広開土王碑 「倭が新羅や百済を臣従させ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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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9/03/10(Sun) 21:21:42ID:c5MzIxOTA(1/1)NG報告
    • 233誰かさん2019/04/01(Mon) 21:03:56ID:M3MTgyODE(3/5)NG報告

      韓国がおかしな歴史観を披露し始めたのは、北朝鮮と
      融和するようになってからだよね。北朝鮮の民族主義的歴史観と同じこと言うようになってる。危険だよ。

      韓国は北朝鮮地同一視されるようになって来てる。
      現在の、北朝鮮だけでなく韓国も世界から孤立してるよね。

      北朝鮮のスポークスマンみたいで聞くに耐えないよ。

    • 234コンパス2019/04/01(Mon) 21:08:21ID:UwNzYxNTU(1/1)NG報告

      >>226
      傭兵の対価が人質の王子wwwww
      変な風習wwww

    • 235誰かさん2019/04/01(Mon) 21:25:28ID:M3MTgyODE(4/5)NG報告

      韓国人は現在の北朝鮮をどう評価するの?
      統一したいんだろ?

      韓国がおかしな歴史観を披露し出したのは、
      北朝鮮と融和し出して、北朝鮮と共に日本を共通の敵と認識し出してからだよ。

      北朝鮮と韓国は現在、世界で孤立してることに
      気付いてる?
      北朝鮮と同じような民族主義的歴史観を披露したって
      どこの世界にも相手にされないよ。

      5000年の歴史なんて北朝鮮と同じこと言ってるよ。
      韓国に長年住んでいるドイツ人の歴史学者にすら
      疑問を呈されているよ。

      まず、小学校の教科書に全く違う写真を長年載せて
      子供達に間違った歴史を教えていたことを恥じるべきではないか?そういった韓国の学会をどう思う?

      まず韓国は日本にそのことについて私が間違っていましたと謝罪すべきではないか?

    • 236誰かさん2019/04/01(Mon) 21:29:42ID:M3MTgyODE(5/5)NG報告

      朝鮮人の日本に対する劣等感というのは、
      はるか昔から日本に一度も勝てなかったことによる
      DNAに染み付いたものなんだよ。

      日本に勝ちたい日本に勝ちたいという恨みが
      古代から先祖代々受け継がれているんだよ。
      100年というレベルの話じゃない。

      古代から朝鮮半島に住む人間は日本に勝ちたいと願い
      恨みを蓄積して来た。先祖代々ね。

      韓国は北朝鮮のように歴史を誇らしく修正してる
      だけだよ。外交だけでなく、歴史観まで北朝鮮の
      報道官になってるよ。

    • 237先人間後知識2019/04/01(Mon) 21:44:35ID:UxMDkwMDM(4/4)NG報告

      大企業による業務提携と利益の分配が優れ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韓国の企業が日本企業の経営理念に感銘を受けることはよくあることです。

    • 238名無し2019/04/01(Mon) 22:15:19ID:AzNDc4MzA(1/1)NG報告

      >>226
      どれだけ朝鮮人が自国の歴史観を持って正当性を主張しようとも、
      近代的歴史すら自国に都合よく変えてしまうことを踏まえれば、
      もうそれだけで信じるに値しないな。
      日帝残渣を大義に古墳すら埋めるんだからな。

    • 239名無し2019/04/30(Tue) 15:59:40ID:g4MDgzMjA(2/2)NG報告

      そもそも朝鮮半島最古の歴史書が1145年の『三国史記』の時点で、お察しですわ。

    • 240名無し2019/04/30(Tue) 16:16:41ID:UzNTc4MTA(1/2)NG報告

      韓国の歴史
      中国の奴隷→一時日本の奴隷→中国の奴隷→日本の奴隷→アメリカの奴隷→北朝鮮の奴隷(予定)

      キングオブ奴隷民族

    • 241名無し2019/04/30(Tue) 16:22:04ID:UzNTc4MTA(2/2)NG報告

      >>239
      1145年から現在までずっと歴史歴史改ざんして国民を騙し続けるってすごいですね

      古墳を破壊して、建設物を移動、碑文を削る・・・歴史修正主義にもほどがありますね

    • 242名無し2019/04/30(Tue) 16:25:55ID:gyMzQ3NzA(1/1)NG報告

      >>241
      歴史を忘れた民族に未来は無い

    • 243名無し2019/05/01(Wed) 08:14:50ID:A5MDQyMDU(1/1)NG報告

      >>232
      これ詳しくないけど、勾玉が日本だから日本が格上ってことにはならんだろ?アフリカ植民地産の黄金や宝石使ったらアフリカの格下ではあるまい。それとももっと詳細あるのか?

    • 244お願いしたい2019/05/01(Wed) 08:26:41ID:MwMTEzMTg(1/2)NG報告

      >>243
      新羅の初代王は倭人だからねぇ。

    • 245お願いしたい2019/05/01(Wed) 08:34:37ID:MwMTEzMTg(2/2)NG報告

      >>243
      新羅の初代王は倭人だからねぇ。

      >>219
      漢字ちゃんと読めてる?
      独自の解釈してない?

    • 246ムン 邪淫2019/05/01(Wed) 08:52:01ID:Y4NDYzMDU(1/1)NG報告

      >>1最近、韓国人は倭人を馬鹿にしてたのに中国の史書からも半島南部は倭人が支配してたと知ると、倭人自体が朝鮮人先祖であり列島に渡ったのが分家であるみたいな主張をするようになった。しかし韓国人のDNAを調べると倭人の痕跡があるのだが女性の倭人の系列しか確認されない。
      ここで韓国人に質問!
      中国が半島に攻め入ってきて占領し韓国人の男を皆殺しにし韓国人の女を犯して子供を産ませた。韓国人のあなたはこの子供を韓国人の正当な後継者として認めますか?まあ認めないと思うが。

    • 247名無し2019/05/01(Wed) 08:56:20ID:k0Njg0NzQ(1/1)NG報告

      確か都合の悪い文言とか削ってたんじゃなかったけか。

      ベトナム博物館の地球儀とかパラオの橋とか朝鮮戦争支援国の石碑とか。
      千年以上たっても朝鮮人の本質は何ひとつ変わってない。

    • 248名無し2019/05/01(Wed) 16:00:17ID:kxNjc2ODA(1/1)NG報告

      >>246
      すまん、倭人が征服したなら女性の系列って変では?どう解釈できるの?

    • 249名無し2019/05/01(Wed) 16:57:23ID:U3NzEyMjM(1/3)NG報告

      >>248
      ミトコンドリアの遺伝子が母親由来だから倭人の母系が証明できる、というようなことだとおもう。

    • 250名無し2019/05/01(Wed) 17:02:36ID:U3NzEyMjM(2/3)NG報告

      >>248
      249
      男のY染色体の系統が倭人ではない。
      だから、侵略者の男と倭人の女の混血ってな意味だと思う。

    • 251名無し2019/05/01(Wed) 17:56:16ID:gzNzk0NDE(1/1)NG報告

      >>250
      ?バカですまんが、よう分からん。シナからの侵略者が倭人の女性を犯したってことか?

    • 252名無し2019/05/01(Wed) 19:12:46ID:M4NzYxOTY(3/3)NG報告

      倭冠のチャイナ沿岸部や内陸、半島各地での活動の影響は国の状態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海賊類はいつの時代にも海洋にはいる、倭人とされるものが半島各地で強い勢力を持っていた時期があったのは間違いはないが、倭人の以前の勢力にも各地の集団がいたのだろうな。

    • 253名無し2019/05/01(Wed) 23:18:06ID:IyNTAzNzA(1/1)NG報告

      >>223 담보야 일본전국시대 에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담보로 보냈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힘이 약해서 도쿠가와에게 인질을 보냈겠나

    • 254名無し2019/05/01(Wed) 23:32:48ID:U3NzEyMjM(3/3)NG報告

      >>251
      250
      246が言っている「中国人が韓国人の男を皆殺しにして云々」は、今からそれが起きたとしたらこののちの韓国人は今の韓国人の正統な子孫かという問いだろうが、それは、かつて、半島を支配していた倭人と外来の異民族の間で起きたことで、韓国人は、自分が自慢に使う百済の正統な子孫ではないという暗喩。246が想定する異民族はわからないが、たぶんエベンキ。

    • 255名無し2019/05/06(Mon) 16:50:47ID:U4MDAwMDQ(1/1)NG報告

      朝鮮半島は何度も日本人に支配されてるニダ ふぁっびょ~ん

    • 256名無し2019/05/06(Mon) 16:52:46ID:k5MTA3MDg(1/1)NG報告

      この研究の件で、

      中国の研究者に

      韓国人は漢文が読めない

      と酷評されてたな

    • 257名無し2019/05/06(Mon) 16:55:14ID:UyMTEyMTg(4/5)NG報告

      >>253
      そうニダッ!!!
      百済はイルボンに人質を送っさらさら セヨ~

    • 258名無し2019/06/27(Thu) 23:10:35ID:QwNTE1ODI(1/1)NG報告

    • 259名無し2019/06/27(Thu) 23:33:57ID:cwMzA3MTM(1/1)NG報告

      >>45
      じゃあなんで日本式の古墳が韓国で出土するの?w

    • 260名無し2020/01/22(Wed) 20:21:06ID:k5NjIzMTQ(1/1)NG報告

    • 261名無し2020/01/23(Thu) 17:30:39ID:gwMDk5ODg(1/1)NG報告

      神功皇后の三韓征伐は、失敗だった

    • 262名無し2020/01/26(Sun) 18:53:31ID:M2OTkyMDg(1/1)NG報告

      >>253
      人質として送ったわけではないのだけど。

    • 263名無し2020/01/27(Mon) 15:14:33ID:I5OTc4NzU(1/1)NG報告

      そんな史実ない

    • 264名無し2020/01/27(Mon) 18:09:20ID:M3NjM0MDI(1/7)NG報告

      강력한 고구려가 남하하고 있는 시점에서 왜국이 신라뿐만 아니라 우호 관계였던 백제까지 공격해서 신민으로 삼는 것은 한반도의 삼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짓이므로, 전략적으로 볼 때도 왜국이 백제와 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해석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해 이후에도 백제와 왜국은 멀쩡히 협력 관계를 잘 유지한다. 따라서 왜국이 辛卯年에 바다를 건너 百殘을 깨뜨렸다는 기사를 해석하는 방식이 주된 쟁점이다.

      우선, 정말로 백제는 왜국에게 깨졌는가?
      일본 측은 당시에 실제로 왜국이 강성하여 백제, 신라 등을 깨뜨렸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이걸 증명하기 위해 흔히 <宋書>, <隋書> 등의 기록 또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朝貢 및 볼모 기사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타당할까? 먼저 <삼국사기>의 경우를 살펴보자.

      신라의 朝貢의 경우, 신라가 왜국의 침공을 항시 잘 격퇴해왔음을 의미한다는 군사학적 연구가 존재하기도 하며, 또한 신라에서 볼모를 보낸 왜국이 야마토 정권인지 아니면 일개 지방 세력인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게다가 신라가 왜국에 인질을 보낸 것은 未斯欣 한 명 뿐이고,그를 왜국에 보낼 당시에 신라의 임금 입장에서 未斯欣은 일부러 숙청하는 것에 가까운 특수한 상황이었다.

      백제의 경우 阿莘王 때 태자 腆支를 왜국에 인질로 보낸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인물이 왜국으로 갔으나, 그 성격이 실제로는 인질이 아니라 외교관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견해가 정설이다.

    • 265名無し2020/01/27(Mon) 18:09:42ID:M3NjM0MDI(2/7)NG報告

      근대 이전에 이런 경향은 매우 흔했다. 유럽 역사에도 이런 식으로 인질 겸 외교관으로 가는 경우는 매우 흔하여, 로마 제국에 稱臣하던 여러 게르만 부족들이 귀족의 자제들을 인질 겸 유학생으로 파견하여 로마식 교육을 받게 했으며,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장성한 게르만 귀족들은 對 로마 외교의 일선에서 자신의 부족에 큰 기여를 했다.
      동고트 왕국의 성군인 Theoderic 대왕도 이런 인물에 속한다. 따라서 근대 이전에 보내지는 인질들은 전쟁 포로와 같은 진짜 인질들과는 다르게, 그 나라의 정부나 왕실로부터 우대를 받았고, 가끔씩 모국과의 외교를 위한 창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런 제도가 현대에는 타국에 외교공관을 설치하고 외교관을 상주시키는 제도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腆支가 왜국으로 간 시점에서 정작 '백제'와 '왜국'이라는 두 당사자 간에는 "선왕이 쌓은 우호를 잇기 위해 방문하였다."라는 <百濟三書>의 기록과 "내조하였다."라는 일본 쪽의 기록만 있을 뿐, 인질을 보냈다는 언급이 없다. 즉, 일본서기에도, 또 일본서기에서 인용했다는 백제의 기록에도 '인질'이라는 표현은 없고 한참 후대에 쓰인 삼국사기에만 나올 뿐이다.

    • 266名無し2020/01/27(Mon) 18:16:00ID:M3NjM0MDI(3/7)NG報告

      왜국과 백제의 관계의 경우 역시, 왜국이 백제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일본의 망상 또는 반대로 백제가 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는 식의 극단적 망상과는 달리, 군사·문화적 우호 관계로 보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다. 어느 한쪽의 국력의 변화에 따라 서로의 발언권이 강약이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 쪽만 보더라도,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먹었다는 식의 학설을 예전처럼 밀어붙이기보다는 한반도 남부에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는 정도로 가는 추세이다.

      임나일본부설의 현 주소는 백제의 '遼西經略說'과 비슷한 면이 있다.
      遼西經略說은 사실 그걸 받쳐주는 역사서도 의외로 적지 않고 학계에서도 사뭇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자료들을 비교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遼西經略說은 점차 힘을 잃었고, 한국 학계의 정설은 '최대한으로 생각해도 백제인 집단 거주지 정도'로 굳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백제의 遼西經略說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고, 심지어 이는 國定 국사 교과서에서도 '백제가 遼西에 진출했다'라는 식의 애매한 표현으로 소개되어 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 경영설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뒷받침하는 역사서는 있는데 교차검증을 해보니 근거가 희박하고 일본 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학계가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고 대중들 중에서도 믿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이다.

    • 267名無し2020/01/27(Mon) 18:19:22ID:M3NjM0MDI(4/7)NG報告

      한편 중국 역사서 쪽의 기사들, 특히 <宋書>의 倭五王 기사 등은 대체로 왜국에서 나온 일방적 주장인 경우가 많아서 다른 역사 자료와의 교차검증이 더욱 필요하다. <隋書>만 봐도, 신라를 고구려의 패잔병이 세웠다고 하거나, 신라의 왕이 백제 출신이라고 하는 등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전부 사실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즉, <宋書> 또는 다른 중국측 역사 자료들에 나오는 기록들을 전부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268名無し2020/01/27(Mon) 18:23:59ID:M3NjM0MDI(5/7)NG報告

      물론 <隋書倭國傳>과 <宋書倭國傳>에 분명 일본 측에 유리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宋書>에는 433년부터 왜국의 倭五王이라는 자들이 중국을 상대로 교류할 때 '倭·백제·임나·가라·신라·秦韓·慕韓을 지배하는 七國諸軍事 安東大將軍'을 자칭하였다고 나온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아니면 착각인지 허세인지는 백제나 신라 측에 그러한 기록이 없으니 직접적으로 알 수 없으나, 최소한 5세기 초에 왜국이 한반도를 속국으로 여겼음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저 官爵저 왜국 측의 허세다. 왜왕이 요구한 관작에서 중국은 백제를 제외하고 倭·신라·임나·加羅·秦韓·慕韓 6나라에 대한 통치를 인정하는 관작을 내려주었다. 어째서 백제 혼자 제외된 것일까?

    • 269名無し2020/01/27(Mon) 18:26:07ID:MxOTQ4NDA(1/2)NG報告

      また漢文の読み方がおかしい人々が来たのか
      韓国人は面白いなぁ

    • 270名無し2020/01/27(Mon) 18:27:16ID:Q4NTYwOTE(1/1)NG報告

      >>268

      また朝鮮Wikiからのコピペですか。

      要するに、「資料にはこう書いてあるけど、ウリに都合が悪いからそんなことはあってはならないニダ!!」ですね。はいはい、良かったね。

    • 271名無し2020/01/27(Mon) 18:29:32ID:M3NjM0MDI(6/7)NG報告

      당시 백제는 중국 남조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일찍 수용하던 상황이었다. 이때 백제가 중국으로부터 받은 관작은 왜국의 '安東大將軍'보다 2단계 높은 '鎭東大將軍'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백제의 위상이 왜국보다 더 높았음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일본이 백제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황당한 주장과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왜국이 백제가 자국의 속국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중국 측에 여러 차례 전달하자, 이미 백제와 자주 교류하여 백제의 실상을 알고 있었던 중국 남조는 일본이 자칭한 官爵名에서 백제를 아예 제외한다. 즉, 일본이 요구한 官爵名은 그저 허울뿐인 관작이었으며, 따라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비슷한 사례는 중국의 책봉 사례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眞德女王은 '新羅樂浪郡王'으로 책봉되었는데, 樂浪은 정작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에 있었다. 백제의 威德王 또한 '東靑州刺史'으로 책봉되었는데, 東靑州는 중국 산둥지방이다. 이처럼 타국의 영토 이름으로 관작을 하사받는 경우는 당시에 매우 흔했다.

    • 272名無し2020/01/27(Mon) 18:35:14ID:M3NjM0MDI(7/7)NG報告

      >>269
      >>270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왜왕이 받은 관작 이름을 보면 '秦韓'이 나온다. 그런데 秦韓은 당시 신라에 흡수되어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시기상으로 맞지 않는 국명이 나온 것을 통해서도 이 관작이 허울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가로 《일본서기》나 《고사기》 등에서는 '삼한정벌', '임나일본부설'를 말하고 있지만, 대개는 신화적 서술과 '二周甲引上'을 비롯한 '왜곡'이며, 철저한 검증 없이 섣불리 믿기는 힘들다. 정리하자면, 왜국이 스스로 당시 사실과는 다르게 백제 등 한반도의 여러 나라들을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여겼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서기》 중 391~396년에 해당하는 기사들 중 일본이 5만의 고구려군과 싸운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일본 측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갖는다. 한국 측 역사서들 중에도 일본이 391년에 한반도를 침공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다시 말하자면, '倭가 백제를 깨뜨리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辛卯年 기사의 일본식 해석이 지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주장을 뒷받침할 다른 기록들이 한중일의 어느 역사서들에서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일본 측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

    • 273コンパス‐メタル2020/01/27(Mon) 18:39:11ID:YyNjUyMzI(1/2)NG報告

      >>272
      韓国側の歴史書って何?

    • 274名無し2020/01/27(Mon) 18:43:23ID:AxNjU4Njg(1/1)NG報告

      >>272
      韓国に歴史書なんてないよ
      中国の歴史書なら「三国志」や「後漢書」にその記述がある

      つまり広開土王碑などの資料がある者と違い、韓国の主張に関しては全く以って一次資料がない

    • 275名無し2020/01/27(Mon) 18:43:31ID:U2NTY2NTI(1/1)NG報告

      古墳の解釈はどうなんだ?
      韓国wikiの説明は根拠に欠ける
      一次資料のある中国と日本の歴史観に比べると韓国の主張は妄想でしかない

    • 276名無し2020/01/27(Mon) 18:46:44ID:g5NjE1MzE(5/5)NG報告

      倭国の王が百済の支配権を表す称号を除外した理由は
      百済が既に中国王朝に朝貢して百済王と認められていたからだ

    • 277名無し2020/01/27(Mon) 18:48:51ID:gyNjMxNzg(1/1)NG報告

      また一次資料皆無の韓国人の妄想が始まったかw
      倭が百済や新羅を一時的にでも支配したのは覆りようのない事実なのに
      世界で韓国人だけがそれに異論を唱える
      原因は感情的になって史実を認められないという理由w

    • 278コンパス‐メタル2020/01/27(Mon) 18:49:23ID:YyNjUyMzI(2/2)NG報告

      >>272
      一次資料を後世に残せないって事は
      文化レベルが低いって理解できる?

    • 279名無し2020/01/27(Mon) 18:55:00ID:MxOTQ4NDA(2/2)NG報告

      韓国人は
      僕の考えた歴史
      が好きだな。

    • 280名無し2020/01/27(Mon) 19:18:14ID:Q3MTQwMjk(1/2)NG報告

      >>272
      4世紀末の半島動乱についての記録は、おそらく本来は半島諸国家にこそ詳細なものが残されていた筈であるが、これらの国家が滅亡したために散逸したものと考えるのが妥当。300年後に編纂された『日本書紀』に詳細が載せられなくても不思議ではない。
      一方で倭国が半島に進出、半島国家を服属させていた事は、書紀以外でも『古事記』『万葉集』『宋書』『諸番職貢図鑑』『三国史記』等の史料から明らかにうかがえる。『高句麗好太王碑』はこれらの記述を具体的に補完するものであると考えるのが自然。

    • 281名無し2020/01/27(Mon) 21:31:13ID:gxNzg0MTk(1/1)NG報告

      >>280
      そういう知性100%の見地は、韓国人は理解しないんだよね。

      白か黒か、両極端を叩き込まないと、韓国人は理解しない。

      韓国人は、3行以上の長文は理解しない。

      韓国人は、中学生が納得する表現に落とさないと理解しない。
      100万文字の活字よりも、1枚の図解でないと理解しない。

    • 282名無し2020/01/28(Tue) 00:45:14ID:g4ODE4NTY(2/2)NG報告

      >>281
      満足に字も読めねぇゴキブリ民族がグダグダ喚くな。


      こんな要約で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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