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郎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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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9/04/13(Sat) 09:13:33ID:IwNDEwMjY(1/1)NG報告

      スレがないので立ててみる。何の花なんだ?解語の花とは妓生のことだと、韓国人が誇らしげに言ってたが。英語ではflower boysらしいが、
      どうしてもヒッピー世代の反戦のflower childrenを連想するな。桜ならその限りではないが、それは日本のものだぞ

    • 2無名2019/04/13(Sat) 11:37:31ID:AyMDc1MTk(1/2)NG報告

      ファランですかね
      韓流ドラマに出てきますが善徳女王とか歴史物に出てきます。
      実在したかは不明。

    • 3無名2019/04/13(Sat) 11:39:17ID:AyMDc1MTk(2/2)NG報告

      たしか女王を護る護衛青年団みたいな感じだったと思う。

    • 4名無し2019/04/13(Sat) 11:42:29ID:cyODUyNDI(1/1)NG報告

      試しに「flower boys」でggった
      ggるなよ、絶対ggるなよ(´・ω・`)

    • 5名無し2019/04/13(Sat) 11:45:31ID:c1OTQ5OTk(1/1)NG報告

      鯉太郎なら釣りバカ浜ちゃんの子供だよw

      取り敢えずニダニダしようぜ〜🎶

    • 6名無し2019/04/13(Sat) 11:54:44ID:E4OTg2ODA(1/2)NG報告

      むしろ資料が無いのをいい事に好き勝手に捏造してるだろw

    • 7名無し2019/04/13(Sat) 11:57:39ID:UxNTk0NzE(1/1)NG報告

      新羅時代のガチホモ集団


      歴史歪曲で最強の戦士集団になってる。
      しかし、そのような歴史資料は皆無

    • 8名無し2019/04/13(Sat) 12:01:29ID:g0MjM3OTk(1/2)NG報告

      村の青年団みたいなものだろうか
      それとも江戸自体の旗本奴や町奴みたいな傾奇者だったのかね

    • 9名無し2019/04/13(Sat) 12:05:32ID:YzNzg3NjI(1/1)NG報告

      >>6
      資料は今から創るニダ!

    • 10名無し2019/04/13(Sat) 12:18:13ID:E4OTg2ODA(2/2)NG報告

      いやスパルタとか、日本でも小姓がいたしそういう制度自体は否定しないよ?問題は今の韓国の美的感覚を基準に再現しちゃうってのが…

    • 11名無し2019/04/13(Sat) 13:23:46ID:g1NjM2OTQ(1/1)NG報告

      花郎っ花郎世紀という偽書に書かれている話でしょう。
      新羅時代に書かれ、後で書き写したと言われる本が20世紀頃になって発見されたが偽書だと言われている。

      朝鮮半島の歴史書で最古と言われるのは高麗時代に書かれた三国史紀であり、新羅時代に書かれた事が証明されてる書物なんて無いでしょう。

      花郎は新羅の青年の武装集団みたいに言われるけど、これは北朝鮮と戦う為に青年兵士の士気を高めたい李承晩や朴正煕が花郎を利用して作った偽りのものでしょう

    • 12名無し2019/04/13(Sat) 13:24:09ID:k1NjQ1Njk(1/1)NG報告

      山田花太郎なら知ってる

    • 13名無し2019/04/13(Sat) 13:27:34ID:Q4OTUxNDU(1/1)NG報告

      花郎って日本で言えば、歌舞伎役の女形みたいなものだろ。

      男の癖に女のように化粧をした道化でしかないはず。

    • 14名無し2019/04/13(Sat) 13:46:06ID:MxODcxMjI(1/1)NG報告

      >>1

      おそらく、去勢された小姓みたいなもんでは?

    • 15名無し2019/04/13(Sat) 13:55:53ID:YwNDQ5NzM(1/1)NG報告

      こんなイメージ

      gay-popの起源は韓国

    • 16名無し2019/04/13(Sat) 14:35:25ID:g2MTY5MTM(1/1)NG報告

      >>10日本のアニメ見すぎだろ。この感じ…。

    • 17名無し2019/04/13(Sat) 15:41:16ID:IzMTc4ODg(1/1)NG報告

      世襲の自分の領地を守る

      この基礎がないと、武士や騎士に相当する武装集団は成立しないでしょ。
      高麗の武官クーデーターで豪族が政権取った時期が一番日本の武士の成立に似た存在だったと思うけど、
      李朝勃興で再び文官上位になったから、その目も潰れた。

    • 18ネタバレ王2019/04/13(Sat) 15:43:17ID:YzMTM1MTQ(1/1)NG報告

      中国の宦官の真似事はしたかもなw

    • 19名無し2019/04/14(Sun) 19:55:48ID:U2NjYyMzA(1/11)NG報告

      화랑도의 기원
      편집
      “ 우리 나라에는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이 가르침을 세운 내력은 《선사(仙史)》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이는 유불선 3교(三敎)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敎化)하자는 것이다. ”
      — 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 《삼국사기》에 인용
      화랑의 제도적 설치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 4권 진흥왕 37년(576)에 기술되어 있다.[2]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이보다 앞서 화랑 사다함(斯多含)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어 화랑도의 기원을 원화(源花)가 만들어진 때부다 훨씬 이전임을 암시한다.[3] 화랑도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확립되지 않았지만 삼국 전체에 행해 오던 우리 고대 사회의 독특한 기풍, 애국심 혹은 종교가 신라에 와서 화랑도로 정립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신라의 경우는 씨족 제도가 오래 계속되었으므로 상호 부조의 협동정신이 강했고, 씨족원 사이에 일족의 명예를 중히 여겨 일신의 희생을 아끼지 않는 기풍이 있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같이 아름다운 육체와 아름다운 정신을 숭상하는 국민적 풍조가 있었다. 따라서 고구려·백제에 비해 영토가 적었던 국가였던 신라에서는 일찍부터 국가 민족의 수호를 이념으로 하여 궐기한 청소년들이 화랑도, 혹은 적당한 명칭의 단체를 자발적으로 조직해 애국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결과 김유신과 같이 뛰어난 인재들이 출현해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게 됨으로써 국가에서도 이에 대한 정책으로 국가 직속 체제하에 단합시킨 것이라 보며 남모·준정의 불상사가 서두에서부터 발생한 것은 여성들의 질투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다 남자들을 모아서 화랑도 양성에 몰두했을 것이다.

    • 20名無し2019/04/14(Sun) 19:57:18ID:U2NjYyMzA(2/11)NG報告

      서로 도의를 닦고, 서로 가악(歌樂)으로 즐겁게 하며, 명산과 대천(大川)을 찾아 멀리 가보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이로 인하여 그들 중에 나쁘고, 나쁘지 아니한 것을 알게 되어, 그 중의 착한 자를 가리어 조정에 추천하게 되었다. ”
      — 삼국사기
      “ 무리를 뽑아서 그들에게 효제(孝悌)와 충신을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 데 대요(大要)를 삼는다. ”
      — 삼국유사
      화랑은 삼국 통일의 주역이였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군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의 침략을 괴멸시키고 승리하여 당나라가 더 이상 침략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삼국 시대에서 남북조 시대가 된다.

      그 밖의 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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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밖에도 화랑도의 기원 및 정체에 대해서는 다음의 설이 있다.

      소도 제단(蘇塗祭壇)의 무사(武士)들이 화랑도화 된 무사집단이라는 설.
      고조선 고유의 신앙단인 부루교단(敎團)에서 연유하였다는 설.
      원시 미성년 집회에서 연유하였다는 설
      무의 신라 시대 형태라는 설
      조직과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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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 청소년단체로서의 화랑도는 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郎徒)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576년 이후 신라의 국방 정책과 관련하여 이를 신라의 관에서 운영하게 되면서 조직이 체계화되었으며, 이들 화랑의 총지도자인 국선(國仙)을 두고, 화랑의 예하도 수개 문호(門戶)로 구성하게 했다. 화랑도의 총지도자인 국선은 원칙적으로 전국에 l명, 화랑은 보통 3-4명에서 7-8명에 이를 때도 있었으며, 화랑이 거느린 각 문호의 화랑 낭도는 수백에서 수천 명을 헤아렸다.

      국선·화랑·낭도의 자격에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아, 신분 계급·승속(僧俗)을 막론했으므로, 때로는 거리를 방황하던 고아였던 미시랑(未尸郞)이 국선에 오르기도 하여 신분보다 인격과 덕망과 용의(容儀)만을 중시했던 것이다.

    • 21名無し2019/04/14(Sun) 19:58:45ID:IyODk4MjA(1/1)NG報告

      >>19
      >>20
      고유명사들은 웬만하면 한자로 표기해.

    • 22名無し2019/04/14(Sun) 19:59:05ID:U2NjYyMzA(3/11)NG報告

      이념
      편집
      화랑도의 이념은 오로지 개인의 수양과 단련을 통한 국가에의 봉사였으므로, 서로 도의를 닦았고[相磨以道義], 가악을 즐겼으며[相悅以歌樂], 명산대천을 찾아다녔다[遊娛山川, 無遠不至], 또한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준수했다. 또 경문왕(景文王)의 고사에 관련되었듯이 ① 겸손하고 ② 검소하고 ③ 방자하지 않는 삼이(三異)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세속 오계
      편집
      <nowiki />이 부분의 본문은 세속오계입니다.
      세속오계는 화랑도들이 중요시하는 5개의 지침이다.

      사군이충(事君以忠) :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기어야 한다.
      사친이효(事親以孝) : 효로써 부모를 섬기어야 한다.
      교우이신(交友以信) : 믿음으로써 벗을 사귀어야 한다.
      임전무퇴(臨戰無退) : 싸움에 나가서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살생유택(殺生有擇) :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
      기풍
      편집
      태종무열왕·경문왕을 비롯하여 김유신(金庾信) 등 역대 제왕과 현사(賢士)·충신·용장(勇將)·양졸(良卒)로서 화랑도 출신이 아닌 자가 드물 정도로 화랑도는 신라 국력의 저장고 역할을 해 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 화랑도들은 한 시대의 중추적 위치로서 그 소임을 저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대에 걸쳐 화랑도의 특수한 기풍과 기질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 23名無し2019/04/14(Sun) 19:59:13ID:EwOTQ5MTI(1/1)NG報告

      一部に剣を持ってた奴がいたってだけで男娼なんでしょ?

    • 24名無し2019/04/14(Sun) 19:59:34ID:U2NjYyMzA(4/11)NG報告

      즉, 국가와 동지를 위해 의(義)에 죽는 것을 즐겼고, 병석에서 약 그릇을 안고 죽는 것을 수치로 여겼으며, 오로지 전진하다가 전사하는 것을 영예로 생각했고, 적군에 패하면 자결할지언정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화랑들은 사다함, 황산벌 전투의 관창(官昌), 비령자(丕寧子)와 그 아들 거진(擧眞), 그리고 그 종 합절(合節), 김유신의 아들 원술(元述) 등 화랑사에 길이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는 이들 화랑이 모두 이러한 기풍의 인물이었다.

      음악이 화랑도의 수련에서 중요한 방식의 하나인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거니와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향가와 향가 작가의 대부분이 화랑도와 결부되어 있다.

      즉 효소왕 때의 득오곡(得烏谷), 경덕왕 때의 월명사(月明師)·충담사(忠談師), 경문왕 때의 요원랑(遼元郞) 등 4선(四仙) 등으로서, 이 중 충담사는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요원랑 등은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 등을 지었으며, 월명사는 자신이 국선(國仙)의 도에 속하며 단지 향가를 알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한다. 이 밖에도 신라 국민들은 화랑들의 아름다운 행적이 있을 때마다 향가를 지어 그들을 기리거나 위로했다.

    • 25名無し2019/04/14(Sun) 20:03:14ID:U2NjYyMzA(5/11)NG報告
    • 26名無し2019/04/14(Sun) 20:08:46ID:U2NjYyMzA(6/11)NG報告

      문제는 한국역사학계가 친북주의적이라서 친고구려 반신라적 사관을 가지고있어 이에대한 영화나 제대로된 문학적 작품들은 별로없다.
      있다고 해도 여성향 드라마 정도...

    • 27名無し2019/04/14(Sun) 21:46:27ID:Y4MDYxMDQ(1/1)NG報告

      ドラマ花郎は、最初にフィクションだと説明書きしてるではないか!
      当時の韓国は、染料が無かった。
      鮮やかな衣装は、見ていて楽しい。
      だから歴史もドラマのように捻じ曲げる。
      徴用工→出稼ぎ労働者
      慰安婦→職業売春婦
      これは事実。

    • 28名無し2019/04/14(Sun) 21:55:46ID:c4NTQ5MjI(2/2)NG報告

      >>17
      この封建制度を経ないと、人間の心に道徳心が培われないんだろうね
      儒教とか、封建時代の道徳の残滓であり、造船や中国は形骸だけやってるだけだった
      そして封建時代の道徳心をもたずに資本主義に移行したのが、
      現代の韓国や中国である
      (ようするに奴隷身分の労働者が、嘘つき泥棒のままである)

    • 29名無し2019/04/14(Sun) 22:11:49ID:IyNDY3OTQ(1/1)NG報告

      花郎(ファラン)の化粧姿って・・・。

      嘘でも本当でもどちらでも構わないけど、

      韓国人は「善徳女王」での化粧姿を恥ずかしいと思わないのだろうか?

      一応、まともな姿としてTVで放映したのだから、
      韓国人の美的感覚は非正常、おかしい、変という結論になるけど・・・。

      韓国人に、「あれはドラマでも間違っていた、あんなドラマは恥ずかしい」と
      発言して欲しいのだけど・・・。
      韓国人にはプライドがあるから、自己批判的な発言はできないのかな?

    • 30名無し2019/04/15(Mon) 00:35:15ID:I1MDQ2NzU(7/11)NG報告

      >>29얼굴을 하얗게 하는것은 종교적인 의미로 하늘과 이어져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과 진골귀족이 성골(아리안백인)의 피를 이어받은것을 증명하려고 하는것으로 알고있다.

    • 31名無し2019/04/15(Mon) 00:58:43ID:E2MTY5NzU(1/2)NG報告

      新羅時代の花郎と朝鮮時代の花郎は違う
      朝鮮時代は明確な武道志向があったが
      この時代は武家の地位が低かった
      三国史記によれば
      貴族子弟が属する青年結社のようなもので
      文武、宗教などの活動をしていたらしい
      愛国心を涵養する目的の組織であったことが伺われ
      キムユシン、サダハムなど武の方面で活躍した人物が
      花郎に属していたことが記述されている
      そのことは花郎が武力集団であったことを
      明確に意味しているわけだはない
      シャーマニズム時代の古層において
      新羅方面と日本に文化的なつながりがある
      三品彰英によれば古い九州の青年結社にも花郎と似た点があり
      ヤマトタケルが女装してクマソを撃つエピソードにも
      関連があるかもしれないと述べている

    • 32名無し2019/04/15(Mon) 01:16:19ID:E2MTY5NzU(2/2)NG報告

      中華文明勃興以前の
      満州ツングース方面のシャーマンは
      もっぱら女性の役割で
      敵の力を削ぐため戦闘に加わっていた
      そのような神話、民話が多数残っている
      比較的新しいところでは
      渤海国の紅羅女という娘が契丹の攻撃を退ける
      沢山のヴァリアントが存在する
      後にシャーマンも男性ばかりになっていった
      戦闘に際して女装するのは
      シャーマニスティックな霊力を
      借りようとする名残であろう

    • 33名無し2019/04/15(Mon) 04:34:01ID:I1MDQ2NzU(8/11)NG報告

      >>27내가 알기로 계급별로 복식마다 색깔이 있다.
      최하층계급 노란색 평민계급 파란색 진골계급 붉은색 성골계급(왕이될수있는 계급) 보라색이였다.
      스키타이 골품제에 그 기원이 있고 계급마다 색깔을 다르게한다.

    • 34名無し2019/04/15(Mon) 04:38:33ID:I1MDQ2NzU(9/11)NG報告

      >>32 자작나무는 북방에서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로 인식이 되었다. 그래서 북방 샤먼들은 기도를 할 때 자작나무를 태워 모닥불을 피우고 자작나무를 당목 삼아 제례의식을 한다. 오늘날 러시아인이나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자작나무 (벨라야 비료자: Белая береза, 하얀 자작나무)’로 묘사하는데 그 이유는 고대 샤먼들이 하얀 백색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자작나무에 비유했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백색을 중시했을까? 그 이유는 백색이 은하수를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시베리아의 많은 나무들 중 자작나무를 하늘과 연결하는 다리로 생각한 이유는 자작나무의 하얀색이 하늘의 하얀 은하수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먼들이 기도를 하면서 자작나무의 꼭대기를 올라가거나, 자작나무를 태워 연기를 하늘에 올리는 행위를 통해 하늘과 연결이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 즉 샤먼은 은하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백색 옷을 입은 백색 피부의 사람들이 종교를 담당했었다. 이러한 문화가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는데, 신라의 화랑들은 얼굴에 하얀 분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이 분칠을 한 이유는 아마도 한반도로 내려오면서 토착민들과의 혼혈이 이루어지면서 본래의 백색피부가 사라지자 자신이 지배계급의 혈통이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화장을 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 35名無し2019/04/15(Mon) 04:38:57ID:I1MDQ2NzU(10/11)NG報告

      여하튼 이들은 자작나무 즉 은하수를 타고 하늘의 천국인 북극성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종교의식을 하는데 자작나무는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의 신라왕의 무덤에서 자작나무가 나왔다는 것은 이 지배자의 출신지가 바로 만주지역이었음을 반증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생과 죽음은 종교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줬다는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 삼신 할머니는 북극성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북극성에서 왔다고 믿었으며 죽으면 다시 북극성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하늘을 보면 북극성 주변으로 은하수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고대인들은 죽으면 영혼이 은하수를 지나 북극성에 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하수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라고 생각했으며 북방유목민족은 그 다리가 바로 자작나무라고 생각했다. 만약 신라의 왕이 한반도나 남쪽 출신이었다면 자작나무를 쓰지 않고 다른 것을 상징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자작나무를 썼다는 것은 이들이 기마민족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무덤의 조성연대가 5 ~ 6세기 인 것으로 보아 이 무덤들은 박씨나 석씨가 아닌 김씨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5세기 이후 김씨 세습을 만든 신라의 왕들은 광개토대왕 시절 이후 고구려 호족들의 지지를 얻어 왕권을 획득한 북방계 기마민족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원문보기:
      http://m.etnews.com/20150901000079?obj=Tzo4OiJzdGRDbGFzcyI6Mjp7czo3OiJyZWZlcmVyIjtOO3M6NzoiZm9yd2FyZCI7czoxMzoid2ViIHRvIG1vYmlsZSI7fQ%3D%3D#_enliple#csidx75bc70d0e2b94b8bd43e5b4c8d3caa3

    • 36名無し2019/04/15(Mon) 04:42:59ID:I1MDQ2NzU(11/11)NG報告

      신라 지배자들의 유전자

      앞서 언급했다시피 고대사회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혈연적으로 달랐다. 그리고 우리가 연구하는 역사서는 바로 지배자계급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기록한 책으로 일종의 족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역사서에 기록된 지배계급의 혈통이 현재 한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없다. 고인돌의 숫자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그런데 이 고인돌에 묻혀 있는 유골들의 DNA를 검사하면 현재 한국인과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유전자를 보면 백인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당황한 초기 역사학자들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발굴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오늘날에는 일반인도 그 결과를 볼 수 있는데 아래의 표는 한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지역 고인돌의 유골 DNA를 분석한 결과이다.

      표를 보면 고대 신라인의 모습은 현재의 한국인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계인들과 더 닮아 있음을 유전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유전자표는 모계 DNA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신라왕의 어머니는 백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시베리아의 백색 피부를 가진 샤먼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라와 가야의 김씨 왕족들은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투르크계 사람들이 지배계급을 형성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2014년 9월 11일 KBS 파노라마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부산 가덕도에서 7천년 전 신석기 유적에서 48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이 유골에서 한국인에게 없는 H형 유럽 모계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여기서도 신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계 유전자가 백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한반도의 지배세력은 최소한 7천년 전부터 아시아계 아버지와 유럽계 어머니의 혼혈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럽계 여인은 시베리아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 37名無し2019/04/15(Mon) 04:44:26ID:M0NzA4OTU(1/8)NG報告

      >>36

      유입이야

    • 38名無し2019/04/15(Mon) 05:03:50ID:M0NzA4OTU(2/8)NG報告

      7천년 지난 유골은 모르겠고 신라는 보통으로 다인종사회였으니까 백인우월주의자 몇 명이 퍼뜨리는 인상 조작에 속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ㅋㅋ

    • 39名無し2019/04/15(Mon) 05:08:54ID:M0NzA4OTU(3/8)NG報告

      좆같은 한국인 백인우월주의자 ㅋㅋ 중국인 면상들 주제에

    • 40名無し2019/04/15(Mon) 05:31:00ID:M0NzA4OTU(4/8)NG報告

      백인이 지배계층인 건 가야 김해 김씨 뿐이고 신라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부터 석탈해가 주웠다고 써있는데, 상식적으로 생판 모르는 아이를 주워서 왕족으로 키웠다는 게 말이 되나? 보통으로 편입 시켜주고 대우 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야

    • 41名無し2019/04/15(Mon) 05:32:51ID:M0NzA4OTU(5/8)NG報告
    • 42名無し2019/04/15(Mon) 05:33:20ID:M0NzA4OTU(6/8)NG報告

      병신들 뭔 지랄을 해도 부계 유전자는 안 바뀌니까 헛 수고 하지마라

    • 43名無し2019/04/15(Mon) 05:39:34ID:M0NzA4OTU(7/8)NG報告

      이게 백인으로 보이냐? 스트레스 너무 심하다

    • 44名無し2019/04/15(Mon) 05:44:42ID:I2MDk1MDA(1/1)NG報告

      玉を取るってのは遊牧民の発想なんだよな
      だから日本は宦官は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

    • 45名無し2019/04/15(Mon) 05:51:15ID:M0NzA4OTU(8/8)NG報告

      좆같은

      https://ko.m.wikipedia.org/wiki/%EA%B9%80%EC%95%8C%EC%A7%80

      김알지(金閼智, 65년 ~ 몰년 미상)는 정사가 아닌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이다. 탈해 이사금 때 태어났으며 그의 7대손 미추 이사금이 김씨 최초로 왕에 즉위하였다. 정식 역사에서는 실존 인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65년 탈해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가보게 하였다. 금빛의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재상 호공이 보고하자, 왕이 직접 가서 함을 열어보니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아이는 금함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 46名無し2019/04/15(Mon) 13:37:54ID:I0OTE3MjU(1/1)NG報告

      削除しまくりのはずの管理人の粋な?計らいで歴史に移されたが、チョンの妄想ばかりだな
      >>1

    • 47新劇の巨人2019/04/15(Mon) 13:47:54ID:A1MDU2NzA(1/1)NG報告

      韓国のミルク姫、ファン・カノの覚醒剤逮捕で、
      元東方神起のパク・ユチョンが疑惑の目に遭っているとか。

      財閥系のお嬢様がアイドルを囲う…まさに花郎だよな。

      日本の芸能人って、人気が昇華してくると武士や騎士のような、
      倫理性が強まって来るんだ。社会的貢献度とかも上がるしね。
      杉良太郎も北野武も、公共への貢献や若手育成などに励んでいる。

      韓国の芸能人の昇華って…金の臭いしかしない。
      それって花郎文化の現在の形なんじゃないかなと思う。

    • 48名無し2019/04/16(Tue) 01:51:53ID:UwNDI0ODA(1/2)NG報告

      >>29
      歌舞伎の隈取りに似ているとも言えるが・・・

      どっちかというと、古代中国大陸風の女性の化粧がベースだね。

    • 49名無し2019/04/16(Tue) 02:07:48ID:UwNDI0ODA(2/2)NG報告

      >>29
      臉譜(れんぷ)・・・中国の伝統劇(京劇など)に使用される隈取(くまどり)化粧の型。臉は顔のこと。
      唐代の仮面劇に由来するともいわれるが、元代の雑劇、明(みん)代の伝奇、清(しん)代の崑曲(こんきょく)から京劇へと受け継がれる過程で、化粧法が進化した。
      主として豪傑、敵(かたき)役、神仙などを演じる浄(じょう)の役柄が用いる。
      さまざまな色彩と紋様の組合せによって人物の正邪善悪を表現する。
      紅は忠勇、藍(あい)は獰猛(どうもう)、黄は腹黒、白は奸悪(かんあく)、黒は剛直、紫は謹厳、青は妖邪(ようじや)、緑は凶悪、金銀は神仙を表す。
      歴史上有名な人物、劇中なじみの人物の色と紋様は決まっていて、それだけでも数百種に上る。
      一色だけ紋様は整臉(せいれん)という。


      画像右上の、十三妹の化粧と似ている。

    • 50名無し2019/04/16(Tue) 13:11:17ID:Q2NzYwMTY(1/1)NG報告

      >>1
      なんでチョンは連続性のない新羅のことで妄想して喜んでるんだろうな。日本人としては哀れむばかりだが、惨めな歴史だからやむないか
      >>47
      いや〜、そんな連続性ないでしょ。認めちゃうだけでも思う壺だ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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