
    132. 위 131의 결론에서, 위 110의 석도의 실지 이름이 돌섬이라고 가정해 본다.
    133. 위 132와 위 114를 종합하면, 그 지역에 돌섬과 독섬이라는 두 섬이 존재했다는 말이 된다.
    134. 울릉도 주변에서 위 110의 칙령에 등장할 만한 섬은 관음도, 죽도, 독도 등 셋 뿐이다.
    135. 그 중 둘의 이름이 각각 돌섬, 독섬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136. 위 132-135를 종합하면, 위 110의 석도의 실지 이름은 독섬이었음에 틀림없다.
    137. 위 119-120의 사실은 위 131의 결론을 보강한다.
    138. 위 136-137에 의거, 위 110의 석도는 독도 밖에 다른 후보가 없다.

  • 172fff2016/12/13(Tue) 00:24:55ID:U3ODM2OTk(14/25)NG通報

    >>171

    139. 위 138의 정황에서 일본이 위 107의 노력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검토한다.
    140. 위 139에 관한 의문은 1906년 3월부터 나타난 일로써 판단할 수 있다.
    141. 제2차 한일협약은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한일간의 조약이었다.
    142. 위 142의 조약은 위 7의 문서보다 10개월 뒤인 1905년 11월에 작성되었다.
    143. 위 141의 조약으로부터 4개월 뒤, 일본은 처음으로 독도편입 사실을 한국에 알렸다.
    144. 위 143의 통보를 받은 사람은 당시 울도군수 심흥택이었다.
    145. 위 143의 통보를 받은 심흥택은 즉시 내부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146. 위 145의 이의 제기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일본에 항의한 증거는 없다.
    147. 위 146의 항의 불능 상태는 위 141의 조약 때문일 수도 있다.
    148. 위 96의 조약과 위 101의 조약도 한국의 항의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었다.
    149. 위 148에 의거, 위 7의 문서 작성 이전에도 한국이 항의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150. 위 140-149의 사실에 의거, 일본이 위 107의 노력의 결과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151. 위 150의 정황에서 일본은 위 90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 173fff2016/12/13(Tue) 00:25:22ID:U3ODM2OTk(15/25)NG通報

    >>172

    152. 위 7의 문서 작성자들은 위 90의 수단을 사용하여 문서 자체의 일체성만 추구했다.
    153. 위 152는, 국내의 다른 문서, 조약, 타국의 문서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154. 위 153은 위 58, 위 97, 위 138로써 증명된다.
    155. 위 152는, 또 그 문서와 사실과의 비교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156. 위 7의 문서 작성시 나카이 요자부로는 울릉도 주민이었다.
    157. 위 156의 사실은 불법이었다.
    158. 위 157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 7의 문서에는 "나카이가 그 섬에 이주하고"라고 썼다.
    159. 위 158의 사실은 위 15-26이 불가피했음을 설명한다.
    160. 위 90의 수단으로써 위 7의 문서에는 "형적이 없다"는 표현이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161. 위 152-160은 위 58을 보강한다.

  • 174fff2016/12/13(Tue) 00:25:51ID:U3ODM2OTk(16/25)NG通報

    >>173

    162. 위 150의 상황에서 일본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위 151이 아닌 다른 길을 본다.
    163. 위 150의 상황에서, 일본이 위 107의 노력을 했더라면 한국의 반발을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164. 일본에게 국가 차원의 영유의지가 있었다면, 그러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165. 위 107의 노력이 없었다는 것은 국가 차원의 영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66. 위 165를 밝히기 위해, 일본이 독도를 영유할 필요가 있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167. 일본이 독도를 영유할 필요가 있었다면, 그 필요성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68. 독도편입을 "러일전쟁에 독도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에 맞추어 검토해 본다.
    169. 위 96-100에서 설명된 조약에 의거, 일본은 한국땅을 편입 없이도 사용할 수 있었다.
    170. 독도 망루 건설이 착수된 것은 쓰시마해전이 끝난 후다.
    171. 쓰시마해전에서 비로소 해군은 독도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172. 독도편입 당시 울릉도 외 여러 곳에 이미 망루가 건설되어 있었다.
    173. 해군이 군사적 목적을 가졌다면 독도편입 이전에 이미 독도에 망루를 건설했을 것이다.
    174. 위 173의 근거는 위 158의 허위표명보다 훨씬 나은 편입 근거가 될 수 있었다.
    175. 위 169-174에 의거, 독도편입은 군사적 목적과는 상관 없었다.
    176. 위 166-167에서, 독도편입의 필요성은 나카이의 강치잡이 사업 뿐이었다.
    177. 위 170에 의거, 위 7의 문서는 나카이의 강치잡이를 보장하기에 적합하면 그만이었다.
    178. 위 58과 위 177에 의거, 위 7의 문서는 위 176의 목적에만 맞도록 작성된 것이다.
    179. 위 175와 위 178에 의거, 위 7의 문서에는 국가 차원의 독도 영유 의지가 없었다.

  • 175fff2016/12/13(Tue) 00:26:32ID:U3ODM2OTk(17/25)NG通報

    >>174

    180. 위 58과 위 179에 의거, 위 3의 소견서는 근거가 없다.
    181. 위 180에 의거, 위 1의 상태가 무리가 아니라면 모든 것은 위 1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182. 작은 배를 탄 사람에게 독도와 울릉도가 동시에 보이는 해역은 약 5천 평방킬로미터가 된다.
    183. 상당히 큰 배를 탄 사람에게도 독도와 오키섬이 동시에 보이는 해역은 전혀 없다.
    184. 위 182-183에 의거, 스카핀 677호와 1033호는 무리가 아니었다.
    185. 스카핀 1778호는 스카핀 1033호에 위반된다.
    186. 스카핀 1778호 속에서 스카핀 1033호는 언급되지 않았다.
    187. 위 185-186에 의거, 스카핀 1778호는 스카핀 1033호를 수정하지 못했다.
    188. 위 187의 이치는 위 56의 이치와 맥을 같이한다.
    189. 위 183은 위 2의 문서를 뒷받침한다.
    190 위 182-189에 의거, 위 1의 상태는 무리가 아니었다.
    191. 위 181와 위 190에 의거, 위 3에서 시작된 독도분쟁은 없던 일로 된다.
    192. 위 33과 위 39에 의거, 차후 어떠한 증거도 새로운 독도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http://blog.naver.com/isoword/110180051232

  • 176名無し2016/12/13(Tue) 00:30:46ID:kxMjk2Mjk(1/2)NG通報

    読む気を無くす作戦なのか?

  • 177名無し2016/12/13(Tue) 00:30:50ID:M3NDkxODc(1/4)NG通報

    >>174
    第三者であるアメリカは竹島を日本の領土だと認識してます。
    これについてどう思う?

  • 178名無し2016/12/13(Tue) 00:34:26ID:ExOTUwOTA(1/6)NG通報

    全部貼るのか、、、一通り読んだが、肝心の韓国が領有してた根拠が無いな。

    名前が独島で、韓国が領有してたと言う根拠から無いのに、存在する前提で日本の根拠の粗探ししてる。
    これでは、1905年の竹島編入が最初になり、その長文は無意味だ。

  • 179名無し2016/12/13(Tue) 00:35:12ID:Q5NTM1MTM(1/5)NG通報

    すごい大量だけれども、インデックス見ただけで、日本人は簡単に 論破できますね。

  • 180名無し2016/12/13(Tue) 00:36:04ID:Q5NTM1MTM(2/5)NG通報

    ラスク書簡が 入っていないのは 意図的なのだろうな。

  • 181名無し2016/12/13(Tue) 00:40:17ID:M3NDkxODc(2/4)NG通報

    >>180
    韓国政府の独島が韓国の領土である根拠を紹介するHPがあるんだけど、ラスク書簡について記述なし。
    韓国政府にはラスク書簡が困るんだね。

  • 182名無し2016/12/13(Tue) 00:44:18ID:ExOTUwOTA(2/6)NG通報

    >>178

    と思ったら、まだ続いていたのか。
    しかし、見事に全部論破された内容だな。

  • 183名無し2016/12/13(Tue) 00:44:48ID:Q5NTM1MTM(3/5)NG通報

    >>181
    一方、日本政府の竹島紹介HPは、韓国からはアクセス制限で見れないそうですね。

  • 184fff2016/12/13(Tue) 00:47:31ID:U3ODM2OTk(18/25)NG通報

    >>178

    내 생각에는 이 사람의 생각은 "만약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볼 근거가 없으면 왜 샌프란시스코 제1초안에서부터 제5초안까지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기재하였으며 이 때 일본은 왜 항의를 하지 않았는가?"인 것 같다.

  • 185fff2016/12/13(Tue) 00:49:52ID:U3ODM2OTk(19/25)NG通報

    >>178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사람의 논리로 말하자면 기존의 石島라는 것이 만약 독도가 아니라면 이를 상정할 수 있는 섬들 중에 다른 섬으로 가정하면 모순이 발생한다인 것 같다.

  • 186名無し2016/12/13(Tue) 00:53:11ID:kwNzYxOTA(1/1)NG通報

    まぁ…南朝鮮人に経済圧力と外交圧力を加える時が来るだろうね!

    次の南朝鮮の大統領次第じゃない?
    日本政府もこのままで言い訳ないし…
    憲法改正したら益々やりやすくなるね!

  • 187fff2016/12/13(Tue) 00:56:43ID:U3ODM2OTk(20/25)NG通報

    >>178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만들고 있을 당시에 일본이 처음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가지고 항의했을 때 제출했던 문서에 대하여 실제 사실과의 괴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이 사람의 大戰略은 "입증책임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게 있다."인 것 같다.

  • 188fff2016/12/13(Tue) 00:58:13ID:U3ODM2OTk(21/25)NG通報

    >>178

    그리고 이러한 사실과의 괴리가 미국 측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고(러스크 서한) 그 오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가 한국령에서 빠졌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다.

  • 189名無し2016/12/13(Tue) 00:59:31ID:Q5NTM1MTM(4/5)NG通報

    >>187
    条約の1~5草案を根拠にしても意味は無い。
    実際締結した条約では、竹島は日本領と 読めるからね。

  • 190名無し2016/12/13(Tue) 01:00:53ID:ExOTUwOTA(3/6)NG通報

    >>184

    草案に抗議をしなかったのではなく、草案でしか韓国の領土と認められませんでしたよ。
    発効された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では韓国の島と認められておりません。

    これだけで最初の方は全部無意味な話しになる上に、日本から独立した韓国の範囲を決める条約から、最後に意図して独島が外された時点で話しが終わるのです。

  • 191名無し2016/12/13(Tue) 01:01:02ID:Q5NTM1MTM(5/5)NG通報

    >>188
    誤解と 解釈すれば 条約なんて 意味なくなるね。
    現在の韓国の 慰安婦合意廃棄論と同じ。

    韓国人は条約や合意を 簡単に変えられると思っているのかな???

  • 192名無し2016/12/13(Tue) 01:04:07ID:ExOTUwOTA(4/6)NG通報

    >>188

    ラクス書簡も竹島を日本領と認める文書です。

  • 193外務省のHPより引用 2016/12/13(Tue) 01:05:38ID:M3NDkxODc(3/4)NG通報

    1.
    1951(昭和26)年9月に署名された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は,日本による朝鮮の独立承認を規定するとともに,日本が放棄すべき地域として「済州島,巨文島及び鬱陵島を含む朝鮮」と規定しました。
    2.
    この部分に関する米英両国による草案内容を承知した韓国は,同年7月,梁(ヤン)駐米韓国大使からアチソン米国務長官宛の書簡を提出しました。その内容は,「我が政府は,第2条a項の『放棄する』という語を『(日本国が)朝鮮並びに済州島,巨文島,鬱陵島,独島及びパラン島を含む日本による朝鮮の併合前に朝鮮の一部であった島々に対するすべての権利,権原及び請求権を1945年8月9日に放棄したことを確認する。』に置き換えることを要望する。」というものでした。
    3.
    この韓国側の意見書に対し,米国は,同年8月,ラスク極東担当国務次官補から梁大使への書簡をもって次のとおり回答し,韓国側の主張を明確に否定しました。
    「・・・合衆国政府は,1945年8月9日の日本によるポツダム宣言受諾が同宣言で取り扱われた地域に対する日本の正式ないし最終的な主権放棄を構成するという理論を(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がとるべきだとは思わない。ドク島,または竹島ないしリアンクール岩として知られる島に関しては,この通常無人である岩島は,我々の情報によれば朝鮮の一部として取り扱われたことが決してなく,1905年頃から日本の島根県隠岐島支庁の管轄下にある。この島は,かつて朝鮮によって領有権の主張がなされたとは見られない。・・・」
    これらのやり取りを踏まえれば,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において竹島は我が国の領土であるということが肯定されていることは明らかです。
    4.
    なお,1954年に韓国を訪問したヴァン・フリート大使の帰国報告にも,竹島は日本の領土であり,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で放棄した島々には含まれていないというのが米国の結論であると記されています。

  • 194fff2016/12/13(Tue) 01:09:06ID:U3ODM2OTk(22/25)NG通報

    >>190

    만약 한국이 독도문제를 놓고 ICJ에 가게된다면(그럴 일은 없겠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최종안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조약 체결 당시에 독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흐름이 전개되어가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 아닐까요?

    만약 샌프란시스코 초안 작성부터 체결과정 그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법적 미비가 있었는지도 ICJ에서는 충분히 검토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러하라면 저 사람의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 195韓国政府が紹介する独島が韓国の領土である根拠 2016/12/13(Tue) 01:10:53ID:M3NDkxODc(4/4)NG通報

    http://dokdo.mofa.go.kr/jp/

    文章をコピー出来ないので、HPのURLを貼ります。

  • 196fff2016/12/13(Tue) 01:15:40ID:U3ODM2OTk(23/25)NG通報

    >>195

    적어도 제가 인용한 사람의 주장으로는 "한국의 외교부가 제시하는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로 ICJ에 가서 일본정부와 상대한다면 반드시 진다"입니다.

  • 197名無し2016/12/13(Tue) 01:20:29ID:ExOTUwOTA(5/6)NG通報

    >>194

    締結された条約の条文以外に意味は有りません。
    締結された条約の中身が今更変えられないからです。
    そして、竹島は日本からはずされませんでした。

    そもそも、大韓帝国は日本に併合され、大韓民国という新しい国が日本から国土を与えられ出来たのです。大韓帝国が領有したか領有しなかったか自体が本来、意味を持ちません。

  • 198名無し2016/12/13(Tue) 01:24:25ID:Y2MjQwNzU(1/2)NG通報

    韓国に不都合な条約は、誤解や間違いによって結ばれたものであり、正当な名分を認めないため無効

    いつもこれだな、李氏朝鮮時代、大韓帝国時代、大韓民国時代。

    そうやって押しとおせると百年単位で教育されてるのか?
    日本が譲歩してきたから、ずっと押しとおせるという成功体験が悪影響を韓国人に及したか?
    韓国国内はそれでいいとしても、国際条約までも?

  • 199名無し2016/12/13(Tue) 01:34:15ID:Y2MjQwNzU(2/2)NG通報

    >>196

    韓国が負けるという自覚があるから、
    不法占拠と政治家の上陸、
    独島教育に日本海名称問題、
    国際条約で解決済みの慰安婦および歴史問題を持ち出して、
    告げ口外交と慰安婦像とユネスコ登録で、
    日本に言いがかりで圧力と国際的信用低下をかけたが、
    韓国が裁判所に行かない理由だな。

    竹島返せば反日の動機も減るだろうに

    領有の正当性を示せないから、日本の正当性を貶めようとした。
    韓国人の悪癖だよ。

  • 200fff2016/12/13(Tue) 01:47:53ID:U3ODM2OTk(24/25)NG通報

    >>199

    혹시 당신은 ICJ에서의 재판에서 영유권과 관련하여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고 판단하는지 아나요? 저는 잘 모르기 때문에 확답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은 이것을 아주 잘 아시는 것 같으니깐 이런 댓글을 달았겠죠?

    적어도 당신의 말에 의하면 조약체결과정이나 그 외의 기타 여러가지 사료보다는 이미 체결된 조약의 최종안의 해석만이 ICJ에서 고려되어야할 대상으로 본다는 거군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ICJ의 영유권재판은 그렇게 複雜多難하지도 않겠군요.

    참고로 저는 독도에 대해서 지식이 미천해서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용과정에서 피인용자의 주장이 왜곡되어 전달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 201fff2016/12/13(Tue) 01:56:00ID:U3ODM2OTk(25/25)NG通報

    그리고 이 곳 혐한처럼 ICJ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문 그자체의 해석을 가지고 논한다고 쳐도 일본 측은 독도가 샌프란시스코조약 최종안에 빠진 것은 단순히 표기하지 않은 것이 아닌 실질적인 일본 영토임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것의 근거로 "러스크서한"을 빌미로 들고 올 것이고 한국 측은 "러스크서한"이 1905년 각의의결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문서이며 1905년 각의의결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사실 빠져나갈 구멍은 많습니다.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ICJ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체결과정 전반을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제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제 나름대로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 202名無し2016/12/13(Tue) 01:59:06ID:ExOTUwOTA(6/6)NG通報

    >>200

    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の協議など考慮されるわけありません。
    結論は出で、締結までされているので。
    新たな条約で上書きされることは有りますが、締結後に改編は出来ないのです。常識ですね。

    日本と連合国で結ばれた、韓国の領土を決める条文であり、韓国に返還する条文ではありません、もし、済州島を韓国領にしないとされていれば、以前の領有など関係なく日本の島となるのが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です。

  • 203名無し2016/12/13(Tue) 02:00:34ID:kxMjk2Mjk(2/2)NG通報

    問題があったったから最終的に省いたんですよね

    問題がなければ、載せたままでいいのだから

    省いた経緯が大事なのではないのかな

  • 204名無し2016/12/13(Tue) 02:18:10ID:g0MDU0ODk(3/3)NG通報

    1951.04.07日付イギリスによる草案には
    日本が放棄する領土の間を緯度、経度を用いて線を引く事を記載していて
    それでは放棄する領域に「竹島」が含まれているようだ
    しかしイギリスによる草案の添付注意書きには、
    「英連邦諸国の合意文書ではなく、連邦諸国政府の見解表現とみなされるものではない」旨が記されていた
    米国側が英国作成の平和条約案を内示して日本側意見を求めたのに対し、米国案の方がはるかに望ましいと回答した

    1951.05.03日付アメリカとイギリスの合同委員会による草案では
    竹島は日本が放棄する領土に含まれていなかった

    1951.06.28 アリソン公使より井口次官が受領した平和条約の修正案文には、特に朝鮮や竹島に関する修正案はない

    1951.07.03. シーボルト大使から西村局長が受領した英米合同草案でも、竹島は日本が放棄する領土に含まれなかった

    1951.07.20 米国が、各国に、7/20日付けの草案を送付した
    竹島は日本が放棄する領土に含まれなかった

    1951.08.16 英米共同最終草案を公表
    竹島は日本が放棄する領土に含まれなかった
    英米共同最終草案の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は1951年9月8日調印され、1952年4月28日発効した

    1952.07.26 日本政府とアメリカ政府は、竹島を、日米行政協定における米軍の爆撃訓練地として指定する協定を結んだ
    この日米行政協定は、竹島が日本が放棄する領土に含まれなかった証拠だ

  • 205常識疑え2016/12/13(Tue) 04:47:10ID:c0Njc3MzY(1/1)NG通報

    FFFさん
    長文お疲れ様です。
    FFFさん自身は恐らく竹島(独島)が韓国領だと信じ切ってはいないとは思います。
    あなたの意見ではない事は重々承知の上で反論を書きましょう。

    色々突っ込みどころがありますが、1900年より以前に李氏朝鮮が竹島(独島)を領有していたと言う仮定になっていますが、これがまず根拠がないですね。
    韓国人は色々な理由を付けますが、全て鬱陵島と竹嶼の物であり、竹島(独島)にあたるものは一切ありません。

    石島の記載についてですが、これは日本側に反論根拠があり、竹島(独島)ではない事は既に明らかです。

    加えて日韓併合についても同様なのですが、韓国側は既に世界が認めた事について荒探しをして無効だと言う主張をしていますが、その時点で矛盾してますよね。
    つまり最終決定で韓国の主張は認められていないという事実を韓国側が認めている様なものですからね。

    後SF条約締結時の日本の立場を考えてみてください。
    敗戦国ですよ?連合国から東京裁判で悪を押しつけられる様な立場ですよ?
    なのに日本が何かを無視して主張したとしても、根拠がなければ連合国が認めるわけないじゃないですか。。。w
    その当時の日本は高度経済成長後と違って発言権も経済力も極小の立場です。
    だから日本が不当な工作をしてSF条約の最終文で竹島(独島)の記載を抜いたと言う韓国側の妄想が荒唐無稽としか言い様がないですよ。

  • 206名無し2016/12/13(Tue) 06:32:56ID:YwNzMzOTc(1/5)NG通報

    http://seitousikan.blog130.fc2.com/blog-entry-164.html

    ■1951年、大東亜戦争の戦後処理条約の草案起草過程において、
    韓国が米国に対して、日本が放棄する地域に竹島を入れるよう要求したが
    拒否され、竹島が日本領として残される事が決定→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

    ■1952年1月18日、大韓民国大統領・李承晩が「李承晩ライン」といわれる
    領海水域を一方的に設定して竹島を占領。

    日本は敗戦と日本国憲法で軍隊を持っていなかったため何もできなかった。
    アメリカやイギリスは韓国の横暴を一応、言葉で非難。
    日本は国際司法裁判所に提訴したが韓国側は応じなかった。

    ■1952年4月28日、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発効。(大東亜戦争の戦後処理条約)

    〓〓〓〓〓〓〓〓〓〓〓〓〓〓〓〓〓〓〓〓〓〓〓〓〓〓〓〓〓〓〓〓〓〓

    1952年(昭和27年)1月18日、大韓民国大統領・李承晩が、
    竹島は韓国の領土であると一方的に宣言して竹島を占領。
    近海を含む「李承晩ライン」を設定し、
    朝鮮半島周辺(最大200マイル)の水域内に存在する全ての天然資源、水産物
    を利用する権利を主張した。

    当然ながら日本は「李承晩ライン」を認めなかった。

  • 207名無し2016/12/13(Tue) 06:33:47ID:YwNzMzOTc(2/5)NG通報

    1953年1月12日、韓国政府は李承晩ライン内に出漁した日本漁船の徹底拿捕を
    指示し、このラインを越えた日本漁船と乗組員に対して銃撃を開始。
    2月4日には日本漁船「第一大邦丸」の漁労長・瀬戸重次郎氏(34)が
    韓国艦の銃撃によって射殺される『第一大邦丸事件』が起きるなど、
    その後も韓国艦による日本人漁師の殺害、漁船の拿捕、
    乗組員の拉致、監禁などが続いた。

    1965年(昭和40年)6月22日の日韓基本条約・日韓漁業協定の成立までに、
    ・死傷者44人(うち死者8人、負傷者36人)
    ・拉致、監禁された日本漁民3929人(最長13年)
    ・強奪された船舶328隻
    にのぼった。

    韓国(朴正煕政権)は不当に拿捕して抑留した日本人漁民3929人を人質とし、
    拉致した日本人漁民たちの釈放を条件としながら、
    日韓基本条約や日韓法的地位協定の交渉を有利に進めた。

    韓国による竹島不法占拠に伴い、
    周辺の広大な排他的経済水域内で竹島が無いものとして
    日韓両国の中間線を基準に日韓暫定水域が設定されているが、
    日本側が大幅に譲歩した内容となっている。

    日韓法的地位協定によって在日韓国朝鮮人は、
    その子孫までも永住許可を得ることとなった。

  • 208名無し2016/12/13(Tue) 06:34:16ID:YwNzMzOTc(3/5)NG通報

    また、韓国は日本国内の在日朝鮮人犯罪者472人の釈放を要求したが、
    韓国は彼らの受入れを拒否したので
    日本政府は彼らを釈放して在留特別許可を与えた。

    1981年になると特例永住によって、
    韓国籍の者と同様に朝鮮籍の者にも永住許可が与えられた。

    1991年、「歴史的な経緯と、日本での定着性を踏まえた配慮」ということで、
    「日本国との平和条約に基づき日本の国籍を離脱した者等の
    出入国管理に関する特例法」(入管特例法)が定められ、
    すべての在日韓国朝鮮人が特別永住者として認められた。

  • 209名無し2016/12/13(Tue) 06:37:06ID:YwNzMzOTc(4/5)NG通報

    この時点で当時の韓国の正当性については弁解の余地なしですよ…
    アメリカの制止を無視しての武力占拠、死傷、拘留、恫喝。
    それで日本に数々の不当不平等条約を結ばせたんだから。
    しかも、その不平等条約では解決してないと、慰安婦問題まで遡及で持ち出してくる始末。

    韓国は竹島に、韓国人は日本に居座り、
    竹島も韓国人も日本に奪われた強制連行されたと 嘘いって居座ってる。いまだに。

    被害者の振りした加害者にして国際法犯罪者、屑の中の屑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
    だから、過去にさかのぼって名分をこじつけるか、日本の粗を探すか、条約の文面の粗を探してるんだから、居直り強盗そのものです。
    謝罪どころか、日本に取られたのを取り返したと主張してる。
    在日韓国人の問題もここに一因がありますし、仏像盗難も同じ理屈です。国民性かな?

    あと、当然、韓国に反日政権樹立を手助けした上に、口だけで制止はしても実行力は振るわないアメリカも屑ですな。

    まあ日本はアメリカに敗戦していたから致し方がないところはありますが、
    日本が韓国を侵略および、韓国によって敗戦したわけでもないというのに。

    *日韓併合については、国際社会の容認があった。アメリカもその一国だ。
    なのに、日本を悪く言うプロパガンダのために、日本が朝鮮を奴隷のように扱ってたと日本敗戦後に名目をでっちあげてる。

  • 210名無し2016/12/13(Tue) 07:05:17ID:YwNzMzOTc(5/5)NG通報

    …というか、この武力占拠と恫喝と拘留と死傷、韓国が正当化できてる名分を持ってるって、韓国人が信じてるというのが不思議だね。

    日本は韓国の言い分が「正しいから飲んだ」んじゃなくって、「人質」がいて「戦勝国であるアメリカからの圧力」があって、「アメリカと韓国と友好関係を築けていければ」と我慢しつづけた。

     これはいくつもの日韓関係にいえる。

     日本がゆずり続けていた、韓国がゆすり続けていた。

     何度も、韓国は「これで終わり」だと言ってたことを前言撤回して、日本が行った謝罪や賠償を何度も「韓国はなかったことにして」、
    政権が代わるたびに、条約の抜け道を探すように、こじつけて繰り返す。
     しかも、それは「日本の謝罪や賠償や反省が足りてないから」と責任転嫁したうえで。

     でも、韓国にどう譲っても無駄ということに、日本は気づいちゃった。
     反日で味を占めて、文化や国民感情にまでなった嘘つき韓国が、決してやめないことに気づいちゃった。
     韓国は政府も司法もマスコミも国民もグルで、日本を叩き続けてる。いまも。
     親日派は売国で、親日は用日で、反日は打算とストレス解消と与野党団結のための道具。

     歴史問題なんて嘘だね!

  • 211名無し2016/12/13(Tue) 08:31:25ID:k0Njk0Mzk(1/1)NG通報

    韓国は竹島の不法占拠を正当化させる根拠の一つとして、『韓国併合は違法だった』という主張もありますね。
    つまり“日本が竹島を含む韓国領土を併合した事が違法だから、日本の竹島領有は根拠がない事だと(それでも1905年の竹島が日本領土に編入する以前に、朝鮮が竹島を領有してた根拠にはなってない、皆無)”

    そこで韓国は、2001年に1月、4月、11月に韓国併合再検討国際会議を主導的に開いて、日本、アメリカ、イギリスらの国際法等の学者を集めて(参加した韓国側学者4人は違法ありき)、
    韓国併合(日韓併合)が違法である事を学術的に再検討させようとしたんだよね、「締結に玉璽がないから無効ニダ」という類の主張ね。
    ~で、その学術結果は『違法とは言えない』という日本側の主張に近い結論。

    そして、韓国の文部省は、この学術結果を自国の学校教育にちゃんと反映させてない(笑)
    都合悪い結果は隠蔽して、歴史改竄が成功するまでやり続けるという姿勢だよね。

  • 212名無し2016/12/17(Sat) 20:23:11ID:UyMzc3OTI(1/1)NG通報

    >>184
    >「もし独島が韓国の地と見根拠が存在しない場合、なぜサンフランシスコ第1草案から第5の草案までは何の根拠もなく、独島を韓国の地と記載し、このとき日本はなぜ抗議をしなかったか」

    そもそも第1草案から第5草案まではアメリカ内部の検討であって、日本や韓国には公開してない。抗議する以前の問題ですね。
    あと、「第1草案から第5草案」は、塚本氏の論文を見た韓国学者が勝手に番号付けしたもの。実際はもっと沢山の草案がある。

  • 213名無し2016/12/17(Sat) 20:24:12ID:I2MjM3OTM(1/1)NG通報

    독도는 일본땅이 맞으니까 일본영토로 하자

    그리고 한국에 관심좀 그만 가졌으면 ww

  • 214名無し2016/12/17(Sat) 20:38:12ID:Y3MzIxMzY(1/1)NG通報

    次の大統領で左派系を想定すれば
    トンスルランドの屑っぷりから考えて
    竹島に警察ではなく軍を常設しようとする動きすら十分ありえる

    そのような時どう対処するつもりか?
    隠岐の島や島根県に被害の矛先が向く可能性すらある
    今から韓国との関係の断ち切り方も想定しておくべき

  • 215まるだし2016/12/21(Wed) 11:47:26ID:g2NzE1NDM(2/3)NG通報

    結局、まともな資料も無く、ただやみくもに政府の言いなりで「あの島は~」とか言って歌いながら我が国を恨んできた・・と言う事ですか?

    ほんとに残念ですが、ちゃんとした理由で自国の領土主張もできず、声が大きければ黙るだろうと騒ぎ立てるのみ・・・

    隣国として残念至極です。

  • 216まるだし2016/12/21(Wed) 11:51:58ID:g2NzE1NDM(3/3)NG通報

    冷静に考えると、結論はこれにつきます。

    すなわち「李承晩大統領によって、日本から強奪した島である。さらに現在も占領中であり、日本国の干渉は一切受け付けない。」

    以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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