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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대학살 https://namu.wiki/w/%EB%A7%88%EB%8B%90%EB%9D%BC%20%EB%8C%80%ED%95%99%EC%82%B4#s-3
그것은 시가전 과정에서 발생된 포격, 폭격, 유탄에 맞아 사망한 희생자보다 일본 육해군의 마구잡이식 방화와 냉병기에 찔려 죽은 희생자가 더 많았던 것. 당시 마닐라 시내에 있던 약 70만 명의 시민들 중 대략 10만명이 이렇게 희생됐으며 이는 필리핀에서 벌어진 전투들 중에서도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대규모였다. 한마디로 일본군은 미군의 화력에 쫓기는 와중에도 마닐라 시민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무자비하고 잔인한 대학살로 인해 마닐라에 있는 건물의 30%가 파괴되었고 민간인 약 125,000명이 학살당했다. 위의 사진들은 전후 남아 있는 기록 중 일부에 불과한 사진이다.
사건의 가장 큰 책임자인 이와부치 제독은 마닐라 함락 직전인 1945년 2월 26일 마닐라의 인트라무로스(Intramuros)에 위치한 자신의 사령부 건물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했으나 시신 훼손이 심각해 이와부치 제독의 시신은 식별이 극히 힘들었다고 한다. 사후 중장으로 1계급 특진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학살에 가담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민 지원을 한 부대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삼대오물로 유명한 도미나가 교지 장군이 이끌던 육군 제4항공군이었다.[10] 이들은 자신의 주둔지 인근에 일본 육해군 부대의 민간인 학살 시도에 대해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아군이라고 해도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저지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전쟁 중 끔찍한 일 많이해..이 사실 잊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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