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半島から眺めた契丹・女真」という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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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たかはし2017/07/26(Wed) 01:18:59ID:A1NjI1MDA通報

    著者:愛新覚羅烏拉熙春
    書名:韓半島から眺めた契丹・女真
     
    著者は満州系日本人の歴史学者。アジア太平洋立命館大の教授。
    乾隆帝の末裔だ、契丹語、女真語、満洲語の研究者でもある。

    本の内容の説明
    http://www.apu.ac.jp/~yoshim/2011a.pdf
    PDFの前半は英語。後半に韓国語で記載されている。

    機械翻訳で読んだが 簡単に言うと 高句麗論争は 中国側と韓国側の
    不毛な争いになっているが、最近になって解読された 契丹、女真族の文字資料
    から満州地域と半島の関係を 純学問的に考察する内容である。

    http://kaikai.ch/board/22126/3/?res=137
    にて興味がある韓国人に出会えたが、他にも見たい人が 多数いれば
    手に入れてUPしたいと考えている。
    韓国人のUP希望者がいれば レスをお願いする。

    韓国人にとって 悪い内容も書いているかもしれないのは 了承して欲しい。

  • 488名無し2017/09/24(Sun) 05:45:21ID:g2OTI3MzI(10/14)NG通報

    >>479
    アルタイ共和国のPazyryk 古墳.紀元前3世紀は、イラン系や月氏とされ、ペルシャ絨毯やエジプト品や中国鏡などがある、交易品だね、交易活動範囲や支配地域も広く遊牧系多民族、東アジアでも活動し仏教は大月氏が運んできた可能性もあり。交易があれば出入りする異民族集団も多いだろうね。

  • 489名無し2017/09/24(Sun) 11:42:30ID:gzNTk0MDQ(19/31)NG通報

    >>488 저건 교역품이 아니라 신라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 490名無し2017/09/24(Sun) 11:53:28ID:gzNTk0MDQ(20/31)NG通報

    기존에는 신라는 양탄자를 실크로드 교역을 통해서 얻었다고 했었지만.

    재일교포 역사학자. 와세다대학 이성시 교수가. 신라의 양탄자 제조자와 브랜드, 제조일자등이 밝혀진 양탄자가 존재함을 밝혀내면서 신라 자체 생산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중국측 기록에서도 신라의 양탄자는 그 품질이 매우 우수하다고 유명합니다.

    다음 표에서 왼쪽 紫草娘 이라는 사람의 韓舍(신라의 17관등중 12관등에 해당하는 관등 입니다.)라는 관등을 가진자의 집에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서도 역시 韓舍라는 관등을 가진 사람의 집에서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는 양탄자를 수입하기를 넘어서 자체 생산하기도 했고 그 품질이 매우 우수해서 중국으로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 491名無し2017/09/24(Sun) 11:54:05ID:gzNTk0MDQ(21/31)NG通報

    브랜드명, 만든사람의 이름 등이 적혀 있는 것 입니다.

  • 492名無し2017/09/24(Sun) 12:14:52ID:E0NTkwNTY(24/41)NG通報

    へえ、新羅絨毯ね。
    山丹人が樺太経由でもたらした蝦夷錦みたいなものなのかな。

    辰韓人は秦朝移民とされるが実はこれには別の見方がある。
    そもそも秦や唐が漢民族の国家であったか、という問題がある。特に秦朝。
    これは「漢民族」の定義そのものの問題になってしまうので難しいが。

    咸陽や長安は西域の都だ。その勢力圏も沿岸部には無かった。
    突厥と二重帝国を作っていた唐にしても、東方に移民する者がどれほど"漢族"と呼ばれる存在だったかはわからない。
    あくまで現時点における解釈で漢族関係者であるだけに過ぎない。

    中華思想を支持する限りはそれは"漢族"だが、そうでない場合、それは最初からnomadsだったかも知れない。

  • 493名無し2017/09/24(Sun) 12:15:46ID:E0NTkwNTY(25/41)NG通報

    > 蝦夷錦

  • 494名無し2017/09/24(Sun) 12:45:34ID:g2OTI3MzI(11/14)NG通報

    >>489
    だから交易品だね。
    同じようなことは中国各地でもあるよ、農民に交易品を作らせ蚕を生産させたり織物を学ばせ生産性が大幅に向上。交易ネットワークで生産性が更にUPし余剰生産物。また農民達が科挙や身分制度を無視し豪族と共に勝手に交易活動を発展させたり余剰生産物で無人地域を大きな街にさせたり。

  • 495名無し2017/09/24(Sun) 12:55:03ID:c1ODE0ODA(1/1)NG通報

    >>494 교역품용 자체생산품입니다 ^^

  • 496名無し2017/09/24(Sun) 18:22:37ID:E0NTkwNTY(26/41)NG通報

    >>482
    遊牧民と定住民では動員能力が比較にならないほど違うから、参考にするのは難しい。
    遊牧民では人口の20%ほどが兵力。女子供も含めた数なのでかなりの比率だ。

    また古代の兵力数はかなり水増しされているのが常識で、日本でも近世の合戦より1000年前の合戦の方が規模が大きく記録されていることがある。実際は数倍の人口差でありえないのだが。

    特にアラブなどはバグダッドの戦いで百万人など完全な嘘が記録され、中国の文献もそれに近い机上の空論が多い。

    ほぼ全ての中世以降の戦国史について正確に記録されている日本では、武士の軍役義務は一万石あたり250人と定義されている。
    石高は一人前の年間消費量から換算されるため、ほぼ総人口を概算出来る仕組みになっている。

    戦国期の全石高は1600万石。つまり40万人の動員力があり、小田原征伐で秀吉は日本の半分の兵力を使ったことになる。
    そして当時人口は千四百万人ほど。つまり3%くらい。

  • 497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07:18ID:gxMTk0MTY(137/147)NG通報

    >>496
    유목제국들의 경우 아무리 많아도 10만이상의 기병을 동원 할 수 있는 국가는 상당히 드뭄.

    여기서 중요한점은 지역별로 얼마정도의 유목민이 거주가능했냐는것인데(유목민족 병력은 유목민족 숫자에 비례함)

    몽골지역 외에도 많은 유목민이 존재했던 지역의 폰틱-카스피 , 카자흐의 스텝 지역이라든가 두 지역모두 몽골-만주 스텝의 면적과 비슷

    폰틱-카스티해 스텝지역 전체와 카자흐 지역의 전체는 각각 100만명이상의 유목민들을 부양가능(추가적으로 헝가리스텝,드란스옥시아나,준가르등의 지역에도 상당 수 유목민거주)

    이렇게 유목국가의 영역과 그 영역이 부양 가능했던 유목민의 숫자를 보면 각 유목국가가 최대로 동원 할 수 있었던 기병의 숫자가 어느수준이였는지 예상가능.

    아바르카간국,마자르족 기병2~3만명내외
    실제로 마자르족 레이드 기록을 보면 최대 2만명 이상의 병력 동원가능

    훈제국 기병 3만명이상
    헝가리 초원만 놓고보면 2만명 남짓이겠지만 여기에 폰틱-카스피 스텝출신의 유목민족 일부로 거느리고있음
    참고로 아틸라 시절 역시 게르만족의 보명들도 많았으므로 2~3만명의 기병 전력 외에도 따로 동원가능한 병력 역시 수만명에 비례

    하자르 왕국 기병 10만이상
    이런 강력한 군사력이 이슬람 왕조들의 팽창을 수세기 동안 막은 원동력
    크림칸국,노가이호르드,카잔칸국,아스트르한칸국 역시 이와 동일.

  • 498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08:08ID:gxMTk0MTY(138/147)NG通報

    몽골제국 기병 10만명이상
    이것은 몽골초원만 장악했을 당시의 수치 나중에 중앙아시아/남러시아를 정복하면서
    그때부터 병력 숫자가 훨씬 많아지기 시작. 이는 지역 출신의 유목민족/농경민족들을 동원할수 있었기 때문
    실제로 호라즘정복/수부타이 유럽원정등에서 몽골군은 순수 몽골인 이외에도 투르크계 유목민족들을 대거 보조병으로 기용
    이때문에 중국의 남송 정벌전에도 참여하면서도 유럽/중동까지 공격하는 놀라운 수준의 동원력을 보임.

    이런 부분이 유목민족 군대의 실체.
    실제로 유목국가들이 10만 이상의 병력을 짜내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으며
    설사 1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더라도 국운을 건 전쟁이거나 중국같은 큰 체급의 "농경국가"를 상대로 하는 대규모전쟁 등
    아니면 아예 민족 자체가 대규모로 이동할때만 투입.

    실제로 유럽을 수백년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아바르,마자르의 운용능력을 보면 많아봐야 기병3~4만.

    추가적으로 프리드리히1세 같은 경우는 황폐해진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의 인구를 복구하기위해 다양한 정책을 사용함

    실제 프로이센의 인구는 400만이상 상비군이 18만명이였음.

    게다가 고대 로마군이 포에니전쟁 당시에 치룬 최대회전에서 동원된 병력이 6만명.

    고구려가 중국과의 전쟁에서 치룬 최대회전에서 동원된 병력이 15만명.

    고구려가 미치지 않는 이상 전투한곳에 15만명을 투입하기란 산술적으로 불가능.

  • 499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13:47ID:gxMTk0MTY(139/147)NG通報

    >>496
    그리고 중국측의 사료를 보면 알겠지만 고대 중국의 군사는 너무 부풀리기가 많음.

    실제로 중국의 군사를 파악할때 상당부분 커드해서 이해할려고 노력함

    하지만 중국이 국운을 걸고 동원한 598년 수나라 침공부대 113만명 동원부대는 그의 갑절
    도합 300만명 이상이 고구려 영토인 "요동"일대로 투입하면서 전쟁개전.

    실제로 수나라 대군의 113만명은 여러 학계에서 심층적으로 분석이 되었고
    수나라가 동원했던 침공군113만 동원부대 200만 이상 도합 300만의 규모를 부정하는 학자는 거의없음.

    수서 권3 고구려를 침략한 수나라 군대의 총병력은 113만 3800명 이를 200만명이라고 과장해서 불렀으며

    그 밖에 동원부대는 2배가 넘었음.

    수서에는 수나라 침략군이 좌12군 우 12군 총24군이라고 기록하지만 자세하게 편성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음.

    하지만 수서 권8 지 제3 예의 3에는 각 군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있음.

    간단하게 설명하겠음.

  • 500名無し2017/09/24(Sun) 19:16:27ID:E0NTkwNTY(27/41)NG通報

    それ以前に遊牧民と定住民では圧倒的な戦力差があるからなんだよ。
    少しでも対等に戦ったと思うのは定住民側の幻想だ。
    実際に近世以前で同じ兵力で定住民側が勝ったことなどただのひとつもない。
    そして高句麗は遊牧系。人口に価値を感じるなんて、まるで漢族の思考のようだ。^^

  • 501名無し2017/09/24(Sun) 19:20:46ID:gzNTk0MDQ(22/31)NG通報

    >>500 고구려가 유목계라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고구려인들이 개고기를 먹었는데. 유목민들이 개고기를 먹나요?

    몽골, 만주족. 그 어느 유목국가도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 502名無し2017/09/24(Sun) 19:21:51ID:gzNTk0MDQ(23/31)NG通報

    >>499 이 쉒끼뜰 쒸뱔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갸 죠셴인 이랴니꺄 고권 챠마 뱐뱍 묫햐고 씨별 이약뮬고 류묙계 이 즤랄뼝을 하교 쟈뺘졌네 싸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믜츼쉑이딜인갸??ㅋㅋㅋㅋㅋㅋ

  • 503名無し2017/09/24(Sun) 19:24:09ID:E0NTkwNTY(28/41)NG通報

    >>499
    百万の軍の兵糧はどうしたのだろうか。
    数千キロを行軍するのに数ヶ月間、一ヶ月10kgとしても数万トンの兵糧が必要だ。
    それは統率された兵士では有り得ない。

  • 504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25:08ID:gxMTk0MTY(140/147)NG通報

    지휘부-각 군에는 대장,아장

    기병- 각 군에는 기병 기병 40개 대, 각대는 100명, 10대로 1개 단을 편성
    단에는 각 편장,단은 총 4개로 구성

    보병- 각 군에는 보졸 , 단에는 편장 , 단은 총 4개 (보졸제1단~4단)

    압록강을 건너 깊숙하게 진격해 고구려의 대장군 을지문덕과 대결했던 우문술이 인솔하던 병력은

    9군 30만 5000명, 우문술의 직책은 부여도군장 공교롭게도 부여도군은 좌제 9군.

    1개군인 좌제9군 부여도군만으로도 무려 30만명이었다면 24개군+천자6군해서 수나라 병력이 총900만 이상이 되어버림.

    더구나 당시 압록강을 건넜던 수군의 이른바 별동대에는 우문술의 좌제9군 부여도군뿐만 아니라 우중문의 좌제12군 낙랑도군도 포함.

    결국 우문술이 인솔했다는 9군 30만 5000명은 9개 군을 의미

    여기서 8개 군이 30만 5000명이 였다면 1개군의 평균 병력은 3만 3800명

    출전한 수나라의 병력은 30개군이므로 환산된 총 병력은 3만3800*30= 101만 4000명

    이 숫자는 기록에 부합되는 113만명에 근접하는 수치 수나라의 군대는 분명히 100만명 이상이였음(중국,수양제라서 동원가능)

    추가적으로 수서 권8 지 제3 예의 3에는 치중-융거-산병에 대한 기록까지 별도로 존재. 이거까지 합하면 추가병력까지 생기므로 기록과 부합.

  • 505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26:01ID:gxMTk0MTY(141/147)NG通報

    >>50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열심히 설명하고 학문을 제시해도 의미가 없구만

    한국인들아 후퇴해라

    여기는 수준이 병신이다

  • 506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26:35ID:gxMTk0MTY(142/147)NG通報

    >>50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라 댭댭하지?? 진쉼 개병쉰 민쬭들 역쉬 쬭국 클랴슈

  • 507名無し2017/09/24(Sun) 19:31:42ID:E0NTkwNTY(29/41)NG通報

    >>501
    犬肉は薩摩人でも食べるよ。
    遊牧民≒nomadic people と言う意味で言っただけで、実際は半農半猟のツングースだ。
    ただ戦闘の実体でいえば、定住民より遊牧民に近い。

  • 508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32:31ID:gxMTk0MTY(143/147)NG通報

    >>503

    간단하게 고구려 중국간의 전쟁에서 일어난 여러 기록들을 토대로 읽어보는걸 추천

    그 수 많은 군수물자를 중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ㅋㅋ

    추가적 유명한 노래 모름?

    무향요동낭사가(無向遼東浪死歌) = 요동땅에 가봤자 헛된죽음만이 있을뿐.

    왜 가나, 왜 가나

    요동 땅을 왜 가나

    추성 깊은 밤

    튕구는 호곡소리는 임유관의 유령들

    죽어서 돌아오면

    황천이 이곳이라네.

  • 509名無し2017/09/24(Sun) 19:32:51ID:E0NTkwNTY(30/41)NG通報

    >>505
    あなたは中華が大好きなだけだ。
    高度な漢族^^

  • 510名無し2017/09/24(Sun) 19:39:14ID:gzNTk0MDQ(24/31)NG通報

    >>507 유목민은 반농반목을 하는 사람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만주족, 몽골인들 모두 개를 신성시 여기면서 개고기를 먹는것을 절대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티벳사람들 역시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薩摩人가 어디의 부족인가요? 중국에 薩摩人라는 유목민이 개고기를 먹었다면 기록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 511名無し2017/09/24(Sun) 19:41:40ID:gzNTk0MDQ(25/31)NG通報

    자꾸 고구려를 유목민 국가로 만드려고 하는것은 한국의 유사 역사학자와 다를것이 없습니다. 만주의 들판이 넓다고 해도 유목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고구려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근간이 결국은 정착 국가에서 내오는 생산량과 인구였던 것 입니다.

    고구려의 기병이 강했던 것은 만주에서 나오는 우수한 말들과 고구려의 뛰어난 전술과 무기체계에서 나온 것 입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고구려만 기병이 강했던 것이 아닙니다.

    三韓시대는 기병이 전장의 꽃이 되던 시대.

    당장 5세기의 신라 馬甲만 봐도 결코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

  • 512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41:45ID:gxMTk0MTY(144/147)NG通報

    >>510

    그냥 무시하세요

    무시하는게 마음 편합니다.

    뭐 굳이 상대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그럼 고생~

  • 513名無し2017/09/24(Sun) 19:43:09ID:gzNTk0MDQ(26/31)NG通報

    백제의 7세기 馬甲.

    1400년이 넘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검은색의 주칠이 벗겨지지 않은 뛰어난 기술이 엿보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뛰어난 기병을 운용했습니다.

    기병이 강하다 = 유목민은 절대로 성립할 수 없는 등식 입니다.

    당나라의 최강의 기병대도 역시 정주국가 당나라가 운용하던 기병대 입니다.

  • 514名無し2017/09/24(Sun) 19:46:03ID:E0NTkwNTY(31/41)NG通報

    >>510
    犬肉は世界のどこでも大体食べません。
    食べる方が珍しいだけ。^^

  • 515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47:09ID:gxMTk0MTY(145/147)NG通報

    >>511

    공감한다.

    무슨 고구려가 유목민이야 ㅡㅡ..;;;

    병력동원양상에 대해서 설명해보라니깐 고구려가 유목민족이라는 소리만 지껄이고 앉아있네 ㅋㅋ

    고구려가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착국가에서 나오는 생산량과 인구

    그들은 우수한말들과 武에 능한 강력한 매개체를 토대로 강력한 기병을 보유하며
    말갈,거란과 같은 유목민족들을 차례대로 제압.

    고대시대 고구려의 전쟁동원능력을 보면 정말 놀라울 수준. 고대시대에 이런 능력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정도.

    훗날 조선후기실학자들도 이야기했지만
    한국인이 요동일대만 점령하면 거기서 나오는 武力은 상당히 강하다고생각한다.

    당장 고려시대에 40년간 전쟁했던 거란족
    윤관이 정벌전에 참여했던 여진정벌전 역시

    한국인들의 우수한 체격과 강력한 기마전술을 토대로 대등하게 상대할수 있었음.
    武를 숭배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상황이 안좋아짐.

  • 516名無し2017/09/24(Sun) 19:48:56ID:gzNTk0MDQ(27/31)NG通報

    >>515 내말이.. 사실 이런 대화는 오히려 중국인들과 말하면 더 학술적인 토의가 된다. 일본인들의 관념에서

    고구려 =유목민족의 국가.

    백제,신라 = 농경국가.

    라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 517名無し2017/09/24(Sun) 19:50:22ID:E0NTkwNTY(32/41)NG通報

    >>515
    遊牧民蔑視は中華思想です。
    また半農半猟の女真やツングースを全く理解していない。
    ただの差別主義者です。

  • 518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51:54ID:gxMTk0MTY(146/147)NG通報

    >>516

    맞습니다.

    나도 여기서 그 말했음 ㅋㅋ

    학술적 토의에 있어서는 중국인들이 훨씬 괜찮음.

    그리고 여기있는 넷우익들의 지식수준은 대략 70년대? 이 정도 수준.

    우리학교에 중국인 녀석들이 꽤 있어서 많은 이야기 나누지만 확실히 예내들은 역사에 대해서 상당히 능통.

    고구려 =유목민족의 국가.

    백제,신라 = 농경국가.

    정말 전형적인 시대에 뒤떨어지는 고정관념

    그냥 고구려가 만주일대에 있었고 기병전술에 능통하니 유목국가라 생각하는듯.

    상식이 부족한듯 ㅋㅋㅋ

  • 519名無し2017/09/24(Sun) 19:52:19ID:E0NTkwNTY(33/41)NG通報

    >>516
    当時稲作は寒冷地で不可能です。

  • 520名無し2017/09/24(Sun) 19:53:43ID:gzNTk0MDQ(28/31)NG通報

    >>518 중국인들의 역사지식은 솔직히 두려울 정도지요.. 압도적인 정사 24史에서 나오는 풍부한자료들.

    거기에 또 더해지는 끝없는 자료들.. 압도적인 유물들.. 솔직히 앞으로 중국이 강해지면 어떻게 우리는 싸워나가야 하나 막막합니다..

  • 521名無し2017/09/24(Sun) 19:57:20ID:gzNTk0MDQ(29/31)NG通報

    >>517 유목민족을 비하한것 같으면 죄송합니다. 비하한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몽골, 만주족 , 티벳 그 어디에서도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다면 조선문화권(三韓, 말갈)에는 존재 합니다. 물론 중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동감합니다. 반농반목의 사냥풍습이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그런 반농반목의 성격보다는 어디를 봐도 정주국가 입니다. 구체적인 유물이나 증거물로 말을 하셔야 하는데.. 고구려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유목민으로 말씀하셨다가.

    이제는 또 다시 반농반목의 민족이라고 말을 바꾸셨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으며. 중국인들의 관념에도 고구려인들은 개고기를 먹는 유목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말은 그것 입니다. 그리고 유목민족은 몽골, 흉노, 스키타이같은 유목부족들을 말 합니다.

    이 사람들은 수도도없으며 도시를 건설하지 않고 이동하며 생활합니다. 때문에 유목민족입니다.

  • 522만주의 역사2017/09/24(Sun) 19:57:50ID:gxMTk0MTY(147/147)NG通報

    >>520

    무엇보다 중국인이 15억명이라는게 제일 무섭습니다ㅋㅋ

    엄청난 인구에서 나오는 연구자들이 너무 많음;;

    고대시대부터 중국의 물량전술은 아주.. 엄청났으니깐요.

    같은 한국인님도 아시겠지만 한국의 미래는 통일밖에 없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되세요.

    이만 줄이고 다른일 하러 가겠습니다 ^^.

    당부하지만 상대하지 않는게 편합니다.

  • 523名無し2017/09/24(Sun) 20:00:30ID:gzNTk0MDQ(30/31)NG通報

    >>519 그렇다면 역시 三韓은 반농반목의 퉁구스 국가들이었군요?

    사실 신라인들도 본디 이름은 오늘날의 중국식 이름이 되기전의 이름들은. 伊叱夫禮智干岐, 久禮爾師知于奈師磨里 같은 이름들이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하면 朴異斯夫,金居柒夫 이름이었습니다.

  • 524名無し2017/09/24(Sun) 20:00:54ID:gzNTk0MDQ(31/31)NG通報

    >>522 저도 이만 ㅜㅜ 화이팅 입니다.

  • 525名無し2017/09/24(Sun) 20:02:41ID:E0NTkwNTY(34/41)NG通報

    >>521
    nomad は”遊牧民”としか訳せませんが、モンゴル人の風習のみを指してい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ツングース系が半農半猟あるいは半農半牧なのは揺るぎない事実であり、それを変えるのは女真靺鞨粛慎、あるいは中央アジアの民の全てに対する冒瀆であり民族否定です。
    中華思想です。

  • 526名無し2017/09/24(Sun) 20:03:33ID:E0NTkwNTY(35/41)NG通報

    >>518
    Why is Chinese here?
    Mongolian are superior to Chinese.
    You must go back to China.
    Get out here.

  • 527名無し2017/09/24(Sun) 20:19:54ID:E0NTkwNTY(36/41)NG通報

    this is xorea^^

  • 528名無し2017/09/24(Sun) 20:45:54ID:g2OTI3MzI(12/14)NG通報

    >>477
    これは良い。

    kitaro+CCTV.NHKの影響大で中国や日本も惹かれたみたいだね。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P1Ezllf3Kcw
    一帯一路みたいだけど初期の雰囲気が一番良い。この10年くらいで街も生活も急速に変化したみたい。ユーラシアや海の交易路は各地を行ってみたけど韓国人に会うことはほぼ無かった。かなり前から韓国は海外旅行は少なくないのに不思議。

  • 529名無し2017/09/24(Sun) 21:15:45ID:E0NTkwNTY(37/41)NG通報

    シルクロード調査は故加藤九祚氏のような在日の大家による功績も多いのにな。

  • 530名無し2017/09/24(Sun) 21:16:54ID:E0NTkwNTY(38/41)NG通報
  • 531名無し2017/09/25(Mon) 11:27:12ID:YxMjU3MDA(39/41)NG通報

    >>523
    清朝以前の時代、ツングース(女真)の中でも、漢化の進んだ者を「熟女真」、そうでない者を「生女真」と呼んだ。
    もちろん差別語であるのだが、漢字を見れば"女真"そのものが差別語であることにすぐ気付く。
    だから彼らはこの名を嫌い自らを"マンジュ"と呼んだ。

    清朝皇帝の愛新覚羅氏は、チンギス統の長を認められ大ハーンの称号を得ていた。

    あなたは「熟ツングース」か「生ツングース」か、どちらでしょうね^^

  • 532名無し2017/09/25(Mon) 19:24:58ID:U4NTYwMjU(13/14)NG通報

    >>529
    ロシアやウズベキスタンで評価が高くても中国ではあまり評価されていないようだね。
    ウズベキスタンのアムダリヤ川は、冷戦境界線、英露帝国の境界線、サーサーン朝とソグドの境界、94歳まで仕事をして現地調査で死んだのだから満足なのだろう。全州李氏の生まれで、山口県で育ちで大学や軍に入り満州へ。シベリア抑留生活。朝鮮に戻らず日本に帰化。朝鮮半島人らしい歴史ではある。

  • 533名無し2017/09/29(Fri) 00:21:06ID:Q3OTIyNzY(40/41)NG通報

    ウズベキスタンといえばブハラ。
    イスラムの聖地ブハラは元々は仏教都市だったらしい。
    インドと中国は隣国とはいえ実際はトランスオクスシアナまで迂回しないと移動できない。ヒマラヤを回り込んで北西からインド半島に入る。
    だから多くの仏教も三蔵法師もガンダーラも全て通る道。
    実は中東に行くのと同じくらい遠いかも知れない道のりを通って、よく日本までたどり着いたものだ。
    その途中地点のブハラにもやはり仏教があったのだろうか。

  • 534たかはし2017/09/29(Fri) 01:23:17ID:IwOTM3NTA(44/44)NG通報

    >>532
    加藤九祚氏を勉強しました。
    韓国の無条件愛国者とまるで違って
    文化を愛する碩学ですね。
    本当にご苦労をされて、、

    中国が偉いだの、韓国が偉いだの、どうでもいいわ。
    高句麗論争のダメな所は 自分の国が偉いしか主張しないところ。

    過去の偉人達が残した事は、そんな事では無かった。
    友人や奥さんや親への気持ちだった。

  • 535名無し2017/09/30(Sat) 15:51:05ID:E2NzI0OTA(14/14)NG通報

    >>534
    面白い学者ですね。

    韓国文化財庁国立文化財研究所とカザフスタン、合同調査。元前5~3世紀。交易路や半島文化の関連性について調査。墓の入口と部屋への構造が、半島の墓と共通する可能性、高句麗の舞踊塚(壁画式)や、石積式の墓。渤海、モンゴル、百済の宋山里古墳群(武寧王陵)、新羅の墓、紀元前5世紀頃からのウクライナ、カザフ、その他アルタイ地域との関連性を調査しているようだ。Pazyryk cultureとの関連性、中央ユーラシアの イラン系遊牧騎馬民族などの影響も見る調査。起源を主張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ね。過去の住民のことで現在の住民ともめることもあり。
    http://v.media.daum.net/v/20170928102042169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um-gnjX20YU

  • 536リットン調査団22017/09/30(Sat) 18:24:21ID:IzNDk0MjA(1/1)NG通報

    朝鮮半島の統一はあり得ない。

    『女真族VSエベンキ族』の争いだって、倭人は関わってはいけない。

    韓国の大統領は、女真族。だから、元の民族と融和したいと思っている。しかし、韓国はエベンキ族の国家だから、北朝鮮に亡命しないといけない。

    中国も知っているハズだ。

    仮に統一したら、女真族がエベンキ族を差別するに違いない。女真族(満州族)が連れてきた奴隷がエベンキ族なんだから、仕方ないでしょう。金正恩もこの事実を知っているハズだ。だから、何も知らない文在寅がいくらラブコールを出しても奴隷が何を言っているんだと思っているから。

    幸い38度線で遮断する事ができるので、それでお互い平和になるかと思います。

  • 537名無し2017/09/30(Sat) 21:39:04ID:k0NTg5MjA(41/41)NG通報

    北方を研究する人はみんな純粋に民族のルーツを研究している。
    加藤氏が在日というのは死後知ったことだが訃報には驚いた。
    間野英二と加藤九祚は中央アジアの教科書だ。特に彼のライフワーク的な作品集が興味深い。

    加藤氏は井上靖や司馬遼太郎と親交があったそうだが、彼らの視点は総じて北方にある。特に日本史小説の金字塔である司馬氏がモンゴル語学科というのが特徴的だ。日本史小説内で触れることはまずないが、彼も戦前満蒙の大地に憧れを抱いたひとりであり、彼の描く日本人の気質は中華ではなく騎馬民に向いていたことが全てを見るとわかる。

    加藤氏はロシアの東洋学者ネフスキーの著書を書いたことで知られるが、ネフスキーは東北地方の文化において柳田邦男と、アイヌ言語学の分野において金田一京助と親交があり、彼らの持つ世界観が示すものが今日の日本で必ず価値を持つものと思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