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韓歴史好き集まれ!!東北行程について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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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8/10/31(Wed) 22:54:11ID:k2Nzc5NTI(1/23)NG報告

      中国と朝鮮の歴史問題である、東北行程について語るスレです

      東北行程とは、正式には『東北辺境歴史与現状系列研究工程』と呼ばれる、中国の国家プロジェクトです。
      いわゆる満州を中心とした中国東北地域の歴史研究ですが、高句麗の帰属など、様々な問題も含んでいます。

      中国の主張として

      ・高句麗人は決して朝鮮人ではない
      ・高句麗は中国古代に存在した北東地方の少数民族政権のひとつ
      ・高句麗の歴史は現在の中国の土地で展開された
      ・韓国では、高句麗の歴史が三国統一を通じて新羅に受け継がれたというが、高句麗は三国に含まれない

      などがあり議論を呼んでいます。

      韓国人の主張は韓国人に任せるとして、日本にも決して無関係ではない地域。
      中国の主張する東北行程に限らず、あの地域の複雑な歴史・民族・文化・帰属について議論しましょう

      なるべく喧嘩せず・・・

    • 269東アジア人2018/11/03(Sat) 18:52:50ID:U1MDAyNTM(20/23)NG報告

      民族とかいう虚構

    • 270名無し2018/11/03(Sat) 18:55:49ID:k4NzQ1MDI(1/1)NG報告

      >>265
      韓国人の『定説』と『決まってる』の情報源(ソース)は自分の思い込みなんだよ

      そもそも韓国人には父系にオリジナルDNAが無いから

    • 271名無し2018/11/03(Sat) 19:04:53ID:I3MzE3NzY(21/23)NG報告

      高句麗の歴史として

      玄菟郡(遼寧省+北朝鮮北部)辺りで建国
      好太王碑が中国吉林省で出土したように、高句麗は現在の吉林省や遼寧省付近で発展
      長寿王が吉林省から現在の平壌に遷都し、朝鮮半島に攻め込み現在のソウルを支配
      ・・・
      いろいろあって滅ぶw


      こんな流れかと思ってたんだが・・・どうなんだろうな

    • 272名無し2018/11/03(Sat) 19:10:51ID:g3NDk0NDU(34/36)NG報告

      >>271
      中国と朝鮮半島の両方の歴史であることは、基本的には韓国人も同意するはずだが、
      なぜか、中国が自分の国の歴史として扱うのを、拒否している
      それなら、朝鮮民族が高句麗を継承したのかといえば、全くそうではないため、
      むしろ韓国が不利になるようだ

    • 273名無し2018/11/03(Sat) 19:25:47ID:I3MzE3NzY(22/23)NG報告

      >>272
      まぁ微妙だよな
      中国の歴史=高句麗の歴史とも言えないしw

      あの辺りの国がすべて中国に吸収されてるのが痛い
      もし満州国が残ってて、中国東北部から北朝鮮北部辺りを支配してれば、高句麗の後継者を名乗れたろうに・・・w

    • 274名無し2018/11/03(Sat) 19:38:41ID:M3NjgzOTI(8/8)NG報告

      >>273

      --もし満州国が残ってて、中国東北部から北朝鮮北部辺りを支配してれば、高句麗の後継者を名乗れたろうに・・・w

      そう自分が>>137で書いたら、「お前は歴史を知らない。高句麗の歴史はウリのものだ」って噛み付いてきたのが、世界最高大韓ってやつなんだよね。ともかく韓国人は、高句麗の正当な継承者が、自分たちなのだと本気で思い込みたいらしい。常識的に考えれば、東北騎馬民族の文化を受け継いできた満州人のもの以外の何物でもないんだが。

    • 275名無し2018/11/03(Sat) 19:51:09ID:QwMjU4OTA(1/2)NG報告

      明に盛んに取り入って
      女真族を馬鹿にしてたから
      清の時代に徹底的に叩かれちゃったのね
      ところで最近じゃ
      百濟も中国史としてとらえるようだね

    • 276名無し2018/11/03(Sat) 19:53:42ID:g3NDk0NDU(35/36)NG報告

      中国は何も、高句麗を自国史として扱うからといって、北朝鮮を自国領土と言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
      そのような目的なら、1000年も属国としていた朝鮮半島など、簡単に中国の一部と主張できる

      むしろ韓国人が、高句麗の領域に野心を持っているから、
      高句麗の歴史を独占すれば名分ができるとして、無関係な古代の国を自分たちの歴史だと言うのだろう

    • 277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19:58:40ID:AyMTUzOTA(1/4)NG報告

      1. 한국은 진짜 고구려를 계승하였나?

      -> 고구려는 최종적으로 중국에 통합되었다. 고구려가 망하고 그 자리에 발해가 건국되었는데, 발해의 건국을 계기로 고구려인은 발해인으로 통합되었다. 일례로 고구려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보장왕의 손자인 高震은 자신을 발해인으로 인식하여, 墓誌에 스스로를 발해인으로 표기한 바 있다. 그 발해인은 女眞-만주인으로 발전하는데, 만주인은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남아있다.

      결국 고구려의 토지와 인민, 그 계승의식은 중국에게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고구려사는 당연히 중국사에 속한다. 한국은 고구려의 토지와 인민을 계승하지 못했는데, 이처럼 실체적 계승관계가 없는 경우는 계승의식이 있었다 해도 가짜일 뿐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영토였던 만주와 한국의 영토인 평안도와 황해도에 걸쳐 있어서, 국사적 측면에서 중국사와 한국사에 동시에 걸쳐져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국사적 측면에서도 고구려사는 한국사가 아니다. 휴전선 이북이 대한민국의 영토도 아닐 뿐더러, 삼국시대의 평안도와 황해도는 한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리적 범위는 삼국지에 따르면 "대방의 남쪽", 즉 한강 이남이다.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진정책을 추진함으로써 한때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였지만, 그 기간이 무척 짧았고(75년), 군현 지배를 못했으며, 단순히 몇몇 군사적 거점을 통한 간접지배에 그쳤으므로, 고구려의 한국 지배는 인정될 수 없다. 한강 이북, 즉 대방군 이북 지역은 '랴오둥'이라 불렸던 지역으로서, 고구려는 한국계 국가가 아닌 랴오둥 국가이다. 랴오둥은 현재 동북 혹은 만주로 불린다.
      필독) 경기도 이북은 '한국'이 아니다. '랴오둥'이다.

    • 278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0:02:10ID:AyMTUzOTA(2/4)NG報告

      >>277
      참고) 최초의 고구려는 중국이 만들었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중국 현도군에 속한) 고구려현은 한때 왕망이 '下句麗'로 개칭했고, 幽州에 속한다"고 했다. 고구려현은 고구려의 모태이다. 여기에 커다란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한국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최초의 고구려는 본래 중국이 만든 것이다. 고구려는 이후 영토를 확장하고 여러 번 遷都를 하였으나 한국을 점유하지 못했고 결국 중국 군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구려현과 고구려를 단절시켜 보려는 견해도 있으나, 국가라는 것은 하나의 국가가 분열되어서 두 개의 국가로 발전한 경우도 있고,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융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국가로 발전한 경우도 있다. 고구려현과 고구려도 이와 유사한 관계에 있다.

    • 279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0:20:18ID:AyMTUzOTA(3/4)NG報告

      2. 고려국의 고구려 계승은 사실인가?

      -> 고려국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주장은 "고구려 계승의식"에서 나오는데, 가령 국호를 "高麗"로 정했다는 점, 평양을 중시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이때에도 고려국이 신라 영토에서 신라인들에 의해 건국됐다는 본질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이성계 일파가 고려국 왕씨들을 학살하고 이전 왕조의 전통을 부정해도, 이씨왕조는 틀림없이 고려국을 계승한 나라다. 마찬가지로 고려국 역시 신라를 계승한 나라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일 수는 없다.

      고려국은 신라의 유산이 없었다면 아예 건국될 수 조차 없었던 나라였다. 계승의식에 특별한 효력을 부여할 수는 없다. 이씨왕조의 "조선"이란 국호 역시 箕子조선에 대한 계승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태조실록][朝鮮經國典]. 고려국과 조선은 箕子에 대한 계승의식을 바탕으로, 箕子의 후예를 자처하며 많은 역사서와 사당을 짓고 箕子尊崇의 풍조를 일으킨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런 계승의식이 중요하다고 해서 고려국과 조선을 箕子조선 계승국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처럼 국호로 역사의 귀속을 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周-北周, 齊-北齊, 로마제국-신성로마제국-러시아제국(제3의 로마제국), 후고구려와 후백제 등은 본래의 민족과 무관한 사람들이 세운 나라들이다. 그 중 慶州 출신의 신라 왕자인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은 국호나 계승의식이 본래의 민족과 관련이 없다는 생생한 사례다.

    • 280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0:39:54ID:AyMTUzOTA(4/4)NG報告

      >>279
      참고) 계승의식의 허구성

      <한국인의 논리>
      1. 수많은 역사서에 고구려가 한국사로 기재되어 있으며 계승의식이 있었으니 고구려는 한국사다.
      2. 柳得恭이 [渤海考]를 저술했으니 발해는 한국사다.
      3. 橫城高氏, 俠溪太氏 등 고구려/발해계가 한국에 극소수 있으므로 한국인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핏줄을 이어받았다.

      똑같은 논리로 대응해보자.
      1. 삼국사기, 삼국유사, 帝王韻紀, 東國通鑑 등 수많은 역사서에 箕子朝鮮이 등장하며 선조들은 箕子에 대한 계승의식이 강렬했다.
      2. 箕子志(尹斗壽), 箕子實記(李珥), 箕子外紀(徐命膺), 箕田攷(李家煥·李義駿), 箕田說(韓百謙) 등 箕子를 다룬 역사서가 다수 존재한다.

      3. 箕子의 후손인 淸州韓氏와 幸州奇氏, 太原鮮于氏 등이 한국에 매우 많이 존재하며, 全州 李氏, 晉州 姜氏, 宋氏, 孔氏, 朱氏 등 범중국계를 합하면 고구려계를 압도한다.

      결론적으로 고구려 계승 논리는 그대로 箕子朝鮮 계승논리에 적용된다. 따라서 계승의식 때문에 고구려가 한국사라면 箕子朝鮮도 한국사여야만 한다. 그런데 고조선을 세운 箕子와 衛滿은 한국인이 가장 잊고 싶어하는 중국인이다.

      결국 한국사는 역사의 첫 출발을 타국의 식민지에서 시작한 셈이다. 이것은 일제가 주장한 반도사관의 핵심 내용으로서, 대륙과 열도의 중간에 낀 한국은 대륙과 해양의 침략을 교대로 받으면서 역사가 타율적으로 변해왔다는 주장이다. 재미있게도 가장 민족주의적인 ‘고구려 계승 논리’가 일제의 학설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 281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0:50:18ID:UwOTU2MzA(1/1)NG報告

      3. 고구려인은 한국인과 같은 종족인가?

      -> 종족을 구분하는 통일적인 기준은 없으나, 대체로 같은 공간, 같은 혈통, 같은 역사적 경험, 동족 의식 등이 있다면 같은 종족으로 분류되는 데에 크게 이견은 없다. 그러나 고구려인은 한국인과 이같은 공통점이 없었다. 한국 국사학계가 韓을 연구하는 공식적인 기본 자료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며, 이를 보완하는 자료가 [후한서 동이열전]이다.

      삼국지의 사료적 가치는 워낙 크기 때문에 다른 史料의 진위를 가리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의 근거가 되는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에서 韓은 대방군 남쪽에 있다고 명기된 반면, 고구려는 대방군 북쪽에 있다고 묘사된다. 한국과 고구려는 대빙군을 기준으로 따로 떨어져 살았던 것이다.

      고구려는 두 책에서 貉族의 국가로 나오지만, 한국은 마한, 진한, 변한 등 韓族의 국가로 나온다. 중원고구려비에서 고구려인들은 신라인을 동쪽 오랑캐로 표현하였고, 신라 역시 황룡사 9층 목탑의 刹柱本記에서 고구려를 없애야 할 외적 중 하나로 명기 하는 등 서로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고구려는 신라의 한국 통일에서도 배제되으로써 한국과 통합되지도 못했다.

      결론적으로 고구려와 한국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혈통을 지닌 채, 동족의식도 없이, 별개의 역사적 경험을 이어나가다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 서로 별개의 종족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한민족은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후손이며,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은 외세를 이용해 동족 국가를 멸망시킨 행위[한국의 역사교과서]”라는 주장은 심각한 과대망상이고 정신질환이다.

    • 282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1:15:31ID:U2MjQwOTc(3/10)NG報告

      >>281
      참고) 고구려인은 貉族이며, 貉族은 중국 소수민족의 조상이다.
      고구려를 구성한 핵심 민족은 貉族이었다. 고구려는 貉族이 세운 나라였으며, “貉“으로 불렸다. ["고구려는 일명 貊이라 부른다" -후한서 고구려전]. ["夷貊(고구려)의 침략을 받았다"-삼국지 동이전].
      濊族을 통합한 뒤로는 “濊貊”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貊人이 법을 어기고 濊貊(고구려)이 다시 일어나니, 이것이 큰 걱정거리다"-한서 왕망전].
      요컨대 고구려는 貉族, 혹은 濊貊의 나라였다.

      그런데 貉族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貉이 처음 등장하는 역사서는 [詩經]인데, 貉은 연나라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그 뒤 [管子/小匡篇]에서는 "齊 桓公이 燕 秦公을 구원하고자 胡와 貉을 패퇴시켰다"고 하여, 역시 貉은 연나라가 있었던 북경 지방의 동북쪽에 인접해 있었음을 시사한다. 貉은 중국 세력(연나라, 진나라, 한나라)의 지속적인 확장으로, 북경 부근에서 길림성 부근까지 밀려난다.

      濊貊은 고구려의 멸망과 발해의 건국을 계기로 말갈족에게 흡수통합 되었고, 말갈족은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인 만주족으로 남아 있다. 요컨대 고구려를 세운 貉族은 발원지가 북경 인근의 중국 소수민족의 조상들로서,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만주족)의 조상들이 세운 국가지, 한국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283名無し2018/11/03(Sat) 21:19:42ID:I3MzE3NzY(23/23)NG報告

      >>277
      すべての高句麗の歴史が中国史だとは思わないけど、ある程度は賛成できる文章だな
      俺も同じような認識だ

      当時の中国と朝鮮の狭間にあった国

    • 284名無し2018/11/03(Sat) 21:31:06ID:AxNzE0NDQ(1/3)NG報告

      >>283
      今の、南朝鮮には関係ないんじゃない?
      北朝鮮の方が朝鮮の正統性があると思う。

    • 285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1:34:48ID:U2MjQwOTc(4/10)NG報告

      4. 고구려는 韓族과 혈연적 연관이 있는가?
      -> 이 점은 위에서 충분히 논증 하였으나, 추가적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보통 고구려가 韓族과 혈연적 연관이 있다는 주장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고구려 출신 이주민이 馬韓에서 백제를 건국하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백제는 馬韓을 구성하는 54개국 중 하나일 뿐이니, 馬韓 전체에서 고구려계는 1/54에 불과하다. 따라서 馬韓 전체를 통합한 백제국은 韓族의 국가지, 扶餘系 국가는 아닌 것이다. 이 점은 백제 왕실이 “南扶餘”를 자처했어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지배층이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구려 지역은 '5郡'으로 표현되어 '3韓’과는 별개의 지역으로 간주되었다. [貞觀年中撫慰新羅王詔]에 따르면 645년, 연개소문의 폭정에 분노한 당태종은 직접 고구려 정벌을 기획하면서 "朕이 遼碣(고구려)을 친히 돌아보며 그곳의 서민을 어루만지고 흉악한 逆黨을 정벌하여, 三韓地境(신라/백제)과 五郡地境(고구려)이 영구히 평안함을 얻게 하겠다"며 신라와 백제의 파병을 명령했다.

      당태종이 신라, 백제의 군주에게 보낸 이 書翰文에서 신라, 백제를 '三韓'으로, 고구려는 '五郡'으로 지칭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라, 백제가 三韓지역을 分占하고 있었고 고구려는 五郡지역, 즉 한사군과 遼東郡을 擁有했기 때문이다. 三韓에는 고구려가 포함되지 않는다.

    • 286東アジア人2018/11/03(Sat) 21:37:38ID:U1MDAyNTM(21/23)NG報告

      >>281
      >高句麗と韓国は
      >異なる空間では、
      空間は国の継承と関係ない
      東プロイセンを失ったプロイセン王国はプロイセン王国ではなくなるのか?
      >異なる血統を持ったまま、
      ぞもそも民族は国の継承とはならない
      >同族意識もなく、
      同族意識もなにも、高句麗はれっきとした三韓というイデオロギーの一つです
      >別個の歴史的経験を引き続き出て行くが一つに統合されていなかった、
      高麗:韓半島を統一
      大韓帝国 三韓(高句麗、百済、新羅)王位を継承
      >お互い別々の種と結論を下すしかない。
      国に種族とかあるのか?

    • 287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1:45:35ID:U2MjQwOTc(5/10)NG報告

      >>285
      참고) 고구려가 馬韓이라는 신라 崔致遠의 주장은 역사 조작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崔致遠이 고구려를 馬韓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고구려가 三韓에 포함된다는 추정이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찰하면, 이는 신라의 역사왜곡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원래 三韓이란 삼국지와 晉書(644년)에 따라 한강 이남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이같은 三韓 개념이 쭉 이어오다가 신라 말기에 이르러 갑자기 '고구려가 馬韓이었다는 주장이 출현했다. 崔致遠은 왕명에 따라 924년에 '鳳巖寺 智證大師塔碑'에 "고구려, 백제를 크게 무찌르고...삼국이 이제서야 한 집안이 되었다"라고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신라의 영역에는 이미 918년에 고려국이 건국되었고, 그 이전 900년에는 백제가 건국된 상태였다. 신라로서는 상실한 영토를 회복할 근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고구려=馬韓'이란 주장이다. 신라는 三韓을 통합했는데 고구려는 그 중의 하나이므로, 지금의 후고구려는 마땅히 신라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신라인들의 역사의식을 표현한 말이다. 후대의 한국인들이 이런 신라인들의 역사왜곡에 놀아날 이유는 없다. '고구려=馬韓'을 신빙하며 崔致遠의 발언을 인용하려면 그의 발언을 통째로 인용해야 한다. 거기에는 '백제=弁韓'說과 '대륙백제'說 등도 나오는데, 하나같이 괴이하다 하여 인정받지 못하는 주장들이다. '고구려=馬韓'說은 이같이 진실성에 문제가 있는 史料에서 뽑아낸 역사적 허구에 불과하다.

    • 288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1:56:04ID:U2MjQwOTc(6/10)NG報告

      5. 고구려사는 한민족 역사인가?

      ->한국에서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李基白은, '민족사의 대세는 신라'라고 평가한 바 있다. 현재의 한국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조선과 고려국이 나오고, 고려국에서 거슬러 올라가보면 통일신라가 나온다. 통일신라는 기본적으로 법흥왕 시기의 신라를 계승했으며 근간은 신라이다.

      통일신라의 9州는 명목상으로는 고구려를 포함하지만, 실제로는 신라의 6州를 바탕으로 백제 지역에 3州를 설치하여 만든 것이다. 여기서 삼국이 절대 동등한 비중을 차지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는 신라를 중심으로 여러 영토와 국민을 하나로 일원화 시킴으로써, 중국과 일본과 구별되는 단일한 언어, 단일한 문화를 지닌 단일한 민족국가를 출현시켰다. 이후 대규모의 영토변화와 혼혈이 없었으므로 신라의 삼한통합은 한민족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 고구려계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고구려인으로서 신라에 통합된 流民의 숫자는 대략 2만5천명 수준[삼국사기]인데, 이는 신라의 인구를 최소 100만으로 추정해도 2.5%에 불과한 수치다. 고구려계는 통일신라의 인적구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였으므로 민족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고구려를 한민족의 역사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점은 발해 역시 마찬가지인데, 발해인으로서 고려국에 歸附 10만명이란 숫자는, 고려국의 총인구(최소 300만 이상일 것으로 추정)에 비교했을 때 3%를 넘지 못하는 극소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이야기)한국에 고구려계는 없다.

    • 289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2:01:14ID:U2MjQwOTc(7/10)NG報告

      >>288
      참고) 고구려 역사는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다.

      고구려나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 漢族의 역사라고 말한다면, 이는 역사왜곡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의 소수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할 뿐이다. 이는 맞는 말이다. 고구려의 영역에는 濊貊族, 말갈족, 선비족, 거란족, 한족 등이 섞여 살고 있었는데, 이들의 기원은 현재 중국 境內에 있으며, 이들은 모두 중국에 통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역사는 중화민족의 역사다. 중국은 중국 내 모든 민족을 하나의 '중화민족'이라고 부른다. 56개 민족이 공동으로 건국한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고구려의 역사도 동북 소수민족의 역사로서 중국사에 포함된다.

    • 290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2:14:19ID:U2MjQwOTc(8/10)NG報告

      6.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외국으로 인식했다고 해서 고구려 역사가 한국사로 될 수 있는가?

      -> 한국 역사학계는 고구려가 중국 正史의 '列傳'에 기재된 외국, 혹은 자주적인 독립국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고구려 역사는 한국사”라고 주장 하는데, 이것은 궤변이다. 발해 역사는 한국인들 스스로 자기 역사에서 제외시키다가 20세기 들어서 편입시켰는데, 그 저의는 무엇인가? [渤海考] 등 개인이 남긴 역사서가 존재하더라도, 발해에 대한 계승의식이 그 전부터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치 개인이 집필한 [桓檀古記]를 근거로써, 후대인들이 “아, 대한민국에는 桓檀시대에 대한 역사계승의식이 있었구나”라고 추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渤海考]와 같은 조선 후기의 사람들 일부의 독특한 역사인식은 국가에서 편찬한 역사서에 연결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 “고구려본기”가 있는지의 여부가 고구려 역사의 귀속문제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伽倻本紀”가 없다 해서 伽倻의 역사가 한국사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金富軾은 단지 고려왕조의 신하라서 “고구려본기”를 [삼국사기]에 집어넣은 것 뿐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에 편입된 것은 학문적 근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른비 한국의 북방 약사는 날조된 역사에 불과하다.

    • 291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2:32:51ID:U2MjQwOTc(9/10)NG報告

      >>290
      고구려가 好太王 시절, '永樂'이란 독자적인 年號를 쓰던 자주적인 강대국이었다는 사실도 중국사로의 귀속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고구려 이외의 많은 독립적 강대국들, 예컨대 흉노, 돌궐, 北魏, 蒙元, 滿淸 등도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되어 왔기 때문이다. 과거의 중국을 기준으로 고구려를 중국과 구별 하는 것도 옳지 않다.

      秦 穆公은 西戎으로 취급받아 중국 제후들의 會盟에도 참여하지 못했으며, 齊를 열었던 姜太公은 동이족이었다. 楚는 南蠻으로 불렸으며, 楚 莊王은 스스로를 '蠻夷'로 자처했다. 그렇지만 關中(秦), 山東(齊), 荊州(楚)가 현재 엄연한 중국이고 그곳의 역사는 중국사이 듯이, 고구려 역시 한때는 '夷狄'이 지배한 蠻貊之鄕이었지만, 현재는 중국 땅이며, 그 역사는 엄연히 중국사에 속한다.

      56개 민족이 공동으로 건설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그 본질상 여러 민족의 역사들을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秦代 이후, 다양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를 연속적으로 출현시켰다. 따라서 중국을 漢族만의 나라로 생각할 수는 없다. 後漢 초기, 월남 지역에서 漢人의 지배에 반항한 베트남계 越人(徵側)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越人에게 漢法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 292名無し2018/11/03(Sat) 22:56:28ID:M5Njk3ODc(1/1)NG報告

      日本が高句麗を中国史と認めれば制裁になるんじゃね?
      もともと韓国は敵国だし、日本は何も困らない。

    • 293고구려사는 중국사인 것이 확실하다2018/11/03(Sat) 23:16:28ID:U2MjQwOTc(10/10)NG報告

      >>291
      道武帝 拓跋珪는 北魏를 건립하여 "臺省을 수립히고 百官을 설치하고, 公侯와 장군, 刺史, 太守, 尙書랑 以下를 책봉하고 임명하는 데 모두 漢人을 기용했다"[魏書 太祖紀].
      孝文帝 拓跋弘의 치세는 漢化의 절정기로서 전통적인 부락 조직을 타파했으며, 선비족의 전통의상과 언어를 금지하고 선비족과 한족의 통혼을 적극 장려했다. 황제 본인도 拓跋氏를 버리고 중원의 전통 명가인 元氏로 개칭하였다. 중원을 정복한 왕조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처럼 漢化 정책을 실시했다.

      요나라 역시 거란족과 한족을 통합적으로 지배하고, 거란족의 법과 한족의 법을 동시에 시행한 통합국가였다. 청나라는 전형적인 통일적 다민족 국가로서, 皇太极은 皇太极에서 몽골 46부족장과 女眞 制府, 그리고 랴오허 한족의 추대로 황제 자리에 등극하고 청나라를 건국했다. 청나라는 출발부터 몽골족, 여진족, 한족이 하나로 통합되어 출현한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중원을 정복했는데, 이는 당연히 통일전쟁이다. 중원을 정복한 왕조들의 역사를 중국사에서 절대 제외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과거에도 고구려를 중국의 나라(冠帶之境)로 인식하기도 했으니, [北史 裵矩傳]과 [資治通鑑 煬帝紀]에는 "고구려는 본래 孤竹國이고, 周代에는 箕子에게 封했으며, 漢代에는 3郡으로 나누었고, 晉代에도 랴오둥을 통할하였다, 冠帶之境을 蠻貊之鄕으로 놔둘 수는 없다"고 적혀있다.
      [新唐書 高句麗傳]에는 당태종이 친히 "고구려는 중국 땅이고, 莫離支가 군주를 죽였기 때문에, 朕이 장차 이를 경략하고자 한다"고 했다고 적혀있다.
      [資治通鑑 太宗]에는 "랴오둥(고구려)은 본래 중국의 땅인데 隋氏가 네 번 군사를 보냈지만 얻지 못했다. 이제 朕이 동방을 정벌하여 子弟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했다고 적혀있다.
      隋煬帝와 당태종의 征遼, 즉 고구려 정벌의 이유는, 고구려가 중국 땅이니 되찾아야겠다는 것이었다.

    • 294名無し2018/11/03(Sat) 23:18:41ID:AxNzE0NDQ(2/3)NG報告

      是非、それを南朝鮮で…
      アホな教授に言ってくれ。

    • 295名無し2018/11/03(Sat) 23:37:42ID:Y1NTQ4MjI(5/7)NG報告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InTvB8ZR4S0
      何故、現在チャイナ地域の一部として満州地域には正当性が無いのか。なかなか面白い。中華民族という新しい考え方や、多民族と言い始めたのも最近の話ではある。

    • 296名無し2018/11/04(Sun) 00:01:47ID:c0MTIyMjQ(1/3)NG報告

      地理的に言っても民族的に言っても
      韓国とはまったく関係ないだろ

      百歩譲って北朝鮮が言うならまだ考慮の余地はあるが
      韓国と何の関係があんのマジで?

      頭おかしいのか韓国人は?
      あ、ごめん頭は元からおかしかったかw

    • 297名無し2018/11/04(Sun) 00:04:42ID:c0MTIyMjQ(2/3)NG報告

      元々、科学が苦手で頭の悪い朝鮮人達にわかりやすく教えてあげよう


      高句麗が「中国史なのかどうか?」ということには確かに議論の余地があ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もし高句麗が「中国とは別の国なので中国史ではない」とされた場合でも、
      だからと言って朝鮮、韓国の歴史に編入されるわけがないだろうが

      なぜかというと地理的にも民族的にも韓国とまったく被ってないからだ
      理解できるかな?

    • 298名無し2018/11/04(Sun) 00:08:21ID:kxMDM1MjA(2/2)NG報告

      現在の国土を基準に考えるか
      民族の視点で考えるかによって違う
      まあ中国には記録資料が豊富にあるから
      しかし単なる地方史として述べるのではなく
      明らかに韓国人に恥辱感を与えようと意図してるね
      なかなかいい作戦だ

    • 299名無し2018/11/04(Sun) 00:12:21ID:c0MTIyMjQ(3/3)NG報告

      国土を基準として考えた場合

      韓国とはまったく違う。

      民族を基準として考えた場合、

      韓国とはまったく違う。

      王族のような血統に基づいて考えた場合

      韓国とは全く違う

      言語、風俗のような文化で考えた場合

      韓国とは全く違う


      いや、マジで何に基づいて考えれば「高句麗は韓国史だった」となるの?w
      ほら、納得のいく説明をしてみろよ朝鮮人よーw

      疑いなくお前ら韓国の歴史上の親と見れるのは、大韓帝国とかいう大日本帝国に「独立させてもらった」傀儡国家と、その大日本帝国に国を売り渡した世界史上稀に見るカス国家の李氏朝鮮だけだっつーのw

      それ以外にお前らが正統に主張できる歴史なんてあるかよボケw

    • 300名無し2018/11/04(Sun) 00:13:15ID:cxODA5OTI(3/3)NG報告

      別に、高句麗が南朝鮮の歴史とか、日本からはどーでもいいんだよ、
      ただ、三国で百済を持ち出して日本を巻き込むな、

    • 301名無し2018/11/04(Sun) 00:54:12ID:k0NzY0ODA(1/2)NG報告

      スレ主が言いたいのは、自分の先祖が鴨緑江を越えて勢力を持った、ということ。
      事実は逆で、鴨緑江のむこうから支配者が来た。
      当時、朝鮮民族がいたとしても、支配されている方。

      いつ見ても、南北合わせた現在の領土は、
      吊るされたウサギ
      に見える。

    • 302名無し2018/11/04(Sun) 00:56:20ID:k0NzY0ODA(2/2)NG報告

      >>301
      スレ主じゃなかった。
      世界最高大韓だった。

    • 303東アジア人2018/11/04(Sun) 01:00:58ID:E5ODgzMDQ(22/23)NG報告

      >>279
      >国号で歴史の帰属を定めることは話にならない。
      これには同意
      フランス王国→×→フランス帝国
      オーストリア帝国→×→オーストリア共和国
      ガーナ王国→×→ガーナ共和国
      がその典型的な例

    • 304名無し2018/11/04(Sun) 01:53:37ID:UxOTIzODQ(1/1)NG報告

      これは20年くらい前の話かな?
      中国が歴史・考古学を駆使して調査した結果なら根拠も含めて発表されたのでしょうね。
      韓国では大騒ぎだったそうですが気になるところがあるなら
      その部分は共同調査申請してみるとかして歴史操作かどうか確認すればいいことだと。
      戦争被害のねつ造や近代の中国の歴史認識は正直韓国と同レベルなのでどうでもいいけど
      歴史学・考古学の分野で中国に普通は勝てない。持ってる歴史的遺物の数が圧倒的に違うから。
      でも韓国の言う半万年の歴史ってここが分かってないと2000年しかない訳で
      それすらも不確かだってことですよね。
      韓国大統領の発言により韓国は歴史をねつ造していることが確定するわけだ。
      その前にも人がいた程度の歴史ならどの国にもあるからね。
      いつから半万年って言い出したのか知らないけど、中国刺激してるよね。中国4000年だったのに。
      どの国にも妄想で嫌われてる韓国には例え証拠があったとしても覆すだけの力はないだろう。

      ただ中国のこのプロジェクトは単に歴史を明らかにするだけのものだったのかの方が気になるね。
      朝鮮戦争が終結してもロシアの一部北朝鮮韓国の一部は中国のものって言ってるようにも聞こえる。

    • 305名無し2018/11/04(Sun) 02:52:15ID:k3MTE1Mg=(1/1)NG報告

      漢民族とは何か。

      原初中原にいた民族。周辺の諸民族を征服し、征服され、膨らんでいく。
      気がつけば匈奴、鮮卑、突厥、契丹、女真、姜、氐といった北方・西方異民族も抱合。
      あまり詳しく歴史に残されていないが、南方諸民族もあまた、同様のことになってきただろう。

      言語的に、原初中原にいた民族のものと大きく変わっているであろうことは、想像に難くない。

      面白いのは、ローマ帝国の市民権はあくまでも法的に与えられるもので、民族の如何は根源的な問題ではなかったのに対し、漢民族というのは、あくまでも自分が漢民族であると自覚していれば漢民族たりうる、という差異である。
      漢語の書き言葉は一致しているとされているようだが、発音の地域による離れっぷりは豪快そのものであり、いわゆる訛り、というレベルでないことは誰にでもわかることである。

      このように、漢民族は血筋をベースとするいわゆる民族的な同一性を語っている概念ではなく、文化的に統合された存在であるという概念である、という意味において、民族という表記は明らかに誤謬を招くものである。
      多かれ少なかれ、そうした異民族の統合というプロセスそのものは諸民族それぞれにあったものと思われるが、漢民族のそれは規模において、多数が少数を飲み込むといったものではなく、多数の民族が一つの標準に集ってきたもの、という奇抜な構成経緯があるわけで、この点において世界標準の民族という概念と、違う概念でまとまっているのが、漢民族である。

      だいたい同じようなことが、朝鮮民族にも言えるのではないか。
      朝鮮民族本流のルーツを明確に示したものを見たことがないのは、半島に押し込められた諸民族の集合体である、ということを雄弁に物語っているものではないだろうか。

    • 306名無し2018/11/04(Sun) 03:27:24ID:E4NDk3Mjg(19/19)NG報告

      一応、言語の話が出ていて高句麗語と現代の朝鮮語は同じ
      もしくは似ているとの話があったので資料を張ります。
      (漢文張って中国語に翻訳されそうで怖い・・・文字化けするんだよなぁ)
      現代の朝鮮語は新羅系なので辰韓がベースじゃないかな? 
      となると高句麗語とは別系になるんだけれども

      三国志 
      高句麗
      東夷舊語以爲夫餘別種、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東夷の昔話では夫餘の別種となし、言語や様々なことで多くが夫余と同じだが、気性や衣服に違いがある」
      東沃沮
      其言語戸句麗大同、時時小異。「その言語は高句麗と大体同じだが、時に少しの相違があった」
      挹婁
      其人形似夫餘、言語不與夫餘、句麗同。「その人民は、姿形は扶余に似ているが言語は扶余、高句麗と同じではなかった」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衣服有異。「その言語や法制、習俗は大体高句麗と同じである」
      辰韓
      有城柵、其言語不與馬韓同。「城柵がある。その言語は馬韓と同じではない」
      辰韓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法俗相似。「衣服や住居は辰韓と同じで、言語や法俗も似ている」
      梁書百済伝
      今言語服章略與高麗同。「言語と服装およそ高句麗と同じ」
      周書 異域伝百済条
      王姓扶余氏 号於羅瑕 民呼為[革建]吉支 夏言並王也」 支配族の言語では王を「於羅瑕」、被支配族の言語では王を「[革建]吉支」と言う
      ↑百済の王族は高句麗より出ているため、支配層と被支配層で言語の異なる可能がある

    • 307名無し2018/11/04(Sun) 03:29:19ID:Y5NzM3NzY(1/1)NG報告

      何の足しにもならんかも知れないが
      近所に飛鳥時代の700年(1318年前!)に建造された
      「那須国造碑」ってのがあって、そこに刻まれた文章の中から読み取れる歴史の真実がある
      まず、文章はすべて漢文、六朝の書風であり年号に当時の唐の年号である「永昌元年」とあることから
      中国の影響を深く受けていたことが解る
      また、飛鳥浄御原(あすかきよみはら)の大宮からの命により、当時日本への朝貢国であった新羅人を労働力として居住させた
      以上、栃木県那須地区よりお届けしました

    • 308朝鮮ヒトモドキは虫2018/11/04(Sun) 05:09:09ID:E3MjAyNDA(1/1)NG報告

      >>299 李氏朝鮮→大韓帝国→併合期(扱いが難しいが)→南北朝鮮。ここには連続性があるから、まず李氏朝鮮の起こりから教えないと駄目なんじゃない?

      教えて理解する知能があるかは知らない。

    • 309ネトウヨですけど何か?2018/11/04(Sun) 05:42:03ID:c1ODc1ODQ(1/2)NG報告

      そもそも、「朝鮮」というのは、李氏朝鮮(=大韓帝国)が始まりであるから高句麗とは関係ないどころか、その後の高麗を否定して出来たのが朝鮮(李氏朝鮮)。

      李氏朝鮮の初代王は高麗王族を皆殺しにしている。(今でいう反日狩りみたいなもの)
      ・命を保障するからと言って高麗王族を一か所へ集めて船に乗せ沈めてるw(まさに韓国人のやりくち)

      「朝鮮」の名も、李氏朝鮮建国の時に明国の皇帝から与えられた名前である。

      李氏朝鮮より前までは「濊族(ワイゾク)」と呼ばれていた。
      ・日本人の事を倭人(体格の小さな人の意味)
      ・に対して、韓国人の事を濊族=糞尿の民族の意味
      と周辺地域では呼んでいた。

      YouTubehttps://youtu.be/bq2yhNwYxWQ?list=PLCm_yZP-kpKS8pWsHFxQx1s8kb1iZaSfh

    • 310名無し2018/11/04(Sun) 13:00:00ID:g2NTkyOTY(6/7)NG報告

      青谷上寺地遺跡、約2200年前から約1700年前。
      稲作・漁労、船を使って交易する港湾集落。
      約2000年前に大規模な護岸施設。出土品は数万点、「弥生人の脳」や高い技術を示す木製容器、
      海外からもたらされた鉄器や、戦と考えられる「殺傷痕人骨」。
      弥生後期は、大陸や朝鮮半島からの渡来人と在来の縄文人の混血が進んだ時期と考えられるが、
      血縁関係・親族構造など集落内での人と人のつながりや、髪や瞳の色、直毛か、毛深いかといった身体的特徴の解明も試みられている。大量の人骨は、1世紀から2世紀の弥生時代後期になって新たに渡来したと考えられる、ミトコンドリアDNAでは骨から母系の血縁関係がみられない。

    • 311名無し2018/11/04(Sun) 15:37:40ID:k1MTY4NDg(1/1)NG報告

      >>310
      힌트

    • 312名無し2018/11/04(Sun) 15:41:20ID:AxODM3NjA(36/36)NG報告

      むしろ韓国式の論理であれば、高句麗の起源は中国東北部であるため、
      高句麗の版図であった北朝鮮は、中国領土ということができる

    • 313民主主義者その12018/11/05(Mon) 01:44:13ID:UwMDYzNDU(2/2)NG報告

      あれ?
      まだやってるのこの無駄話
      高句麗もモンゴルも清も朝鮮人を充分犯してるだろうから、
      朝鮮人は「その類」でいいでしょ。
      中国には事大する癖に、中国人の国を自分達の歴史に入れちゃ駄目でしょ。
      韓国の歴史は70年ほどだよ。

    • 314名無し2018/11/05(Mon) 04:14:52ID:A3NjM3NzA(7/7)NG報告

      約9万年前シベリアの洞窟。ゲノム分析では絶滅のNeanderthal父の絶滅のDenisovan母 の混血。
      25万年前のネアンデルタール人の生活も歯から週単位の生活変化の細かくわかるそうだ。
      朝鮮半島とその周辺の調査も進むと色々わかるだろうな、発掘サンプルが少なすぎる。中国はどんどん調査しているね。

    • 315名無し2018/11/05(Mon) 07:18:53ID:E0MjcwODA(7/7)NG報告

      >>308
      北朝鮮は高麗を継承
      南朝鮮は上海臨時政府を継承

      こう主張しているので李氏朝鮮とも大韓帝国とも日本統治時代とも現在の半島国家は無関係だよ

    • 316名無し2018/11/05(Mon) 17:32:03ID:Q2NzkyNTA(1/1)NG報告

      高句麗はツングース系(今の満州族など)。
      朝鮮半島南部の三韓や済州島の先住民は、弥生人と同じか近い民族で、中国の山東半島から移住。

      日本には、高句麗からの移民や難民もいたから、日本民族には、彼らの遺伝子も少し入っている。

    • 317高宗2018/11/05(Mon) 18:16:24ID:A0MDMwODA(2/2)NG報告

      高句麗の帰属は中華皇帝様です。

    • 318東アジア人2018/11/05(Mon) 20:35:08ID:g0NzYzNTU(23/23)NG報告

      >>313
      >高句麗もモンゴルも清も
      >朝鮮人を充分犯してるだろうから、
      >朝鮮人は「その類」でいいでしょ。
      >韓国の歴史は70年ほどだよ。
      韓民族の歴史を語っているんじゃないの?

      >中国人の国を自分達の歴史に入れちゃ駄目でしょ。
      高句麗は中原を支配していないので中国では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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