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遼太郎によれ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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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典塔2017/06/27(Tue) 21:08:02ID:k2NDY1NzU(1/21)NG報告

      『朝鮮は、統一新羅が中国を本場とする儒教を七世紀から受け入れ、十四世紀末に李氏朝鮮が徹底的に受容して、中国以上の儒教国家となり、それも宋学という強烈な観念論で国家と社会を成立させた。このため朝鮮には二十世紀初頭になるまで貨幣がなかった。貨幣がない以上、商品経済はなく、かろうじて農村に古代的な物々交換があったにすぎない。
      日本は異なっていた。
      室町時代から旺盛な商品経済の世になり、江戸期になって充実し、ついに封建制の底に無数の亀裂を生じさせ、制度そのものが維持困難なほどの段階に立ちいたる。

      商品経済の社会は、人間をずいぶん変えてしまうものらしい。
      何よりもものの認識が変わる。物を単に物と見ず、質を見、数量的にとらえ、またその変化に関心をもち、物を中心に置いて前後左右の人間関係を考えてゆく。
      さらに、かつての社会では人間がカズノコのようにかたまって個が存在しにくかったのに対し、個が成立するようになる。
      江戸中期以後の知的奇人の多くが非士族階級から出た。たとえば南部八戸にあたって共産社会をとなえた安藤昌益は町医であり、大坂にあって人文科学的思考を確立した富永仲基が醤油の醸造業者であり、また嘉兵衛の蝦夷地ゆきより半世紀遅れてこの地に入り、風俗と地理を精査した松浦武四郎は伊勢の農民出身であった。』
      と書いている。
      まとめると、当時の朝鮮人はカズノコ

    • 82名無し2017/06/28(Wed) 00:15:46ID:E1NTA1Njg(36/42)NG報告

      >>79

      자료감사합니다.
      그러나 없다와 부족하다는 다릅니다.

      위의 고졸니트에게 잘 설명부탁드립니다.

    • 83朝鮮虫2017/06/28(Wed) 00:15:47ID:E2NzQ2MTI(3/4)NG報告

      >>81

      良くできてた割には、奴隷の歴史長いよなw

    • 84名無し2017/06/28(Wed) 00:16:58ID:E1NTA1Njg(37/42)NG報告

      >>80
      ??
      조선은 청, 그리고 일본과 교역할때 은을 썼지만??
      일본이 썼던 연은분리법이 조선의 노비가 만든것이라는것은 알고있습니까?
      아마 처음 안 사실이겠죠?

    • 85名無し2017/06/28(Wed) 00:17:41ID:E1NTA1Njg(38/42)NG報告

      >>83
      민족비하를 해서 얻는게 무엇입니까?
      일말의 자존감? 아마 그런식으로 이미 망해버린 生을 연명하는것입니까?

    • 86名無し2017/06/28(Wed) 00:21:08ID:k4OTczMjA(1/4)NG報告

      >>85
      貨幣はあったが流通するほどなかった、又は
      貨幣があったが機能していなかったといいたいのかな?

    • 87名無し2017/06/28(Wed) 00:22:41ID:E1NTA1Njg(39/42)NG報告

      >>86
      그러니까 물어볼게요
      조선의 거상들은 거래할때 무엇을 썼을까요?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부상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사진에서보이는 동전을 일일히 들고다녔나요?
      19c의 일시적인 현상이 일본인에게는 조선 전체라고 보이는건가요?

    • 88典塔2017/06/28(Wed) 00:25:04ID:Y5OTMzMDA(14/21)NG報告

      >>81
      間違ってはいないね

      wiki イザベラハート
      身分制度に関して、「両班は究極に無能であり、その従者たちは金を払わず住民を脅して鶏や卵を奪っている[31]」としている。「両班は公認の吸血鬼であり、ソウルには「盗む側」と「盗まれる側」の二つの身分しかない[32]」と述べている。朝鮮の官僚については、「日本の発展に興味を持つ者も少数はいたものの、多くの者は搾取や不正利得ができなくなるという私利私欲のために改革に反対していた[33]」とし、「堕落しきった朝鮮の官僚制度の浄化に日本は着手したが、それは困難きわまりなかった[34]」と述べている。

      他方、「一般に表情はにこやかで、当惑が若干混じる。顔だちから察せられるのは、最良の場合、力あるいは意志力よりも明敏さである。朝鮮人はたしかに顔だちの美しい人種である[35]」とも、また「朝鮮人は清国人にも日本人にも似てはおらず、そのどちらよりもずっと見栄えがよくて、体格は日本人よりはるかにりっぱである」とも記している[36]。

    • 89朝鮮虫2017/06/28(Wed) 00:25:41ID:E2NzQ2MTI(4/4)NG報告

      >>87

      巨像?お前らがいつも見てるのは虚像だろ

    • 90名無し2017/06/28(Wed) 00:26:32ID:k4OTczMjA(2/4)NG報告

      19cの一時的な現象だったのかどうかもわからないので聞いている。
      また、なぜそのようになったのか知りたい。

    • 91名無し2017/06/28(Wed) 00:27:00ID:E1NTA1Njg(40/42)NG報告

      >>88
      뭐 조선말기가 굉장했다는 건 저도 압니다만ww
      그걸 찾느라 답변이 늦은건가요?
      그걸로 비하하려고해봤자 긍정적인 내용이 더 많습니다.
      조선체제를 벗어나 러시아땅에 사는 조선인은 뭐든지 열심히하고 생활이 좋았다고

    • 92名無し2017/06/28(Wed) 00:27:26ID:k4OTczMjA(3/4)NG報告

      >>87
      19cの一時的な現象だったのかどうかもわからないので聞いている。
      また、なぜそのようになったのか知りたい。

    • 93名無し2017/06/28(Wed) 00:27:31ID:E1NTA1Njg(41/42)NG報告

      >>90
      위 링크에 적혀있어요
      동전을 투기의 대상으로 썼기때문에 그렇다고하죠

    • 94ペンギン2017/06/28(Wed) 00:28:31ID:I1NTkyNDA(5/9)NG報告

      >>81

      日本人に比べて身体能力や容姿は優れていたとイザベラ氏は書いていたのですね?
      それは良かった。 それでは貴方も引用するイザベラ氏の『朝鮮紀行』に依れば
      当時の韓国が貨幣経済は未発達で物流もお粗末だった事が語られていますから
      >>59の朝鮮の方が文化経済とも優れていたと言う部分は誤りだと認めてくれますね?

    • 95名無し2017/06/28(Wed) 00:28:40ID:E1NTA1Njg(42/42)NG報告

      "한국 관리들은 살아있는 민중의 피를 빠는 흡혈귀다. …관아 안에는 한국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렸다. 거기엔 티롤 모자를 쓰고 푸른색이 많은 조잡한 면직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포졸들, 문필가들, 부정한 관리들, 늘 일이 손에 달린 척 가장하는 전령들이 있었고, 많은 작은 방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서예 도구를 옆에 놓고 긴 장죽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조선인)은 게을러 보인다.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들이 자기 노동으로 획득한 재산이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체제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일 어떤 사람이 '돈을 번' 것으로 알려지거나, 심지어 사치품인 놋쇠 식기를 샀다고 알려지기만 해도, 근처의 탐욕스러운 관리나 그의 앞잡이로부터 주의를 받게 되거나, 부근의 양반으로부터 대부를 갚도록 독촉당하는 식이었다.

      …여행자들은 한국인의 게으름에 많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러시아령 만주에서의 한국인들의 에너지와 근면함 그리고 그들의 검소하고 유족하고 안락한 집의 가구들을 보고 난 후에 나는 그것이 기질의 문제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 이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관리들의 수탈이 아주 견딜 수 없게 되고,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마저도 빼앗겼을 때에만 한국의 농민들은 폭력을 통한 절망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된다.

    • 96典塔2017/06/28(Wed) 00:28:54ID:Y5OTMzMDA(15/21)NG報告

      >>84
      >?
      >朝鮮は青、そして日本との貿易するときはを書いたが?
      >日本が書いた凧は分離法が朝鮮の奴婢が作ったということは知っていますか?
      >おそらく最初はないという事実でしょう?

      何が書いてあるのか分からない。
      たぶん、ハングルで専門用語は同音異義語が多すぎて誤変換するのでないか?

    • 97名無し2017/06/28(Wed) 00:29:51ID:UyOTA1MjA(1/1)NG報告

      >>94
      갑자기 쓰기 제한이 되어있어서 다른것으로 작성합니다.
      그런데 저는 위에 '경제'는 쓴 적 없는데wwwwwwww

    • 98名無し2017/06/28(Wed) 00:30:09ID:Y1Nzc0NzI(1/7)NG報告

      …근사한 기후, 풍부하지만 혹독하지는 않은 강우량, 기름진 농토, 내란과 도적질이 일어나기 힘든 훌륭한 교육.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없다. 협잡을 업으로 하는 관아의 심부름꾼과 그들의 횡포, 그들의 악행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줄어들고 소작료가 적정히 책정되고 수납된다면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이다." - 이자벨라 버드 비숍

    • 99名無し2017/06/28(Wed) 00:31:51ID:Y1Nzc0NzI(2/7)NG報告

      >>96
      연은 분리법

      은을 분리하는 방법
      조선의 정부 소속 노비가 만들었는데
      일본이 조선에게서 가져간 방법입니다.
      현대에서는 산업스파이라고하죠
      연은 분리법을 얻은 후 일본의 은광이 대규모로 활성화됩니다
      조선에서는 은이 많이 거래되지않아 필요가 없었지만

    • 100名無し2017/06/28(Wed) 00:33:04ID:Y1Nzc0NzI(3/7)NG報告

      이런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선인은 대단한 지적 능력이 있으며 예리하고 탐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단력을 갖춘 자랑할만한 민족..... 조선은 위대한 가능성의 나라" - 알렉산더 윌리엄슨(영국 선교사) ,1870.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다. 또한 신체가 잘 발달되었고 균형이 잡혔다. 태도는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었다. 똑바로 추켜올린 얼굴은 거침없고 당당했다. 걸음걸이는 힘차 보였으며 의식적으로 점잔을 빼는 것 같았다. 비굴하게 벌벌 기고 과장되게 예의를 차리는 일본인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몸놀림과 태도였다."

      "일본에서는 모든 사물의 외면이 매혹적으로 아름다워서 그 이면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비로소 일본의 잔인함과 냉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계가 ‘일본은 서구식으로 개화된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비록 일본인이 빠른 두뇌회전과 명석함을 무기로 힘을 과시하고는 있지만, 서구 문명이 도달한 지점까지 일본이 따라오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손 그렙스트(스웨덴 기자 ),『조선에서』, 1912.

    • 101典塔2017/06/28(Wed) 00:33:23ID:Y5OTMzMDA(16/21)NG報告

      >>91
      経済、文化の話から意図的に話していませんか?
      どこにも、肯定的な話はないですよ?

      >朝鮮体制を脱し、ロシアの地に住んでいる朝鮮人は何でも頑張って生活が良かった

      つまり朝鮮体制は未開でしたと言うことですね。

    • 102ペンギン2017/06/28(Wed) 00:35:51ID:I1NTkyNDA(6/9)NG報告

      >>93
      上記のリンクに記載されています
      コインを投機の対象に書いたのでいってね


      投機対象って事はつまり貨幣を美術品や希少金属の様に取り扱っていたって事でしょ?
      それは貨幣経済じゃありませんよ。

      あなたがローマ時代の硬貨を持っていたとしましょう。おそらくローマ時代当時の価値よりも現代の地金よりもそれは骨董品、歴史的価値が有るものとして評価されるでしょう。しかしそれは自動販売機で受け付けて貰えません。それは所謂”物々交換”です

    • 103名無し2017/06/28(Wed) 00:36:18ID:Y1Nzc0NzI(4/7)NG報告

      >>101
      조선 말기니까요
      미개하다고하기보단 왕권이 약화되고 세도정치시기였어요

    • 104名無し2017/06/28(Wed) 00:38:17ID:Y1Nzc0NzI(5/7)NG報告

      >>102
      스스로 재단하지마세요.
      전황이 되기전에 이미 동전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지역도 있었다니까요
      현재 북한지역의 황해도는 상평통보
      삼남지방(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는 곡창지대이기때문에 쌀
      자신의 생각에 너무 기울었습니다.

    • 105名無し2017/06/28(Wed) 00:40:09ID:k4OTczMjA(4/4)NG報告

      >>100
      西洋から見た当時の東洋観でしょうから西洋人の個人的な見解は理解できます。
      ところで、
      >ピアソングレプスト(スウェーデン記者)、「朝鮮で」、1912。

      とは、1912年ということ?

    • 106典塔2017/06/28(Wed) 00:40:16ID:Y5OTMzMDA(17/21)NG報告

      >>98
      朝鮮の体制は悪いと言うことでしょ

      >>99
      何を書いているのかさっぱり分からない

      >>100
      体格が良いと言われてうれしいのですか???
      貨幣の話はどうなりましたか?

    • 107名無し2017/06/28(Wed) 00:41:06ID:Y1Nzc0NzI(6/7)NG報告

      >>102
      그리고 경제적인 면을 이해하려면 정치적인 면도 같이 이해해야합니다.
      농법의 발전으로 인해 廣作이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평민 농민중에서도 부농층이 생겨나게 되고
      급기야 양반이 되어서 정부 관리와 결탁하게 되지요.
      세도정치 몇몇가문의 권력집중화에 따라
      몰락양반도 생겨나게 되는데 그에 따라서 수많은 양반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신분변화가 이루어지고 노비는 줄어듭니다.
      조선말기에 이르면 양반 60% 평민 35% 노비 5%라고 하지요

      경제적인 면 단편만 보고
      전황이 발생했다 -> 그러므로 고대 물물경제다 -> 조선은 하찮다

      이렇게 생각하는것은 안타깝습니다.

    • 108名無し2017/06/28(Wed) 00:42:34ID:Y1Nzc0NzI(7/7)NG報告

      >>106
      은을 쓰려면 광물에서 분리해야합니다.
      좀 더 순도 높은 은을 만드는 방법을 일본이 조선에게서 가져간것입니다.
      현대용어로 "훔쳤다"라고 합니다.
      이때 뭐 인삼도 훔치고 여러가지 많이 훔쳤습니다만
      그것은 논외로 하고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 109典塔2017/06/28(Wed) 00:43:02ID:Y5OTMzMDA(18/21)NG報告

      >>103
      それで、借金を増やして国を売ったのでしょ。
      日本は、朝鮮を買った。

    • 110ペンギン2017/06/28(Wed) 00:45:48ID:I1NTkyNDA(7/9)NG報告

      >>100
      イザベラ氏やその他の西洋人が残す文章を見るにつけ、朝鮮民族は日本人より上背が勝っていた精強な民族であったことが伺えますね。

      で、話は戻るんですが引用していただいた文章を読む限りでは、当時朝鮮には日本を上回る貨幣経済を示す文が何処にも読み取れないのですがコレは翻訳機能の異常でしょうか?

    • 111名無し2017/06/28(Wed) 00:46:30ID:M0NjM5NzI(1/3)NG報告

      >>109
      산것이 아니라 강탈이지요.
      논리에서 밀리니 다른 말을 하기시작하는군요
      조선 근대 정치사에 대해서 책 한권이라도 읽은 적 없죠?
      1905년에 외교권 빼앗았지요?
      그것에 반발한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니까
      그것을 이유로 강제퇴위 시켰죠?
      1910년에 합병할때 국민투표라도했습니까?
      이토히로부미와친일파들이 모여서 강제로 했죠?
      더 이상 답이 없는...
      일베용어로 .. 엠생 노답...

    • 112名無し2017/06/28(Wed) 00:49:56ID:M0NjM5NzI(2/3)NG報告

      >>110
      당연하죠 난 일본을 능가 어쩌구에 대해서는 언급한적이 없으니까 ㅋㅋㅋ

      처음에는
      '조선에 화폐는 없었다'
      -> '조선에 화폐는 있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제 기능을 못했다'-> '따라서 조선은 고대사회고
      일본이 합병한게 조선에게 좋았다'

      뭐 이런 뻔한논리패턴입니까?ㅋㅋ

      그러다가 갑자기 웬 하지도 않은 말로 마무리?ㅋ

      이래서 넷우익들은 저에게 안돼요. 전 역사전공하지도않았지만 당신들보다는 잘 아는 것 같네요.
      조선인에게 논리로 이기고싶으면 정확한 공부부터, 그리고 양쪽의 역사검증을 하는것이..

    • 113名無し2017/06/28(Wed) 00:49:59ID:c4NzQ4NjQ(1/3)NG報告

      >>108

      銀の精製は中国の方法が朝鮮半島から日本に入ったのは事実だが、朝鮮の方法ではなく、中国の技法だ。朝鮮は中国から特許でも譲り受けたのか。

      下らない詭弁を言うなよ。

    • 114典塔2017/06/28(Wed) 00:50:27ID:Y5OTMzMDA(19/21)NG報告

      >>107
      >そして経済的な面を理解するには、政治的な面もよう理解します。
      >農法の発展のために廣作が起こるようになります。
      >したがって平民農家の中でもブノンチュンが生じるようになって
      >、ついに両班になって、政府の管理と結託に従事。

      これも何を書いているのか分からないが?
      政治により経済が破綻したと言うことですか?
      日本の場合は、物流を増やし平民の識字率を増やし、技術や文化を発展させましたよ?
      ちなみに、江戸時代に一番売れた本は数学の本です。

    • 115名無し2017/06/28(Wed) 00:51:19ID:M0NjM5NzI(3/3)NG報告

      >>113
      또 억지...
      지겨워서 저는 갑니다.. 고집불통할아버지들은 상대해주기엔 너무 밤이 늦었음

      1503년(연산군 9년) 5월 양인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에 의해 연은 분리법이 발명되었다. 연은 분리법은 다음과 같다. 납과 은을 섞어 태워 녹인 납에 은이 섞인 함은연을 만든다. 화로에 재를 깐 다음 그 위에 함은연을 조각내어 올려둔다. 그 다음 화로 위에 뚜껑을 덮고 공기구멍을 남겨둔 다음 그 구멍으로 공기를 집어넣으면서 화로를 가열시킨다. 화로 안의 납은 녹아 재에 스며들고 재 위에 남은 은을 채취한다.
      연은분리법은 은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조선에서 널리 쓰이지 않았는데 당시 명은 조선에 다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어 가혹한 조공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은도 그 조공품 중의 하나였다. 조정으로서는 은의 생산량이 늘면 명이 더 많은 은을 요구할 것이라 걱정했다. 그리고 상품의 교환수단으로 금은과 같은 금속화폐보다 쌀이나 면목을 선호한 것도 다른 이유였다.
      조선은 이 연은 분리법을 비밀로 했지만 일본 상인들이 방법을 알아내어 일본에 전파시켰다. 연은분리법은 하카다를 거쳐 일본 각지의 광산으로 퍼져나갔다.
      연은분리법의 도입으로 은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대표적으로 유명해진 광산이 있는데 일본 혼슈 시마네현에 위치한 이와미 은광이다. 이 은광은 생산량이 막대하여 15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은의 채굴이 행해졌다. 이와미 은광은 주인인 다이묘의 막대한 군자금을 제공해주었다. 오우치, 모리, 도요토미를 거쳐 도쿠가와에 이르기까지 이와미 은광은 재정확보와 중국의 비단·도자기·생사 등을 얻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광산이었다.

    • 116ペンギン2017/06/28(Wed) 00:52:05ID:I1NTkyNDA(8/9)NG報告

      >>108

      日本側の資料によれば”1500年代中頃に日本人商人が朝鮮人技術者を招聘した”とされているのですが、日本が一方的に技術を搾取したとする書簡や口伝などは残っていますか?

    • 117名無し2017/06/28(Wed) 00:53:25ID:c4NzQ4NjQ(2/3)NG報告

      >>111

      お前は詭弁ばっかりだよ。

      国民投票制度が法律により存在したのか当時?
      詭弁ですり替えてるだけ。

      ダメだね。

    • 118典塔2017/06/28(Wed) 00:56:48ID:Y5OTMzMDA(20/21)NG報告

      >>111
      当時の国際法では全くの合法です。

    • 119名無し2017/06/28(Wed) 01:00:20ID:c4NzQ4NjQ(3/3)NG報告

      >>115

      なんの裏付けもない俗説だね。
      日本では招聘した禅僧より伝わっているとされている。
      根拠なき事で盗むとするのは起源説の国民性かね。

      因みに俺は22だ。
      入れ歯さん。

    • 120名無し2017/06/28(Wed) 01:00:38ID:MyOTc3OTY(2/2)NG報告

      >>115
      灰吹き法の事かな? 凧というのが訳されないみたい
      確かに朝鮮由来の技術ですね

      朝鮮は1637年の条約で清に納める金銀を必要としていたようですが…
      オレは司馬のように銭の流通を否定しないけど
      宗主国への金銀の上納があった為に100銭以上の高額通貨の発行は許されなかったんじゃないかと思ってる
      現金決済の時は、清の両を使い、それ以外では手形・為替を用いればいいからね
      ベトナムもそうじゃなかったかな

    • 121典塔2017/06/28(Wed) 01:03:27ID:Y5OTMzMDA(21/21)NG報告

      >>115
      小銭なら、日本は西暦708年に既に作っていますよ?
      銅銭も銀銭もです。
      800年遅れの朝鮮の技術など必要ありません

      wiki 和同開珎
      和同開珎(わどうかいちん、わどうかいほう)は、708年8月29日(和銅元年8月10日)[1]に、日本で鋳造・発行された銭貨である。日本で最初の流通貨幣と言われる。皇朝十二銭の1番目にあたる。
      708年5月には銀銭が発行され、7月には銅銭の鋳造が始まり、8月に発行されたことが続日本紀に記されている。銀銭が先行して発行した背景には当時私鋳の無文銀銭が都で用いられていたのに対応して私鋳の無文銀銭を公鋳の和同開珎の銀銭に切り替える措置が必要であったからと言われている。

    • 122ペンギン2017/06/28(Wed) 01:08:40ID:I1NTkyNDA(9/9)NG報告

      >>112
      確かに『凌駕した』とは書いていませんね。失礼しました。
      日本人作家の目から見て『存在していない』と表現してしまう程の僅かな物だったと言う事を表現したかったのです。


      >「朝鮮の貨幣はあったが、インフレに機能しなかった」 - >「したがって朝鮮は古代史回顧日本が併合たのが朝鮮に良かった」
      さて、この明らかな論理パターンですか?(笑)

      インフレに陥った可能性は示唆しましたが自分はこのようなことを書いた記憶がないのですが他の方と勘違いされていますか? それとも機械翻訳がミスをしてコチラの意図しない表現に変わってしまったのでしょうか? そうであれば私がコチラの掲示板の機能を使いこなせていないせいでしょう。大変失礼致しました

    • 123名無し2017/06/28(Wed) 01:23:01ID:gzNTgwMDQ(2/3)NG報告

      世界の地域史は面白過ぎる!=これが韓国北朝鮮には必要では。子供でも楽しめる。
      冷戦が終わってから随分と変わった。国家じゃなくて民族や語族や団体でも良いけど。
      最近見たのではベルギーインドの貴金属の庶民まで続く動きは面白かった。

    • 124倉庫◆15cZn7gVj62017/06/28(Wed) 01:41:58ID:M5NTUzMzY(1/1)NG報告

      なかなか面白かった。

    • 125名無し2017/06/28(Wed) 01:46:30ID:U2MjkxNTY(1/1)NG報告

      貨幣が広く流通するにはそれを保証する政府を民が信じなければならない。
      李氏朝鮮時代の王朝が政府と言えるようなものであったのかというとここの
      多くの方が分かっているように全く機能していなかった。
      そんな中で貨幣を貯めても両班に略奪されるだけなら物々交換しかないと
      考えるのは当然の事。
      政府だけでなく人々の互いの信用が成立する社会の日本とそれがない朝鮮と
      いうのは歴史的にも変わっていない。

    • 126熱湯浴2017/06/28(Wed) 02:05:27ID:AxMDI2MzY(1/1)NG報告

      >>1>>2
      面白い主題だけどスレッド名を「李氏朝鮮時代の前時代的経済」とかにした方が参加者が増えたかも。
      しかし未発達な貨幣経済に就いての主張に体格の良さを言ったり、議論になってないね。
      12番氏が引用してるように銅貨用の銅を横領して代わりに鉛を混ぜたりしていては信用されないよね。
      それに今でも格差が激しいが、李氏朝鮮は封建制にも達しない中央集権社会だったから地方に両替商(銀行)なんか無かっただろう。
      日韓併合までの商品経済が未熟だったことはEckert教授の”Offspring of Empire"にも書かれている。
      朝鮮人は日本が米を収奪して行ったから飢え死にしたと言うが、朝鮮内で売るより日本へ輸出する方が高く売れた(朝鮮内では市場が無かった)から輸出して大儲けしたのが後のサムスンだ、と。
      又、日本が勧めた近代化政策への抵抗は辮髪廃止への反乱等、M.J.Rhee教授の”The Doomed Empire"と言う本に書かれている。
      この人も此処の朝鮮人のように韓国で反日教育を受けて米国へ留学し、卒論に「日帝による女性抑圧」を書こうとしたら指導教授に嘘を書くなと言われ、頭が真っ白(火病)になり、自分で必死に調べ、あれは洗脳教育だったと判り、本にまとめたそうだ。
      序文に「韓日融和のために」と書いて有るのだが、朝鮮語で書くと自分と親戚が危険になるから、と米国でしか出版されてない。
      日本がオルガンを寄贈したら「中に人が居る。」と言い張ってオルガンを叩き壊したとか、日本が水道を通したら蛇口を付ければ水が出るものと信じ込んで壁に蛇口を付ける奴が出て来たとか、未開人の逸話が紹介されている。
      朝鮮人諸君よ、日本人より英語が上手いんだろぅ?取り寄せて読んで見給え。目から鱗が落ちるぞ。

    • 127名無し2017/06/28(Wed) 02:17:46ID:A4MDg1ODQ(1/1)NG報告

      韓 「貨幣はあったニダ」
      日 「貨幣経済は出来ていなかったでしょ」
      韓 「貨幣はあったニダ」
      日 「だから、貨幣経済は出来ていなかったでしょ」
      韓 「貨幣はあったニダ」
      日 「良く読め。貨幣経済は出来ていなかったよね」
      韓 「貨幣はあったニダ」
      日 「・・・・・」
      韓 「勝ったニダ」

    • 128名無し2017/06/28(Wed) 15:17:36ID:gzNTgwMDQ(3/3)NG報告

      江戸時代の座頭金という身体障害者による高利の金貸が幕府側へ負担となり廃止されたが、
      各国各地でも似たように特殊技術集団やマイノリティー集団やマフィアだからこそ可能な技術経済発展があるわけで、
      古代の貨幣価値の判別能力で支配階級に入り情報網や流通や人材派遣を大きく広げていった人がいた、各種華僑もアジアで活躍、
      卑しい労働をする人達の歴史は各国で廃止されたり復活したり変化が面白いが、朝鮮では卑しい人が卑しい身分のままなのが面白く無い。

    • 129名無し2021/08/28(Sat) 18:26:33ID:U4NzAxMzI(1/1)NG報告

      >>1これは勉強になる。

    • 130名無し2021/08/28(Sat) 18:48:18ID:U1OTkwNzI(1/1)NG報告

      >>129
      司馬文学を学びたくなります!

    • 131名無し2021/08/28(Sat) 20:01:55ID:Q5MjMzNjA(1/1)NG報告

      >>126
      日本語に翻訳されんか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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