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の【憲法9条改正】に賛成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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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名無し2018/03/30(Fri) 17:00:35ID:M4NTczOTA(1/18)NG報告

      武力の強い国は馬鹿にされません、簡単に戦争を起こされません。
      日本は武力を持つ普通の国に戻るべきだと思います

      バカと侵略国家とその手下の国は口を揃えて『日本は戦争を望んでる』と叫びます。
      しかし、国民感情は真逆で大半の日本人は戦争なんて望んでません、過去にアメリカに負けて大きな痛みを知り戦争の愚かさを充分に学びました。


      武力が弱いと攻められますが、逆に強いと簡単には攻められません。なぜなら 武力が弱い国ほど攻められ易いからです。
      日本が憲法9条を改正し、武力を持つ普通の国に戻れば確実に日本は強い国になれます。
      そうなると侵略国は必ず『下手に手を出してしまうと我が国も大きな傷を負う…』と思うのが自然な流れです

      隣国に侵略国があるので1日も早い9条改正を望んでいます

    • 446名無し2022/02/26(Sat) 10:35:29ID:I5MDcwMTY(2/2)NG報告

      >>444
      国は帰れよ

    • 447名無し2022/02/26(Sat) 10:42:17ID:M4ODYwNDY(1/1)NG報告

      最高法規が現実に合わないのはいけないね。
      もともと武力、軍隊をもちながら不保持の規定も恥ずかしい。決定的な瑕がある。

    • 448名無し2022/02/26(Sat) 10:48:39ID:M2ODU5NjQ(1/1)NG報告

      「話せば分かる」と主張している輩が、すぐにウクライナに行ってロシアに帰ってもらえたら9条の改正の必要は無いと思う。パヨクどうする?

    • 449名無し2022/02/26(Sat) 10:54:51ID:E5Nzg0MjY(3/13)NG報告

      >>446
      馬鹿に国はないからな。
      お前のような屑の行くところは一つ、あの世だよ

    • 450名無し2022/02/26(Sat) 13:42:07ID:I4NDM1NDg(1/16)NG報告

      일본은 자기 나라를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본은 수천년 동안 침략을 즐겼다. 서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하와이 진주만 폭격).
      지금의 일본이 누리는 번영은 평화가 유지되기 때문에 온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쉽게 극단적으로 변하는 성질이 있어서 헌법이라도 있어서 다행인 것이다.
      전쟁 광기의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일본인이 많구나.

    • 451名無し2022/02/26(Sat) 13:53:21ID:E5Nzg0MjY(4/13)NG報告

      >>450
      お勉強足りない朝鮮人。
      自国も守れなかった韓国のバカな妄言だな

    • 452名無し2022/02/26(Sat) 13:54:23ID:I4NDM1NDg(2/16)NG報告

      >>451

      정식 군인도 아닌 민간인이 창을 들고 민간인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 453名無し2022/02/26(Sat) 13:54:52ID:UzNjIxMjA(1/1)NG報告

      >>1
      敵国・朝鮮人・日弁連とかに
      投資して
      技術を渡さなければ

      9条改憲なんて
      必要なかったかも知れない……

    • 454名無し2022/02/26(Sat) 13:55:29ID:I4NDM1NDg(3/16)NG報告

      >>451
      번역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수정함

      정식 군인도 아닌 민간인이 죽창을 들고 민간인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 455名無し2022/02/26(Sat) 14:33:18ID:E5Nzg0MjY(5/13)NG報告

      >>452
      ベトナムの朝鮮人のことだな

    • 456名無し2022/02/26(Sat) 14:35:20ID:ExNzM3ODA(1/7)NG報告

      >>450
      何千年もの間って、具体的にいつからいつまで?

    • 457名無し2022/02/26(Sat) 14:35:27ID:UwODgyNTY(2/2)NG報告

      バイデンも岸田もだめだなこれ

    • 458名無し2022/02/26(Sat) 14:45:28ID:I4NDM1NDg(4/16)NG報告

      >>456

      왜의 침략현황
      1) 신라시대 왜구 침략(삼국사기) : 20회
      2) 고려시대 왜구 침략(고려사) : 515회
      3) 조선시대 왜구 침략(조선왕조실록) : 178 회
      4) 일제침략(1910∼1945) : 1 회 (총 714 회)

      『삼국사기』에 기록된 왜의 신라침략 기사

      남해차차웅 11년 倭人이 병선 100여소를 보내어 해변의 民戶를 노략하므로, 왕은 六部의 精兵을 일으켜서 막게 하였다.(1회) 탈해이사금 17년 왜인이 木出島(목출도)를 침노하자, 왕이 角干(각간) 羽烏(우오)를 보내어 막다가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죽었다.(2회) 지마이사금 10년 4월 왜인이 東邊(동변)을 침범하였다.(3회) 조분이사금 3년 4월 왜인이 갑자기 닥치어 金城(금성)을 에워싸므로, 왕이 친히 나아가 싸우니 적이 潰走(궤주)하는지라, 輕騎(경기)를 보내어 이를 추격하게 하여 1,000여 명을 殺獲(살획)하였다.(4회)
      ... 많아서 생략함

      <고려시대>
      고려시기 최초의 기록 : 고종 10년 5월 "왜구가 김주(김해)를 침구하였다"(21회) 고종 10년(1233) ∼충숙왕 100여 년간 10여차 10여곳(31회) 1350(충숙왕)부터 본격화, 충정왕 2년 재위 동안만 11회 기록(42회) → 가마쿠라 바쿠후가 멸망(1333)과 뒤이은 남북조의 쟁란으로 서부 일본지방의 연해민이 해적집단화. 공민왕 재위 23년 간(1352∼1374) 115회(157회) 우왕(1375∼1388) 14년간 378회(535회)

      <조선시대>
      * 조선시대 왜구 침임 횟수(조선왕조실록의 기록)
      태조 -- 38회, 정종 -- 3회, 태종 -- 45회, 세종 -- 18회, 문종, 단종, 세조 -- 없음, 예종 -- 없음, 성종 -- 8회, 연산군 -- 8회, 중중 -- 31회, 인종 -- 없음, 명종 -- 20회, 선조 -- 7회(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가각 1번씩으로 쳐서)
      광해군, 인조, 효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철종 -- 없음

    • 459名無し2022/02/26(Sat) 14:47:16ID:I4NDM1NDg(5/16)NG報告

      >>456

      하와이 진주만 기습

    • 460名無し2022/02/26(Sat) 14:49:09ID:I4NDM1NDg(6/16)NG報告

      >>456

      일본에서 벌어진 관동 대학살

    • 461名無し2022/02/26(Sat) 14:49:51ID:E5Nzg0MjY(6/13)NG報告

      >>460
      そんな事件はなかったが?
      いつもの歴史歪曲朝鮮人か

    • 462名無し2022/02/26(Sat) 14:52:22ID:c5MjEzMDg(1/1)NG報告

      全世界の主要基地に同時に核ミサイル打ったら勝ち社会

    • 463名無し2022/02/26(Sat) 14:53:12ID:I4NDM1NDg(7/16)NG報告

      >>456

      일본의 인명경시 문화

      辻斬り(つじぎり) 츠지기리 : 가마쿠라 시대부터 존재했던 유서깊은 악습이며 특히 에도시대 초기, 전국시대의 살벌한 기풍이 아직도 만연해 있을 무렵에 횡행해 치안을 어지렵혔다. 얼마나 만연했는지 츠지기리로 베어 죽은 시체들이 무가의 저택 앞에 뒹굴었었다고 한다. 막번체계가 안정된 이후의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함부로 칼을 쓰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였기에, 단지 칼을 시험하기 위해 행인을 베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츠지기리는 실존했고 역사적으로도 많이 남아있다. 에도시대 중기에는 사회가 안정되면서 조금 사그러드는 듯 했으나 막부 말기에는 혼란상으로 인해 츠지기리가 다시 늘어났다. 메이지 유신으로 사회가 근대화되고 나서야 츠지기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살인연습으로 다져진 문화

    • 464名無し2022/02/26(Sat) 14:54:20ID:Y5ODMwNDg(1/1)NG報告

      >>435
      歩兵なんていらないよ

      敵の重要施設にミサイルを向けておくだけで
      攻撃できない

    • 465名無し2022/02/26(Sat) 14:54:28ID:E5Nzg0MjY(7/13)NG報告

      >>463
      捏造朝鮮人。
      奴隷に似つかわしい教育の成果かな?

      どうしてそんなに無知蒙昧なのかな?

    • 466名無し2022/02/26(Sat) 14:55:09ID:I4NDM1NDg(8/16)NG報告

      >>461
      평화로우니까 상상도 불가능하나보다. 옛 시절을 경험한 선대 일본인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라. 광기의 시대였다.

    • 467名無し2022/02/26(Sat) 14:56:18ID:E5Nzg0MjY(8/13)NG報告

      >>458
      倭寇はちゅうごくじん、朝鮮人、わずかの日本人だぞ。
      無知

    • 468名無し2022/02/26(Sat) 14:56:56ID:ExNzM3ODA(2/7)NG報告

      >>466
      それのどこが何千年なの? 韓国人は数を数えるのが苦手なのか? w

    • 469名無し2022/02/26(Sat) 14:57:26ID:E5Nzg0MjY(9/13)NG報告

      >>466
      お前らみたいな馬鹿民族ではないからな。
      奴隷国の奴隷教育が現代まで続く、自称「先進国」

    • 470名無し2022/02/26(Sat) 14:59:36ID:I4NDM1NDg(9/16)NG報告

      >>467
      왜구는 다국적이지만 세종 시절 대마도 정벌은 한국의 일본 침략이고? 책임 회피를 위한 일본인을 위해 아래 반박을 옮겨본다.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2019327/1

      이영 교수는 ‘왜구와 고려·일 본관계사’ 및 ‘황국사관과 고려말 왜구’ 같은 저술을 통해 그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쳤다. 그에 따르면 전후기 왜구는 모두 일본 내란기에 군량미 아니면 전비 확보를 위한 정규군 활동의 일환이었다. 서구적 개념에 따르면 왜구는 자발적인 ‘비공인 해적’으로서 파이어리츠(pirates)가 아니라 국가나 종교의 지원 아래 활동한 공인해적 코르세어즈(corsairs)였다.

      전기 왜구는 일본의 왕실이 남조와 북조로 나뉜 남북조시대(1333~1392) 남조에 충성했던 규슈 지역 사무라이 세력이 군량미 확보를 위해 원나라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한반도와 중국 산둥성 일대 해안가를 약탈한 것이었다. 고려에서 왜구의 노략질이 급증하고 대규모환 시점이 1350년 이후인데 일본 남조와 북조 간 투쟁이 극심해지는 시점과 일치한다. 또 왜구 침략이 격감한 시점 역시 1392년 남조의 몰락 직후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무려 500척의 함대에 기병 7000까지 대동한 대규모 군사집단을 민간 무력집단으로 호도할 수는 없다.

      이는 당시 교토를 장악한 북조와 고려 조정 간에 오간 서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376년 무로마치 막부(북조)가 왜구의 침입을 항의하는 고려사신을 통해 ‘(막부) 조정에서 장수를 보내 (남조가 다스리는) 규슈 일대 진압작전에 나섰으니 진압이 완료되면 더 이상 해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서신을 보냈다.

    • 471名無し2022/02/26(Sat) 15:00:02ID:I4NDM1NDg(10/16)NG報告

      >>467
      위에 이어서...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2019327/1

      후기 왜구 역시 무로마치 막부가 무너진 전국시대(1493~1573) 규슈 일대 다이묘들이 전비 마련을 위해 중국 해적과 손을 잡고 밀무역과 약탈전투를 벌인 것으로 봐야하다. 실제 왕직은 히라도번의 다이묘인 마쓰라 다카노부의 비호를 받았고, 서해는 사쓰마번의 다이묘인 시마즈 가문의 용병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명나라 군대가 이들 왜구와 벌인 전투도를 청나라 때 모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왜구도권’에 등장하는 왜구의 깃발을 확대해본 결과 1555년에 해당하는 ‘고지(弘治) 4년’이란 일본의 연호가 확인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나카무라는 왜 이런 왜구의 정체를 감추려했을까.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유신 세력은 1333년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킨 남조의 고다이고(1288~1239) 일왕과 그를 도운 구스노키 마사시게(1294~1336)를 자신들의 역할모델로 삼았습니다. 메이지일왕 역시 혈통 상 북조를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다이고 일왕의 정통을 계승했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노략질을 일삼은 왜구의 배후가 고다이고 혈통이 다스린 남조임이 밝혀지는 것이 곤혹스러웠던 겁니다. 그래서 왜구를 일본 조정과 무관한 민간인집단으로 둔갑시키거나 다국적 연합세력이라고 물타기를 하는 겁니다.”

    • 472名無し2022/02/26(Sat) 15:00:52ID:ExNzM3ODA(3/7)NG報告

      電気倭寇w ちょっと興味あるなw

    • 473名無し2022/02/26(Sat) 15:01:08ID:E5Nzg0MjY(10/13)NG報告

      >>470
      韓国のバカ教授など日本の高校生にも劣る存在。
      無知蒙昧を体現する存在だよ。

      ノーベル賞0は伊達ではない

    • 474名無し2022/02/26(Sat) 15:03:29ID:I4NDM1NDg(11/16)NG報告

      >>473
      >>472

      그래서 일본인들이 대마도 왜구 정벌에 침략받았다고 감정이입하는구나
      살인자, 노략자 왜구에 감정이입하는 일본 역사관

    • 475名無し2022/02/26(Sat) 15:06:28ID:ExNzM3ODA(4/7)NG報告

      >>474
      まあ、電気倭寇はおいといて…。


      どこからどこまでで何千年なの? w

    • 476名無し2022/02/26(Sat) 15:06:35ID:E5Nzg0MjY(11/13)NG報告

      >>474
      嘘の歴史に興味などないな。
      日本の中学生並みの知能だな

    • 477名無し2022/02/26(Sat) 15:09:10ID:E5Nzg0MjY(12/13)NG報告

      >>474
      世宗実録(世宗二十八(1446年)十月壬戌条)
      「倭人不過一二而本国之民仮著倭服成党作乱」

      (翻訳)倭人は1、2割(または1、2件)に過ぎず、本国(朝鮮)の民が、仮に倭服を着して党を成し乱を作す。

      世宗も朝鮮人がほとんどだと言っている。

    • 478名無し2022/02/26(Sat) 15:10:28ID:ExNzM3ODA(5/7)NG報告

      電気倭寇ってこんな感じかと想像w

    • 479名無し2022/02/26(Sat) 15:15:17ID:I4NDM1NDg(12/16)NG報告

      >>477

      세종 실록(세종 28(1446년) 10월 임계조) 어디를 뒤져도 그런 것이 없다.
      일본인은 날조가 일상인가? 아니면 근거를 가져와라.

      세종실록 114권, 세종 28년 10월
      http://sillok.history.go.kr/search/inspectionDayList.do

    • 480名無し2022/02/26(Sat) 15:16:47ID:E5Nzg0MjY(13/13)NG報告

      >>479
      よく読めよ。無知朝鮮人

    • 481名無し2022/02/26(Sat) 15:18:20ID:U1OTYwNTQ(1/1)NG報告

      >>434
      アメリカにとって、日本は高額なアメリカ製ジェット戦闘機等、一部の武器を取り外した制限付き兵器を購入してくれるお得意様だから、なかなか良い顔をしないのではないか?
      だが、日本国被占領憲法につき「え?、まだあの憲法を変えないでいるのか?」と驚くぐらいだから、アメリカは日本が自国憲法を改正することには干渉しないと思うよ。
      だが、日米安保条約が双務条約になった時点から、今後自衛官の派遣要請はあるだろうけどね。そろそろアメリカの掌の上で転がされる立場から脱却する時だと思う。

    • 482名無し2022/02/26(Sat) 15:19:20ID:I4NDM1NDg(13/16)NG報告

      >>477

      전문

      세종실록114권, 세종 28년 10월
      휘덕전의 기년내의 삭망제와 유명일의 별제에 왕세자가 행하는 의식. 대군과 여러 군의 행례하는 의식.경상도 동래현에 성을 쌓다.경기도와 강원도에 곡식을 주어 흉년을 구제하였다.세자가 동절 향례를 휘덕전에서 지내다..천둥치고 비가 오다.강원도 관찰사 이심이 흉년 구제의 어려움을 상서하였다.우참찬 정갑손이 불사를 정지시켜야 한다고 아뢰다.세자가 서연에 나와 왕후의 상사로써 정강하였던 강론을 복강하려고 하였다.의정부에서 불사를 정지시키기를 청하였다.좌부승지 이사철이 사옥을 아뢰다.호조 참판 안지를 북경에 보내 정조를 하례하게 하였다.사헌부 장형 강진이 불사를 정지시키기를 청하였다.함길도 함흥 이남의 역리들을 찾아 돌려보내게 하였다.봉수의 법을 주밀하게 정하고 상세히 개유하게 하였다.함길도에 묵은 곡식 2만 석을 주어서 벼를 바꾸게 하였다.흉년으로 정지시켰던 금은의 채취를 다시 시작하게 하였다.사간원 좌정언 윤배가 불사를 정지하기를 청하였다..의주 목사 유강에게 요동에 이른 호송 관원을 대하는 법도를 유시하였다.춘추관 사고의 문서를 2년 마 다 햇빛에 쬐이게 하였다.오도리의 여진에게 전세와 요역을 감면하였다.형조 좌랑 우계번이 죄를 자복하지 않아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였다.사간원에서 불사를 정지시키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사헌부 집의 정창손이 불사를 정지시키기를 상소하였다.대간의 죄를 언문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이다.이계전 등이 대간을 처벌한 것을 거두어 달라고 아뢰다.좌부승지 이 사철이 대간의 공사로 아뢰니 사간원을 석방하였다.의정부에서 강원도 감사 이심을 추핵하도록 아뢰었으나 추문하지 말게 하였다.이계전과 어효첨에게 《고려사》의 유루된 것을 교정하게 하였다. 이어서..

    • 483名無し2022/02/26(Sat) 15:20:06ID:I4NDM1NDg(14/16)NG報告

      >>477

      이어서..

      불사를 정지하기를 청한 강진을 추문하였다.국상으로 동지연과 정조의 회례연을 정지하였다.군역을 피하기 위해 삭발한 자제들을 규찰하였다.정창손·조욱·유맹부를 석방하였으나 강진은 석 방하지 아니하였다.사면한 수령과 만호는 연수를 한정하여 서용하지 않는 법을 제정하였다.평안도에 유이인과 범죄인이 입거하는 것을 정지시키다.민신·안지·신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정창손 등을 좌천시키다.대자암에서 전경회를 베풀었다가 7일 만에 파회하였다.함길도에 행성 밖의 전지를 경작하지 못하도록 하였다.의정부에서 강원도의 흉년 구제를 아뢰다.평안도 도관찰사에게 대성산의 도적을 제거하는 방법을 아뢰도록 유지하였다.국가에 공로가 있는 신하의 양첩과 천첩의 아들에게도 관직을 주게 하였다.소원한 족속에게 은택을 넓히려고 하였으나 중지하였다.간통죄를 범한 이정근과 이영근에게 각기 곤장 1백 대를 집행하였다. 당상관을 지낸 사금·진무에 임명하지 못하도록 명하였다.왕세자가 기년내에 영릉에 배례하는 의식.동지돈녕부사 노물재의 졸기.선공감의 목공에게 체아직을 주고 제조로 하여금 그 근만을 상고하게 하였다.전라도 관찰사가 유이한 사람들을 그전대로 거주시 키도록 아뢰다.판중추원사 이순몽이 호패법을 다시 시행하도록 상서하였다.



      세종 실록(세종 28(1446년) 10월 임계조) 어디에 그런 문장이 있는가? 일본인은 가져온 것의 근거를 대라.

    • 484名無し2022/02/26(Sat) 15:20:30ID:g0MjgzNDY(1/3)NG報告

      >>482
      読めない朝鮮人

    • 485名無し2022/02/26(Sat) 15:22:13ID:EwMjE3NTA(1/1)NG報告

      ネトウヨと韓国人の差が広がってるな
      レスの内容が酷すぎてどっちが韓国人かわからない時がある

    • 486名無し2022/02/26(Sat) 15:22:18ID:I4NDM1NDg(15/16)NG報告

      >>484

      번역에 문제가 생겼나보다. 실제로는 문장이 많은데 일본어 번역을 하니까 문장이 생략된다.

    • 487名無し2022/02/26(Sat) 15:28:15ID:ExNzM3ODA(6/7)NG報告

      >>486
      で、具体的にどこからどこまでで何千年なの?

    • 488名無し2022/02/26(Sat) 15:30:21ID:I4NDM1NDg(16/16)NG報告

      >>487
      그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수정해줄게.
      근현대사부터 역사가 기록되었던 가장 오래된 시절까지(삼국사기) 일본의 침략을 셀 수 없다.

    • 489名無し2022/02/26(Sat) 16:15:11ID:g0MjgzNDY(2/3)NG報告

      >>488
      都合のいい解釈しかできない朝鮮人には、歴史は無理。
      中学生以下だな

    • 490名無し2022/02/26(Sat) 16:16:27ID:ExNzM3ODA(7/7)NG報告

      >>488
      全く具体的じゃないじゃないかw 数も数えられない上に文盲とはw

    • 491(´・ω・`)@帰省して、雪かき終わり2022/02/26(Sat) 16:34:33ID:kxNTQyMjg(1/2)NG報告

      >>460

      それは焼死体だろ?w


      【関東大震災の焼死体】原文の【 】をコピーして自分で検索して見なさいw


      そんな写真はいっぱいある

    • 492(´・ω・`)@帰省して、雪かき終わり2022/02/26(Sat) 16:37:06ID:kxNTQyMjg(2/2)NG報告

      >>479

      キミはもっと勉強しなさい

      朝鮮王朝実録『世宗実録 』114巻28(1446年丙寅)十月壬戌条

    • 493名無し2022/02/26(Sat) 17:39:36ID:g0MjgzNDY(3/3)NG報告

      >>488
      自国民を奴隷にする卑民国家、朝鮮

    • 494名無し2022/02/26(Sat) 18:24:13ID:UwMTgwNzY(1/1)NG報告

      法廷証拠は信頼できることが多いが、一方へ歪曲され得るもの。
      道徳教科書的で目次でしかない三次資料をよく利用する韓国や北朝鮮で情報を分類する時、
      注意すべき点は従属していない独立性である。2次資料も1次になりうるが、
      偽書や不正確であろうとなかろうと可能なかぎり1次を使う。

    • 495名無し2022/03/02(Wed) 23:57:47(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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