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舜臣がいつから英雄だったか知り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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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20/03/23(Mon) 14:24:23ID:cyNjY5NDY(1/1)NG報告

      李氏朝鮮後期にも英雄扱いされてた文章とかあるのかな。あったら見てみたい

    • 91名無し2020/11/29(Sun) 12:16:57ID:AxNTUwMDU(1/1)NG報告

      >>81
      東郷平八郎も記録がない朝鮮人の作り話でしょ
      最近目につくJFKの話も同様

    • 92名無し2020/11/29(Sun) 13:53:55ID:M4OTczMTM(1/1)NG報告

      日本のチョッパリの中では、東郷提督よりも李舜臣将軍の方が有名ニダ。
      昔のチョッパリ達は、敵であっても李舜臣将軍のがような英雄の事はリスペクトしているニダ。

      こんな戯言を本気で信じるバカがいるのが朝鮮人のレベル。
      不意打ちを仕掛けたので有れば、島津に大きな損害でも与えていれば一目置かれたかもしれないが、無惨に返り討ちで犬死だから、歴史を少しでも知っている日本人が李舜臣を尊敬する事はないし、大半の日本人は、そもそも李舜臣を知らない。

    • 93名無し2020/11/29(Sun) 16:54:50ID:YwMzA3NTU(1/2)NG報告

      >>92
      学研から1990年代中頃から出版された歴史群像シリーズ(赤い歴史本)には、秀吉の朝鮮出兵の話題もあってね。

      その本の中には、“日露戦争で東郷は李舜臣を尊敬していたが、日本人が李舜臣を尊敬するのは烏滸がましい”的なコラムが書いてあってね。
      俺も本屋で一度だけ読んだだけだから、誰が書いたか忘れたが、確か在日だったかな。

      朝鮮人が“東郷は李舜臣を尊敬してた”という朝鮮人がついた嘘
      (東郷が言ってた事を朝鮮人以外誰も聴いてないし、東郷が他場所でも同じく尊敬する発言してた事もない)
      は二重三重に在日コリアン含めた韓国人の中で拡がってるんだよね。

      朝鮮人がついた嘘で、
      朝鮮人が勝手に怒って、
      朝鮮人が日本人を憎み始める
      無視するだけでは足りない迷惑な民族だと痛感する事例だよ。

    • 94名無し2020/11/29(Sun) 17:02:09ID:YwMzA3NTU(2/2)NG報告

      >>93
      他にも同時期の、歴史を分かりやすく解説した世界史本には、
      日本の韓国併合には、
      “併合は世界で最も過酷な支配だった事は間違いない”みたいな締め方をしててね。

      1980年~90年頃の本屋の歴史出版物は、かなり自虐史観が占められてて、在日含めた韓国寄りの論調がかなり幅を占めてた。
      そう書かないと、煩く抗議脅迫されてたのもあるんだろうな。

    • 95名無し2020/11/29(Sun) 17:18:14ID:YxMjI2OTY(1/3)NG報告

      >>94
      逆に考えるんだ
      きたるべき未来からさかのぼって、アメリカ民主党が行なおうとしている
      失業黒人に福祉漬けの生活が天国だと思いますか?
      人間は何らかの仕事に従事しながら義務感に満ちている方が幸せだからね

    • 96名無し2020/11/29(Sun) 17:29:43ID:AzODgzODI(1/2)NG報告

      文禄元年(一五九二)~慶長三年(一五九八)

      鳴梁海戦【朝鮮出兵】 日本水軍 vs 朝鮮水軍  ←朝鮮水軍170㎞の逃走
      YouTubehttps://youtu.be/Pqki39d9fsk
      露梁海戦 朝鮮出兵  ←日本軍Vs明・朝鮮軍
      YouTubehttps://youtu.be/1MJFVDa4WNo

      晋州城の戦い【朝鮮出兵】 ←日本軍の本気!戦国武将大集結
      YouTubehttps://youtu.be/gz4Afitvneo
      泗川の戦い【朝鮮出兵】 鬼島津の活躍! ←明、朝鮮軍を粉砕!
      YouTubehttps://youtu.be/UXUpv-y7kqk
      順天城の戦い【朝鮮出兵】  ←日本軍、明・朝鮮軍を撃退
      YouTubehttps://youtu.be/C-xKax1UIko

      秀吉軍による朝鮮半島での30箇所を超える築城、
      秀吉が老衰で亡くなるまで5年以上に及ぶ半島占拠
      これが現実・・

    • 97名無し2020/11/29(Sun) 17:30:58ID:AzODgzODI(2/2)NG報告

      鳴梁海戦(1597)

      【現代韓国の認識】
      李舜臣がたった12隻の船で、日本330隻の船団を壊滅させた!
      日本側の死者は8000人以上!
      日本から制海権を奪取した!

      【史実】
      李舜臣が12〜14隻の船で日本30隻と小競り合いをして、すぐに逃げた。
      日本側の被害は軽微。
      翌日、藤堂高虎などが戦闘海域に確認に戻り、誰もいないことを確認。
      この時、李舜臣は於外島まで逃げていた。

      参考:乱中日記、高山公実録、毛利高棟文書 他

      鳴梁に限らず、李舜臣は逃げ回るだけの将だったというのが事実。
      反日ヒーローに祀り上げられて、あまりにも事実と異なるイメージになってしまった。
      日本側・朝鮮側、双方の史料に特に食い違いはないが、現代の韓国では何の史料的根拠のないイメージが浸透している。

      【李舜臣の最期】
      秀吉の死によって、日本と明は講和を締結。
      日本が撤退しようとしていると、背後から講和を無視した李舜臣が不意打ち攻撃を仕掛ける。
      怒った島津に殺されてしまったとされるが、特に記録には残っていない。
      つまり、李舜臣とは討ち取られても記録に残らない程度の存在であったということ。
      https://kaikai.ch/board/15967/28

    • 98名無し2020/11/29(Sun) 17:52:28ID:A1NDM4OTg(1/1)NG報告

      >>52
      独立運動「三・一運動」の記念式典開催 新型コロナで規模縮小=韓国
      tps://jp.yna.co.kr/view/AJP20200301000600882
      反日を止めたらどうなるニダ?
      ウリ達はいつ日本に賠償すればいいニダ?
      「アイゴーーーーーー、誰かウリ達に愛の手を……」

    • 99名無し2020/11/29(Sun) 18:35:10ID:cyODc1NTY(1/2)NG報告

      >>86
      120年前にお前らまともな新聞もなく、字は読めず、どうやって有名になれるんだよ。
      いつものお笑い提供民族、朝鮮人。

    • 100한류 사랑2020/11/29(Sun) 19:07:41ID:YwMzQxMDg(1/21)NG報告

      社稷威靈 粗立薄效 寵榮超躐 有踰涯分 身居將閫 功無補於涓埃 口誦敎書 面有慚於軍旅

      社稷의 위엄과 靈驗 덕분에 겨우 작은 功勞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과분했다. 將帥의 자리에 있으면서 티끌만한 功勞도 바치지 못했으니, 입으로는 敎書를 읽고 있으나,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만 있을 뿐이다.

      <난중일기>, 乙未年(1595년) 5월 29일. 이순신 장군 본인이 스스로 내린 평가.

    • 101한류 사랑2020/11/29(Sun) 19:10:13ID:YwMzQxMDg(2/21)NG報告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고 비판적이었던 겸손한 이순신 장군님 본인께서 들으셨다면 부끄러웠을 정도로 칭송과 찬양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순신 장군은 패전으로 기울어진 戰場의 판도를 완벽히 뒤집었으니, 그것이 전혀 아깝거나 과장되었다고 할 수 없는, 진실로 하늘이 내린 성웅이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그분께 내린 평가는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폄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을 폄하하는 놈들이 있어서 제대로 평가 받기가 힘들다. 그런데 최소한의 평가만으로도 그분은 이미 성웅이니, 사실상 성웅이란 단어는 이순신 장군님만을 위해 있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 102한류 사랑2020/11/29(Sun) 19:15:34ID:YwMzQxMDg(3/21)NG報告

      세계사를 통틀어 많은 명장이 있지만, 23戰 23勝의 빛나는 全勝 내내 1척의 선박도 적에게 격침되지 않았을 정도로, 세계 역사상 손꼽히는 신화를 가진 명장은 드물다. (해군제독으로 한정할 경우, 단 한번의 패배는커녕 단 1척의 선박도 잃지 않은 해군제독은 없다.)

      이러한 '戰場의 신화'를 가진 사람이 이순신 장군님 하나뿐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신화를 이룩한 이들은 전부 萬全의 태세를 갖춘 정복軍이었다. 수비하는 처지였던 조선군과 확실히 다르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당시 이순신 장군님은 정부의 지지는커녕 물자가 부족해서 자급자족 해야 했으며, 임금에게 심한 견제를 받고 대신들에게 온갖 트집을 잡혔다.

      또한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白衣從軍이라는 억울한 처분을 받을 때에도, 오로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피폐해진 심신을 이끌고 나간 전장에서 얻은 승리였으니, 세계의 어느 전쟁과 비교해도 절대로 뒤쳐지지 않는 전과이다.
      세계사의 명장들은 대부분 정복 군주이며 이들이 이뤄낸 전과의 동기는 현대적 기준에서는 좋게 평가할 수 없는 패권주의이다. 물론 동기와는 별개로, 그들의 업적이 압도적인 위업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 103한류 사랑2020/11/29(Sun) 19:18:46ID:YwMzQxMDg(4/21)NG報告

      이순신 장군님은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미 조선을 구한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었고, 宣祖를 제외한 국왕이나 신하들도 한결같이 그분을 모범적인 장수이자 중국의 名士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는 인물로 칭송하고 있었다.

      사실 이순신 장군님의 활약 이전까지 군사를 논할 때, 비교 기준은 중국이었다. '孫臏, 韓信의 계책', '송나라 岳飞' 등 중국 장수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비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님이 돌아가신 이후 조선의 군사 문제를 논할 때 비교 기준은 이순신 장군님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대놓고 신하들이 군사를 논할 때 "이순신(감히 존칭을 쓰지 않다니)의 계책에 따르면..."이라 할 정도였다. 중국 역사에 능통한 조선의 양반들이 보기에도 이순신 장군님만한 인물이 중국에 없었다는 것이다!

    • 104한류 사랑2020/11/29(Sun) 19:24:47ID:YwMzQxMDg(5/21)NG報告

      史臣은 논평한다. 이순신은 인간성이 忠勇하고, 才略도 있었으며, 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중략) 訃音이 전파되자 湖南 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프게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전부 펼치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이순신을 丙申年과 丁酉年間에 統制使에서 遞職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었겠는가. 아, 애석하다.
      ㅡ 《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 / 1598년 11월 27일의 史臣의 논평

      해당 부분은 卒記, 즉 죽은 인물에 대한 평가이다. 실록을 편집할 때 수많은 史草에서 史官들이 기록한 卒記 중에서 의미있는 인물의 것들만 골라내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객관적이고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대표로 등재한다. 즉 해당 내용은 조선 왕조의 가장 공식적인 평가인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보통 흠집이 1~2개는 들어가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찬사가 가득한 卒記는 거의 없다. 심지어 왕이나 왕후의 사망 기사에도 부정적 평가를 기록해 놓는 경우도 있는데도.

      심지어 이걸 기록한 史官은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찬양과 더불어, 漆川梁의 패전을 宣祖와 조정 대신들의 책임으로 대놓고 명시해버리면서 비판하였다.

    • 105名無し2020/11/29(Sun) 19:24:52ID:cyODc1NTY(2/2)NG報告

      >>103
      歴史の中で評価される人物など無数に存在するんだよ。
      それが、現代まで連綿と続いてきた評価なのかどうかは重要な要素なんだが、朝鮮人には理解できないのかな。
      おまえら1900年代まで、なにも評価して来ていないだろ。

    • 106名無し2020/11/29(Sun) 19:27:11ID:YyMDgzNTY(3/5)NG報告

      >>102
      「日本軍の上陸を阻止する」「日本軍に制海権を与えない、もしくは奪う」「日本軍の兵站線を遮断する」といった戦略的目的を一度も達成してないのに全戦全勝と言われてもね。

    • 107한류 사랑2020/11/29(Sun) 19:33:52ID:YwMzQxMDg(6/21)NG報告

      上께서 말씀하셨다. "前朝 때에는 비록 군사력이 강했어도 외적을 토벌하기가 어려웠는데, 변란이 잇따르니 진실로 卿의 생각을 듣고자 한다."
      李元翼이 말했다. "小臣이 보아하니 故 統制使 이순신 같은 사람은 얻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이순신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上께서 말씀하셨다. "왜란 때에는 오직 이순신 한 사람만이 있었을 따름이다."
      李元翼이 말했다. "이순신의 아들 李䓲가 지금 忠勳府 都事로 있는데, 그도 얻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왜란 때에 이순신이 죽게 되자 李䓲가 그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는데, 이순신이 적과 대치하고 있으니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운운했습니다. 그러자 李䓲는 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여느 때처럼 전투를 독려하였습니다."
      上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대신들은 반드시 인재를 얻어 薦擧하였다. 卿도 쓸만한 인재를 薦擧하여 주겠는가?"
      李元翼이 말했다. "이순신 같은 사람이 있다면 薦擧할 수 있겠지만 臣은 병으로 몇년 동안 蟄居하고 있어서 사람들과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누가 쓸 만한지를 어떻게 알고 薦擧하겠습니까. 宣廟朝에는 臣이 이순신의 훌륭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薦擧하였고, 그가 統制使로 登用되었습니다. 그런데 備邊司에서는 元均을 薦擧하여, 다시 그를 統制使로 추천하였습니다. 臣은 이순신을 遞職하고 元均을 登用하면, 틀림없이 일을 그르칠 것이라고 서둘러 알려드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번 알려드렸는데도, 備邊司에서는 결국 이순신을 遞職하였습니다. 元均이 일을 망친 이후에 다시 이순신에게 군대를 이끌도록 하였으나, 그땐 이미 대세가 기울어져 결국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ㅡ 《承政院日記》 仁祖 9년 4월 5일자에 실린 仁祖와 李元翼의 대화

    • 108名無し2020/11/29(Sun) 19:41:02ID:M4MTc5NjE(1/1)NG報告

      >>90
      うけるが、資源採取とは何や?
      >>91
      JFK?
      >>96
      弘安の時は朝鮮人殺戮が目的だったってマジ?

    • 109名無し2020/11/29(Sun) 19:41:03ID:YyMTk5MTA(1/1)NG報告

      国を救うほどの活躍したと語るのに、懲罰受けて降格させられているし、
      23戦23勝のはずなのに日本兵によって殺されている。
      韓国史の中では強かったが、世界史レベルではない。

    • 110한류 사랑2020/11/29(Sun) 19:42:50ID:YwMzQxMDg(7/21)NG報告

      무릇 나라에 이롭고 군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용감히 진행하여 주저하지 않는 것이, 마치 음식이나 여색을 즐기듯 행하여 조금도 소홀한 부분이 없었다. (후략)
      ㅡ 李恒福, 《忠愍祠記》

      水軍 統制使는 진실로 하늘이 내린 거룩한 분으로, 일선 장수에 임명되자 邊境에 크게 자리잡고 閑山島에서 적의 바닷길을 끊으면서 6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장수를 바꾼 일은 본래 적의 꾀에서 나온 것이며,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내보내는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元均이 패전한 후 아홉 척의 선박과 잔여 軍卒로써 여러번 碧波津에서 승전하였으니, 그 功은 鐘에 새겨 길게 남길 만한 일이며, 露梁 전투에서 公이 임종할 때에 죽음을 숨기고, 깃발을 흔들고, 북을 두드리며, 싸움을 계속할 것을 분부하자, 아들이 그 명령대로 행하여 살아있는 仲達을 달아나게 한 것처럼 하였으니, 그 꾀가 더욱 기이하다고 하겠습니다.
      ㅡ 《達川夢遊錄》, 1600년경 쓰여진 소설.

      어떤 선비가 꿈에서 임진왜란 때 싸우다가 죽은 영웅들(金時敏, 宋象賢, 趙憲 등)이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하는 내용의 소설인데, 여기서 다른 영웅들은 이순신을 가장 상석에 앉힌다. 전사한 원혼들에게 신립은 비난을 듣고, 원균은 집단 폭행을 당한다.

    • 111한류 사랑2020/11/29(Sun) 19:47:13ID:YwMzQxMDg(8/21)NG報告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행운이 부족해서, 100가지 經綸을 하나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ㅡ 柳成龍, 《懲毖錄》

      바다를 가로질러 쳐들어오는 왜적의 형세를 꺾은 것은 저 張巡이나 許遠(安史之亂 당시 활약한 장수들)과 같고, 스스로 전력을 다하여 싸우다가 죽은 뒤에 그만둔 것은 저 諸葛武侯와도 같다. 그러나 나라 일에 죽은 것은 이들과 같을지라도, 큰 功을 거둔 사람은 오직 公 한 분뿐이다. ㅡ 金堉, 『統制使李舜臣神道碑銘』

    • 112名無し2020/11/29(Sun) 19:51:35ID:YxMjI2OTY(2/3)NG報告

      倭寇に苦しめれられるの海軍力の国が、
      日本の秀吉の軍隊に勝てると思いますか?

    • 113한류 사랑2020/11/29(Sun) 19:54:32ID:YwMzQxMDg(9/21)NG報告

      조그만 웅덩이에는 큰 물고기가 없고, 작은 나라에는 巨人이 없다고 하지만, 어찌 그렇겠는가. 統制公 같은 분은 바로 그 수립한 것을 옛날 사람에게서 찾아보더라도 진실로 周亞夫ㆍ李西平(당나라의 명장 李晟)ㆍ岳武穆 등에 비해도 손색이 없으니, 深山大澤의 龍虎처럼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魁傑한(으뜸가는) 인물이라 일컫지 않을 수 있겠는가. ㅡ 尹鑴, 《白湖全書》 中 '統制使李忠武公遺事'

      아침에 이순신의 碑文을 보았는데,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殉節한 일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건 하늘이 우리 나라를 中興시키기 위하여 이런 훌륭한 장수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순신의 재능은 岳飛와 같은데, 더욱 작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공격하는 데 능하였다. 그 당시 淸正의 간사한 모략에 빠져 잘못되어 譴罰을 받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元均의 패배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이순신이 약간의 거북선을 가지고 大敵을 격파하였으니(사실 鳴梁海戰 때 거북선은 하나도 없었다.), 참으로 쉽게 얻을 수 없는 인재이다.
      ㅡ 孝宗, 《조선왕조실록》 孝宗 11년 / 1659년 閏 3월 30일

    • 114名無し2020/11/29(Sun) 19:57:20ID:M5ODczMTE(1/1)NG報告

      >>113
      統制公ってのが二つ名なのか?果たしてうまく翻訳されているのかどうか…

    • 115名無し2020/11/29(Sun) 19:57:33ID:E1MDE4NQ=(1/2)NG報告

      >>111
      秀吉軍により、釜山上陸から、首都陥落まで21日程度なんだけど
      海上から侵入して、21日程度で首都落される国ある?

    • 116한류 사랑2020/11/29(Sun) 19:57:40ID:YwMzQxMDg(10/21)NG報告

      節槪를 위해 죽는다는 말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자신의 몸은 죽고 나라를 살린 것은 이 분에게서 처음 보네.
      ㅡ 肅宗 《顯忠祠 祭文》

      李 忠武公이 나옴으로써 조선이 망하지 않았고, 統制營이 완성됨으로써 왜구에 대한 근심이 영원히 불식되었다.
      ㅡ 元重擧, 《乘槎錄》 癸未使行(1763)의 수행원으로 朝鮮通信使를 다녀온 후에 기록한 기행문이다.

    • 117名無し2020/11/29(Sun) 20:00:05ID:E1MDE4NQ=(2/2)NG報告

      >>113
      普通に歩いて行っても、釜山からソウルなんて、当時は20日程度なんだけど、韓国軍は何してたの?

    • 118名無し2020/11/29(Sun) 20:02:54ID:gyMDg3MTM(1/1)NG報告

      韓国人が英雄と思って喜んでいるんだからいいじゃん。
      それを他国の人に自慢して失笑を買うのも韓国人の責任だし(笑)

    • 119한류 사랑2020/11/29(Sun) 20:03:40ID:YwMzQxMDg(11/21)NG報告

      이순신의 경우는 참으로 千古 以來의 충신이며, 명장이다. 그가 만약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漢나라의 제갈공명과 자웅을 겨룬다 하더라도, 과연 누가 우세할 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임진왜란 때 왜구를 토벌한 功勞는 百世까지 영원히 그 德澤을 입고 있고, 邊方의 방비를 規畵하는 데 方略이 두루 갖추어져 있으며, 그의 명성과 義烈은 아직도 사람에게 凜然하게 欽慕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ㅡ 正祖, 《弘齋全書》

      우리 나라의 將材로서 예전에는 金宗瑞를 칭하고 근세에는 이순신을 칭하는데, 金宗瑞는 충신이고 이순신은 효자였다. ㅡ 丁若鏞, 《經世遺表》

    • 120名無し2020/11/29(Sun) 20:03:47ID:YxMjI2OTY(3/3)NG報告

      >>115
      ナポレオンのモスクワ占領がなぜ失敗したか、わかりますか?

    • 121한류 사랑2020/11/29(Sun) 20:10:19ID:YwMzQxMDg(12/21)NG報告

      戰後 宣祖는 이순신 장군님을 宣武功臣 1등으로 除授했으나, 宣祖 자신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 元均을 이순신 장군님, 권율 장군과 함께 宣武功臣 1등으로 除授하였다. 이는 주위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는데도, 宣祖 혼자서 억지를 부려 이뤄낸 어이없는 결과였다. 그러나 당장 宣祖 사후부터 元均은 拙將의 대명사가 되었고, 이순신 장군님은 더할 나위 없는 조선의 聖雄이 되었으며, 이것으로 아무리 왜곡하려 해도 왜곡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는 점을 잘 알려준다. 애초에 이순신 장군님을 폄하하기 바빴던 宣祖가 元均을 1등 功臣으로 만드는 꼼수를 썼을지언정, 결국 이순신 장군님이 1등 功臣이 된 것만 봐도, 그 누구라도 이순신 장군님의 功을 가릴 수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 122한류 사랑2020/11/29(Sun) 20:17:09ID:YwMzQxMDg(13/21)NG報告

      임금이 말하기를 "統營의 백성들은 지금까지 이순신을 思慕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니까, 李溏이 말하기를 "忠武公의 喪 때에는 백성들이 모두 흰 옷을 입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流傳되어 비록 여자라 하더라도 모두 흰 치마를 입고 있습니다."하였다. - <純祖實錄> 純祖 8년(1808년) 1월 10일

      조선시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忠武公의 祠堂을 세운 경우도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다. 임진왜란 직후 이순신 장군님 휘하에서 복무했던 병사들이 모금하여 공적비를 세운 것부터 시작해서, 統營 백성들이 모금하여 祠堂을 세우기도 했고, 아예 統營 쪽으로 임관한 縣監이 自費로써 공적비를 세운 사례까지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세워진 祠堂과 공적비는 10개 이상이며 대부분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純祖 시대까지도 統營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님의 忌日에 모두 素服을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이순신 장군님의 運柩 행렬 때 백성들의 통곡했다는 기록만 봐도, 그분께서 얼마나 많은 존경을 받았는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運柩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백성들이 "公께서 우리를 살려 주셨는데, 이제 우리를 버리고 어디에 가십니까?"라고 하면서 運柩 행렬을 붙잡고 통곡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運柩가 어려웠다고 한다.

    • 123한류 사랑2020/11/29(Sun) 20:22:44ID:YwMzQxMDg(14/21)NG報告

      현대 쪽바리들의 기대와 달리 쪽바리 조상들의 평가는 어땠을까??

      1854년 일본의 출판사 金幸堂에서 발간한 《朝鮮征伐記》라는 책 속의 이순신 장군님.
      이 책은 임진왜란 전까지의 조선 역사를 서술하고, 전쟁 진행 상황을 일본의 입장에서 그림으로 서술한 책이다. 한반도 모양에 맞춰 그린다며 고증 따위는 무시했지만, 제법 무섭게 그렸다. 특히 들고 있는 방천화극.
      《懲毖錄》이 일본에서 발행되면서 처음 알려졌지만, 明治 시대 이전까지는 金時敏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고, 이후 明治 시대의 해군 연구에 의해 일본 내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러한 평가들로 인해, 일본 교과서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여진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8101516061162668

      "李舜臣單騎にして胡虜の賊兵を破る。和兵の至るに及んで全羅水軍節度使となる。龜甲船を造る。忠勇鷄林に冠たり。"

    • 124한류 사랑2020/11/29(Sun) 20:24:02ID:YwMzQxMDg(15/21)NG報告

      古来ノ戦将ニシテ奇正分合ノ妙用ヲ尽シタルモノ必ズシモ一二ニ止ラズ。「ナポレオン」が「全ヲ以テ其ノ分ヲ撃テ」ト云ヒタルモコノ意義ニ外ナラナヌノデアル。サリナガラ海軍将官トシテ之ヲ看レバ、先東洋ニアッテハ韓将李舜臣、西洋ニ在テハ英将「ネルソン」ヲ推サナケレバナラヌ。李舜臣ハ実ニ蓋世ノ海将デアル、不幸ニシテ生ヲ朝鮮ニ享ケタレバコソ、勇名モ智名モ西洋ニハ伝ラヌノデアルガ、不完全ナガラモ征韓ニ関スル紀伝ヲ看レバ実ニ立派ナル海将デアル。西洋ニ於テ之レガ匹敵者ヲ求ムレバ聢カニ蘭将「デロリラル」以上ト謂ハナケレバナラヌ。「ネルソン」の如キハ其ノ人格ニ於テ到底比肩スルコトガ出来ヌ。此ノ李将軍ハ実ニ裝甲艦ノ創造者デアル、三百年以前ニ於テ既ニ立派ナル海軍戦術ヲ以テ戦ヒタル戦将デアル。

    • 125한류 사랑2020/11/29(Sun) 20:24:48ID:YwMzQxMDg(16/21)NG報告

      Throughout history there have been few generals accomplished at the tactics of frontal attack, sudden attack, concentration and dilation. Napoleon, who mastered the art of conquering the part with the whole, can be held to have been such a general, and among admirals, two further tactical geniuses may be named: in the East, Yi Sun-sin of Korea, and in the West, Horatio Nelson of England.

    • 126한류 사랑2020/11/29(Sun) 20:25:21ID:YwMzQxMDg(17/21)NG報告

      Undoubtedly, Yi is a supreme naval commander even on the basis of the limited literature of the Seven-Year War, and despite the fact that his bravery and brilliance are not known to the West, since he had the misfortune to be born in Joseon Dynasty. Anyone who can be compared to Yi should be better than Michiel de Ruyter from Netherlands. Nelson is far behind Yi in terms of personal character and integrity. Yi was the inventor of the covered warship known as the turtle ship. He was a truly great commander and a master of the naval tactics of three hundred years ago.

      (A Military History of the Empire (Japanese: 帝國國防史論), p. 399, by Admiral Tetsutaro Sato of the Imperial Japanese Navy)

    • 127한류 사랑2020/11/29(Sun) 20:28:38ID:YwMzQxMDg(18/21)NG報告

      1929년 해군 소좌 출신 작가 川田功는 그의 소설 <砲弾を潜りて>에서 주인공인 어느 해군 병사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당연히 세계 제1의 海將인 조선의 이순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솔 능력, 그의 謀計, 그의 용기, 하나라도 칭찬할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345630&_rk=Zxh&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all&s_keyword=%EC%8A%A4%ED%82%A4&page=1

      한편으로는, 1891년 일본에서 출판된 위인전 <日本百傑傳>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이순신, 鄭運이 水軍을 지휘하여 (일본군을) 한산도에서 대패시켰다. … (중략)… 옛날 나폴레옹 1세가 산을 뽑고 바다를 뒤짚어 엎을 세력을 갖고도 영국을 무찌르는 것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넬슨의 해군에게 제압 당하였기 때문이다. 조선반도의 쇠약함과 영국의 부강함은, 日을 같이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東西의 영웅(나폴레옹과 히데요시)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결과는 동일하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345630&_rk=Zxh&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all&s_keyword=%EC%8A%A4%ED%82%A4&page=1

    • 128한류 사랑2020/11/29(Sun) 20:31:06ID:YwMzQxMDg(19/21)NG報告

      또한 메이지 국왕에게 직접 진상된 후 전국의 중학교로 배포되었던 <帝国海軍史論(1898)>을 집필한 小笠原 長生의 글 중에서 언급되는 이순신 장군님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임진왜란 같은 것을 사실대로 直筆으로 그 진면목을 기술하는 것은 자못 불쾌한 감이 있으나, 만일 해상 권력을 쥐는 것의 필요성을 말하길 원한다면, 먼저 우리의 실패한 事蹟을 들어 殷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秀吉는 동양에 둘도 없는 英傑로서 부하 장수도 모두 千軍萬馬 중 뛰어난 인물들이다. (중략) (그러나 그들은) 평양에서 북진할 수 없었다. (중략) 이것은 우리 水軍의 여러 장수들이 해전 전술에 拙劣하여 이순신 때문에 시종일관 해상권력을 장악당한 죄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 (...)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행동을 할 때도, 우세한 해군력을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만세불변의 원리로서 또한 성공의 기초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345630&_rk=Zxh&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all&s_keyword=%EC%8A%A4%ED%82%A4&page=1

    • 129한류 사랑2020/11/29(Sun) 20:33:25ID:YwMzQxMDg(20/21)NG報告

      추가로 小笠原의 글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이순신 장군님 연구를 추가한 <帝国国防史論(1907)>을 집필한 해군대학교 교관 佐藤鉄太郎의 글 중 다음 대목은, 지금도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본인은 현재 일본의) 제국 국방의 방침이 과연 국가가 어려울 때 이에 응할 방법인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어 조선의 名將 이순신의 사적을 조사하여, 임진왜란 당시 (그가) 우리 수군을 격파한 것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인격과 위대한 공적은 격렬히 나의 정신을 일깨웠고, (나는) 공세적 국방의 意義에 관해 더욱 각성하는 바가 있었다.

      이순신은 실로 蓋世 해군 장수로서, 불행히도 조선에서 살았기 때문에 勇名도 智名도 서양에 전해지지 않았으나, 불완전하지만 임진왜란에 관한 전기를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 장수였다. 서양에 있어, 이와 필적할 자를 찾는다면 확실히 네덜란드의 장수 Michiel de Ruyter 이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넬슨 같은 자는 인격에서 도저히 비견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실로 裝甲艦의 창조자로서, 3백년 이전에 이미 훌륭한 해군 전술로 싸운 장수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345630&_rk=Zxh&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all&s_keyword=%EC%8A%A4%ED%82%A4&page=1

    • 130한류 사랑2020/11/29(Sun) 20:37:05ID:YwMzQxMDg(21/21)NG報告

      심지어 당시 명나라 장군도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 陳璘

      현대 중국에서도 장웨이린 교수 등의 일부 인물들이 호평을 내리고 있으며, 그는 제갈량, 項羽, 孫子, 關羽 같은 인물들이 서양과 일본에 패한 말기의 청나라에 있었어도 청나라는 역사 속의 그 결과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이순신은 다르다고 언급했다.

    • 131(´・ω・`)2020/11/29(Sun) 20:47:27ID:UyNDQ5Mjg(1/1)NG報告

      >>123

      >1854年、日本の出版社金幸堂で発刊した「朝鮮征伐記」という本の中の李将軍。
      >この本は、壬辰倭乱までの朝鮮の歴史を叙述し、戦争の進行状況を、日本の立場から図に述べた本である。


      馬鹿かお前はw

      朝鮮征伐記は小説だよw
      https://s.japanese.joins.com/JArticle/186687?sectcode=A10&servcode=A00


      キミ等は、江戸時代の小説を、歴史事実を調べる為の、ソースにしてるのかい?ww

      間違った歴史ばかり言いだす訳だw

    • 132NXR’862020/11/29(Sun) 21:02:05ID:Q2NzUwMzQ(1/1)NG報告

      >>120
      当時朝鮮にクトゥーゾフのような戦略家がいて、フランスからモスクワまでの様な戦略的縦深があり、戦意があり当代の先端レヴェルにある陸軍が存在していて、戦略的資源がある国家であればこその漸減邀撃戦略なのだが、朝鮮には資源も戦略的縦深も戦力も戦意も戦略家も存在しなかったよねえ

    • 133名無し2020/11/29(Sun) 21:27:01ID:Q0MjQ2OTU(1/1)NG報告

      >>130
      最初は李の過大評価について言い始めたと思ってたが、結局虚像を持ち出すのかよ

    • 134名無し2020/11/29(Sun) 21:32:28ID:YyMDgzNTY(4/5)NG報告

      鳴梁海戦が朝鮮人が主張するような大勝ならば、その約1年後の順天城の戦いまで水軍が何もしないなんてあり得ないだろ。
      日本軍の兵站基地である釜山付近まで進撃すれば、日本軍は補給線を絶たれる危険を感じて陸上の行動もかなり阻害されるわけだし。
      こういう点からも朝鮮人の主張は嘘捏造ばかりだとわかる。

    • 135名無し2020/11/29(Sun) 23:12:58ID:Q1MzEyOTI(1/1)NG報告

      フッ化水素国産化に成功したニダ!
      と、同じじゃないの?

    • 136名無し2020/11/30(Mon) 12:23:06ID:c0NTA1NzA(2/2)NG報告

      結局、韓国人の言う英雄は、『その当時に英雄として有名だった人』では無くて、『後世になって英雄と呼べそうな人を探した』ってだけだろ??
      奴隷達なんて情弱なんだから。
      そういうのは英雄とは言い難いな。
      後世になって無理に持ち上げて崇拝してるだけなので、単なる捏造だ。

    • 137名無し2020/12/02(Wed) 22:15:11ID:Y5NDA0NTY(1/1)NG報告

      鳴梁海戦
      朝鮮水軍 12隻
      日本水軍 20~30隻(当時の記録では全て小型の輸送船)

      内容
      朝鮮水軍が日本水軍の先頭の数隻に損害を与えた、
      その後、朝鮮水軍は日本水軍の追撃を避けて全羅道の拠点を放棄して忠清道方面に撤退。
      日本水軍側は翌日以降も作戦行動を継続、日本側は大きな戦闘があったという認識は無し。
      ゲリラ程度の規模だったと思われる。

      損害
      朝鮮水軍 数名程度
      日本水軍 数十名程度

      韓国側の主張は日本軍の規模を10倍程度に誇張して、日本軍の損害を200倍以上に誇張している。
      青里山戦闘と同じで民族主義者の神話である。

    • 138名無し2020/12/03(Thu) 23:43:25ID:I0MzIyOTE(1/1)NG報告

      こいつが英雄じゃあ、韓国は永遠に日本に勝てないよw

    • 139名無し2020/12/12(Sat) 07:30:35ID:Y5MjgzNjg(5/5)NG報告

      朝鮮人は「戦略」と「戦術」という概念を理解していないよね。
      理解というか、戦争は個人の喧嘩の拡大版だと思っていて、概念として分化していない感じ。
      漢字廃止で語彙が貧困化した現代朝鮮語は抽象概念の理解に向かないというが、これはちょっと酷いわな。

    • 140名無し2020/12/12(Sat) 07:40:55ID:k1MTgyOTY(1/1)NG報告

      ここまで読んで・・

      朝鮮人の根拠=映画、小説、妄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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