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鋭いな?檀君陵の世界遺産登録を応援します(^^)
>>25全然まずくないよ
キリスト教会が植民地予定地を偵察する尖兵だったことはヨーロッパ人も知ってるし、
知らなかったら知らせりゃいいんだ。
信長、秀吉、家康との関係も、クローズアップされてより研究されたらいいと思う。北朝鮮にある日帝時代に日本人が造った、当時東洋一で、今も稼働している「水豊ダム」も当然、文化遺産だよな。
「日帝残滓だ!」と言って壊すなよ!朝鮮の寺院なんか 山の中や田舎にあるんだから 日本人がわざわざ壊すわけがない。いちいちそんなことしてる暇ないし。
あくまでも壊したのは都市部の開発に邪魔な家屋敷くらい。>>36
properly speaking, they are cultural heritages remain in North Korea, not cultural heritages made by North Korea
こういう意味だよ。レスした人がこの指摘をすることでどういう主張をするつもりだったか知らないが、おそらく北朝鮮を卑下したかったんだろうね北朝鮮の文化遺産なんてすぐ現金収入になるものなら残っている可能性があるが(世界中に売るためのコピー商品の見本として)すぐ現金化されないものは放置か破壊されているでしょ。独裁者の国とは、独裁者個人の為の国であり、人民は独裁者の持ち物です。「これは我が国や人民の宝で子孫や世界人類の未来のために保存しまひょ」なーんて考えると思いますか?軍とミサイルと金と酒池肉林。それだけです。そんな国を
韓国は大歓迎して統一なんていってるし、まわりがみえていないですね。ソ連邦の少数民族強制移住、文化大革命、クメール・ルージュ、西欧植民地での虐殺など、世界中でも多くの洗浄が行われ、イスラム過激派のような文化ジェノサイドもよくある。半島の南北や東西で民族浄化ともいえる活動は朝鮮王朝までの時代で何度かあるね。放火や破壊はごく普通のこと。悪役のモンゴル軍によって徹底的に破壊されたバグダードでは数世紀間影響し大きな変化起きたともいわれるが、ユーラシアで珍しいことでもない。
良くも悪くも日本列島の環境が特殊だったということだろう。>>1
中国の文化大革命に倣って目立つ文化財は既に破却してるんじゃない?
三大革命赤旗獲得運動ってのをやってたし。キムチ汁wwww
日本が建設した水豊ダムと水豊発電所は、まだ現役で使われているんだろ。
朝鮮半島の近代化遺産がたくさんありそうだ。>>1
そんなもんねーよバカチョン" 고려의 화려한 직물에 대해서는 일부 문헌을 통해서도 밝혀지고 있는데, 송나라(중국) 사람 서긍인
쓴 < 고려도경 > 에도 고려인은 무척 화려한 옷을 입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 고려사 > 현종 16년 9월의
기록에서도 정부가 일반 서민이 용과 봉황의 문양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이 기록은 당시 고려백성들이 용과 봉황과 같은 복잡하고 섬세한 문양으로 수놓고 화려하게 염색된 옷을
즐겨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1078년(문종32) 10월에는 백성이 치자색, 담황색 의복을
입는 것을 금하자는 상소가 있었고, 1131년(인종9년)5월에도 일반 민중에게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있었다.
그럼에도 일반 백성의 색의 착용은 지속되었고, 고려인들은 용과 봉황을 이용한 수준 높은 문양의 고읍 옷을 계속해서 입었다고 전해진다. "その程度の文化財は日本じゃゴミの様に溢れてる
朝鮮=アフリカ호류지 지역의 불교건조물 - (1993년 12월)
히메지 성 - (1993년 12월)
고도 교토의 문화재 - (1994년 12월)
시라카와 향과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 - (1995년 12월)
원폭 돔 - (1996년 12월)
이쓰쿠시마 신사 - (1996년 12월)
고도 나라의 문화재 - (1998년 12월)
닛코의 사원 - (1999년 12월)
구스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 - (2000년 12월)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예도 - (2004년 7월)
이와미 은광과 문화적 경관 - (2007년 6월)
히라이즈미 - (2011년 6월)
후지산: 신앙의 대상이자 예술의 원천 (2013년 6월)
토미오카 제사장과 실크산업유산군 2014년
규슈·야마구치 근대화 산업유산군 2015년
호류지와 히메지성을 제외하면... 좀 개수만 많고 빈약한데?
일본의 문화유산...너무 막 넣은것 아니야? 통일성이 전혀없어 그리고 최근의 것이 대부분문화유산 얘기가 나와서
기록유산에 대해서도 한마디
일본에는 현재 모두 6개의 세계기록유산이 있다. 한국은 16개
불과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는 세계기록유산이 하나도 없었다. 건축물 상당수를 세계 유산으로 등록한 것에 비해 기록 유산은 거의 없는 수준으로 기록유산 면에서는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좋지 않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일본은 '국가 기록물' 즉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낸 기록물이 빈약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wwwwwwwwwwww야마모토 사쿠베에 컬렉션 697점
미도칸파쿠키(御堂関白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의 원본 친필 일기 자필본 14권, 필사본 12권
게이초켄오시세쓰(慶長遣欧使節)’의 유럽 방문 관련 자료(일본·스페인 공동 등재) 3점 - 2013
도지 하쿠고 분쇼(東寺百合文書) - 2015
마이즈루(舞鶴, 교토에 있는 도시)로의 생환(舞鶴への生還) - 2015
관동군 시베리아 포로 기록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일본군 포로의 기록 570점
조선통신사 기록물 (대한민국과 공동 등재) - 2017
조선통신사 기록물과 게이초켄오시세쓰(慶長遣欧使節)’의 유럽 방문 관련 자료 외에는 쓸모없는것을 등록했구나등록할려면 이런것을 등록해라
훈민정음(1997년), 조선왕조실록(1997년), 직지심체요절(2001년), 승정원일기(2001년),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년), 조선왕조의궤(2007년), 동의보감(2009년), 일성록(2011년),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년), 난중일기(2013년),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년), 한국의 유교책판(2015),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2017), 국채보상운동기록물(2017), 조선통신사 기록물(2017)
문화가 빈약한 일본은 상대 할 수 없는 천년이 넘고 정교한 기록이구나
정말로 인류史에 도움이 되는 기록물들이란 이런 것>>51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지못하는 기능성 문맹 발견
일본은 구석기 유적이라든지 정말로 없는건가?文化遺産を避けて空爆してくれればいいんだけどね。
이왕올린김에 40대~70대의 고소당한 넷우익들에게 스레드 도배좀
아무거나 올리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UN이 아예 너네 이거 좋으니까 등록하라고 권유하는 정도임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에 건립되었으며 대장경 목판 보관을 목적으로 지어진 세계에서 유일한 건축물이다. 효과적인 건물 배치와 창호 계획을 고려하는 동시에 경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대장경판을 오랜 기간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데 필요한 자연통풍과 적절한 온도 및 습도 조절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었다. 건물 안에 있는 판가 역시 실내온도와 습도가 균일하게 유지되도록 배열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학적 방법은 600년이 넘도록 변형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의 보존 상태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다.
고려 시대의 국가사업으로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그 내용의 완전성과 정확성, 판각 기술의 예술성과 기술성의 관점에서 볼 때 전 세계 불교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는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과 연관해 이해해야 하며 건축적, 과학적 측면에서 목판의 장기적 보존을 위해 15세기에 고안된 탁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종묘 [Jongmyo Shrine]
종묘는 유교 예제에 따라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기반시설이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유교의 조상숭배관이 독특하게 결합된 한국의 사묘 건축 유형에 속한다. 죽은 자들을 위한 혼령의 세계를 조영한 건축답게 건물의 배치, 공간구성, 건축 형식과 재료에서 절제, 단아함, 신성함, 엄숙함, 영속성을 느낄 수 있다. 건축물과 함께 제사, 음악, 무용, 음식 등 무형유산이 함께 보존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제례가 행해진다는 점에서 종묘의 문화유산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백제역사유적지구 [Baekje Historic Areas ]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고고학 유적과 건축물은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고대 왕국들 사이에 있었던 상호교류를 통해 이룩된 백제의 건축 기술의 발전과 불교 확산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
기준 (iii):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볼 수 있는 수도의 입지, 불교 사찰과 고분, 건축학적 특징과 석탑 등은 백제 왕국의 고유한 문화, 종교, 예술미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이다.남한산성 [Namhansanseong]
남한산성의 산성 체계는 17세기에 극동지역에서 발달한 방어적 군사 공학 기술의 총체를 구현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중국과 한국의 성제를 재검토한 결과이자 서구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화기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한국의 산성 설계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었으며 축성된 이후에는 한국의 산성 건설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기준 (iv): 남한산성은 요새화된 도시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17세기 조선시대에 비상시 임시 수도의 기능을 하도록 계획·건설된 남한산성은 이전부터 존경받아온 전통인 승군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산성의 방어 역시 승군이 담당하였다.
하회와 양동 [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대표적인 씨족 마을의 예로서, 조선 시대 초기의 특징인 촌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의 입지와 배치와 가옥의 전통에서 두 마을은 500여 년 동안 엄격한 유교의 이상을 따라 촌락이 형성되었던 조선 시대의 유교 문화를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
기준 (ⅳ) : 하회와 양동 두 마을은 한반도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조선왕조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양반과 평민 가옥들의 전체적인 배치와 개별적 배치의 조화는 조선왕조의 힘과 영향력이 문학과 철학적 전통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적 전통에도 배어 있음을 의미한다조선왕릉
조선왕릉(朝鮮王陵)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한다.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며, 왕실의 권위를 다지는 한편 선조의 넋을 사기(邪氣)로부터 보호하고 능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했다. 왕릉은 뛰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보통 남쪽에 물이 있고 뒤로는 언덕에 의해 보호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이며, 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자리를 선택해 마련되었다. 왕릉에는 매장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례를 위한 장소와 출입문도 있다. 봉분뿐만 아니라 T자형의 목조 제실, 비각, 왕실 주방, 수호군(守護軍)의 집, 홍살문, 무덤지기인 보인(保人)의 집을 포함한 필수적인 부속 건물이 있다. 왕릉 주변은 다양한 인물과 동물을 조각한 석물로 장식되어 있다. 조선왕릉은 5,000년에 걸친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의 완성이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 [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
총 면적 18,846㏊ 규모의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은 천장과 바닥이 다양한 색의 탄산염 동굴생성물로 이루어지고 어두운 용암 벽으로 둘러싸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계로 손꼽히는 거문오름용암동굴계, 바다에서 솟아올라 극적인 장관을 연출하는 요새 모양의 성산일출봉 응회구(tuff cone), 그리고 폭포와 다양한 모양의 암석, 물이 고인 분화구가 있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세 구역으로 구성된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유산은 지질학적 특성과 발전 과정 등 지구의 역사를 잘 보여 준다.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며,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과정과 함께 한국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조각, 탑, 사지, 궁궐지, 왕릉, 산성을 비롯해 신라 시대의 여러 뛰어난 불교 유적과 생활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의 유적이 많으며 이들 유적을 통해 신라 고유의 탁월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인의 생활 문화와 예술 감각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총 5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불교 유적을 포함하고 있는 남산지구, 옛 왕궁 터였던 월성지구, 많은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지구, 불교 사찰 유적지인 황룡사지구, 방어용 산성이 위치한 산성지구가 이에 해당한다.화성 [Hwaseong Fortress]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정조(正祖)가 자신의 부친인 장헌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읍치소를 이전하고 주민을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방어 목적으로 조성하였다. 1794년 2월에 착공하여 2년 반에 걸친 공사 후 완공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5.74Km이며, 높이 4~6m의 성벽이 130㏊의 면적을 에워싸고 있다.
처음부터 계획되어 신축된 성곽이라는 점,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을 합하여 하나의 성곽도시로 만들었다는 점,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동양과 서양의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 그 이전의 우리나라 성곽에 흔치 않았던 다양한 방어용 시설이 많이 첨가되었다는 점, 주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로 조성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1801년에 간행된 화성 준공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통해 공사의 자세한 전말을 알 수 있다.
창덕궁 [Changdeokgung Palace Complex]
창덕궁(昌德宮)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궁궐이다. 건축과 조경이 잘 조화된 종합 환경디자인 사례이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공간 분위기를 읽게 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15세기 초에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이궁으로 조성되었으며, 그에 따라 애초의 건립 목적이나 도성 내에 자리한 입지도 경복궁과 차이가 있었다.일본에도 청동기 문화 있지? ㅋㅋㅋ
설마 청동기문화도 없고 금석병용시대도 없이
바로 철기문화시대로 넘어가진 않았을테고? ㅎㅎㅎㅎ
>>49
그건 그렇고 기록유산이 고작 6개?
우리 남한 단독으로만 16개 아니던가?일본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려는
본에선 7~8세기 고대 석비 3점을 묶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본의 현존 최고(最古) 비석인 야마노우에비(山上碑·681년)를 비롯해 다고비(多胡碑·711년경)와 가나이자와비(金井沢碑·726년)가 그 주인공이다. 모두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시에 있어 옛 지명인 고즈케(上野)를 붙여 '고즈케 3비(碑)'라 불린다. 그동안 일본에선 3점 모두 고대 한반도의 비석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만 막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이것도 등재되지 않았었나?広開土王碑が朝鮮領内にあったら、破壊されるか打ち捨てられていたんだろうな
>>61
百済は高句麗と似た言語を使っていたようだが、百済語も高句麗語も現代には伝わっておらず消滅している。
ちなみに現在の朝鮮語は新羅の言語を祖としている。
言語も引き継いでいない今の韓国人は百済とは何の関係もないだろ?깡촌 황무지가 앞으로 문화 대국이 될 일은 없음.
창녀 kpop이 자랑인 남쪽도 마찬가지고.北の文化財?
残ってるわけないじゃん
持ち出されて、売り払われているよ
残念でした世界記録遺産
韓国11←爆笑 中国9 アメリカ6 フランス8 スペイン5
観光資源に乏しく世界の誰も興味ない半島を売り込むために昔からせっせと世界遺産登録に情熱を傾けてた悲しい猿
こんな物に何の意味もないし数年以内に日本が抜く
観光客数も日本がビザを緩和したらあっという間に南朝鮮の2.5倍に達し2020年には3.5倍になる>>12
ユネスコもメリットよりデメリットの方が多いので、登録いらないと思う。>>48
まず、世界遺産の登録に統一性を持たせる必要はありません
むしろ統一性が遺産登録の妨げにもなります。
そして古い時代の物だから世界遺産として評価され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貴方の考えるように一般に古い建築物は希少性から価値があると認めやすいです
逆に新しい建築物でも価値が認められる事は凄い事ではないでしょうか
スウェーデンのヴァールベリのグリメトン無線局、オーストラリアの シドニー・オペラハウスが好例です。>>55
韓国はUNから登録を勧誘されるほどとはどのような意味なのでしょうか?
その国に登録された世界遺産は自国で管理する必要があります
その為一方的に勧誘されることはないと思うのですが…
もしや韓国が登録推薦していた遺産を世界遺産委員会が登録勧告した事を相手側から勧誘されたと解釈していませんか?
だとすれば韓国に限らず他の国もUNから勧誘され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が…
もしくは韓国語と日本語の翻訳表現に限界があるようです
できれば詳しい解説をお願いできますか?
どの遺産が勧誘されたかだけでも教えてもらえれば後は私で調べますので。확실히 북한에 있는 많은 문화 유산들도 통일의 장점중 하나지
>>73
大阪城天守は、3代目の城郭建築。
1代目・・・豊臣氏時代→17世紀に戦乱で焼失。
2代目・・・徳川氏時代→18世紀に落雷で焼失。
3代目・・・現在→1931年に竣工。
1931年に大阪市民が当時の最先端技術で「復興」(歴史的再現ではない)したと願い建てられたの。
2018年で築年数87年。
昭和時代初期に建てられた城郭建築として、「国登録有形文化財」に指定された、歴史がある建物。
ちなみに、鉄筋コンクリート建物は「天守」だけ。
17世紀~19世紀の伝統的木造建造物も存在する。
文化財・復元・復興の違いも理解できない韓国人は馬鹿。
それだけ、韓国は文化財保護・文化財の価値を理解していない証拠。
북한이 개방되면, 문화 유산의 천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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