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는
한국기자들이 길림대학교 해당교수에게 질문한 내용과 그에 상응하는 답변입니다.
확인바랍니다.
한국기자 : 부여-고구려계와 현대 한국인이 동일 계통의 집단이었음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나?
중국교수 : 증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측정한 인골 개체수는 426건에 이르고, 이중 성별이 명백한 404개의 예를 연구에 이용했다. 그 중에서도 두장폭 지수등 형질인류학적 주요 측정치와 지표를 비교하는데 사용한 남성 성인 인골의 수는 대략 40~73개체에 이른다. 이 정도 많은 고인골을 이용한 연구는 흔하지 않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부여-고구려계와 현대 한국인이 모종의 강한 연결 관계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모종의 강한 연결관계라는 것은 결국 문헌 사학계에서 말하는 "한국인의 3원적 구성설, 즉 고대 예-맥-한(韓) 3개 종족의 결합체가 현대 한국인의 뿌리"라는 주장과 "고대 삼한은 북방의 예맥족(부여-고구려의 주류 종족)이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지역화한 종족으로 본질적으로 예맥족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집단"이라는 주장을 의미한다.>>130
한국기자 : 동일한 계통의 집단이라고 단정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교수 : 오늘날 유전자 인류학이 발달한 상태에서 고전적인 형질인류학적 측정치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라마동 유적의 mtDNA를 분석해 제 집단과의 상호거리를 분석한 연구결과는 이미 일부 공개가 되고 있지만 각 하플로그룹을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는 아직 부분적으로만 공개되고 있어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리고 애당초 현대 만주족과 현대 한국인은 형질인류학적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두 집단을 두고 동일 종족, 내지 동일 민족이라고 표현을 사용하는 연구자나 학자는 전혀 없다. 양 집단의 언어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어계통론 내지 비교언어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고구려어는 현대 한국어와 모종의 연결고리가 존재하지만 고구려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집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학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퉁구스-한국-일본을 한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안에 고구려어를 포함시키는 학자도 있고, 한국-일본어를 한 그룹으로 묶으면서 고구려어는 상대적으로 일본어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반대로 고구려어와 몽골어나 퉁구스어와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물론 중국 학계 일부와 북한 학계에서는 고구려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는 한국어라고 주장하면서 고구려와 신라어의 간격이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언어적인 관점에서 고구려어의 위상과 정체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 내지 좀처럼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132
추가입니다.
다만 부여-고구려계 집단이 현대 한국인과 형질인류학적으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아마도 유전자 인류학으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앞으로 고구려인내지 고구려족과 고대 한국인(삼한)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이라는 점 정도는 증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확한 용어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고구려인과 백제인, 신라인은 형제민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연구가 진척될 가능성은 있다.한국기자 : 왜 하필이면 부여족 포로인가. 부여 영토가 요서 라마동까지 미쳤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중국교수 :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당시 문헌이 묘사하는 시대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라마동 유적 이외에는 당시 요서 일대에 전형적인 선비족풍의 유적이 많이 존재한다. 라마동 유적 외에 당시 요서지역 유적에서 나오는 인골도 고몽고고원유형-고시베리아유형-북아몽고인종 계통이어서 라마동의 인골과 전혀 달라 선비족 계통의 유적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라마동 유적이 기본적으로 선비족의 정치적 영향권 내에 있었던 부여족의 유적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한국기자 : 왜 하필 부여족인가. 요서에서 현대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인골이 나왔다면 백제 요서(중국)진출설의 증거로도 활용할수 있지 않나.
이런 질문도 나올줄 알았다. 인골 자체만 보자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출토된 유물의 양상이 한성 백제 내지 그 이전단계의 한강 유역 일대의 유물과 비교할 여지는 없다. 선비족 유물과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송화강 유역의 유적들과도 강한 관련성이 있는 유물들이어서 부여 외에 다른 집단을 생각하기 힘들다.
마무리합니다.朱蒙 (고구려)
東明聖王 (부여)
에 대해서 모르는겁니까?>>140
???
아니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고 싶어하는건지요?
네 당신이 말한대로
부여왕->예왕지인
부여라는 나라 자체는 기원전3세기경게 탄생했습니다.>>143
?????
나는 오히려 당신같은 일본인을 처음보는데요?
웬만한 일본인들은 고대 예맥족(부여,고구려인)하고의 관계를 부정하는데
당신은 뭡니까??
아니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겁니까?? ㅋㅋㅋㅋㅋㅋ
혹시 바보입니까?>>143
보니깐 한자 읽는 방법도 모르는것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능아?? ㅋㅋㅋㅋ>>143
무식하면 이렇게 동조되는겁니다 ㅋㅋㅋㅋㅋ
볼때마다 재밌네 ㅋㅋㅋㅋㅋ
넷우익 일본인들도 서로 의견이 다른 ㅋㅋㅋ
왜냐하면
무식하기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고대 부여,고구려인은 우리 조상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다ㅋㅋㅋㅋㅋㅋㅋㅋ재밌어요.
외국인들하고의 역사토론도 애용하지만
민족주의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예맥족의 기원에 대해서
중국인은 한국인과 예맥족의 관계를 필사적으로 부정하면서 와미족하고 연관시키던가
일본인들은 예맥족을 yamato하고 연결시키는 부류도 존재ㅋㅋ
재밌는건
터키인들같은 경우에는 예맥족을 키멕족 하고 연관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저런 이상한 주장볼때마다 웃음만 나오죠.
역시 일본인은 재밌습니다
재밌게 해줘서 고맙다ㅋㅋ
아침일찍 나가야되서 이만 줄입니다ㅋㅋ金國 의 太祖 女眞族 완안 아골타가 거란의 遼國 과 전쟁을 할때 거란족 의 지배를 받고 살던 발해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女眞과 발해는 同類 라고 하였다. 遼國 을 멸망시킨 女眞族 들은 猛安謀克 에서 발해인을 내쫒고 女眞族 과 거란인 들만 猛安謀克 이 될수 있었다. 발해인들을 중국 漢族 과 같은 취급을 하고 산동반도로 강제이주 시켜 버렸다. 그이후 발해인들은 역사에서 소멸되어 버렸다. 女眞族 과 발해인은 만주에 살고 있고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나라의 국민이 었을때도 있었지만 발해인은 문화수준도 높은 정주민 이었고 女眞族 은 수렵활과 부족이 이동을 하는 민족,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민족 이었던것이다. 金國 이 몽고에게 멸망한후 중국대륙 화북에 있던 女眞族 은 漢族 이 되어버렸고 後金 의 만주족은 만주의 여러 종족과 내몽고의 몽고족 중국요동인
조선인 이 합쳐진 새로운 민족過去、朝鮮半島に住んだ全ての民族の子孫が韓国人だとするから論理が破綻するのだよ。
対立している2つの国の両方の子孫なんて事がある筈がない。片方が支配すれば、支配された国の歴史は消える。当たり前の事が出来ない。
今、日本がアメリカの1つの州になったら、天皇陛下は消え、アメリカの歴代大統領の名を覚える事になる。それが理解出来ない朝鮮人であった。
3韓の子孫という発想がおかしい。3韓のいずれかの国の子孫にしかならないでしょ。日本人はアイヌの子孫とも思ってないし、琉球人の子孫とは思っていない。
ましてや、韓国人の子孫とは思っていない。凄い、詳しい韓国人がいますね。そこで質問です。
韓国では、北朝鮮と共同で遺跡を発掘したり、または調査したりするんですか?朝鮮人の血統理論は意味不明なんだよ。
対立してるa国とb国があり、a国がb国の村を襲い女性をかどわかしてきたら、自然とb国の血統がはいる。
結果、韓国人は両方の血統を持っているから、a国とb国を支配していたとなる。
対立していた国どおしなら、女性をかどわかすなんて両方がする。近隣にいれば血統が入るなんて自然な事なんだよ。
もちろん、仲が良かった場合は婚姻で血統が入る。
人類は寿命があり、子孫を残していく以上、純潔路線は難しいのだよ。
純潔路線と言ってもある一定数の民が隔離されて長い年月が経ち、結果として純潔になったに過ぎないけどね。何も純潔が尊い訳ではない。
つまり、朝鮮人と1000年離れていれば純潔だね。(笑)土着の王や聖人などが神話へ、ギリシャ神話があってローマ皇帝もある。ツァーリも他の神話的な要素の利用。隣接地域で混ぜて利用。宗教も混ぜて利用。
○○の子孫であるや経歴記録の偽りは常にあるもの。
中国45000年前の英雄の黄帝は漢族の象徴としても利用され子孫を名乗るものが多い。ほとんどの場合は関係なくても混ぜて受継ぎ切離せなくなるのだね。どこまでも広がる。위의 thread 에서 엄청난 오류가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정정함
Max Plank -> Max Planck>>155
곰 - 캄챠카반도 출신의 Neanderthal girl
호랑이 - 시베리아 출신의 Neanderthal boy
神話を馬鹿にする人がいますが、意外と真実が書かれていることがあると思います。
日本の神話と言われる古事記にはビックバン、宇宙創成が書かれているという研究や
があります。>>158 원나라 유학박사가 충렬왕인가 한테 극딜했을때 족보 뽀록난게 천년이 넘었구만ㅋㄱㅋ
韓国人の嘘の歴史だと
日本は中国やロシアと順番に戦ったのは、【都合が悪いのでなかった事】にされるのかな。
日本のように韓国も中国、ロシアに宣戦布告して、全面戦争してから言うべきじゃないかな。
日本が戦ったのに韓国が出来ないんじゃあ、
正に韓国の方が中国、ロシアに挑めない奴隷だからね。>>8お前たちは朝鮮人がたちが倭人である事を
否定してるのに日本は百済の植民地だったと
言ってるけど中国の古代書には韓半島南部には
倭人が住んでると書いてあるのに自らの支配地域に
植民地の人である倭人を住まわせる事は無いと
思うのが常識だろお前が中国正史の倭国伝と倭族の区別がついてないだけだろ
まあ九州王朝説(多元王朝説)との区別すらついてないレベルの様だがな思うに、地域史と民族史と国家史を混同してるんじゃねw?
>>162
それを理解してるってことは、東夷族とか言ってる韓国人がいるの馬鹿らしくなったりしないのw?日本は島国で、南北からも流入はあるが多様性あっても少なく、半島は多様性はあるが大陸ほどではない。遊牧のように移動していれば民族は同じでも人種は混ざるのだろう。
つまり、倭人が日本列島に勢力築いて半島南部に進出したってことじゃねw?
逆じゃねえんだしw>>168
古墳は、形状から文化圏が分かり、規模からその土地の重要度が分かります。
日本の古墳は、近畿地方のものが同時代では常に最大で先進的な手法で建造されており、その後、近畿を中心として西は九州から東は関東・東北地方、朝鮮半島南部へと広まっています。
また、近畿では1世紀頃の大規模な鉄器工房の遺跡も発見されているので、少なくとも、2~3世紀頃の中国の歴史書の「倭」とは近畿地方にあったと考えるのが妥当です。
あと、ついでに言っておくと、遺跡調査は日本では江戸時代前期から始まっていますが、朝鮮半島で始まったのは朝鮮戦争以後の事なので、日本と韓国では発見されている古墳に大幅な差があると思います。特に円墳は古くなり忘れ去られるとただの丘にしか見えないので遺跡だと気付かれません。>>170
>>171
나는 倭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倭의 존재는 여전히 의문이잖아?
한국에서는 한반도 남부의 일본식 무덤은 "확실히 韓人의 것과 다른 외국인의 무덤이네요." 라고 하겠지만, 결국 "임나일본부는 어딨어??" 라고 말하겠지? 재일한국인을 비유한 것도 그러한 뜻이다.
결국에는 고대 한반도에 일본의 통치기관(?)이 있었다는 증거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미국 땅에 일본인들끼리 사는 마을이 있는데, 그렇다면 먼 미래에 우연히 미국에서 일본인 마을 그런것이 발굴되었다고 하자. 미국의 일부는 일본의 역사다라고 바보 주장하는 것이다. 이해하고 있어?>>175
任那の定義範囲に突っ込んで話す気はないが、岩波文庫の日本書紀の補注に
「任那という漢字名は、高句麗の広開土王碑(414年建立)に『任那加羅』とあるのが最も古い例で…(中略)一方朝鮮史料としては三国史記の列伝に、強首(650年頃)の言葉として『臣本任那加良人』の一句が記され…(中略)5世紀初めにおける任那の正しい呼称は『任那加羅』であったとすべきであろう。」
とある。
なお崇神紀の任那の記述に関して任那の北に海があると読んでいるのは韓国人だけ。
普通は「任那は、筑紫の国を去ること二千余里。北のかた、海を経阻てて鶏林の西南に在り。」
つまり筑紫から海を隔てて2000里の新羅の西南にある。と読む。
大体九州は新羅の真南もしくは東南寄りにあって、新羅の南西の海上に陸地などない。倭がユーラシア東側や海洋に点在していたとしても、日本列島に大きな基盤を持ち、大陸側各地で活動していたのだから多様だったのかも知れない。弥生時代は成分分析などで大きく古く修正された。推理は何とでも自由にできる。古代海洋民の行動範囲の広さは驚かされる。遊牧民も広い。当時の生活環境は遺跡からでも北方や南方の世界が混ざっているのだから多様性はあるだろう。
임나일본부에 동북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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