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00423095602420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우동면 제조기계 생산업체인 사누키면기의 오카하라 오노 회장은 지난 1월 사비로 출판한 '불역유행(不易流行·본질은 변하지 않는다)'이라는 저서를 통해 "무로마치시대(1336~1573년)에서 에도시대(1603~1867년)에 걸쳐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면요리가 우동의 원형"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우동은 구카이(空海·774~835년)라는 승려가 1200년전 중국에서 제조법을 배워 왔다는 중국전례설이 주류를 이뤘다. 사누키우동이 일본 우동의 원조로 인정받는 건 홍법대사라는 법명으로 진언종을 창시한 구카이의 고향이 사누키(현 가가와현)였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오카하라 회장은 "구카이가 활약했던 헤이안시대(794~1185년) 초기에는 우동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금과 밀가루가 일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서민의 식사는 쌀이 주식으로 밀가루를 사용한 분식은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
일본에 면요리가 전파된 건 그로부터 400~500년 뒤인 무로마치 시대라는게 오카하라 회장의 주장이다.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 한반도의 면요리인 칼국수를 일본에 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오카하라 회장은 "무로마치시대에는 일본에도 밀가루를 빻을 수 있는 맷돌이 보급됐다"며 "칼국수가 우동의 원형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동을 구카이의 공적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소금을 양산할 수 있게 된 건 에도시대에 접어들면서 부터였다"고 말했다.
우동 조상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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