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戦争 米軍の細菌戦の実態
米軍は731部隊から入手した情報を使い細菌戦を行った
発疹チフス、チフス、コレラ、赤痢、ペスト、天然痘、マラリヤ、黄熱病などの細菌を航空機から市街地にばら撒いた
パイロットの証言
http://blog.goo.ne.jp/yshide2004/d/20080711
http://blog.goo.ne.jp/yshide2004/e/be5663fef84a46fc4b88c8ec0a7c33d4
国際科学委員会報告書
「朝鮮と中国の人民は、たしかに細菌兵器の攻撃目標になっている。この兵器をつかっているのはアメリカ軍部隊であり、その目的に応じてじつに種々さまざまのちがった方法をつかっているが、そのうちのいくつかは、第2次世界大戦中日本軍のつかった方法を改善したものであると思われる。」
米軍「細菌戦の実戦テストをせよ」資料発見
https://ameblo.jp/khbong/entry-10485372244.html
被害者の証言
「その後、4月ごろ、腸チフスのようなひどい流行が広がり、村の人々が高温になり、食欲がなくなり、腕や脚に痛みがあった。」
村に約50世帯がいて、彼は続いて、30人以上が死亡した。」
「私の父は死んだ。彼は高熱に苦しんで、体の下半身を使うことができず、食べられずに動くこともできなかった。」
「アメリカ人が私たちに苦痛を与え、私たちを不幸にし、韓国人を消すために、細菌爆弾を散布して私たちにした残虐行為について、世界の平和を愛する人々に伝えてほしい。」
マッカーサーは朝鮮戦争で原爆を投下しようとしていた
南韓の人々は真実に目覚めないといけない保導連盟事件も日米が裏にあるのは李承晩から聞きました。
>>1
日米はたぶん朝鮮半島に関わるとめんどくさいと思っているので目論見なんぞありません。
せいぜい壁くらいに思ってるでしょうね。>>1
とても共感します。
スレ内容ににふさわしいBGMを用意しましたので
良かったら使ってください。
Dream~「新日本ハウス」CMヴァージョン~YouTubehttps://youtu.be/zq3ZgBGJtVc
>>1
そうだよ~~~
日米は朝鮮半島を支配しようと目論ろんでるから中国と手を結ぼう^^
きっともろ手を挙げて歓迎してくれるよ~~
明日にでも中国陣営に入ってください
お願いですからお願いします^^日米がなければ北朝鮮とおなじゴミども
>>1
汚物を消毒しようとしただけだろう!
何が悪いの?>>10
ベトナムは?>>1
世界は朝鮮半島と関わりたく無いので
支那韓国北朝鮮で好き勝手にやってほしい。
北朝鮮の天然資源はすごいらしいぞ!そんなに韓国が大事なら何でFTA破棄されようとしてるの?
何で大事な国の大統領を軽く扱って日本とばかり相談してるの?>>16
ㅋㅋㅋ이거 완전 또라이네
왜 일본 교과서에 반대되는 서술하고있어?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비전투원을 '학살'한적은 없다
반면 일본군이 '같은 나라'였던 조선인을 마음대로 죽인 사례는 많지
심지어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도 자경단을 만들어 마음대로 죽이고
조선의 왕이 부탁한 사실은 어디있는가???????공식기록있어?
날조한것도 사실이 되는 일본에선 날조사실도 사실로서 당연한건가?
일본이 중국에 말도 안되는 구실을 걸어 전쟁을 시작한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당시 상하이에 있던 유럽의 기자들이 진실을 말하기시작했다
은폐하려고해도 소용없다
진주만에 기습한거아니야? 기습하기 1분전에 선전포고한거? 그것도 선전포고냐?
하와이는 지금도 미국땅이야 이상한 하와이추장이 구해달라고했다는거 그것도 조선의 사례랑 똑같이 만들어 거짓말하고있을뿐이지ㅋ
이 정도로 인터넷역사지식을 갖고있으면
너 正史를 접했을때 분노에 겨워서 펑펑 울것같구나?!>>24
その通り。
中国は金正恩は邪魔だが、北朝鮮という緩衝地帯は必要としている。
アメリカの空爆で北朝鮮の体制が不安定になったら、中国は金正恩を強制連行し、傀儡政権を立てる。
中朝軍事同盟があるから、「援軍」として人民解放軍を送り込めば、無抵抗でDMZまでいける。
北朝鮮は二日で中国人民解放軍に占領され、金王朝の圧政から「解放」される。だからあなたの国の歴史教育がファンタジーなんだって。
事実とはかけ離れてるんです。
わかった?>>31
謝罪は撤回したぞ。
そして韓国はベトナムへの賠償もしていない。>>31
あと、戦争中に交戦の間に起こったことって韓国では「民間人を虐殺して強姦すること」を言うの?>>39
とりあえず慰安婦像でも作って落ち着け。>>37
러일전쟁 때 일본 육군 군의관들은 수시로 몰려오는 환자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전선의 야전병원을 찾은 병사들 절반이 팔다리가 퉁퉁 붓고 때로는 호흡곤란 증세까지 보였다. 각기병 환자였다.
군 의료 기록인 메이지전역육군위생사(明治戰役陸軍衛生史)에 의하면 러일전쟁 때 전투로 인한 부상병이 아닌 일반 환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4%가 각기병 환자였고 숫자로는 11만751명에 달했다.
각기병은 비타민 B1 부족이 원인으로 주로 잘 도정한 흰 쌀밥을 주식으로 먹을 때 생긴다. 잡곡밥만 먹어도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발병 원인을 몰랐기에 병사들에게 여전히 흰 쌀밥이 지급됐고 환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일본군 병사들이 쌀밥을 얼마나 먹었기에 그토록 엄청난 숫자가 각기병에 걸렸던 것일까?
청일전쟁 때 공표된 전시 병사 식량규정에는 병사에게 하루 백미 900g, 육류 및 생선 150g, 채소 150g, 장아찌 50g을 지급한다고 돼있다.
쌀 한 공기가 대략 90~100g이니 식욕이 왕성한 20대 초반의 젊은 병사가 한 끼에 두세 공기씩 흰 쌀밥만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양이다.
당시 일본 육군은 부식을 현물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전쟁터에서 고기와 생선, 채소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된장이나 간장만 있어도 식사를 했던 일본인이기에 최소한의 반찬으로 쌀밥만 먹다가 각기병에 걸렸던 것이다.
일본 육군은 그 많은 쌀을 어디서 조달했기에 병사들이 각기병에 걸릴 정도로 쌀밥을 먹였던 것일까?>>38
자국에서 짓는 벼농사만으로는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일본의 군량미 공급기지는 바로 한반도였다.
물론 1904년부터 1905년까지 2년간 진행된 러일전쟁은 경술국치가 이뤄지기 전의 일이다. 그러니 한반도에서 마음대로 쌀을 수탈해 갈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일본 군부는 상인을 앞세워 조선에서 쌀을 사들였다. 1900년을 전후해 일본의 상인들이 조선으로 몰려왔다. 일본 군부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조선의 친일파를 앞세워 엄청난 돈을 뿌려가며 쌀을 긁어모았다. 부산에서 진주를 거쳐 김제평야·호남평야 등 남부의 곡창지대를 돌아다니며 쌀을 사들여 침략전쟁의 군량미로 삼았다.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1910년의 통계에 따르면 그해 조선의 쌀 총생산량은 약 1000만 석이었고 이 중 5%에 해당하는 54만 석을 일본이 가져갔다.
러일전쟁은 경술국치 전이니 이보다 적은 규모를 가져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만주에 출병한 일본 병사들은 각기병에 걸릴 정도로 쌀밥을 배불리 먹으며 싸웠던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에서 생산되는 쌀의 일본 반출은 총생산량의 10%에서 20%, 30%로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함께 태평양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쌀 수탈은 절정에 이르렀다.>>42
베트남은 또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에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1995년 김우중은 모두가 만류할 때 "한강의 기적을 수출하자"면서 베트남에 거금을 투자해 외자유치의 물꼬를 텄다. 베트남 정부는 은인과도 같은 김우중을 '홍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한 벤치마킹의 경제고문으로 삼기도 했다.
김대중은 1998년 베트남 방문 때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고 '양국간 불행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처음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2001년 8월 방한한 쩐 득 르엉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이명박도 박근혜도
당파를 가르지않고 사과를 하고있다
근데 일본은?>>41
サムソンが輸出した米のこと?
普通にサムソンが農家から米を買い、米を日本に輸出して儲けたのに?
収奪とは強制的に奪い取ること。
日本は米を収奪してないですよ。>>44
그뿐만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기름을 짜야 한다며 갖가지 종자까지 모아서 바치도록 했고 놋그릇과 수저까지 공출해 갔다.
일본은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1939년 조선미곡 통제령을 발표, 조선 쌀의 통제를 제도화하면서 쌀 공출 제도를 실시한다.
그 결과 1941년에는 쌀 생산량 2152만 석 중에서 43%를 빼앗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에는 1891만 석 중에서 63.8%를 수탈했다. 한반도에서 농사 지어 수확한 쌀의 3분의 2를 가져간 것이다.
농사 지은 쌀 대부분을 일제에 빼앗긴 상황에서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만주에서 조를 비롯한 잡곡을 들여와 부족한 식량을 채우고, 감자·고구마·옥수수 등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심지어는 콩깻묵까지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됐다.
흔히 우리는 옛날부터 쌀이 부족해 쌀밥은 일부 양반 계층만 먹었고 농민은 보리밥으로 연명하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맞으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허기진 배를 채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48
하지만 그것은 일제 강점기 때의 이야기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인 18~19세기 조선은 쌀밥의 나라였다.
18세기 중반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전라도는 논이 많아 추수가 끝나면 백성은 모두 쌀밥을 먹고 콩과 보리는 천하게 여긴다’고 했다.
호남은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므로 호남 농민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19세기 전후인 정조 때 승정원일기에는 당시 조선 백성은 모두 쌀밥을 먹었다고 나온다.
“백성의 풍속이 쌀을 귀하게 여기고 조를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비록 가난하고 천한 무리라도 반드시 흰 쌀밥을 먹으려 들고 잡곡밥(脫粟)은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1910년 통계에 곡물 생산량 중 쌀이 약 44%를 차지했으니 백성들 대부분은 쌀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국력이 쇠퇴하던 조선 말기에도 쌀밥을 먹던 조선 백성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쌀밥 구경이 어려워졌다.
우리가 쌀 자급을 이룬 것은 1975년이다. 일제 강점기는 36년이었지만 다시 쌀을 자급하기까지는 65년이 걸렸다. 나라가 힘을 잃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쌀밥이 웅변으로 보여준다.>>47
戦争末期は日本も同じですよ。韓国人だけが米を食べれなかっ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日本人と同じです。>>57
米や鉄の収奪は戦争末期だけで、日本でも行われていた。
知ってました?>>53
たくさんウソ歴史を張ってご苦労様^^
何回も言うように、俺たちは、韓国政府や韓国人に「うその歴史で日本を困らせて申し訳ありませんでした」って言ってもらわなくてもいいんだよ!
ただ、ベトナムにはちゃんと「ごめんなさい。たくさんの罪の無い人々を殺害し、己の性欲を満たすためだけに強姦し、その上笑いながら殺害して申し訳ありませんでした」ってちゃんと謝れ!>>43
李栄薫教授の『大韓民国の物語』や、エッカート教授の"Offspring of the Empire"を読んでいないようだな。韓国人は自分の国の歴史をまったく知らない。
李栄薫教授は、当時の資料に基づき、朝鮮人地主は当時の相場よりも高い値段で日本に米を売って、大儲けしたことを実証している。
当時の朝鮮半島には近代産業はなく、投資先がなかったので、朝鮮人地主は、その金で自作農の土地を買い集めた。
そのために土地の兼併が進み、自作農が没落して、大地主が出現し、貧富の差が開いた。
日帝に土地を奪われたといっている人がいるが、実際は日本への米の輸出で儲けた朝鮮人地主が、自作農から土地を買いとったのだ。
その後、朝鮮人実業家が現れ、京紡という朝鮮人資本家の作った紡績会社が地主たちから金を集め、近代産業として成長しはじめた。
その経緯はエッカート教授の"Offspring of the Empire"に詳しく描かれている。>>61
韓国では輸出が収奪なのですか?>>65
歪みがあるか無いかは世界が決める。
お前が決めることじゃない>>65
誰がいつ日本語版を読めと言ったかちゃんと読もうね?>>63
토지조사사업이후에 조선인 지주가 줄어든다
그 빈자리는 이주한 일본인 지주가 채운다
(토지조사사업)의 목적은...소유권조사에 관한 문제이고 또 이것을 누구에게 귀속시킬까라는 문제였다. 이것 이전에도 스스로의 약탈적 목적을 추구하고, 조선에서의 식민지지배의 계급적 동반자로서 봉건지주를 옹호하려 한 일제가 그 귀속을 누구에게 유리하게 했을까하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기간에 지주수는 절대적으로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도 증가하였다. 한편 자작과 자작겸소작농은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감소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감소한 자작농과 자작겸소작농은 많은 경우 소작농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소작농은 절대적 또는 상대적으로 증가하였다.
......
약탈된 토지는 새로운 지주 즉 침략자의 수중에, 그리고 종래의 봉건지주의 수중에 집중되게 되었다. 즉 1918년에는 8,200여가구(농가호수의 3.1%)의 지주가 총경지면적의 50.4%, 즉 434만 3,000정보를 소유하고 있고, 그 중에서 일본인 지주는 1910년에 약 2,000명이었는데 1918년에는 1만여명으로 늘었다...1921년 현재, 150정보 이상의 대지주는 조선인 160명에 비해 일본인은 이미 277명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
1910년 11월에 일제가 발표한 취조국훈령은 확실히 그 대표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토지제도․양반제도․조선의 구습제도의 조사․종교와 사원제도의 연구․소작제도관습의 조사를 통하여 옛 조선의 제도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 하였다.
...
이 사업에 의해 일제는 조선에서의 구봉건세력을 옹호하고, 그 들의 소유와 착취를 보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동맹자를 얻을 수 있었다.
...
대지주의 출현, 대지주로의 토지집중이 진행되는 이면에는 소토지 소유자의 세분화가 진행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자작농 및 자소작농의 토지 상실, 내지는 세분화가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즉, 영세규모의 자작농경영이 증대되었다대지주의 대부분은 부재지주로서 농업경영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으며 농민에 대한 봉건적 착취와 고리대적 관계, 신용관계를 통한 수탈에 의거해서 살아왔다. 동시에 그들의 대다수는 공업․광업․상업, 기타의 분야에서 노동자들의 착취에 지반을 두고 있었다. 여기에 봉건지주와 자본가, 그리고 일제와 봉건지주의 공통된 이해관계의 정치, 경제적 기초가 있다.
...
조선인 자본의 절대적 증가는 주로 일제의 비호하에 육성된 예속자본의 성장에 기인한다.
...
그들은 중개상업․고리대자본가로서 또는 토지획들을 위한 투기업자로서 조선농촌의 전자본주의적 착취와 결합
...
그들은 일제자본과 결탁하여 조선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동맹자가 되었다.
예를 들어 1927년의 조사를 보면 그들은 조선식산은행의 주식을 4만 3,000주 가지고 있었고 조선상업은행의 주식은 1만 4,900주, 조선 철도회사의 것은 1,600주를 갖고 있었으며 기타 동척․불이흥업주식회사 등에도 투자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의 독립된 회사의 설립을 통하여 또는 일제자본가와 공동으로 회사를 창설하는 길을 통하여 일제에 예속된 자본가, 또 일제의 옹호자가 되었다.
...
조선인민의 대량도살과 친일분자의 협력하에 병합조약은 체결되었다. 이완용, 송병준 이하 76명은 귀족의 칭호와 현실의 화폐를 획득하였고, 구한국관리 3,645명에게는 총액 679만원의 은사금이 배당되었다.>>72
이 과정에서 토지소유권의 결정은 ‘신고주의’에 의한 것이어서 물정 모르는 농민들이 허둥지둥하는 동안, 소수의 수조권자와 부농들은 모든 간활한 수단을 다해 사유토지를 취득․확장하였다. 그 반면 그때까지 현실적인 토지점유자며 경작자였던 수많은 농민들은 토지점유권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대로 그 점유지를 경작하던 경작권의 보증까지도 잃게 되었다.
...
일본제국주의는 조선농민을 강력하게 착취하고 토지를 일본인과 지주의 수중에 집중시키고 토착지주를 일본제국주의 편으로 끌여들였던 것
- 이기수, '경제사', 전석담. 박극채 외, <조선경제사탐구> 가운데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한 목적은 한국을 그들의 식량․원료 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서 봉건적 토지소유와 착취관계를 법적으로 공공화하는 동시에 지주를 식민지통치의 사회적 기반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 강동진, <일본근대사> 가운데
좀 보고 배워라
일본이 식민지배를 축소시키려는 그런 시도는 너의 머리에 있는것은 잘 알았다>>69
言葉以前にやはり理解できないのかな?(´;Д;`)
韓国と日本以外の原文の資料を調べて見なさいと言ってるの(´;Д;`)
第三者の国だったら日本や韓国の捏造は出来ないし難しいでしょ?물산 장려 운동 (1920~1923)
- 회사령 철폐와 관세 철폐와 관련한 움직임.
- 토산품 애용 등을 통한 민족 기업 및 상업 자본 육성을 목적으로 함.
- 평양 조만식 조선 물산 장려회 설립 (1920) -> 서울로 확산 (1923)
-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 '내 살림 내 것으로' 등의 구호를 외침.
But, 조선 총독부의 탄압과 방해로 실패>>70
おまえはどれだけ小さいんだ?
もう怒った^^
韓国政府や韓国人に「うその歴史で日本を困らせて申し訳ありませんでした」って言わせる^^>>74
君ははやく真実に直面するといいね^^>>57
韓国の学校で教えているのは、左翼運動家が捏造したファンタジー歴史で、韓国以外ではまったく相手にされていない。
真実が知りたかったら、世界的に認められたエッカート教授や李栄薫教授の本を読め。
"Offspring of the Empire"や『大韓民国の物語』には、朝鮮半島の本当の近代史が書かれている。광주 학생 항일 운동 (1929)
- 일본 남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하여 한일학생간 충돌이 일어남
-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
- 신간회의 지원
-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하였음.
-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에 대한 비판 -> 한국인 본위의 교육 제도를 마련해 줄 것을 주장함.
- 학생이 주도한 1920년대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 (3.1운동 이후)>>82
일본의 통치 (1920)
- 문화 통치 : 친일파를 양성해 민족 내부 분열 조장. by 사이토 총독
" 정부 정책에 잘 따르는 민간 유지에게 암암리에 조선인 중 진정 우리와 같은 이상..."
" 친일적 단체를 조직하게 한다." ...
- 헌병 경찰 제도 -> 보통 경찰 제도
But, 경찰 관서, 인원, 비용은 증가함.
- 언론, 출판의 자유 허용
But, 검열 강화로 언론 자유 무시. 기사 삭제하고 난리남
- 제 2차 조선 교육령
초등교육, 기술교육만 확대. 경성 제국 대학 설립.(1924)
1. 보통학교 4년 -> 6년 2. 조선어 필수 과목 3. 사범 학교와 대학을 설치가능.
- 도평의회와 부, 면 협의회를 설치함 : 친일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
- 치안 유지법 제정 (1925)
반정부, 반체제 운동 탄압.
제 1조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한 자" (사회주의자 운동 탄압)
역시 멍청하니 설명해도 알아듣는걸까 의심이 든다의열단 (1919~)
김원봉, 윤세주, 곽재기 등이 조직 - 의열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였다.
일본 식민 지배의 근간이 되는 인물 처단, 시설물 폭탄으로 파괴하는 활동방향 有
김익상 - 조선 총독부에 폭탄 투척 (1921)
신채호 - '조선 혁명 선언' (1923)
의열단의 행동 지침. 민중의 직접 혁명을 주장함
"내정 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 누구이냐?"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나석주 -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 투척 (1926)
단원 중 일부가 황푸 군관 학교에 입교 (1926),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설립 (1932) - 민족 혁명당 결성에 참여
일제의 통치가 좋았으면 이런게 왜 있어?1930년대 일본의 통치
- 일제의 침략 전쟁 확대
일본이 상하이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하였다. (만주사면,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 황국 신민화 정책
황국 신민의 서사 암송, 신사 참배 강요. - 전국 각지에 신사를 증설함.
소학교 -> 국민학교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
- 내선일체론 : 조선과 일본은 하나
- 일선 동조론 : 일본인과 한국인의 조상이 같다
- 창씨개명 강요, 학교와 관공서에서 조선어 사용 금지
- 제4차 조선 교육령 공포
- 독립운동가 탄압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 (1936)
조선 사상범 예비 구금령 (1941)
- 언론 탄압
조선일보, 동아일보 폐간 (1940)>>80
なんで収奪しようとする相手に教育を与えたんだよ^^
太らせて食うってんだろ?
欧米の植民地支配ってどんなものか調べてみたら?
あと、併合だからね?
君たちの先祖はもと日本人なんだよ?>>80
んじゃ調べ方わからないし、文字も読めない様だからテキサス親父のYouTubeでも見たら?
あの人はもともとプロパガンダが許せなくて日本はプロパガンダ大国と思ったから調べまくったら日本人以上に詳しくなった人いるから見たら?
どうせ信じないのは分かってるけどね( ̄◇ ̄;)1930년대 일제의 경제침탈
- 대공황 (1929), 만주 사변 (1931) 등 침략전쟁 확대 -> 한국의 병참 기지화를 위한 공업화 정책
- 공업 발전 지역의 편중 -> 산업 불균형 (경공업<중화학 공업)
- 농촌진흥운동 (1932~1940)
조선 농지령 제정 (1934)
'자력갱생'을 슬로건으로 한 농가 갱생 계획 수립
대공황으로 더욱 궁핍해진 농민의 저항을 무마하려고 한 운동임
관련 사료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의 연설 1932년
"농촌 진흥 개선에 뜻을 가진 자는 적절하고 철저하게 지도계발에 나서야 한다"
농가 경제 경생 계획 수립에 관한 방침 1933년
"각 농가의 경제 갱생을 위한 ..."
- 남면북양 정책
남부 지방은 면화, 북부 지방은 양 사육
한반도를 원료 공급지로 만들기 위해서 추진한 정책임.
- 국가 총동원법 제정 (1938)
지원병제 (1938), 학도 지원병제 (1943), 징병제 (1944) -> 청년들을 전쟁에 강제동원함.
국민 징용령 (1939), 여자 정신 근로령 (1944) -> 전쟁준비에 필요한 노동력 수탈
공출 (금속 및 식량 수탈)
식량 배급제 실시 - 식량이 부족해져서 배급하는거
제4조 "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는 ...."의열 투쟁
- 한인 애국단
대한민국 임시 정부 침체 극복을 위해 김구가 상하이에서 조직 (1931)
이봉창 : 도쿄 일본 국왕의 마차를 향해 폭탄 투척 -> 상하이 사변 발발 (1932)
윤봉길 :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의거 (1932)
" 집 밖으로 나오자 거리 분위기가 술렁이며 평소와는 달랐고...."
"폭탄을 던진 사람이 중국인이 아니고 한인 청년이라고 고쳐 보도되었다."
-> 중국 국민당 정부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원 계기 마련言葉が理解できないから抜けます( ̄◇ ̄;)
まぁ朝鮮人は
抜けたということは私の勝利だ
とでも思って精神的勝利でもしてたら良いよ( ´∀`)
知能指数が低くて自分の閉じた世界しか見えない朝鮮人に話をするだけ無駄ですし疲れるだけですから( ̄◇ ̄;)
皆さんも適当に遊んでストレスたまらない程度に遊んで下さいね( ´∀`)
お疲れ様でした( ^ω^ )- 조선어 연구회 (1921)
'갸갸날' 제정. 기관지인 한글 잡지 간행
- 조선어 학회 (1931)
최현배, 이윤재 등이 주축. 한글 잡지 간행. 한글 맞춤법 통일안, 표준어 제정. '우리말 큰사전' 편찬 시도
조선어 학회 사건 (1942)
-> 일제가 조선어 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간주하여 해산 시킴.>>85
創氏改名強制って言うけどさぁ、
日本式の名前を名乗らせてって言ってきたの朝鮮人だからね?
台湾で認められて日本人である朝鮮人が認めらら無いのはおかしい!って苦情がきたから
日本政府は「じゃぁ改名したい人は役所で手続きして」ってなったんだよ?
もうファンタジーすぎてかわいそうだよ。>>90
>基本的に親日地主を利用して米を安く買って
韓国人に売るより高く売れた。それを韓国人が輸出。
それをお前は収奪と言っている。
全然、事実と違いますね。
経済活動の一環です。あと、あんたらが世界に誇るハングルを一般に広めたのも日本人だからね?
最後に
さっきからハングルの証拠ばかりだよね?
その時点でダメなのを理解しよう( ´Д`)y━・~~金九って強盗殺人犯でしょ?
韓国でも今の若者は気づいているって話だったと思うけど?>>99
역사를 바로봐라 멍청한 역사수정주의자야
쪽바리는 너무 사고방식이 저열하고 논쟁이 시작되려고하면 도망치기때문에
너무 재미없다
응 다음에 또 오고~ 병신 ㅋㅋ>>100
過激派軍部が好きって・・・
お前らのヒーローがテロリストなのを棚に上げるなよ^^倭米じゃなくて美倭にすべきだった
>>105
お前らが謝れって!「ウソの歴史を撒き散らして日本にご迷惑をおかけしました」って!>>109
朝鮮人が殺害したと王族関係者の証言が残ってますね。>>113
サムソンが儲けただけの話がなぜ収奪なのですか?
韓国牛は韓国人には高すぎですが、輸出しています。
収奪ですか?>>115
朝鮮人の証言は無視ですか?>>113
植民地なら有無を言わさず100%自分の土地にしちゃうでしょ?
なに言ってんの?>>115
だから証拠は?미우라 고로
조슈한[長州藩]에서 출생하였다. 막부(幕府)타도운동에 참여하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신정부의 군인이 되었다. 1878년 육군중장, 1888년 예편 후 1890년에 귀족원 의원, 1895년 주한공사로서 조선에 부임한 그는 10월 8일 새벽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일본군과 경찰 및 낭인(浪人)들을 동원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고 그 시신(屍身)을 불태우는 국제적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다. 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시해된 황후가 궁궐을 탈출한 것처럼 위장하여 폐서인조칙(廢庶人詔勅)을 내리도록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궁궐에 있던 미국인 다이(M.W.Dye:爹 伊)와 러시아인 기사 사바틴(H.N.Sabatin)이 현장을 목격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때문에 소환되어, 일시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910년 추밀고문관(樞密顧問官)이 되었다. 이후 계속하여 정계의 배후조종자로서 활약, 1924년 이른바 호헌삼파(護憲三派:憲政·政友·革新俱樂部) 성립에 진력하였다.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 30분께, 소총으로 무장한 한 무리의 군대와 일본도 등 흉기를 든 일본인 폭도들이 경복궁의 광화문 앞으로 몰려들면서 본격 시작됐다. 조선 주둔 일본군 부대인 경성수비대와 일본군 장교로부터 교육받는 조선훈련대, 일본 공사관원과 영사관원, 경찰과 낭인 등으로 구성된 한일 혼성부대였다.
이들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탄 가마를 앞세워 호위하면서 일제히 광화문을 통과한 뒤 건청궁으로 난입한다. 조선 왕비인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이른바 '여우사냥' 작전이었다.
일본 측은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물리치고자 했던 명성황후를 제거할 목적으로 왕비의 아버지이자 정치적으로 견원지간이었던 대원군을 '괴뢰'로 내세워 쿠데타를 위장한 살해작전에 나섰다.
왕비 침전에 난입한 일본인 폭도들은 왕비와 궁녀들을 무참히 살육한 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왕비 사체를 부근 녹산으로 옮겨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석유를 끼얹어 불태웠다. 그리고 타다 남은 유해를 근처 연못에 버렸다가 증거 인멸을 위해 다시 건져 녹산에 묻었다.
일국의 왕비가 자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시위대가 지키는 왕궁 안에서 외국 군대와 폭도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고 불태워지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발생한 것. 하지만 시해 1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범인의 정확한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 채 단순히 낭인들에 의한 시해 정도로 얼렁뚱땅 치부해왔다.
이 교수는 청일전쟁 후 동아시아 패권을 다투던 일본 정부가 왕비 살해라는 막중한 임무를 깡패나 다름없는 낭인패들에게 맡겼을 리가 없다는 의문에서 출발해 자료 탐색에 나섰다. 을미사변을 바라보는 시각틀 자체를 바꾼 가운데 사건과 범인의 정체를 제대로 밝혀야 당시의 진상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저자가 명성황후의 직접적 시해범으로 미야모토 소위를 지목하는 결정적 단서는 을미사변 당일에 우치다 사다쓰치 주한영사가 본국의 하라 다카시 외무차관에게 보낸 '우치다 사신'. 이는 현존하는 을미사변 관련 기록 중 그 전말을 가장 충실하게 적은 문서로 평가받는다.
사건 발생 후 뒷수습에 깊숙이 관여했던 우치다 영사는 이 비밀 서한에서 "살해당한 부녀 중 한 명은 왕비라고 하는 바, 이를 살해한 자는 우리 수비대의 어느 육군소위"라고 언급한다. 당시 경성수비대에는 모두 4명의 소위가 있었는데 그중 살해 현장에 난입한 유일한 인물이 바로 미야모토 소위였다고 이 교수는 밝힌다. 우치다 영사는 사건 한 달 뒤 히로시마 지방재판소 검사장에게 보낸 공전(公電)에서 "왕비는 먼저 우리 육군사관의 칼에 맞고"라고 증언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육군사관' 역시 미야모토 소위다.
이와 함께 미우라 고로 공사는 사건 발생 6일 만에 이토 히로부미 총리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이번 사건은 그 방법이 다소 졸렬하여 남루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는 비방은 면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본시부터 만부득이한 출발로써 능히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 사실이라, 이렇게 얻은 과실은 끝까지 상실치 않도록 힘써주시라"고 언급한다. 물론 이웃나라 왕비를 무참히 살해한 데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 사죄의 기미는 전혀 없다.
당시 사건현장에 있던 미야모토 소위와 마키 특무조장은 사건 한 달여 뒤 본국으로 소환된 뒤 참고인 조사를 대충 받았고, 다시 1년 9개월 후에 타이완 헌병대로 발령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마야모토를 (타이완으로) 보낸 배경에는 그가 일본에서 계속 생활할 경우 을미사변에서 자신이 한 역할을 발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어서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미야모토는 타이완 항일투쟁자들과 교전중 사망하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웃나라 왕비를 살해한 자를 야스쿠니 신사에 다른 전사자와 합사해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으로 모시는 사실이 훗날 밝혀질 경우 국내외로 큰 물의를 빚을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을미사변의 총책임자로 지목된 미우라 공사를 비롯해 일본인 56명(군인 8명, 민간인 48명)은 사건 3개월여 만에 모두 무죄 판결을 받는다.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참사이자 민족 자존심을 짓밟은 을미사변은 커다란 상처만 남긴 채 이처럼 허무한 결말을 짓고 말았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122
19世紀末にロシア人ゲ・デ・チャガイが編集した『朝鮮旅行記』の『1895年-1896年の南朝鮮旅行』の章に、ロシア参謀本部のカルネイェフ中佐が「1895年11月26日に実行された王妃暗殺では、間違いなく大院君がかなりの役割を演じていた」と発言していたことが記述されている。韓国の独立運動家にして大韓民国臨時政府第2代大統領だった朴恩植も閔妃暗殺犯を興宣大院君だと指摘した
目撃者
純宗・高宗
純宗は禹範善が「国母ノ仇」であるとし、それを現場で目撃したと証言している。禹も自分が王妃を殺害したと自ら漏らしたとされる[43]。また現場にいた高宗は「我臣僚中不逞の徒」(私の部下の中に犯人が居た)と述べている[27]。アメリカ イラクでの蛮行
女性を轢いたあと無視して逃走
人が乗ってる民間車両を遊びで射撃
市街地上空でヘリコプターから射撃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xm6hC2oW5P8
グアンタナモ、アパッチやRQ-1にやられた民間人を忘れてならない
2007年、WikiLeaksで公開された有名な民間人射撃映像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46wE9uI4_pg
この後倒れてる人を助けに来た民間車両まで銃撃し乗っていた親は死亡し子供に重傷を負わせた>>130
弱い朝鮮を守った日本にも有難うございましたと言えよ>>122
証拠全くないよね?
誰が殺したかわかってないよね?
両藩に虐げられ続けた朝鮮人の犯行の可能性もあるよね?
さらに言えば試し腹と称して肉親に強姦され続けた性奴隷の朝鮮半島すべての女性の恨みであることも考えられるよね?
なんで証拠が無いのに「伊藤がやった」って言い切るの?その感覚が全く理解できない。>>136
伊藤が王妃殺害を指示した証拠だせよ!>>137
虐殺者の子孫はお前だろ?
何言ってんの?>>137
輸出が収奪なのですか?
当時は輸出ではなく、イチュと言っていました。
収奪と輸出はあまりにも違います。
収奪は朝鮮側に飢饉以外の何も残しませんが、輸出は輸出した農民と地主に輸出による収入を残します。
米が日本に輸出されたのは、総督府が強制したからではなくて、日本のほうが米の価格が30%程度高かったからです。
だから朝鮮の農民と地主は、米を自分たちが消費することなく、日本から多額のお金を受け取って販売していたのです。
米を消費せずに輸出をする農民と地主は、より多くのお金と所得を得ることができます。
その結果、朝鮮の総所得が大きくなり、経済全体が成長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140
妄想がfactになる国www>>140
おう!
ソウルのアスファルトに練りこまれた廃棄放射性物質に包まれて寝ろ!
ソウルアスファルトから放出されるの放射性物質は、住民非難時の福島より強力だぜ!>>140
結局、こういう終わり方で精神勝利( ´∀`)
証言が証拠の国はダメですね( ´Д`)y━・~~
だから他国の助けがないと今だにまともに機能しない国だと理解しないんでしょうね( ´∀`)
日本が一番、韓国に現在も支援してることにさえ知らないんだろう( ´Д`)y━・~~
こういう朝鮮人のおかげで嫌韓が増えるからまぁいいんですがね( ´ ▽ ` )>>140
まぁいいや
じゃぁ明日はお前らの国が日本に併合される前の伝統である「試し腹」と「ベトナムで罪の無い婦女子に何をしたか」について語ろうぜ!>>145
「自己愛性人格障害」で調べると朝鮮人の民族性がよく当てはまるので、理解が進むと思います。>>145
食糞目 ヒトモドキ科 朝鮮ヒトモドキと言う生き物ですよ(● ˃̶͈̀ロ˂̶͈́)੭ꠥ⁾⁾さてと、突っ込み処が出てきた ニャ。
米の話だ。日本併合前に韓国人(当時 朝鮮人)が優秀で収穫量が有り日本が収奪をしたとすると、半島の人口増加で苦しい生活だったと予測されるし、人口増加は自殺行為に等しい。
又、戦後(朝鮮戦争の後)韓国でまともに白米が食せるようになったのは何年の事でしょう?
次に教育。
朝鮮戦争後、優秀な韓国人ならば復興をとげ国民が皆さん等しく高等教育を受けれるはずが中等科までの義務教育が成されたのは何年の事だったでしょう?
そう言う民族(国)だと言う事を自覚しましょう。
未開 ニャ。( =^ω^)>>149
仮にも自称先進国だろ?
独立してるんだから朝鮮人に丸投げでしょ?
もしくはほぼ植民地扱いのどちらか( ´ ▽ ` )>>130
アメリカと軍需産業はイスラム国との戦闘終結に伴って次のターゲットとして東アジアを定めた
戦場は日本、朝鮮半島、中国の一部
アメリカの野望を止めなくてはいけない>>149
好きにしたけりゃ戦え。戦え無ければ従え。
てのが大戦までの出来事 ニャ。
21世紀の現代で大国と言えども横暴がしずらい情報社会だ。
あ~。韓国は別だった。聴きたくない情報(事実)はマスコミにも噛み付く統制社会だった ニャ~。アメリカの野望とか言うけどどこまで本気?ニャ。
>>140
私は、よくプサンやチャンウオンに滞在し、仕事柄いろいろな世代の韓国人と接するが、あなたのように一方向的な考えを持つ者は、少ないと感じている。また、日本への攻撃性が強すぎはしないですか。深夜だからかもしれないが。
他の人も言っているが、見聞を広げたいならば、英語の文献や情報に接するといいと思う。英語の言語空間には、世界の人々が集まる分、多くの偏見も満ち溢れているが、即座に反論する人も多い、議論のるつぼでもある。おそらく、プライドを傷つけられる機会が多い。それはなぜかを考える機会にもなる。そして、必ずステップアップを感じる。
悪口よりも励ましの言葉を、世界は求めている。
過去の悲しみよりも、未来への夢を語る方がずっと楽しい。
そして、そんな人物を皆が敬愛し、称賛し、尊敬している。
いじめられた人に対して、世界は同情はするが尊敬はしない。
どんなにいじめた相手の卑劣さを訴えようと、同情が尊敬には変わらない。それは、自分が変わろうとしないからです。>>155
공격성? 이 사이트의 일본인들을 보고 일본인들에게 그렇게 지껄여봐라
한국인에게 뭐라고하기전에 역사인식부터똑바로가져봐...
미국에 질문 답변하는 Quora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너네같은 주장을 하면 바로 욕먹어
가끔 일본인들이 와서 털리기도하고 충격많이 받고가지
너네 주장은 너네끼리만 통용되는 어용이론이라니깐
'과거의 슬픔보다 미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라고 했는데
그래 좋은 얘기지만 일본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과거의 과오는 반드시 사과하고 가는게 어떨까?
아직 위안부들이 살아있어 사과하고 미래를 향해 가자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국가가 존경받고 의미있는 국가아닐까?
일본이 바뀌어야 그때 일본이 존경받을수있다>>157
자의식이 너무 강한 일본인은 존경받는다든지 미움받는다든지 그런 표현을 너무 좋아하지
그야말로 맥아더가 말한 아이같은 민족이구나
일제강점기의 전과 후의 인구조사는 오류가 많은데 모르는것인가?
인구증가하고있는 아프리카도 30년간 두배가 늘어날수는 없다
조선독립군? 엄청많았지 중국에서 매번 교전한것 몰라?
넌 모르지? 교육을 안 받고 그것을 부끄러워할줄도모르는 인간이하 쓰레기니까
조선왕조가 병신이라고해서 너같은 병신의 비난을 받을이유도없고
일본의 강제합병을 당할 이유도 없다
이 사이트에 와서 하루종일 한국욕을 하지않으면 안될만큼
너의 정신은 무너져있는거겠지? 너 자신을 보호해주는 껍데기가 '일본'밖에 없으니까???
인류를 위해 자살해라 입만 살아있는 인간쓰레기놈 ㅎㅎㅎ>>159
그 사과하는게 뭐 아쉽다고 70년을 끄는것인가?
일본인의 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무형에 불과한 것
역시 논의에서 밀리면 쪽바리는 다른 소리를 끌어오기좋아하는
그렇게해서라도 한국인과의 대화에서 이긴 척을 하고싶은건가?
이 사이트는 점점 올라오는 한국인이 무서운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사이트라는것은 알지만
너의태도는 정말 작은개가 짖어대는것같아서 재미있구나
아, 실수 개가 아니고 원숭이
일본의 패배는 패배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수준이다.
패배가 아니라 미국에게 학살당한거지
쓸데없는 사실로 졌다는것조차 정신승리로 자화자찬하고있구나
도대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는거냐? 쪽바리
카미카제로 자살해주길 부탁한다^^日本を罵る時だけ米国人のように振る舞うよね
みっともない。
自分たちの国すらなかったくせに>>161
너의 한국이 신경쓰여서 견딜수 없는 모습이 꼴불견
분명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겠지
어딘가 결함이 있으니 한국인의 반응이 무척 신경쓰이겠지自分の国の人口すらわからないくらい未開で
自分の国すら自分で守れないくらい弱小で
戦争すら出来なかった屑が
いい加減に恥というものを知りなさい>>162
너의 의미도 통하지않지만 여러 번역기를 사용해서 이해하고있다
남에게 불평하기전에 노력쯤은 해라 멍청아
침착하게 주제와 관련있는 얘기를 해라
멍청한 쪽바리 관음민족www
새벽까지 한국이 신경쓰여서 어쩔수없는 쪽바리~
한국을 욕해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갔다고생각하는 아이같은 생각을 하고있는 쪽바리~
그러나 너의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않고
아무런 방비가 없는 아시아만을 침략했다가 성과를 올렸다고 자화자찬하다가
서양인과의 제대로 된 전투에서는 처참한 희생자를 기록하는 멍청한 쪽바리~
그 결과 미국에게 잡혀서 현재까지 군대조차없는 비참한 똥민족~쪽바리~>>166
人類のためなら朝鮮人顔なくなる方がいいでしょうが
日本は世界に貢献していますが韓国は何していますか?>>165
それだけ書いて具体的なこと何もなしww>>166
そっくりそのまま返すよ
僕は日本に生まれて良かったよ?
父親になれたし、金はなくとも猫四匹に囲まれた幸せな家庭くらいは作れた
君みたいにはならなくてすみそうだ国というのはひとりひとりの集まり
一人の力が小さくてもその集まりが国力となる
ここにいるすべての「日本人」がその一員だ>>172
아아...너같은 인생이 망해버린 쪽바리도
굳이 일본에 힘을 보태는건가?
아무것도 기여하는것없으면서 소속감하나는 정말 대단하네
일본의 정상적인 사람은 널 싫어할거같은데
아니야?>>174
날조사실을 그대로 믿는거지.........
30년간 인구가 두배가 됐다든가 이런것도 그대로 믿고......
그렇게 머리가 약한데 아버지 역할 할수있어?
그냥 아무여자나 잡아서 정액싸지르고결혼한건가...
여자는 혹시 반항할수없는 장애인?간다 답이없는 쪽바리들아....
엠창인생들주제에 아침엔 좀 자라
형은 일하러간다
조언을 하나해주면
직업없이 그렇게 인터넷하고있는것은 정말로 한심해
히키코모리가 많다지만 이런데도 침투하는구나..
주변에 있는사람을 소중히하고 폐가 되지않도록 노력해라>>173
自営業だし
猫四匹は確かに全部その辺で拾った子だが
つーか余計なお世話だwwww
韓国人はこれだからもう……韓国人の国史教科書がファンタジーって他国から言われる理由はなんでだと思う?日本が歴史捏造してて自分たちの国は捏造なんてしてないとでも本気で思ってんの?
んで君は韓国で生まれてこんな時間にこんなサイトで悪質なコメントしてる訳だけど
なにか成し遂げたの?
何を誇りにしてんの?
人類のために自殺でもするの?>>156
他人のこととは関係なく、まずは自分が大切ではないですか。
他人を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が、自分は変えることができる。>>166お前は朝鮮人に生まれて何を成し遂げるんだ?
ノーベル賞でも受賞するのか?www.>>178
니 흉내내고 있는 것
눈치있으면 바로 알아차릴텐데このスレだけ無条件愛国酒がぶ飲みしたようなすごいのが揃ってるなw
朝鮮半島の支配を目論む倭米帝国主義同盟は粉砕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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