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사무라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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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7/09/27(Wed) 23:38:22ID:M3ODU2NTk通報
  • 27名無し2017/09/28(Thu) 12:17:04ID:IyMzI1NjA(1/1)NG通報

    起源を主張したり、かと思えば貶したり、
    韓国人って情緒不安定だな。

  • 28朝鮮総督府2017/09/28(Thu) 13:17:18ID:AwMjA3MjE(1/1)NG通報

    >>27
    むしろ明白に精神分裂症でしょう

  • 29名無し2017/09/28(Thu) 14:46:00ID:M5MzgxMjg(1/1)NG通報

    >>15
    活躍してた当時はただの軍人だったんだけど、江戸時代が平和すぎて形骸化したから美化されて武士道ができたんだよな。
    騎士道も似たようなルーツ。

  • 30名無し2017/09/28(Thu) 16:09:50ID:Q3NzIwOTY(1/2)NG通報

    エジプトもだが伊達政宗家臣がローマ教皇と謁見してローマとの通商交渉までしてる。ちゃんと記録も残ってるからな。支倉常長で調べるといい。

    偉大な朝鮮人様はその時代に何してたんだ?
    確か侍の時代より前は日本より発展してたとか豪語してなかったか?

  • 31名無し2017/09/28(Thu) 16:13:04ID:Q3NzIwOTY(2/2)NG通報

    ちなみに彼が支倉常長
    ずいぶん韓国人の思ってる侍と違うようで残念ですね。これは海外の方が書いた絵ですから。あしからず。

  • 32au2017/09/28(Thu) 17:58:03ID:I3NjQ2MjQ(2/2)NG通報

    >>17
    君はクリスチャンか?
    サムライは400年以上前から法王に拝謁するために遣欧使節を派遣していた。
    未開な朝鮮と日本とは文化的にも国としても大きな差があった。当時は写真が無いのでこれを貼る。

  • 33名無し2017/09/28(Thu) 18:11:08ID:A3ODAwMTY(1/1)NG通報

    >>1
    それ…サムライじゃ無いから!
    海賊だろ?
    サムライがそんなコジキ見たいな服装をするはずが無い!
    これが本物のサムライだよ!

  • 34名無し2017/09/28(Thu) 18:12:57ID:U0MzI2ODg(1/1)NG通報

    >>30
    > 偉大な朝鮮人様はその時代に何してたんだ?

    そのころの朝鮮人は、蛮族だと蔑視していた満州族に大敗して惨めに平伏してましたとさ。

    慶長遣欧使節団:1613~1620
    サルフの戦い:1619

  • 35名無し2017/09/28(Thu) 23:05:57ID:U4NDg4MTY(1/1)NG通報
  • 36名無し2017/09/29(Fri) 01:48:48ID:QyNjY2MDM(1/1)NG通報

    その頃韓国人は中国人に土下座していた

  • 37名無し2017/09/29(Fri) 02:29:13ID:g5NzM1MDk(1/2)NG通報

    蔑みをしたい衝動に任せて ブーメランで自傷するのわかってるでしょ?
    画像のハングルをが翻訳させたいので
    韓国人さん テキストで表記お願いします
    出来れば 各年代と 復元に使用した資料などもお願いします
    まさか ドラマ用ではないですよね?

  • 38名無し2017/09/29(Fri) 02:32:46ID:g5NzM1MDk(2/2)NG通報

    >画像のハングルをが翻訳させたいので
    修正>画像のハングルを 翻訳できるように

    ホントすみません。

  • 39名無し2017/09/29(Fri) 09:41:42ID:YxNjg4Nw=(1/1)NG通報

    실망이 크네..

  • 40名無し2017/09/29(Fri) 10:05:41ID:YyNzQyMzQ(1/1)NG通報

    その侍に敗れる高麗

  • 41名無し2017/09/29(Fri) 10:14:03ID:I2Njk3NzQ(1/1)NG通報

    侍の精神が理解できれば朝鮮人などやってられない。
    侍が理解できないから朝鮮人でいられるのだ。喜べw

  • 42ネコウヨ2017/09/29(Fri) 10:23:03ID:M4MDU3MDc(2/3)NG通報

    >>39
    だから同時期におまえら見てから言え

  • 43名無し2017/09/29(Fri) 10:31:43ID:IxMTc2NTU(1/3)NG通報

    >>1
    歴史的に非力な朝鮮は、海上や沿岸はもちろんのこと、内陸にまで倭寇の侵入を許し、さんざん荒らされ痛めつけられているから、海賊=侍ということにしてプライドを保ちたいの?
    哀れだねw

  • 44名無し2017/09/29(Fri) 10:50:59ID:gxOTQ2ODM(1/1)NG通報

    >>14
    この写真は、たぶん、天秤棒を持った行商人だろうね。
    もしかしてこの棒が武器に見えたの?

  • 45名無し2017/09/29(Fri) 19:27:37ID:A0Mjg3MzA(1/8)NG通報

    >>43 고려 에 침략한 왜구는 해적이 아니라 일본 남조의 패잔병 수만명의 병사들이 500백척의 배를 타고 수천필의 말을 태워 이동했다.

  • 46ネコウヨ2017/09/29(Fri) 19:32:30ID:M4MDU3MDc(3/3)NG通報

    日本って鎧を身に着けたまま泳ぐことができる
    泳法「日本泳法」ってあるけど
    韓国人でも韓国古来の泳ぎってあるの?
    ちなみに現在伝承されている13流派もあるらしいけど

  • 47名無し2017/09/29(Fri) 19:37:50ID:A0Mjg3MzA(2/8)NG通報
  • 48名無し2017/09/29(Fri) 20:05:00ID:AzNDM0MDI(4/7)NG通報

    >>45
    いちいち貼らねーけど
    鎌倉時代:1185年頃 - 1333年
    元寇:1350年頃 -

    資料ちゃんと見比べてみようねー

  • 49名無し2017/09/29(Fri) 20:06:07ID:AzNDM0MDI(5/7)NG通報

    >>48 ☓元寇 ○倭寇

  • 50名無し2017/09/29(Fri) 20:24:03ID:I0MDkwMzU(1/1)NG通報

    >>47
    丙子胡乱って詳しく無いんだけど、朝鮮人は戦ったのか?
    誰か有名な朝鮮の将軍とかいるのか?

  • 51名無し2017/09/29(Fri) 20:32:15ID:c0MTQyNTI(1/1)NG通報

    秦の始皇帝でも中国発の専軍隊を作ったが、映画のような武装ではないよ。
    韓国も過去の歴史は今勝手に扇動されてるものとは違うてこと

  • 52名無し2017/09/30(Sat) 01:21:25ID:QwNzY4NzA(1/1)NG通報

    真に中世時代の武士を知ってもどん引きするだけやで

    武士の戦いをリアルに描いた「後三年合戦絵巻」(1347年作)
    http://www.emuseum.jp/detail/100319/006/000?x=4592&y=-97&s=1

  • 53名無し2017/09/30(Sat) 01:28:50ID:QxOTY4OTA(1/1)NG通報

    >>46
    きっとこれが役に立つはず!w

  • 54Dancing with Jessica.2017/09/30(Sat) 01:29:01ID:Y5NTE1MjA(1/1)NG通報

    >>11
    He is Admiral 李舜臣.

  • 55名無し2017/09/30(Sat) 06:58:10ID:c1MzYzNTA(2/3)NG通報

    >>45
    は?w
    そっちでいうところの「倭寇」とは、主に対馬・壱岐・肥全松浦地方、そして瀬戸内海の島々などで、普段は主に海上交易に従事していた連中だぞ。

    陸の在地領主とはちがって、みな主従関係に縛られることが少なかったから、自立した軍事力として、南朝・北朝の双方から傭兵として雇われたりもしたんだ。
    「南朝の敗残兵」も中にはいたろうが、その一言で終わらせるなw

    そもそも南軍の「敗残兵」が数万人も存在していたなら、南朝だって苦労はせん。
    「南北合体」=南朝の消滅の際、京に入って来た南朝一行の人数は、たかだか五十人余りだったんだぞw

  • 56名無し2017/09/30(Sat) 12:15:14ID:A1NjE5OTA(1/1)NG通報

    >>1
    その絵の子孫達は朝鮮半島を制圧。
    そして朝鮮人達は未だに泣きわめいてるのが笑う。

  • 57名無し2017/09/30(Sat) 12:17:44ID:cwOTk5MjA(1/1)NG通報

    >>54
    韓国を象徴する虚像w
    嘘で塗り固められた英雄ですね!

  • 58名無し2017/09/30(Sat) 15:42:33ID:k2OTQxMDA(3/8)NG通報

    >>50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군들이 일본으로 철수한지 40년정도 후에 청 황제 홍타이지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조선은 전란이 일어난지 40년 만에 또 다시 전란이 일어나서 조선의 백성들은 힘들었다. 조선군은 일본군의 てっぽう 를 카피해서 병자호란 당시 대부분 てっぽう 로 무장하였는데 발사속도가 느려서 평지에서는 기마병에게 살해당하기 쉬웠다. 병자호란 당시 경기도 용인 光敎山 戰鬪 에서는 조선군이 산의 높은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てっぽう 로 수많은 청군을 살해했다. 그때 청황제 의 누나의 남편 楊古利 도 조선군의 조총에 살해되었다. 조선 독립운동가 김구의 조상 김자점은 수만명의 병사를 가지고도 청군과 교전하지 않고 회피하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음 왕이 즉위하고 나서 참수당했다.

  • 59名無し2017/09/30(Sat) 16:21:41ID:k2OTQxMDA(4/8)NG通報

    >>55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임이 극심했다’ 정도만 서술할 뿐 왜구가 왜 생겼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일본의 대마도나 해안 지역민들이 식량 부족으로 노략질하러 나섰다는 게 왜구에 대한 통상의 인식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왜구의 활동 변화가 일본 남조 고다이고 천황에 충성했던 규슈 지역의 군사 정세 변화와 일치하는 것을 볼 때 왜구는 남조의 무사들”이라고 말했다.
    1376년 11, 12월 왜구가 부산 경남 일대를 노략질한다. 이 교수는 이를 일본 남조가 북조와의 결전을 앞두고 급히 군량미를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본다. 이듬해인 1377년 2월에는 충남 당진과 인천 강화도까지 왜구가 나타난다. 이는 1377년 1월 17일 남조가 북조와의 전투에서 패한 뒤 다음 전투에 대비해 고려의 물자가 모이는 개경 근처까지 침입해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남조의 본거지를 북조가 점령한 시기(1381년)와, 왜구의 침입 빈도와 규모가 격감한 시기(1383년)가 비슷한 것도 왜구가 남조 무사라는 방증이 된다.

  • 60名無し2017/09/30(Sat) 16:23:00ID:k2OTQxMDA(5/8)NG通報

    >>55이 교수는 “1376년 고려 사신이 무로마치 막부(북조)의 장군으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막부) 조정에서 장수를 보내 군사 작전을 하고 있으니 규슈가 통치되면 해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돼 있다”며 “이 역시 왜구가 남조의 무사 집단이라는 명백한 사료”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사학계는 대체로 왜구가 변방의 ‘해민(海民)’이고, 심지어 화척(백정)이나 제주도민 등 고려인이 왜구의 일부였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학자가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던 나카무라 히데다카(1902∼1984)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은 고려 조정이 무능하고 부패해 왜구의 실체가 자국민이라는 것도 파악을 못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주장의 뿌리가 일본 천황은 역사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는 메이지 유신 세력의 ‘황국사관’이라고 말했다.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유신 세력은 1333년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킨 남조의 고다이고 천황과 그를 도운 구스노키 마사시게를 자신들의 역할 모델로 봤다. 그런 남조의 무사들이 바다 건너 노략질을 하러 다닌 왜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국 학계에도 왜구에 고려인과 중국인이 많았다는 주장이 사실처럼 알려져 있다”며 “왜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명과 조선의 건국, 일본 북조의 승리 등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변한 14세기 후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61名無し2017/09/30(Sat) 16:30:21ID:k2OTQxMDA(6/8)NG通報

    >>45왜구는 고려말부터 조선초기까지 우리나라 전역에 침입하여 약탈과 살인, 납치를 자행한 해적 무리다.
    왜구는 연해지역은 물론 내륙 깊숙이 침입하였으며, 당시 인민들이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왜구에 대해 후소샤 교과서는 ‘왜구란 이 무렵 조선반도와 중국 연안에 출몰하던 해적집단을 말한다.
    거기에는 일본인 이외에 조선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중략) 16세기 중엽 감합(勘合)무역이 정지되자 또다시 왜구가 번성하게 되었는데,
    그 구성원은 거의 중국인이었다’고 서술한다. 한마디로 왜구의 다수가 조선인이나 중국인이었다는 것이다.
    근대의 침략전쟁에서뿐 아니라 고대나 중세에도 일본은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후소샤 교과서의 기본 관점이다.
    일본서적신사의 교과서처럼 ‘왜구는 이키(壹岐)나 대마도 등을 근거지로 한 일본인이었다’고 제대로 서술한 것도 있지만,
    일본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는 도쿄서적 교과서에서도 ‘왜구 가운데는 일본인 이외의 사람도 많이 있었다’고 연막을 친다

  • 62名無し2017/09/30(Sat) 16:30:43ID:k2OTQxMDA(7/8)NG通報

    >>45왜구에 고려인이 다수 포함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었고,
    지금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왜구를 동아시아 여러 나라 사이의 교류관계사라는 관점에서 보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경향 속에서 왜구는 고려와 일본인의 연합조직이라거나 아예 고려와 조선인이 주체였다는 학설이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다나카(田中健夫)는 대규모 왜구 집단의 주체가 고려의 제주도민, 혹은 양수척·재인 등의 천민집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침입한 인원과 선박, 왜구가 소유한 말이 너무 많다는 점 등이다.
    실제로 왜구는 500척이나 되는 선단으로 침입하기도 하였고, 1,000필이나 되는 말을 끌고 다니기도 했다.
    그만한 인원은 대마도인 혹은 대마도를 경유한 일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고,
    1,000필이 넘는 말은 밀도살을 전업으로 하는 화척과 연합하여 얻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고려말기의 왜구 속에 ‘왜인은 (10명 중에) 1~2명에 지나지 않고,
    본국의 백성들이 거짓으로 왜인의 의복을 입고서 무리를 지어 난을 일으켰다’
    는 세종 28년 판중추원사 이순몽(李順蒙)의 발언을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한다.

  • 63名無し2017/09/30(Sat) 16:31:04ID:k2OTQxMDA(8/8)NG通報

    >>45이러한 주장은 ‘고려사’의 왜구 관련 사료를 잘못 해석하거나 확대해석한 데서 생긴 오류이다.
    왜구가 1350년 이후 대규모화한 것은 고려인이 가세해서가 아니라 일본 남북조의 내란기에 궁지에 몰린 세력이 군량을 구하기 위해 침략하였기 때문이다.
    규슈 전역과 세토(瀨戶) 내해(內海) 등 광범위한 지역의 ‘악당’이 남조의 수군으로 동원되었으므로 왜구의 선단이 커졌고,
    고려 선박을 약탈하면서 규모가 더 커진 것이다. 대량의 말도 제해권을 장악한 왜구가 연해와 섬들에 있었던 고려 목장을 약탈하여 얻은 것이다.
    유일한 직접 사료인 이순몽의 발언은 호패법 시행을 주장하면서 한 말로, 평소 그의 행적이나 학문 등으로 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
    제주도가 왜구의 소굴이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으며, 고려말기에는 어떤 고려 해적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없다.
    교류관계사의 시각에서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시각을 달리한다고 하여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왜구가 대마도와 일기 등지의 민중,
    악당이나 악당화한 규슈 사이고쿠(西國)의 무사들이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 64名無し2017/09/30(Sat) 16:38:33ID:YzNzIzNDA(6/7)NG通報

    >>61
    >「倭寇の中には、日本人以外の人もたくさんあった」と煙幕を打つ

    それ歴史資料に書いてある内容なwたしか朝鮮の資料にある内容
    倭寇の旗印も中国や朝鮮のスタイル
    歴史資料に基づいた内容だよ
    戯け

  • 65金玉2017/09/30(Sat) 16:46:52ID:U2MDUyNTA(1/1)NG通報

    面倒臭え
    大体スレ画>>1は後期倭寇を描いたものじゃないか
    朝鮮人はこういうすり替え論法を当たり前にやってくるから嫌いなんだよ

  • 66名無し2017/09/30(Sat) 16:49:54ID:YzNzIzNDA(7/7)NG通報

    >>63
    古代や中世にも、朝鮮は悪いことをしたことがないというのが、お前たち朝鮮人脳のファンタジーである
    OK?

  • 67名無し2017/09/30(Sat) 18:27:54ID:c2MjEyOTA(1/2)NG通報

    >>37
    この鎧、雨が降ると首筋から流れ込む。
    体がずぶ濡れになるだろね。

  • 68名無し2017/09/30(Sat) 20:39:39ID:c1MzYzNTA(3/3)NG通報

    >>59
    >>60
    長々と引用しているだけの怠慢且つ失礼なレスに対し、こちらもふさわしい返事を書く。

    あくまでも彼らが「南朝の武士集団」であるというのなら、単なる「推測」ではなく、それらの「武将」の姓名や履歴を具体的に述べよ。

  • 69右翼の食欲、左翼の性欲2017/09/30(Sat) 21:39:13ID:A5NzY1MjA(2/2)NG通報

    >>32
    朝鮮にキリスト教を伝えたのは
    韓国人が大嫌いな

    小西行長

    朝鮮出兵の一番隊の隊長だよw

  • 70しばちゅう(流狼)2017/10/01(Sun) 06:04:04ID:k3MjI5MTA(1/1)NG通報

    現代、『犯罪を犯すことが美徳』としている韓国人に、三百年も昔の日本人の犯罪を断罪されてもなぁ。
    推測するに、民族の九割も奴婢であった李氏朝鮮の朝鮮人は、支配者である両班その他の支配から逃れるために、倭寇になった可能性は 低くないと思うのだが?

  • 71名無し2017/10/01(Sun) 18:43:18ID:UxNTg3NTA(1/2)NG通報

    >>44
    簑の下が小紋に袴っぽいから、芸人という可能性もるんじゃない?
    例えば、田楽芸人とか。

  • 72名無し2017/10/01(Sun) 19:14:36ID:UxNTg3NTA(2/2)NG通報

    >>62
    その教授は1つ、重大な事を見落としている。

    当時和冦を捕らえた朝鮮の役人が中央政府に宛てた報告書に、『捕らえた和冦は、朝鮮半島民が多い』と書いてる。和冦になった理由も聞き取って報告。国が改善策を取るように求めている。
    和冦になった一番多い理由が『地方役人の不作隠し』
    『地方役人が点数稼ぎの為に不作を隠す→税の減免をせずに徴収→饑饉発生→村から脱走→徒党を組み和冦を名乗り掠奪を行う』
    報告書いた役人は、地名を挙げて、不作と饑饉の発生があったか調査してほしいと求めている。

  • 73名無し2017/10/01(Sun) 20:26:04ID:Q5ODk5MzA(1/1)NG通報

    >>63

    日本人の仕業にしたがっていますが、韓国が討伐も出来ずに海岸線から逃げた、歴史の被害者は誇らしいですか?

    韓国が惨めになる事よりも、日本を悪く言う方が大事なの?

    例え日本人だけだとしても、国家と地方で地方が勝っていた歴史ですよ。
    惨めすぎませんか?

  • 74名無し2017/10/02(Mon) 07:37:57ID:Y4Mjk5MDY(2/2)NG通報

    >>72
    >>73
    土一揆みたいな事だったんかね?
    海岸地帯に人が住めなくなる。海岸地帯で大反乱が起こっていたのかも。

  • 75名無し2017/10/03(Tue) 17:59:56ID:cyNzc3NTc(1/2)NG通報

    南朝は懐良親王が日本国王にするんで海賊行為やめてくれないかという明の使者を数人ころしても、なお明が冊封の使者送ってきたからなw

  • 76名無し2017/10/04(Wed) 21:57:43ID:MzMjA2NzY(2/2)NG通報

    >>63
    『高麗史』に、朝鮮の役人が倭寇の頭目を毒殺しようとして失敗し、略奪だけだったのに人をころすようになったと書いてあるし、そもそも煙幕を打つとか言っても、記述を元にしていない妄想語ってもしゃーないのよw
    中世の海洋商人っていうのは、取引成立しない場合は実力で損益取り返すもんなのなw
    前期倭寇はこんなとこw
    後期倭寇は対馬とかの元寇の復讐が多いw

    高句麗も新羅も普通に海賊行為で日本にやってきてたんだしなw

    実際、倭寇の頭目捕らえたら倭人じゃなくて明人だった記録あるんだし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