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 만주족, 신라= 스키타이

48

399
  • 1名無し2018/02/13(Tue) 07:13:35ID:A3MDA1NjU(1/1)NG通報

    고구려는 만주지역에서 시작된 나라

    백제는 고구려의 후예

    그리고 신라는 유전학적으로 스키타이, 백인유전자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신라인은 확실히 보통 아시아인과 생김새가 다르다

    실제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기록에 의하면

    신라에는 '꽃미남'들이 많았고, 아름다운 남성들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의 '화랑'들은 전부 아름다운 남자였다는 기록이 있다

    결국 현대의 한국인은 만주족 + 스키타이의 혼혈인 것이다

  • 2名無し2018/02/13(Tue) 10:32:04ID:YyODMzMjc(1/1)NG通報

    当時満州民族はいなかった

  • 3名無し2018/02/13(Tue) 10:34:41ID:g5NzQyNDM(1/1)NG通報

    空想で書いた絵を本物と思い込んでいるんだね
    韓国人は洗脳されやすいと聞いていたが、本当に簡単に思い込んじゃうんだなww

  • 4名無し2018/02/13(Tue) 10:40:44ID:MzNTM3MzM(1/1)NG通報

    >>1
    >>1
    新羅にイケメンが多いと記録されてる一次資料は?
    その図譜に付属して記載されてる漢字による解説は読めるのかい?

    日本人が提示して、現代語に翻訳してやらないと理解できないでしょ?
    提示してやっても、理解出来ずに同じ図譜を何度も持ち出してくるけど。

  • 5名無し2018/02/13(Tue) 10:45:36ID:I3MzA1NTc(1/1)NG通報

    韓国人の特徴的な顔は>>1のどれにも当てはまらないような…

  • 6名無し2018/02/13(Tue) 10:48:33ID:kwNzA1NDI(1/2)NG通報

    >>1
    他民族の自慢してどうする。

  • 7nothing_man2018/02/13(Tue) 10:49:20ID:MyMTE0ODQ(1/3)NG通報

    >>1
    その絵は、中国南朝の「양 (梁:남조)」に朝貢した国。
    しかし、日本(倭)は「양 (梁:남조)」と朝貢関係は無い!!
    だから、日本(倭)に付いては想像の絵。(※韓国人歴史学者も認めている)

     ちなみに、百済の仏教・建築に関する技術は、中国南朝の「양 (梁:남조)」から伝来。

     その絵で日本を批判したのだろうが、無知だな韓国人は(笑)

  • 8名無し2018/02/13(Tue) 10:50:55ID:kwNzA1NDI(2/2)NG通報

    新羅人

  • 9名無し2018/02/13(Tue) 10:50:57ID:I1ODEyNzA(1/4)NG通報

    >>1
    その絵は日本と中国が国交断絶していて
    全く交流が無かった時に想像で書かれたものだぞ(笑)

    しかも倭人がインド人みたいな格好しているが、
    こんな服装の絵は日本に一つも無い。

    あと、その職貢図には「新羅は倭の属国」と書かれているが
    韓国人は、新羅は倭の属国扱いで良いのか?(笑)

  • 10如月練馬◆j4Em8Win0M2018/02/13(Tue) 10:53:44ID:czMzY5Mjc(1/1)NG通報

    いよいよ韓国起源説が通用しなくなってきたんで、
    最近は自分らの起源を騎馬民族に見立てて精神勝利するのが流行ってんのか

  • 11名無し2018/02/13(Tue) 10:56:01ID:I1ODEyNzA(2/4)NG通報

    >>1
    연합뉴스 '양직공도'서 신라ㆍ고구려 제기 발견돼 기사입력 2011-08-23 13:00
    「梁職貢図」から新羅・高句麗題起が発見 聯合ニュース 2011-08-23 13:0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224764

    청대 문집서 찾아내..윤용구 박사 공개

    "신라는 倭의 속국" 논란 예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국 고대사 연구의 제1급 사료 중 하나로 간주되는 양직공도(梁職貢圖)에서 영영 사라졌다고 간주된 신라와 고구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인 제기(題記)가 최근 발견됐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신라에 대한 제기에는 신라가 왜(倭)의 속국이라는 구절이 있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과 맞물려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인천도시개발공사 윤용구 박사는 지난 20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신라사학회(회창 김창겸) 제107회 학술발표회를 통해 중국에서 최근 발견 보고된 양직공도 제기를 분석, 소개했다.

    윤 박사에 따르면 중국학자 조찬붕(趙燦鵬)이 발굴해 올초에 소개한 양직공도 신자료는 청나라 중기 때 인물로, 그림에 조예가 깊은 장경(張庚. 1685~1760)이라는 사람이 모사(베낀)한 제번공직도(諸番貢職圖)다.

  • 12名無し2018/02/13(Tue) 10:57:11ID:g2MDMxNDk(1/3)NG通報

    >>8
    腐れNHKでは『多民族 韓国』を連呼してたからな
    予防線だね

  • 13名無し2018/02/13(Tue) 11:02:26ID:g1MjE0MDk(1/3)NG通報

    戦前に朝鮮人が満州へ鉄道路を使って大量に出て行こうとした理由も近代民族思想要素はあっただろう、規制しても移動が止められない。既に朝鮮族もいたわけだし、清い時代からの段階的な脱出民もある。

  • 14nothing_man2018/02/13(Tue) 11:03:11ID:MyMTE0ODQ(2/3)NG通報

    >>9
    否、そもそも「梁(中国南朝)」とは朝貢関係が無かったはぞ。
    断交ではないと思いますよ。

     仏教伝来
    梁→百済→日本(倭)

     百済は、日本(倭)との関係を構築する為、梁(中国南朝)から伝来した仏教・建築などを日本(倭)に伝えました。
     韓国人は、「百済→日本(倭)」で精神勝利・オナニーをしています。

  • 15名無し2018/02/13(Tue) 11:05:43ID:I1ODEyNzA(3/4)NG通報

    >>1
    청대 문집서 찾아내..윤용구 박사 공개

    "신라는 倭의 속국" 논란 예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국 고대사 연구의 제1급 사료 중 하나로 간주되는 양직공도(梁職貢圖)에서 영영 사라졌다고 간주된 신라와 고구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인 제기(題記)가 최근 발견됐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신라에 대한 제기에는 신라가 왜(倭)의 속국이라는 구절이 있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과 맞물려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인천도시개발공사 윤용구 박사는 지난 20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신라사학회(회창 김창겸) 제107회 학술발표회를 통해 중국에서 최근 발견 보고된 양직공도 제기를 분석, 소개했다.

    윤 박사에 따르면 중국학자 조찬붕(趙燦鵬)이 발굴해 올초에 소개한 양직공도 신자료는 청나라 중기 때 인물로, 그림에 조예가 깊은 장경(張庚. 1685~1760)이라는 사람이 모사(베낀)한 제번공직도(諸番貢職圖)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224764

  • 16名無し2018/02/13(Tue) 11:08:07ID:g2MDMxNDk(2/3)NG通報

    >>1 あ、優秀な民族がジリ貧

  • 17名無し2018/02/13(Tue) 11:10:13ID:g2MDMxNDk(3/3)NG通報

    >>14 インドを忘れるなよ 嘘つきめ

  • 18名無し2018/02/13(Tue) 11:35:08ID:g1MjE0MDk(2/3)NG通報

    >>14
    仏教は、その他の信仰は、公式路1つではないし、経路は複数だとするべきだろう。極端に言えば北方系、南方系など。

  • 19名無し2018/02/13(Tue) 11:35:41ID:I1ODEyNzA(4/4)NG通報

    >>1
    中国で発見された梁職貢図に書かれた”新羅”について説明文

    斯羅國本東夷辰韓之小國也魏時曰新羅宋時日斯羅
    其實一也或属韓或属倭國王不能自通使聘?通二年
    其王姓募名秦始使随百濟奉表獻方物其國有城號曰
    健年其俗與髙麗相類無文字刻木為範言語待百濟而
    後通焉
    -------------------------------
    斯羅國は東夷辰韓の小国。
    魏の時代は新羅と言われ、宋の時代は斯羅と言われ、
    その実際は韓に属し、あるいは倭国王に属し、
    自ら使者を派遣する(使聘)ことができない立場であった。

    普通二年(梁武帝治世521年)その王は百済に贈り物を
    ささげる時に秦姓を名乗り始めました。
    その国は城を健年と呼び、習俗は高麗(高句麗)に似て、
    文字はなく木を刻んでいた。
    言葉は百済を通して通じていた。

  • 20nothing_man2018/02/13(Tue) 11:36:17ID:MyMTE0ODQ(3/3)NG通報

    >>17
    >>18
    百済からの伝達ルートな。

  • 21名無し2018/02/13(Tue) 11:58:26ID:kxMzA4NDk(1/1)NG通報

    >>1
    スキタイはコーカソイドであろうが、ヨーロッパ人種≒白人ではないね。北部のインド人のように黒いこコーカソイドもいるのであってさ。韓国人の議論ってこんなのばっかなんだよね。

  • 22名無し2018/02/13(Tue) 12:08:22ID:UyNDkxOTg(1/1)NG通報

    >>1
    その絵が含まれる本の中に、新羅は倭の属国と書かれているぞw

  • 23名無し2018/02/13(Tue) 12:38:03ID:E2NjQyNTY(1/1)NG通報

    そういえば下記の碑は、いまどうなっていますか?
    14年前の朝鮮日報みたいです。ネット上の記事データは消滅しています。

    全国に復元中の「広開土王碑」 日本式解釈そのままに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
    今月5日、忠清(チュンチョン)北道・陰城(ウムソン)郡・笙極(セングク)面にあるクンバウィ顔彫刻公園に復元されて話題となった広開土王碑に刻み込まれた文章だ。
    碑の横にある案内板には、このように解釈されている。「辛卯年以来、倭寇(わこう)が海を渡って百殘(百済)と新羅を討ち、臣民にしたため」4世紀後半、韓半島南側が日本の植民地だったという。
    「高句麗が中国の辺境政権に過ぎない」という中国政府の「東北工程」によって、高句麗への関心が高まり、最近になり広開土王碑が韓国各地で修復されている。
    しかし、数十年に渡り日本による悪意的な変造疑惑が提起されてきた「辛卯年の記事」 がそのまま刻まれており、「倭色(日本式)広開土王碑」という非難を受けている。
    壇国(タングク)大学・史学科の徐栄洙(ソ・ヨンス)教授は「基本的に歴史教育と歴史意識の不在のために生じること」とし、「近視眼的で商業的な広開土王碑の復元は、むしろ誤った歴史認識を広げる恐れがある」と述べた。
    独立記念館にある広開土王碑には、辛卯年の記事の中で変造された疑惑が持たれている「倭」「渡」「海」の部分が判読できないように処理されている。

  • 24名無し2018/02/13(Tue) 12:53:33ID:g1MjE0MDk(3/3)NG通報

    北方からの進出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41B-UzIUoBs
    は北周りの東沿岸からという攻め方も考えられる。

  • 25けはや2018/02/15(Thu) 21:40:10ID:k3MjA5MjA(1/1)NG通報

    >>8
    不覚にも不意討ちで笑ってしまった。
    ずるい(笑)

  • 26名無し2018/02/15(Thu) 22:13:26ID:YxODA5NTA(1/8)NG通報

    >>23
    広開土王碑(好太王碑)は中国、日本でも読み方は同じはず。
    と言うか、三国史記や中国の史書と読み比べても、そのようにしかならない。どこからどうみても韓国人が納得するようには書いてない。残念ながら。
    これを克服できないうちは先進国なんて遠い夢のままだろう。

  • 27名無し2018/02/15(Thu) 22:26:42ID:YxODA5NTA(2/8)NG通報

    >>1
    『梁職貢図』は、梁の武帝(蕭衍)の第7子、後に元帝(孝元皇帝)として即位する蕭繹が、荊州刺史を務めていた時代に作成されたと伝えられる。蕭繹は学問好きで、蔵書は10数万巻に及んだという。蕭繹は、梁に朝貢する諸国の外国使節の風貌を荊州や梁の首都建康(現在の南京)で調査し、また裴子野(469年~530年没)の方国使図を参考にしたといわれる[2]。

    原本は紛失しているが、唐の画家閻立本による模本(台湾国立故宮博物院蔵)、南唐の画家顧徳謙による模本(台湾国立故宮博物院蔵)、北宋の模本(中国国家博物館蔵)の三種類の模本が現存しているが、いずれも完本ではなく、記事に欠落も多い。「歴史地理風俗的題記」が記された北宋模本でも、絵は12国、題記は13国にとどまっていた。

    近年、歴史学者趙燦鵬によって発見された清朝時代の画家張庚による『諸番職貢圖巻』[3]では、18国の題記を含んでいる。

    模本
    原本は失われており、模本が次の四種ある。

    唐の画家閻立本による模本(「王会図」とも。台湾国立故宮博物院蔵)
    南唐(937年 - 975年)の画家顧徳謙による模本(台湾国立故宮博物院蔵)
    北宋熙寧年間の『蕭繹職貢図』(中国国家博物館蔵)
    清代の画家張庚(1685年-1760年)による『諸番職貢圖巻』(『愛日吟廬書畫續録』所収[4])
    『蕭繹職貢図』模写

  • 28名無し2018/02/15(Thu) 22:28:21ID:YxODA5NTA(3/8)NG通報

    >>27
    そもそも、一番古い模本に新羅人は書かれていない。

  • 29金玉(Kim Ok)2018/02/15(Thu) 22:40:46ID:U4OTU4NzA(1/2)NG通報
  • 30名無し2018/02/15(Thu) 22:41:19ID:YxODA5NTA(4/8)NG通報

    >>28
    申し訳ない。一番古い模写に新羅があるかないか確認していない。台湾の故宮博物館にある唐のものが古いようです。
    上(27)の画像は、北宋熙寧年間の『蕭繹職貢図』(中国国家博物館蔵)です。

  • 31名無し2018/02/16(Fri) 01:05:20ID:cwNzU1NDQ(1/2)NG通報

    스키타이인들중에 소수가 들어오긴 했던것 같습니다. 신라의 황금보검. 5세기~6세기경의 유물입니다.

  • 32名無し2018/02/16(Fri) 01:06:17ID:cwNzU1NDQ(2/2)NG通報

    세계에 단 3자루의 순금으로된 황금검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것은 신라의 황금검이라고 합니다.

  • 33天安門は魔除けの言葉2018/02/16(Fri) 01:09:47ID:E3MzQ4NDg(1/1)NG通報

    >>1
    時代で美意識変わるは無視?
    中世の頃は今より豊満な女性が美しいと思われてたとか

  • 34名無し2018/02/16(Fri) 01:15:23ID:czNzUyODA(5/8)NG通報

    >>32
    それをスキタイから盗んできたのか?
    やっぱり泥棒だったんだな。
    と、言われてしまうよ。

    1本の剣で想像は広がるが、それはファンタジーで映画や小説にすればよい。
    歴史は学問でファンタジーを排除して科学的でなければならない。
    言ってる意味分かるか?

  • 35名無し2018/02/16(Fri) 01:16:16ID:c5MzU2NzI(1/6)NG通報

    >>34 스키타이가 훔친것이 아니라 아마 교류의 흔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 36名無し2018/02/16(Fri) 01:16:42ID:c5MzU2NzI(2/6)NG通報

    >>34 일본도 5세기경에는 저런 유물이 많지 않습니까. 아마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37名無し2018/02/16(Fri) 01:19:34ID:c5MzU2NzI(3/6)NG通報

    참고로 페르시아의 서사시중에. 쿠쉬나메라는 서사시에는. 사산왕조의 마지막 왕자. 아브틴이 나라가 멸망하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도망갑니다. 그 마지막 도착지가 당시 一通期의 신라입니다. '도망간 곳에도 낙원은 없다.' 그 말대로입니다. 7세기경의 한반도는 그야말로 최후의 통일전쟁이 벌어지던 시대.

    페르시아의 왕자는 vs 백제, vs 고구려, 고구려+백제+신라 연합군 vs 당나라의 모든 중요한 전투에 참전합니다.

    마지막은 신라의 공주와 결혼하는데. 그 결혼으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이름도 높은 페레이둔 입니다.

  • 38名無し2018/02/16(Fri) 01:21:46ID:c5MzU2NzI(4/6)NG通報

    >>34 단 한자루의 검? 원하신다면 3~6세기경의 모든 신라의 황금유물을 올릴수도 있습니다.

    신라인들은) 집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한다. 밥을 먹을 때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

    966년, 아랍사학자인 알 마크디시는 <창세와 역사서(Kitabu'l Badi Wa'd Tarikh)>에서 신라를 이렇게 표현했다. 마크디시 뿐이 아니다. 9~12세기 사이 아랍의 지리학자들은 한결같이 신라를 '신비의 이상향'이자, '황금의 나라'로 표현한다.

    "신라의 공기가 순수하고 물이 맑고 토질이 비옥하다. 불구자를 볼 수 없다. 만약 그들의 집에 물을 뿌리면 용연향의 향기가 풍긴다. 전염병과 질병은 드물며 파리나 갈증도 적다. 다른 곳에서 병이 걸린 사람은 그곳에 가면 곧 완치된다."

    알 카즈위니(Al Qazwini)는 1250년 발간된 <제국유적과 인류소식>에서 신라인의 생활상을 이렇듯 생생하게 전했다. 또 저명한 철학자이자 의학자인 알 라지(854~932)의 언급을 인용했다.

    "신라는 살기 좋고 이점이 많으며, 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정착해서 떠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알 카즈위니는 "신라주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병도 적다"고 까지 극찬하기에 이른다.

    가장 잘 알려진 이는 알 이드시리(Al Idrisi ·1099~1166)이다. 그는 <천애횡단갈망자의 산책(Nuzhatu'l Mushtaq fi Ikhtiraqi'l Afaq·일명 로제타의 書)>에서 이렇게 전했다.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이 너무 흔하다. 심지어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

    신라 사람들의 외모가 장난이 아니며, 한번 신라를 방문하는 이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단다. 뿐인가. 세상에! 집을 비단·금실천으로 단장하고, 식사 때 금그릇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개의 쇠사슬과 원숭이 목걸이까지 황금이었다니….

  • 39名無し2018/02/16(Fri) 01:24:34ID:c5MzU2NzI(5/6)NG通報

    세기 중엽의 기록인 <삼국지>는 “삼한에서는 금은을 보배로 여기지 않았다”(‘위서·동이전’)고 했다. ‘황금 보기를 돌 보듯 했다’는 얘기다. 신라는 언제부터 황금을 ‘돌’이 아닌 ‘황금’으로 보았을까. 이한상 교수(대전대)는 “4세기 말부터 신라가 주변을 복속하면서 왕과 왕족의 권위를 내세우는 금 위세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삼국지>는 “의상(고구려)과 모자(부여)를 금은으로 장식한다”(‘고구려·부여조’)고 기록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142123505&code=990000#csidx735b93d3e344514bfb38a7f4f7c30fe

    문제의 개목걸이 입니다. 중국기록서에도. 원래 삼한에서는 황금은 화폐의 가치가 없엇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황금이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4세기 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1930년대까지도. 한반도에서의 금생산력은 세계 10위안에 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일본이 세계 3대 금광국이 되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라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개목걸이 입니다.

  • 40名無し2018/02/16(Fri) 01:27:21ID:c5MzU2NzI(6/6)NG通報

    일본인들이 원하신다면 여기 모든 신라 황금유물을 올려보겠습니다. 그리고 5세기의 일본의 황금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상 올리면 스레의 주제와는 너무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 41名無し2018/02/16(Fri) 02:18:32ID:czNzUyODA(6/8)NG通報

    >>40
    「黄金の国ジパング」 マルコポーロ
    これも読んだ方がいい。

  • 42金玉(Kim Ok)2018/02/16(Fri) 06:36:44ID:YxNjg2ODg(2/2)NG通報

    >>37
    「クシュ・ナーメ」の主人公アブティンや子供のフェリドゥーンはイラン神話の登場人物で、別にササン朝最後の皇子とかではない
    当然ながらそんな時代に新羅も存在しない
    実際に出てくるのは「Basilā」という名前の「島国」である。
    つまるところいつもの捏造ホルホルネタ。

    "Abtin is warmly received by Teyhur and he stays in the island which is referenced as Basilā, Kuh and Jazira in the book. "

    https://en.wikipedia.org/wiki/Kush_Nama

  • 43名無し2018/02/16(Fri) 09:11:29ID:czNzUyODA(7/8)NG通報

    大阪にある5世紀の天皇の墓
    大仙古墳

  • 44名無し2018/02/16(Fri) 09:13:02ID:czNzUyODA(8/8)NG通報

    もう1枚
    大仙古墳(5世紀)

  • 45熱湯浴2018/02/16(Fri) 16:22:25ID:k4MTUxODQ(1/1)NG通報

    >>1
    新羅人が平たい顔の朝鮮人に最も近いんではないのか?満州族ってのも髭が無く、平たい顔族だ。
    と言うことは百済が有った地方に珍しく産する朴賛浩のような毛深い奴は日本人の末裔と考えられるが、どうだ?
    https://ja.wikipedia.org/wiki/%E6%9C%B4%E8%B3%9B%E6%B5%A9

  • 46名無し2018/02/16(Fri) 16:40:44ID:Y0Njk4NDg(1/1)NG通報

    新羅人は穢族の末裔じゃないの?

  • 47名無し2018/02/17(Sat) 00:53:52ID:gxNTc4NDM(1/1)NG通報

    なんで金で剣を作るの?
    その前に、それぞれの韓国人の言っていることと時系列が滅茶苦茶だ
    誰が嘘付きで、誰が正しいの?
    それとも、全員が嘘をついているの?

  • 48名無し2018/02/17(Sat) 05:28:38ID:E0NTEyMA=(1/1)NG通報

    南朝鮮人は、いつになったら
    自分たちが1300年代に朝鮮半島に勝手に居座った
    エベンギ族だったと認めるのか?
    犬でも何度か教えれば、ひとつやふたつ憶えるぞ?
    南朝鮮人は犬以下の学習能力しかないのか。

レス投稿

画像をタップで並べ替え / 『×』で選択解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