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베트남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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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8/11/14(Wed) 11:54:24ID:A4ODA2ODI(1/1)NG報告

      한국군의 베트남인 학살 네. 물론 맞습니다.
      국군 일선 부대에서 행해진 학살은 비록 우발적이었거나 혹은 일말의 지휘 계통을 따라 이루어졌던 간에 크나큰 범죄였고 비극이었습니다. 국군의 이름으로 잘못이 있었던 이상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보상해주는 게 도리. 일본 역시 할말은 없습니다. 1940년 베트남에 진주한 일본은 전선이 넓어지고 본국, 식민지, 군대에 대한 식량 조달이 다급해지자 베트남의 쌀을 수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설상가상 44년에는 흉년이 들어 생산량이 급감했는데도 수탈을 멈추지 않았죠.
      일본군의 베트남 쌀 수탈은 가학적이었는데, 당시를 이야기하는 베트남 작가의 소설 한 대목에서는 쌀을 수탈하고자 찾아온 일본군과 통역관 앞에서 쌀을 내어줄 수 없다고 포효하는 베트남인 여성을 일본군이 칼로 내리쳐 그녀와 안겨있던 아이의 몸뚱이가 잘려나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흉년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가혹한 수탈로 인한 베트남인들의 아사자 수는 200만명에 달했습니다..
      (물론 프랑스도 여기에 잘못이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일본이 들어왔다고 그냥 내뺀게 아니라 협정을 맺는데, 베트남 내 프랑스의 재산을 보존하는 대신 베트남 생산 쌀의 수매권은 일본이 독점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허기와 죽음에 가까워진 베트남인들은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베트민은 베트남인들에게 식량을 배급해주는 한편 일본군으로부터 쌀을 탈환해주는 기술을 알려주게 되었죠. 결국 일본 쌀 수탈로 호치민으로서는 수많은 베트남인들의 지지 기반을 형성할 수 있던 것이구요.중요한 건 베트민의 지지기반 확충이 아니라 일본군의 가혹한 쌀 수탈로 죽어나간 200만명의 베트남인들이 있었다는 것. 수탈로 인한 기근은 주로 베트남 북부에 있었는데, 메콩 델타만큼은 아니지만 곡창지대로 유명했던 홍하 델타 주민들을 그 아사 상태로 내몰았던 일본군은 어떤 의미로 정말 대단합니다.
      Ps. 한국은 과거반성한다. 일본 아베는 이런 사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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