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それ言ったら西暦の2016年だってかなり怪しいし
結局声のでかい方が勝つって話になってしまうが너는 영웅으로 기억될것이다.
朝鮮出兵(壬辰倭乱)について
16世紀後半の東アジアの国際関係は中国を中心とする伝統的な国際秩序が明の衰退により変化しつつあった。全国を統一した秀吉はこの情勢の中で日本を東アジアの中心とする新しい国際秩序を作ることを考え、ゴアのポルトガル政庁、マニラのスペイン政庁、台湾などに服属と朝貢を求めた。
1587年、対馬の宗氏を通し、朝鮮に対し入貢と明へ攻め入るための先導を求めた。朝鮮がこれを拒否すると、肥前(現在の佐賀県)の名護屋に城を築き、約15万の大軍を朝鮮に派遣。釜山に上陸した日本軍は鉄砲などの威力により漢城(ソウル)、平壌(ピョンヤン)をまもなく占領したが、李舜臣率いる朝鮮水軍の活躍や朝鮮義兵の抵抗、明の援軍により戦局は不利になった。現地の日本軍は休戦し講話を求めたが、秀吉が強硬な姿勢をとったので交渉は決裂した。続き
慶長の役(丁酉倭乱)について
秀吉は再び朝鮮に14万余の兵を送ったが、最初から苦戦を強いられ、翌年秀吉が病死すると撤退した。7年に及ぶ朝鮮侵略は朝鮮の人々を戦火に巻き込み多くの被害を与えた。国内では莫大な戦費と兵力を無駄に費やし、豊臣政権を衰退させる原因となった。関東大震災の朝鮮人虐殺について
1923年9月1日午前11時58分、相模湾北西部を中心にマグニチュード7.9の地震が発生、中央気象台の地震計の針は全て吹き飛ばされた。被害は関東一円と山梨、静岡両県に及び、死者、行方不明者は10万人、全壊、流失、全焼家屋は57万戸にのぼり、被害総額は60億円を超えた。地震と火災の混乱で「朝鮮人が暴動を起こした、放火した」「井戸に毒を投げ込んだ」という流言が飛び交い、政府は戒厳令を公布して軍隊、警察を動員し、住民に自警団を組織させた。関東全域において恐怖心にかられた民衆や一部の官憲により数千人の朝鮮人と約200人の中国人が殺害された。韓国併合について
日本は日露戦争後、戦争の勝利によって得た大陸進出の拠点の確保に努めた。まず1905年、アメリカと桂・タフト協定を結び、イギリスとは日英同盟を改定して、両国に日本の韓国保護国化を認めさせた。同年第2次日韓協約により韓国の外交権を奪い、漢城(ソウル)に韓国の外交を管理する統監府を置き、伊藤博文が初代総監となった。これに対し韓国皇帝の高宗は1907年にオランダのハーグで開かれた第2回万国平和会議に密使を送って抗議したが列国に無視された(ハーグ密使事件)。日本はこの事件をきっかけに高宗を退位させ、さらに第3次日韓協約を結び韓国の内政権を手に入れ、韓国軍を解散させた。以前から植民地化に抵抗して行われていた義兵運動は解散させられた韓国軍の元兵士が加わり本格化した。日本政府は1909年に軍隊を派遣して鎮圧したが、そのさなかに前統監の伊藤博文がハルビン駅前で韓国の青年活動家安重根に暗殺される。日本は憲兵隊を常駐させるなどの準備のあと、1910年に韓国併合条約を強要して韓国を植民地化し、漢城を京城と改称して朝鮮総督府を設置し、初代総督に寺内正毅陸軍大臣を任命した。朝鮮統治について
総督府は地税賦課の基礎となる土地の測量と所有権の確認を朝鮮全土で行ったが(土地調査事業)、その際に所有権の不明確などを理由に広大な農地、山林が接収され、その一部は東洋拓殖会社や日本人地主などに払い下げられた。これにより多くの朝鮮農民が土地を奪われて困窮し、一部の人々は職を求めて日本に移住するようになった。朝鮮戦争(韓国戦争)
1948年、朝鮮半島ではソ連占領地域に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北朝鮮、首相・金日成)が、アメリカ軍占領地域では大韓民国(韓国、首相・李承晩)が建国され、南北分断状態が固定化した。中国革命の成功に触発された北朝鮮は、武力統一を目指して韓国に侵攻、朝鮮戦争が始まった。北朝鮮はソウルを占拠し南朝鮮を席巻したが、アメリカ軍は仁川上陸作戦を転機として北緯38度線を越えて中国の国境に迫った。これに対し中国人民義勇軍が参戦し、北緯38度線付近で戦線が膠着した。1951年7月より休戦協定が始まり、1953年7月に板門店で休戦協定が調印された。今の教科書ってそんなに記述増えてるの?
昔はすかすかで補助教材で学んでたのに>>105
捉え方にもよるけど、韓国国内にも一進会のような清との関係を続けたまま、鎖国してる現状に不満を持ち
日本と関係を結び開化することを望んだ勢力もいる。銃を突き付けて併合したっていうのはあまりにも幼稚な表現だと思うよ>>70
1.식민지적 경제 구조로 변화하다
<생각을 여는 이야기>
농촌 진흥 운동이 시행되던 시기에 일제는 농가의 소득 증가를 위해 かます織り를 장려하였고, 이를 위해 かます織り 대회를 자주 열었다. 그러나 농촌 진흥 운동은 소작료 인하, 自営農 육성 등의 근본적 문제 해결 방식은 背け한 채 농민들의 노동 강도를 높여 농촌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농민, 노동자의 삶은 어떠하였을까?>>69
:농촌 改編과 농촌 안정화 정책
1910년대 일제의 식민지 경제 정책은 농업분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토지 조사 사업 이후 일본인 지주의 대토지 소유가 빠르게 확대되었고, 한반도는 일본의 식량 공급지가 되어 일본의 쌀값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일제는 1920년대 産米 증식 계획을 실시하여 한반도의 식량 공급지 기능을 강화하였다. 농민은 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쌀의 상품화 과정에서 성장한 일부 신흥 지주층은 일제와 이해관계를 共にし、 일본의 한국 지배를 뒷받침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초 대공황에 따른 농업 恐慌으로 농촌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자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비합법적인 혁명적 농민 운동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일제는 春窮 퇴치, 부채 근절 등의 목표를 내세워 농촌 진흥 운동을 실시하였고(1932), 지주의 자의적인 소작권 이동을 막는 조선 농지령(1934)을 제정하는 등 농촌 경제 안정을 위한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한편, 일제는 소비 절약, 가계부 書き 등 생활 개선을 통해 농민 스스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농촌 안정화 정책은 가난의 책임을 게으름이나 浪費 등 농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농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대륙 침략 확대 과정에서 농민을 회유하고 규제하기 위해 실시되었다.>>71
:농민의 삶
일제의 농업 정책으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 중 다수가 몰락하였다. 地主들은 규정된 소작료 이상을 거두었으며, 地主가 부담해야 할 수리 조합비, 벼 검사 수수료, 비료 대금, 농기구 비용까지 소작농이 대신 부담하도록 하였다. 地主가 소작농과의 계약 기간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작농은 地主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자작농은 自小作農으로, 自小作農은 농촌 주위의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단순 노동자로 몰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작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나 貧民으로 전락하기도 하였으며, 새로운 小作地를 찾아 만주 등 국외...(사진切れ)
1930년대 일제가 침략 전쟁을 확대하여 수탈을 강화・・・(사진切れ)・・・ 〜한 상태에 내몰렸다>>73
:일제의 식민지 통치 제도
국권 강탈 후 일제는 식민지 통치의 최고 기구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였다. 현역 육해군 대장 가운데 임명된 조선 총독은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을 장악하였을 뿐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였다. 총독부의 주요 관리는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총독부의 직속 자문 기관인 중추원은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로 구성되었다.
또한 일제는 지방 행정 조직을 개편하여 전국을 13道 12府 220군으로 나누었다. 이때 전통적인 공동체 조직을 해체시켜 한국인의 저항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면과 동, 리를 통폐합하고, 전직 관료와 면의 유력인사 가운데 면장을 뽑아 이들을 식민 통치의 동반자로 끌어들였다.>>74
일제는 일반 官吏는 물론 학교 교원들까지 제복을 입히고 刀을 装備させ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출판, 言論, 결사의 자유를 철저히 박탈하여 한국인이 발행하는 거의 모든 신문을 폐간하였고, 민족적 역사서나 잡지 등의 출판도 금지하였으며, 정치 단체는 물론이고 학회마저도 해산시켰다.
또한, 일제는 일본어 위주로 교과목을 편성하였으며, 한국인에게는 고등 교육의 기회를 거의 부여하지 않고 주로 보통 교육과 実業 교육을 실시하였다. 수업 연한은 일본의 学制와 달리 4년으로 가능한 짧게 하였다. 민족 교육 기관인 사립 학교에 대해서는 탄압을 강화하여 사립 학교의 수가 크게 줄었다. 사립 학교를 개량 書党으로 전환하여 탄압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일제는 1918년 書党規則을 발표하고 書党을 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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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党=서당>>176
일본교과서에는 제대로 써있는데 넷우익들은 역사시간에 공부 안 했네>>190
세계사가아닌 한국사이기때문에 적혀있지 않습니다.
저는 이과라서 세계사는 배우지 않았습니다.皆、すごいな。私は半世紀生きて何も知らなかったと理解した。
━━【カイカイチャンネル通信 vol.2】━━━━━━━━━━━━━━━━━━
~デムパ朝鮮人が電波時計画像をうp~
http://kaikai.ch/board/5852/831
━━━━━━━━━━━━━━━━━━━━━━━━━━━━━━━━━━━━
機能性文盲の朝鮮人がレスの投稿時間欄が目に入らず、
ある知恵遅れな投稿工作のため、投稿時間を明示する必要に迫られました。
彼はナントカ自分のレスの投稿時間を立証するため、ミラクルな手法を
開発しました。
電波時計のデンパな使い道をサジェスチョンする、ナイスな朝鮮アニキをご覧下さい(笑)たまには上げ
上げ
동아시아사를 배웠지만 남북조시대 일본은 잘 기억나지 않는 중
>>80
https://kaikai.ch/board/6361/22
https://kaikai.ch/board/6361/36
日露戦争後、日本は朝鮮(韓国)の外交権を奪い、韓国統監府をおき、さらに内政権も握って、軍隊を解散させました。解散させられた兵士は、農民とともに日本に抵抗(義兵運動)し、初代韓国統監府だった伊藤博文が民族独立運動家の安重根に射殺される事件も起こりました。このような動きに対して、日本は、1910年、軍隊の力を背景にして朝鮮を植民地化しました。これを韓国併合と言います。
併合により、朝鮮総督府が置かれて軍人が総督となり、日本の軍隊や警察を全土に配置して抵抗運動を抑えました。これは、政治への軍隊の影響力を強めるものとなりました。
朝鮮総督府は、あらゆる政治運動を禁止し、新聞の発行も制限し、学校では、日本語や日本の歴史を強制的に教えました。
このように朝鮮民族の歴史や文化を否定し、日本に同化させる政策を進めましたが、先に植民地となった台湾と同様に、朝鮮で暮らす人々には人々には選挙権は認められませんでした。
いっぽう、日本の支配に対する朝鮮の人々の抵抗は続けられました。>>199
出鱈目だな。公務員にしなければ、日本は差別したと罵るだろう。
日本が悪いとしなければ、大韓帝国皇帝から禅譲を受けたわけわけでもない、国権の簒奪者である韓国臨時政府による韓国の建国の正統性に不安があるからそうなるのだ。>>199
第二次大戦後行政経験が皆無な李承晩政権を支えて、日本時が去った後の国を創ったのは総督府の朝鮮人役人とお前さんたちが親日派と言っている人達だよ。>>199
その通りですね。
たとえば洪思翊さんなどは明らかに差別待遇されていましたからね。
陸大卒のエリートコースの具体例として、かの牟田口閣下と比較すれば明らかです。
1918年参謀本部付
1927年陸軍省軍務局(エリート中のエリートコース)
1929年参謀本部
1933年参謀本部総務部
1944年参謀本部
とこんな感じ。しかも現場勤務経験が6~7年しかない。これがエリートのキャリアってやつです。
一方で洪思翊さんは
1925年参謀本部(戦史編纂)
1936年参謀本部
の二回。しかも参謀本部第一部でも第二部でもない戦史編纂。
これで差別されてないなんて冗談以外のなにものでもない。陸軍大学校卒業者の場合、参謀本部第二部に配属されただけでトップを目指せないのに、戦史編纂ってなんですか?という話ですよね。이런거 좋네
서로 욕하던 말던 일단 대화를 해야한국 역사 교과서에는 한일 기본 조약이 생략되어있다?
내가썼던 교과서네 다른 교과서보다 두꺼웠는데
>>189분만실 ㅋㅋㅋ...ㅗㅜㅑ
スレの最初からずっと読んでしまうぐらい面白いスレだ
歴史は事実に基づいて中立が理想ではあるけど日本でも多少偏った教科書も存在してるし
同じ出来事に対して日本、韓国、その他各国の教科書見てみたくなったな- 208名無し2019/01/31(Thu) 13:39:31(1/1)
このレスは削除されています
임나일본부설은 뭐야...? ㅋㅋㅋ
가야를 말하는건가?이 스레 내가 세운건데 아직도 글이 올라오고 있었네
이거 올릴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였는데 벌써 21살이네 ㅋㅋYouTubehttps://youtu.be/n5c078aV9Bg
インターネット講義1
YouTubehttps://youtu.be/EHE2xD7ynwI
インターネット講義2
YouTubehttps://youtu.be/5oHyTIF8T1o
韓国最高の人気芸能放送"無限挑戦">>210
解説の一つも願いたいところだね。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092724
김육훈 선생님은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창립 회원이며 대안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전념해온 현직 교사입니다. 1997년 <쟁점으로 보는 한국사>를 펴냈으며, 이후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등을 펴내는 데도 참여했습니다.
그림과 글을 그린 권범철씨는 경상남도 지역신문인 경남도민일보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고 현재 <미디어오늘>에서 <권범철의 미디어세상>을 펴내고 있는 만평작가입니다. 2013년 '올해의 시사만화상', '앰네스티 언론상'. '인권 보도상'등을 수상했으며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어달리기'를 쓰고 그렸으며, 시사만화 <기억하라>를 펴내는 데도 참여한 실력있는 작가입니다.>>215
정리하자면 김육훈 선생님의 글을 권범철 작가가 재구성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역사에 관심이 많고 많은 책을 읽었지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화로 구성된 역사책은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1권 개화기부터 의병활동까지, 2권 식민지 조선에서 새로운 나라로, 3권은 분단부터 민주주의의 완성까지' 로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1863년 고종 즉위, 흥선 대원군 섭정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등장인물로 나오는 아빠와 정우, 외계인들이 역사의 전반을 함께 경험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외계인이 좀 생뚱맞기는 하지만 읽다보면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책의 재미를 더합니다.
천주교의 전래와 억압, 다양한 서양세력의 침입, 그 과정에서 위정자들의 무능함을 꼬집습니다. 챕터가 끝나는 부분에 '역사 돋보기'라는 란이 있어 역사의 자세한 사실을 설명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왜 일어났으며 왜 농민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가와 농민을 없애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는 조선 정부의 무능함, 이후 을사조약으로 이어지는 일본 세력의 침투과정들을 사실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의 만행에 대해 다시금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의 만행보다는 힘이 없었던 조선의 무능함에 더 분노가 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침략의 역사입니다. 일본이 물러나고 해방하고 나서도 민족의 분열, 김일성과 이승만의 한계, 남한에서 있었던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무력한 해체, 분단과정부터 좌익와 우익의 충돌 그리고 좌익과 우익이 뭔지도 몰랐던 수많은 양민들의 이유 없는 학살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꼈습니다. 더군다나 6.25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로 많은 서울시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등을 보며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215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가슴 시릴 정도로 잘 서술된 책입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 읽는 내내 이해도 빨랐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하나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할 수 있다. 해내 왔고 해내 갈 것이다."
정부가 부패했을 때 들고 일어나서 세상을 바꾼 대부분의 일이 민중을 통해서였습니다. 국민들의 수많은 희생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성장해 왔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모두 국민들의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인지하고 잊지 않을 경우에 진보할 것입니다.
역사는 단지 지나간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다면 진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의 자라는 아이들의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게 된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 책은 만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글이 많아 초등학생 저학년이 읽기에는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어른인 제가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조각, 조각, 파편처럼 흩어져있던 역사적 사실들이 이 책을 통해 제대로 꿰어진 느낌입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217
>正しく知って、正しい歴史観を持つようになれば、
正しい歴史観って いったいなに?>>202
A君が昇進しないでB君が昇進したのはA君を差別したから。
君の主張はこれだよ?
「差別された主張の根拠は差別されてたからです」馬鹿だと思わないか?>東学農民運動がなぜ起きなぜ農民が怒りしかなかったと農民をなくすため、外部勢力を引き込む朝鮮政府の無能さ、以来、乙巳条約につながる日本の勢力の浸透過程をリアルでありながら、理解しやすく解放します。
>この本を読んでいると、日本の蛮行に対して改めて怒りしかありません。
酷いな。
日本は朝鮮を清から独立させて、治安を取り戻して、近代政治を伝えた時代なのに、蛮行と表現されてる。たまには上げ
교과서 가지고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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