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몽촌토성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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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6/11/14(Mon) 20:33:27ID:UyNzYyODQ(1/1)NG報告

      고대 대규모 포장도로 발굴

      현대의 고속도로처럼 회전교차로가 건설됨

      다수의 수레바퀴 자국 발견

      이 지역을 점령한 고구려, 신라도 개수 증축하여 사용한것으로 보임

      다수의 백제, 신라, 고구려 유물 발굴

    • 49名無し2016/11/16(Wed) 00:54:42ID:E4Mjg2MTM(2/9)NG報告

      아니 조선왕조는 출발부터가 쓰레기 병신국가이다. 나라의 이름조차 명나라에게 정해달라고 하고 농본사상을 제일로 삼고 사무역을 억제하고 조공무역을 우대한 개병신 잡종쓰레기 국가. 조선왕조=지금 북한

    • 50ㅇㅇㅇ2016/11/16(Wed) 00:55:40ID:U1OTMzODA(14/32)NG報告

      >>47 성리학에 대해서 물론 폐단도 있다. 하지만 성리학에서 양명학이 나왔다. 우리 조선은? 정여립이 있다. 기축옥사는 1589년에 있었던 일이다. 정말로 정여립이 죽지만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여립이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영국의 50년에 앞서서 세계최초의 공화국을 세웠을 것이다. 세계만물이 백성의 것이 아닌것이 없고. 그 누구인들 군주로 삼지 못하랴. 이 철학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나? 유교의 맹자가 한말이다. 한국인들이 정말로 모르는것은 유교는 왕위세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념이다. 특히나 전국시대의 맹자는 절대로 왕권옹위따위를 하지 않았다. 기대승, 남명조식 모두 이런 학파였다. 서인 동인이라는 큰 그림아래에 있는 조선의 세세한 모습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식으로 비판하는게 과연 옳은 것일까?

    • 51ㅇㅇㅇ2016/11/16(Wed) 00:56:16ID:U1OTMzODA(15/32)NG報告

      >>49 조선의 국호는 조선이 정해서 명나라에게 물어본 것이다. 조선이 좋겠냐? 회령이 좋겠냐? 명나라 지어준 것이 아니다. 제발 역사책을 제대로 봐라..

    • 52名無し2016/11/16(Wed) 00:57:58ID:E4Mjg2MTM(3/9)NG報告

      >>51 그게 정해달라고 한 거다 ㅋㅋㅋㅋㅋ

    • 53ㅇㅇㅇ2016/11/16(Wed) 00:58:22ID:U1OTMzODA(16/32)NG報告

      >>49 내가 조선말기의 모든 폐단마저 좋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제발 조선의 국풍이 말하고자 했던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이어가야할 아름다운 정신이라는 것이다. 15세기의 당당했던 해동의 조선을 생각해라. 조선이 건국되었던 이념자체가 고려말기의 그 썩은 사치와 폐단과 귀족들의 모순을 청산하기위해서 건국된 나라였다. 너의 말대로였다면 어째서 정도전이 20만의 병력을 이끌고 명나라와 전쟁을 하려고 했을까? 명나라와 전쟁을 해서 요동을 경락했다고 하더라도. 주체의 팽창적 만주정벌 정책에 조선이 버텨낼수나 있었을까? 이방원은 역사의 사대주의자라고 생각하나?

    • 54名無し2016/11/16(Wed) 00:59:23ID:Y0NzAxNTY(2/2)NG報告

      仲間割れするな。
      おまエラは平等に価値が無い。

    • 55名無し2016/11/16(Wed) 00:59:45ID:AxMzQ0MDg(3/12)NG報告

      >>48
      이미 결과가 나와있는 이상 엄연히 결과를 기준으로 평가해야지 도대체 무엇이라고 바라봐야 하는데? 니가 말하는 일종의 의도는 좋았다는 결론에서 끝나고 마는건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 56ㅇㅇㅇ2016/11/16(Wed) 00:59:55ID:U1OTMzODA(17/32)NG報告

      >>52 전혀다르다. 단지 형식을 취했을 뿐이다. 너도 알지 않은가? 만약에 중화를 평정한 명나라와 정면 대결을 했다면 ? 설사 주원장의 대에는 조선이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주체, 영락제는? 너는 감당이 되었을까? 태종실록에는 숱하게 전쟁준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의 말대로였다면 어째서 태종이 그렇게 병력을 육성하고 여진족의 귀화를 대거 받아들이고 북방의 병력과 화기병기를 개발했을까? 성종대에 명나라의 사신이 조선의 화기병기를 두려워 했을까?

    • 57名無し2016/11/16(Wed) 01:00:37ID:E4Mjg2MTM(4/9)NG報告

      성리학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이념. 관리 등용할 때 성리학으로 시험을 보고, 법전도 성리학을 토대로 쓰여졌다. 사회를 지배했다.
      조선=Isis=북한

    • 58名無し2016/11/16(Wed) 01:01:26ID:AxMzQ0MDg(4/12)NG報告

      >>53
      그래서 그 의도가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는 순전히 별개의 평가가 이뤄져야지 언제까지 의도 운운하고 있을래?

    • 59ㅇㅇㅇ2016/11/16(Wed) 01:01:34ID:U1OTMzODA(18/32)NG報告

      >>55 정신승리라니..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걸 한국인이 너라면 할것이라 생각한다. 조선의 관등체계는 연분법 과 같은 경작의 상대성에 기초한 봉급체계이지 않은가. 만약에 조선시대에 지금과 같은 무역의 외부효과로 경기가 좋지 않았다면 삼정승조차도 식구가 먹을 정도의 식량을 배급받지 못했다. 조선시대였다면? 최순실의 일족은 삼족이 멸하여 저자거리에 효수되었을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전성기 조선의 국풍과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고려와도 관련이 없지 않다는걸 너도 알지 않나..

    • 60ㅇㅇㅇ2016/11/16(Wed) 01:02:38ID:U1OTMzODA(19/32)NG報告

      >>58 조선의 모든 폐단까지 내가 안고가자는 말이 아니지 않나.. 모든 조선의 역사가 실패한 역사라면 그러한 실패의 역사 끝에 탄생한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인 우리는 과연누구라고 생각하나? 고려인? 신라인?백제인? 고구려인? 그 모두다. 거기에 조선인이 절대로 빠질수 없다는걸 말하고 싶다.

    • 61名無し2016/11/16(Wed) 01:03:28ID:E4Mjg2MTM(5/9)NG報告

      단순히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초기 때부터 소중화사상에 심취했지. 태종시절의 혼일강리역대국도만 봐도 ㅋㅋ

    • 62名無し2016/11/16(Wed) 01:03:34ID:AxMzQ0MDg(5/12)NG報告

      >>56
      사회체계 얘기하고 있는데 군사력 평가하고 앉았네. 니가 자랑하던 태조때 군사력 이미 선조때 다 말아먹어서 임진왜란 직전까지도 여진족한테 털리고 있었다. 괜히 삼국시대 보다 군사력이 퇴보했다고 평하는게 아니다.

    • 63ㅇㅇㅇ2016/11/16(Wed) 01:04:39ID:U1OTMzODA(20/32)NG報告

      >>62 건국 이후 200년간 평화의 시대가 유래없던 시대이지 않나. 그평화가 어째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냐... 조선의 모든 역사가 실패한건 아니라는걸 너도 알고있으면서 왜 말기의 역사만을 강조하면서 조선자체를 지우고 싶어하냐. 이건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면서 조선이 고려를 멸망시키면서 하고 싶어하던 일의 재탕이지 않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64名無し2016/11/16(Wed) 01:05:29ID:AxMzQ0MDg(6/12)NG報告

      >>60
      아니 그래서 한글만으로 그 당시 사회체계가 우월했다고 주장할수 있는거냐? 어떻게 되먹은 평가방식이냐?

    • 65名無し2016/11/16(Wed) 01:05:31ID:E4Mjg2MTM(6/9)NG報告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인지? 실패라고 해서 모든 정체성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 66ㅇㅇㅇ2016/11/16(Wed) 01:05:41ID:U1OTMzODA(21/32)NG報告

      >>61 자잘한 부분은 다 형식이다. 정말로 태종실록에도 영락제의 만주평정이나 여러 외교마찰로 군사충돌에 대한 대비나 병력 증강과 군사연구에 진력하는 기록이 너무 많다. 그런 일방적인 사대가 절대 아니었다..

    • 67ㅇㅇㅇ2016/11/16(Wed) 01:06:29ID:U1OTMzODA(22/32)NG報告

      >>65 고려말기도 실패이지 않냐? 그거랑 같은거다 나도 조선말기는 실패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전의 왕조가 통라나 발해 고려였다면 과연 조선을 우리가 그렇게 인식했을까? 내가 정말로 니가 말하고 싶어하는걸 이해를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 68ㅇㅇㅇ2016/11/16(Wed) 01:08:04ID:U1OTMzODA(23/32)NG報告

      고려말기는 군사력으로 원나라를 물리쳤지만 왜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하냐? 그건 민족전체가 패배감에 빠져서 그저 무기력해져서 아니겠냐.. 만약에 조선에 이성계가 태어났어도 과연 게릴라 전으로 일본을 물리쳤을 수 있었겠냐.. 환빠같은 개새끼들때문에 내가 이런소리를 하면 국뽕으로 몰리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우리가 그런 패배감에 빠져있을수록 우리의 잃어버린 100년은 더욱 멀어져만 간다는거다. 조선왕실보물고에 잠들어 있던 보물조차도 파악을 못하고 있는게 우리 현실이야..

    • 69名無し2016/11/16(Wed) 01:08:05ID:AxMzQ0MDg(7/12)NG報告

      >>63
      평화는 고려시대에도 있었고 다른 나라들도 다 있었다. 사회의 안정도만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는 도구가 될수는 없는데? 왜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거지?

      모든게 실패라고 볼수는 없지 그러나 방향이나 정책적으로는 실패가 당연했다는 얘기다.

    • 70ㅇㅇㅇ2016/11/16(Wed) 01:09:06ID:U1OTMzODA(24/32)NG報告

      >>64 15세기의 조선과 니 말대로 우리 대한민국 건국전의 조선이 다르겠지 하지만 다르지만 같은 조선아니냐.. 나는 그 같았던 조선의 좋았던 부분마저 같이 비하하지 말자는 말이다..

    • 71名無し2016/11/16(Wed) 01:10:25ID:AxMzQ0MDg(8/12)NG報告

      >>68

      그래서?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던게 사실이 아니던게 되냐? 왜 자꾸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회피하기만 하는데?

    • 72ㅇㅇㅇ2016/11/16(Wed) 01:13:37ID:U1OTMzODA(25/32)NG報告

      >>71 유교적 가치관에서 아시아적 가치의 아시아의 4룡이라고 재평가 받던 시절의 원동력이 동시에 '유교'라고 평가 받았지 않냐. 위계적 질서나 권위주의가 과연 유교에서만 비롯되었을까? 畏敬이라고 말하며 공자는 젊은 후학들의 발전과 지식의 선진체계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며 선학들은 자기정진의 노력에 게을리 하면 안된다고 했다. 과연 선진시대의 유교가 무엇이고 맹자가 말한 정의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조선이 그 모양이 되었겠냐? 성리학의 탓이라면 어째서 15세기의 조선이 그렇게 강국이었을까? 모든것은 맥락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모든것은 유교이기 떄문! 모든것은 일본인의 잘못! 모든것은 무언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 73名無し2016/11/16(Wed) 01:14:07ID:AxMzQ0MDg(9/12)NG報告

      >>70
      조선이 좋았던 부분이라면 안정된 사회 였다는것, 다른 의미로는 정체된 사회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단 조선만 해당하는 부분이 아니라 중국또한 성리학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해금령을 선포해서 해상무역이 쇠퇴하고 국력이 감퇴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조선또한 사정은 비슷했고.

    • 74ㅇㅇㅇ2016/11/16(Wed) 01:14:43ID:U1OTMzODA(26/32)NG報告

      유교를 옹호하는게 아니다. 나는 조선의 좋았던 부분마저 철저하게 부정하고 해체하는게 과연 옳은가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만약에 그렇다면 15세기의 조선의 청자와 조선초기의 모든 문명들의 연속에 살고있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냐? 내가 말하고 싶은건 그거다..

    • 75名無し2016/11/16(Wed) 01:15:41ID:AxMzQ0MDg(10/12)NG報告

      >>72
      그런식으로 니 좋을대로 취사선택 하면 세상이 안나쁠것이 존재하냐? 유교자체가 지닌 한계가 명확했고 거기에 경도되고 있던 조선 지배층들이 악영향을 끼쳤다는건 놀랄것도 없는 얘기다.

    • 76名無し2016/11/16(Wed) 01:16:41ID:E4Mjg2MTM(7/9)NG報告

      좋은 부분만 말한다면 주체사상도 훌륭하다 ^ ^

    • 77ㅇㅇㅇ2016/11/16(Wed) 01:17:01ID:U1OTMzODA(27/32)NG報告

      >>73 그런 단점도 분명히 있었지 그런 부분들은 우리가 답습하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배울점이 없는건 아니지 않냐 내말은 그거지.. 나는 너랑 싸우고 싶어서 이런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다. 비단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선을 부정하는게 당연시 되어가고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도대체우리는 누구냐? 나는 이런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남한과 북한은 갈라져 있다. 당장 조선시대는 경상도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가서 만주를 구경하고 두만강으로 배편을 타서 상하이를 구경하고 서울과 인천으로 배를 타고 돌아오던 국가 였다. 우리는? 우리는 섬나라다. 조선의 역사도 무조건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라고 한다면 과연 스스로 답을 정할수나 있을까..

    • 78ㅇㅇㅇ2016/11/16(Wed) 01:17:56ID:U1OTMzODA(28/32)NG報告

      >>76 주체사상에 도대체 어떻게 좋은부분이 있냐.. 빨갱이 씨발년들 떄문에 우리가 지금 이 모양인데.. 그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그 많은 사람이 죽고 우리가 이러고 있었겠냐.. 진짜 지금 당장이라도 나에게 총을 준다면 나는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죽을 자신이 있다. 나의 피가 새로운 내일을 만들거 아니냐.

    • 79名無し2016/11/16(Wed) 01:18:39ID:AxMzQ0MDg(11/12)NG報告

      >>74
      결론적으로 니가 운운하는 조선의 좋았던 점들은 대부분 유교와는 별 상관이 없는 얘기들임. 그냥 유교가 있어서 그러한 부분들이 발생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좋은점 보다 안좋은점들이 더 많아지면 그건 실패라는 얘기다.

    • 80ㅇㅇㅇ2016/11/16(Wed) 01:21:12ID:U1OTMzODA(29/32)NG報告

      >>75 세계의 평가지 않냐..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아시아의 가치라는 것을 과연 우리가 무시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무시하는 그것으로 확실히 무언가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과연 과거의 선조들의 모든것을 이해하고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 81名無し2016/11/16(Wed) 01:22:59ID:E4Mjg2MTM(8/9)NG報告

      유교는 폐해도 있었지만 사회를 안정시키고 한때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주체사상은 폐해도 있었지만 인민을 단합시키고 한때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뭐가 달라? 일부분만 도려내서 평가하지 마라

    • 82名無し2016/11/16(Wed) 01:23:01ID:AxMzQ0MDg(12/12)NG報告

      유교에서 강조하는 도덕론은 다른 철학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는 내용이고 성리학에서 그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정말 극소에 불과함. 고로 그 티끌만한 장점을 위해 수많은 단점들을 수용해야 한다면 그건 낭비 그 자체라고.

    • 83ㅇㅇㅇ2016/11/16(Wed) 01:25:53ID:U1OTMzODA(30/32)NG報告

      >>81 주체사상이 어떻게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했냐? 1950년대 후반부터 숙청하고 1960년대 부터 주체사상 주작이 시작되었는데.. 절대로 주체사상과 유교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사상이다. 정여립을 봐라. 정여립이 아시아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평가받지만 그 본인도 백제의 고유한 철학에 바탕을 이루었지만 분명히 유학자 였다. 맹자는 왕위세습을 가장 철두철미하게 부정한 사람이다. 공자도 마찬가지이고... 유교의 모든것이 결코 나쁜게 아니다. 논어나 맹자를 한번 봐라.. 전국시대는 삼한시대보다 더욱 치열했던 시대다. 그런시대에 우리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상으로 어떻게 해쳐나갈 수 있었겠냐..

    • 84名無し2016/11/16(Wed) 01:26:11ID:E4Mjg2MTM(9/9)NG報告

      성리학 이념 때문에 생긴 공보다 과가 훨씬 더 많은데 그렇다면 비판하는 게 당연하지? 뭐가 문제?

    • 85ㅇㅇㅇ2016/11/16(Wed) 01:27:16ID:U1OTMzODA(31/32)NG報告

      이 세상 가장 넓은 곳을 나의 집으로 삼아. 때를 만난다면 천하백성과 함께 천하를 도모할 것이나, 그 누구노 따르지 않는다면. 나 홀로라도 그 길을 가리라. 맹자가 한 말이다 여기서 그 길이란 義의 길이다. 이것이 본디 유교다. 주자의 성리학이 경도되었다고는 하나, 조선의 모든 성리학자가 주자에만 미쳤던 것이 아니다. 송시열이나 노론의 쓰레기로 오도된 것이다.

    • 86ㅇㅇㅇ2016/11/16(Wed) 01:29:11ID:U1OTMzODA(32/32)NG報告

      내가 무슨말을 한들 너의 생각이나 마음까지 어떻게 움직이겠냐. 다만 모든 조선의 부분이 쓰레기로만 우리에게 남은것은 아니라는거지.

    • 87名無し2016/11/16(Wed) 10:58:56ID:UyMTgzMjQ(1/1)NG報告

      朝鮮王朝末期は資金調達の為に、文化財を海外に売ったんじゃないかな?
      むしろ国家破産するまで金目の物を、全く手放さなかった可能性の方が低いよ。

    • 88名無し2016/11/16(Wed) 21:06:15ID:QzMDUxMDA(1/1)NG報告

      そういえば古代日本にも高速道路網があったな。
      近代になるまでそれ以上の道が造られなかったほどの技術と規模のが

    • 89名無し2016/11/18(Fri) 00:16:12ID:IwMTEyMzA(1/1)NG報告

      >>44

      横から失礼
      文化財を売り払うほど、財政難になっていたからではないかな?
      順宗が朝鮮国民へ宛てた大韓帝国第二皇帝としての
      最後の交付書類を探してみて
      現物はソウルにあるから

      むしろ国家破綻した国に文化財が残っている方がおかしいでしょう?

    • 90名無し2023/06/20(Tue) 13:04:37ID:UzNDIxNDA(1/1)NG報告

      日本の城文化は、その国の歴史と社会を形成する上で重要な役割を果たしました。
      日本の城は9世紀に建てられたもので、封建時代には武士の防御の要塞として機能しました。
      これらの城は軍事構造だけでなく、大名や大名の政治的中心地としても機能しました。
      日本の城のデザインや建築には、大砲の火をそらす壁や侵略者を防ぐために水や毒蛇で満たされた堀など、ユニークな特徴がたくさんありました。
      江戸時代には、徳川将軍が厳格な社会階級を確立し、大名に年間の半分を首都で過ごし、半分は自分たちの地方で暮らすように要求していたため、城文化はさらに重要になりました。
      現在、多くの日本の城は再建や修復にもかかわらず、日本の豊かな歴史と文化遺産の証として残っています。

    • 91名無し2023/06/20(Tue) 13:47:17ID:MyMDg2MDA(1/4)NG報告

      >>90
      そういう出鱈目な話って、どこで聞いてくるの?☺️

    • 92名無し2023/06/20(Tue) 16:14:26ID:Q5NjA3MDA(1/1)NG報告

      日本の城は、古代と近世にある。今、有名なのは、近世の城、中世は、城を作らなかった。平安時代中期から室町時代までは、城はほとんど作らなかった。

    • 93名無し2023/06/20(Tue) 16:23:15ID:MyMDg2MDA(2/4)NG報告

      >>92
      そういう出鱈目な話って、どこで聞いてくるの?☺️

    • 94名無し2023/06/20(Tue) 19:16:54ID:I5OTA3ODA(1/2)NG報告

      高麗時代の遺跡ですか?

    • 95名無し2023/06/20(Tue) 19:20:17ID:I5OTA3ODA(2/2)NG報告

      >>92確かに日本の中世(平安時代から室町時代)の城は聞かないなあ、中世は寝殿造りの館です。近世になって、室町幕府が弱体化して、戦国大名が城を作るようになった。

    • 96名無し2023/06/20(Tue) 19:37:51ID:MyMDg2MDA(3/4)NG報告

      >>95
      楠木正成が拠った千早城は明徳3(1332)年の築城☺️

    • 97名無し2023/06/20(Tue) 19:39:39ID:MyMDg2MDA(4/4)NG報告

      >>96
      失礼、明徳3(1392)年は廃城年でした。築城年は元弘2(1332)年。

    • 98名無し2023/06/20(Tue) 19:45: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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