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성리학에 대해서 물론 폐단도 있다. 하지만 성리학에서 양명학이 나왔다. 우리 조선은? 정여립이 있다. 기축옥사는 1589년에 있었던 일이다. 정말로 정여립이 죽지만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여립이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영국의 50년에 앞서서 세계최초의 공화국을 세웠을 것이다. 세계만물이 백성의 것이 아닌것이 없고. 그 누구인들 군주로 삼지 못하랴. 이 철학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나? 유교의 맹자가 한말이다. 한국인들이 정말로 모르는것은 유교는 왕위세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념이다. 특히나 전국시대의 맹자는 절대로 왕권옹위따위를 하지 않았다. 기대승, 남명조식 모두 이런 학파였다. 서인 동인이라는 큰 그림아래에 있는 조선의 세세한 모습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식으로 비판하는게 과연 옳은 것일까?
>>49 내가 조선말기의 모든 폐단마저 좋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제발 조선의 국풍이 말하고자 했던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이어가야할 아름다운 정신이라는 것이다. 15세기의 당당했던 해동의 조선을 생각해라. 조선이 건국되었던 이념자체가 고려말기의 그 썩은 사치와 폐단과 귀족들의 모순을 청산하기위해서 건국된 나라였다. 너의 말대로였다면 어째서 정도전이 20만의 병력을 이끌고 명나라와 전쟁을 하려고 했을까? 명나라와 전쟁을 해서 요동을 경락했다고 하더라도. 주체의 팽창적 만주정벌 정책에 조선이 버텨낼수나 있었을까? 이방원은 역사의 사대주의자라고 생각하나?
仲間割れするな。
おまエラは平等に価値が無い。성리학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이념. 관리 등용할 때 성리학으로 시험을 보고, 법전도 성리학을 토대로 쓰여졌다. 사회를 지배했다.
조선=Isis=북한>>55 정신승리라니..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걸 한국인이 너라면 할것이라 생각한다. 조선의 관등체계는 연분법 과 같은 경작의 상대성에 기초한 봉급체계이지 않은가. 만약에 조선시대에 지금과 같은 무역의 외부효과로 경기가 좋지 않았다면 삼정승조차도 식구가 먹을 정도의 식량을 배급받지 못했다. 조선시대였다면? 최순실의 일족은 삼족이 멸하여 저자거리에 효수되었을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전성기 조선의 국풍과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고려와도 관련이 없지 않다는걸 너도 알지 않나..
단순히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초기 때부터 소중화사상에 심취했지. 태종시절의 혼일강리역대국도만 봐도 ㅋㅋ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인지? 실패라고 해서 모든 정체성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61 자잘한 부분은 다 형식이다. 정말로 태종실록에도 영락제의 만주평정이나 여러 외교마찰로 군사충돌에 대한 대비나 병력 증강과 군사연구에 진력하는 기록이 너무 많다. 그런 일방적인 사대가 절대 아니었다..
>>65 고려말기도 실패이지 않냐? 그거랑 같은거다 나도 조선말기는 실패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전의 왕조가 통라나 발해 고려였다면 과연 조선을 우리가 그렇게 인식했을까? 내가 정말로 니가 말하고 싶어하는걸 이해를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고려말기는 군사력으로 원나라를 물리쳤지만 왜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하냐? 그건 민족전체가 패배감에 빠져서 그저 무기력해져서 아니겠냐.. 만약에 조선에 이성계가 태어났어도 과연 게릴라 전으로 일본을 물리쳤을 수 있었겠냐.. 환빠같은 개새끼들때문에 내가 이런소리를 하면 국뽕으로 몰리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우리가 그런 패배감에 빠져있을수록 우리의 잃어버린 100년은 더욱 멀어져만 간다는거다. 조선왕실보물고에 잠들어 있던 보물조차도 파악을 못하고 있는게 우리 현실이야..
>>63
평화는 고려시대에도 있었고 다른 나라들도 다 있었다. 사회의 안정도만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는 도구가 될수는 없는데? 왜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거지?
모든게 실패라고 볼수는 없지 그러나 방향이나 정책적으로는 실패가 당연했다는 얘기다.>>71 유교적 가치관에서 아시아적 가치의 아시아의 4룡이라고 재평가 받던 시절의 원동력이 동시에 '유교'라고 평가 받았지 않냐. 위계적 질서나 권위주의가 과연 유교에서만 비롯되었을까? 畏敬이라고 말하며 공자는 젊은 후학들의 발전과 지식의 선진체계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며 선학들은 자기정진의 노력에 게을리 하면 안된다고 했다. 과연 선진시대의 유교가 무엇이고 맹자가 말한 정의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조선이 그 모양이 되었겠냐? 성리학의 탓이라면 어째서 15세기의 조선이 그렇게 강국이었을까? 모든것은 맥락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모든것은 유교이기 떄문! 모든것은 일본인의 잘못! 모든것은 무언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유교를 옹호하는게 아니다. 나는 조선의 좋았던 부분마저 철저하게 부정하고 해체하는게 과연 옳은가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만약에 그렇다면 15세기의 조선의 청자와 조선초기의 모든 문명들의 연속에 살고있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냐? 내가 말하고 싶은건 그거다..
좋은 부분만 말한다면 주체사상도 훌륭하다 ^ ^
>>73 그런 단점도 분명히 있었지 그런 부분들은 우리가 답습하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배울점이 없는건 아니지 않냐 내말은 그거지.. 나는 너랑 싸우고 싶어서 이런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다. 비단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선을 부정하는게 당연시 되어가고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도대체우리는 누구냐? 나는 이런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남한과 북한은 갈라져 있다. 당장 조선시대는 경상도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가서 만주를 구경하고 두만강으로 배편을 타서 상하이를 구경하고 서울과 인천으로 배를 타고 돌아오던 국가 였다. 우리는? 우리는 섬나라다. 조선의 역사도 무조건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라고 한다면 과연 스스로 답을 정할수나 있을까..
>>76 주체사상에 도대체 어떻게 좋은부분이 있냐.. 빨갱이 씨발년들 떄문에 우리가 지금 이 모양인데.. 그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그 많은 사람이 죽고 우리가 이러고 있었겠냐.. 진짜 지금 당장이라도 나에게 총을 준다면 나는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죽을 자신이 있다. 나의 피가 새로운 내일을 만들거 아니냐.
>>74
결론적으로 니가 운운하는 조선의 좋았던 점들은 대부분 유교와는 별 상관이 없는 얘기들임. 그냥 유교가 있어서 그러한 부분들이 발생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좋은점 보다 안좋은점들이 더 많아지면 그건 실패라는 얘기다.>>75 세계의 평가지 않냐..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아시아의 가치라는 것을 과연 우리가 무시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무시하는 그것으로 확실히 무언가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과연 과거의 선조들의 모든것을 이해하고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교는 폐해도 있었지만 사회를 안정시키고 한때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주체사상은 폐해도 있었지만 인민을 단합시키고 한때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뭐가 달라? 일부분만 도려내서 평가하지 마라유교에서 강조하는 도덕론은 다른 철학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는 내용이고 성리학에서 그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정말 극소에 불과함. 고로 그 티끌만한 장점을 위해 수많은 단점들을 수용해야 한다면 그건 낭비 그 자체라고.
>>81 주체사상이 어떻게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했냐? 1950년대 후반부터 숙청하고 1960년대 부터 주체사상 주작이 시작되었는데.. 절대로 주체사상과 유교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사상이다. 정여립을 봐라. 정여립이 아시아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평가받지만 그 본인도 백제의 고유한 철학에 바탕을 이루었지만 분명히 유학자 였다. 맹자는 왕위세습을 가장 철두철미하게 부정한 사람이다. 공자도 마찬가지이고... 유교의 모든것이 결코 나쁜게 아니다. 논어나 맹자를 한번 봐라.. 전국시대는 삼한시대보다 더욱 치열했던 시대다. 그런시대에 우리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상으로 어떻게 해쳐나갈 수 있었겠냐..
성리학 이념 때문에 생긴 공보다 과가 훨씬 더 많은데 그렇다면 비판하는 게 당연하지? 뭐가 문제?
이 세상 가장 넓은 곳을 나의 집으로 삼아. 때를 만난다면 천하백성과 함께 천하를 도모할 것이나, 그 누구노 따르지 않는다면. 나 홀로라도 그 길을 가리라. 맹자가 한 말이다 여기서 그 길이란 義의 길이다. 이것이 본디 유교다. 주자의 성리학이 경도되었다고는 하나, 조선의 모든 성리학자가 주자에만 미쳤던 것이 아니다. 송시열이나 노론의 쓰레기로 오도된 것이다.
내가 무슨말을 한들 너의 생각이나 마음까지 어떻게 움직이겠냐. 다만 모든 조선의 부분이 쓰레기로만 우리에게 남은것은 아니라는거지.
朝鮮王朝末期は資金調達の為に、文化財を海外に売ったんじゃないかな?
むしろ国家破産するまで金目の物を、全く手放さなかった可能性の方が低いよ。そういえば古代日本にも高速道路網があったな。
近代になるまでそれ以上の道が造られなかったほどの技術と規模のが>>44
横から失礼
文化財を売り払うほど、財政難になっていたからではないかな?
順宗が朝鮮国民へ宛てた大韓帝国第二皇帝としての
最後の交付書類を探してみて
現物はソウルにあるから
むしろ国家破綻した国に文化財が残っている方がおかしいでしょう?日本の城文化は、その国の歴史と社会を形成する上で重要な役割を果たしました。
日本の城は9世紀に建てられたもので、封建時代には武士の防御の要塞として機能しました。
これらの城は軍事構造だけでなく、大名や大名の政治的中心地としても機能しました。
日本の城のデザインや建築には、大砲の火をそらす壁や侵略者を防ぐために水や毒蛇で満たされた堀など、ユニークな特徴がたくさんありました。
江戸時代には、徳川将軍が厳格な社会階級を確立し、大名に年間の半分を首都で過ごし、半分は自分たちの地方で暮らすように要求していたため、城文化はさらに重要になりました。
現在、多くの日本の城は再建や修復にもかかわらず、日本の豊かな歴史と文化遺産の証として残っています。>>90
そういう出鱈目な話って、どこで聞いてくるの?☺️>>92
そういう出鱈目な話って、どこで聞いてくるの?☺️高麗時代の遺跡ですか?
>>96
失礼、明徳3(1392)年は廃城年でした。築城年は元弘2(1332)年。- 98名無し2023/06/20(Tue) 19:45: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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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 몽촌토성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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